>1597049238> 【잡담/다목적】 작은 새가 느긋하게 우는 마을 - 602 :: 1001

코토리◆7A333VkTn2

2024-07-05 00:31:40 - 2024-07-15 01:44:17

0 코토리◆7A333VkTn2 (H7u2A9NaqU)

2024-07-05 (불탄다..!) 00: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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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텍스트 참치◆hS.UgB4KQQ (4ZOtbjHPvY)

2024-07-05 (불탄다..!) 20:01:34

3.청조간섭기(淸朝干涉期)(정축하성-가도정벌-송산전투)(17세기 초)


인조는 당시 대청의 황제, 숭덕제(홍 타이지)에게 삼궤구고두례의 예법을 실행하였으며,
이 날, 조선국은 후일, 구주와 대마도를 빼앗기고 한반도가 일제의 영향력 아래로 떨어진 경솔국치를 제외하고
조선 왕조의 치욕적인 순간으로 남게되었습니다.

조선은 대청과 군신관계를 맺고, 대명과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며, 인조 또한 큰 반발없이 이를 수용했습니다.
그것 외에도 수많은 백성과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서 끌려갔으며, 수많은 물자와 식량을 매년마다
대청에게 바쳐야 했습니다.

이때 발생한 포로들은 대청의 수용능력이 부족하여 대열 중 일부 포로들은 대청에 도착하기도 전에
탈수 및 부상으로 죽어나갔습니다. 또한 포로들은 조선에서 돌아와도 차별대우를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는 당시에 적지 않은 수가 끌려간 여성 포로, 환향녀(還鄕女)입니다.

끌려간 포로들은 대청에서 기근과 고갈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력으로 쓰였으며, 조선은 이들의 속환(贖還)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항복 이후의 조선의 조정은 패배주의에 물들은 분위기와 잇따른 사직에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했고, 포로 쇄환조차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야 했습니다.

이와같은 요구와 더불어 대청의 대명전쟁에 같이 참전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미 대청과 군신관계를 맺은 시점에서 대명과의 외교관계는 청산할 예정이였고 그럴 상황이였으나,
대청은 관계를 확고하게 끊은 것을 확인하고자, 동시에 원정에 소모된 군사를 조선군을 통해 메울 계획이였습니다.

인조는 이 또한 수용하였으며, 당시 조선의 섬, 가도에서 진을 치고 버티고 있었던 모문룡 휘하 대명군을
토벌하기 위해, 당시 남아있었던 조선군을 규합하여 가도 정벌에 동원되었습니다. 이미 가도에서 버티고 있었던
대명군은 이전의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서 보급 및 사기의 한계점에 도달하여 맥없이 토벌당했습니다.

이후 또 다시, 조선군을 파병시킬 것을 요구하는 전투가 발생하는데, 그것이 바로 송산 전투입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조선에 그나마 남아있었던 주화파, 척화파의 거두들마저 고초를 겪게 되니,
송산 전투로 대명의 정예군이 완전히 전멸함과 동시에 조선에는 더이상 제대로 된 정승이 없다고
당대의 선비들이 한탄을 내뱉던 시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듯, 안좋은 듯, 결국 대명과의 외교관계를 완전히 단절했고, 당시 주화파의 거두, 최명길은
인조가 삼배구고두례에 처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인조를 보호하고자 노력하였으며, 동시에 병자호란 당시에는
대청의 병력에게 회담을 요청하여 시간을 끄는 둥,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서 조선을 보호하고자 하였으나,
결국 자신이 대명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다가 대청에게 비밀리에 내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들통난채,
자신은 독단으로 벌인 일이니 조선과 연관 짓지 말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끌려갔습니다.

이 때 다른 파벌, 척사파의 거두, 김상헌은 인조반정에는 참여하지 못했으나, 인조의 친명배금 정책에
적극적인 동의를 내세우며 저 오랑캐들과 화친할 수 없다는 척사파의 주요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병조호란에서 조선이 패전되었을때도, 왕이 항복하러 출성하는 길을 따르지 않고, 은거하여
조선 군주의 뜻을 충성하며, 대명의 의리에 결코 반하지 않음을 보여줬습니다.

그 역시, 대명과의 관계를 완고하게 지키고자, 가도 정벌, 송산 전투에 절대로 출병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왕의 앞에서 직접 석고대죄하였으며, 이를 마땅치 않게 여겼던 대청은 비슷한 시기,
최명길의 대명내통 사실이 드러난 것을 명분으로 두 명을 포함한 선비들이 대청으로 압송당해 옥고를 치뤘습니다.

당시의 대청은 조선에게 그 외 상당한 요구사안을 제출했지만, 명분으로든 목적으로든 조선을 무릎꿇는 것이 목적이기에
더 가혹한 처사를 주어선 안된다고 판단, 인조는 왕위를 유지할 수 있었고, 포로는 당대 조선의 권력자들이
어떻게든 자신들의 가족들만 빼내기 위해 따로 지불하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빠져나간 포로나 매년 조공으로 오는 물품이 명시된 것보다 적게 와도 조선에게 항의를 보내는 선에서
끝냈습니다. 황당하게도 대청의 관심이 중원의 패권에 집중되어 있기에 가능했던 행운이였습니다.

이 때 끌려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민회빈 강씨(소현세자비)는 오히려 대청에서 병자호란의 낙담을 극복하고,
대청의 관리를 돕고, 자신들이 직접 상회를 운영하여 자신들과 같이 끌려온 조선 포로를 다시 인수했습니다.
그렇게 인수된 포로들은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세자의 지휘 하에 노동에 기꺼이 참여했고,
시간이 지나 조선 포로의 몸값을 전원 지불하고 그들은 금의환향하여 조선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삼전도의 굴욕 이후, 조선의 상황은 파국 직전이였습니다. 일본은 상대로 승전하고, 대명의 지원이 쏟아지며,
대항해시대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던 조선의 태평성대는 광해군이 승마 도중 고삐를 잡지못해
그대로 낙마해버린 기수의 몰골이 되었으며, 그 다음 들이닥친 대청의 기상은 조선의 태평성대를 완전히
짓밟아 더는 누릴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정묘호란의 패배로 볼모로서 끌려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민회빈 강씨에 대한 동정여론이 많았으며
조선에는 패배주의와 냉대주의가 팽배하여 국가가 그대로 주저앉고 맙니다. 여기저기에 비어버린 민가와
초토화 된 성들은 조선이 재앙을 맞이한 흔적처럼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일본은 조선이 대청에게 참패한 것을 재차확인하며 여전히 기도비닉을 유지하고 있는 에도 막부의 정책으로
대청에게도 고개를 숙입니다. 동시에 조선에겐 소위 말하는 문명국의 자격인 '소중화'로서 자격을 잃었다며
그들을 자연스럽게 압박하는 구도를 생성하며 조심스레 대마도와 구주 지역에 영향력을 투사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일어나고자 하는 이들이 내세운 것은 '북벌론'입니다.

'오랑캐를 벌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갚자'
'대명이 멸망했고, 이제 실질적인 중화사상의 유일한 후계자인 조선이 대청을 무너트려야 한다.'
'임진왜란 때 우릴 도와준 만력제의 은혜를 생각하며 대명의 복수를 하자'
라는 골자를 기반으로 내세워진 대청의 보복론은 당시 인조가 삼전도의 굴욕으로 완전히 박살난 명분인
친명배금 정책을 대신할 새로운 정책이였습니다.

그러나, 인조는 앞서 말했듯이 병법에 무지했고, 신하들은 북벌론의 목적에 대해선 찬성했으나,
수단에 대해선 한없이 비관적이였습니다.

임진왜란-정유재란-사르후전투-정묘호란-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의 상태는 심각했고,
조선 백성, 무관 모두 전쟁에 지쳐 북벌조차 주장할 여력이 남지 않았던 것이 제일 큰 문제로 뽑혔으며
이미 패전하고 대부분의 자원과 인력이 대청에게 끌려간 마당에 북벌을 할 원동력이 땅에서 솟아오르겠냐는
당대에서도 제기된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신하들의 발없는 말에 의해 계속 오고갔습니다.

인조는 이를 왕권으로 찍어눌러 반발을 억제하였고, 강제로라도 패배주의에 물든 조선을 어떻게든 인양하려
애썼습니다. 성리학적 질서를 강화시키고, 대청으로 끌려간 포로의 대표적인 문제 환향녀 문제를
과격한 방식으로 해결함으로서 조선의 왕권을 어떻게든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향후 어떤 손실 위험이 뒤따르더라도
이후 왕조에겐 별탈이 없어야 합니다. 그랬어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 볼모로 끌려가 적어도 인조의 통치 중에는 돌아올 일이 없을 것 같았던
소현세자, 봉림대군, 민회빈 강씨가 같이 끌려간 조선 포로를 전부 속환하고 자신들 역시 조선으로
금의환향하면서 조선에 돌아온 것이였습니다.

평소였다면 기뻐했어야 할 일이였습니다.

그러나, 시대와 조선 모두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군요.

한창 북벌론을 주창하고 있었던 당시, 그들이 대청에서 가져온 물품과 그때 심양관에서 운영하던 관점을 기반으로
조선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를 품었습니다. 봉림대군은 이 때 같이 참여하지 않고, 소현세자가 주로 인조에게
서역의 기물과 공예품 등을 보여주며 조선을 다시한번 기상할 수 있다고 격려하였습니다.

하지만 인조는 이들이 되려 대청에 물들고 왔다는 한탄과 함께 소현세자와 그의 아내, 민회빈 강씨를 궁궐에서 내쫒고
일가를 박살냈습니다. 이에 반발하는 신하들도 없었으며, 내실 없는 북벌론에만 매달린 작금의 상황에서
두 명은 조용히 시대의 희생양으로서 역사에서 퇴장합니다. 추모하는 자조차 발걸음이 끊긴 채,
조선의 상황이 날로 악화일로 되어갔음은 분명했습니다.

인조는 대청의 후원을 받고 있는듯한 소현세자에게 끊임없는 의심과 환상을 품으며 조선 왕실에서 내쫒고,
향후 효종으로서 즉위하게 될 봉림대군에게 무엇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작금의 상황이나 다름없는 조선을
몰려줍니다.

안그래도 왕위의 적격자로서 정통성이 부족한 봉림대군에게 왕위를 맡긴다는 것은 인조 자신이 보여줬던
성리학적 질서 회복에 반하는 선택지였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버거운 상태를 거듭강조하며 어떻게든
봉림대군에게 왕위에 오를 자격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그러한 그의 말년에는 저주라도 얻어걸리라도 한 듯, 질병으로 고생하며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을 남긴채, 승하합니다.

결국, 해질 것 같이 봉합된 왕권과 폐허나 다름없는 조선을 물려받은 봉림대군은 조선에 수없이 쌓인 시체를 뒤로하고
왕위에 올라 효종으로 즉위합니다.

105 텍스트 참치◆hS.UgB4KQQ (4ZOtbjHPvY)

2024-07-05 (불탄다..!) 20:01:55

4.강병비닉(強兵秘匿)(효종즉위-조선개혁-현종즉위-경신대기근-숙종즉위)(17세기)


조선에 새로운 왕이 즉위하였습니다.

그는 효종, 아버지 인조의 정책을 이어 북벌론을 주창하며 전대 왕조 당시 심각한 수준의 패배주의와 비관주의에 찌든
신하와 관리, 문관들과 무관들의 기강을 엄벌주의를 기반으로 확고하게 잡아내고, 내실도 없고 속빈 강정에 불과한
북벌론의 기초를 만드는데 성공한 조선 왕조의 왕입니다.

그의 치세는 전대에 비하면 미약했으나, 결코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우선 그가 왕으로 즉위하자마자 행했던 일은 아버지가 물려준 위험하게 봉합된 왕권의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였습니다.
병자호란에는 선왕의 실책과 실수가 조선의 패전에 기여한 것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그런 선왕 사이에서
자신들의 호사스러움을 위해 권세를 지멋대로 부린 신하들과 대신들의 잘못은 결코 적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였습니다.

효종은 명령에 불복하여 병력을 제대로 지휘하지 않은 무관,
자신들의 왕이 위험에 처해있음에도 먼저 살아나고자 왕을 밀친 문관,
지방을 제대로 통치하지 아니하고 조선의 패전 소식에 되려 부를 쌓은 관리.

이들 전원이 엄벌에 처했으며, 그전에도 자진납세하여 죄를 용서받고자 하는 이들은 효종이 이들의 사례를
공표하며 감히 효종의 왕권에 대항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알리고자 했습니다.

선왕이 병법에 무지하여 취약했던 조선의 군제는 실질적으로 방치되어가는 상황이였습니다.
그 탓에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의 상황은 외부침입이나 영향 투사에 매우 취약한 상태나 다름 없었고,
아예 육지로부터 떨어진 제주와 저 너머의 구주와 대마도는 실질적인 통치를 할 수 없었던 상황입니다.

효종은 이에 분발하여, 조선의 군제개혁을 성공적으로 끝마치니, 조선이 또 한번 침공의 위기에 들이닥칠때,
이를 방어할 병력, 반격할 병력이 재편성되어 다시는 조선이 무방비하게 침공당하지 않을 것임을 확실시했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시기 때, 대량으로 소비한 화약의 보충과 효율성 연구를 위해 다시금 태조의 정신을 이어
화기병조창(火器兵曹廠)을 신설하여 조선 특유의 고질병인 화약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외에도, 북벌론을 주창했던 것과 달리, 대청의 문물과 서역의 물건을 받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를 본 신하들이 효종을 비판했으나, 대신들의 해이해진 기강을 잡고 군제개혁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철혈군주(鐵血君主)에겐 그렇게 신경쓸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때를 기점으로 그간 괴력난신의 난립을 막기 위한 조선의 철저한 괴력난신 배척 정책이 처음으로 완화되는
순간이였습니다. 좋든 나쁘든 조선 이전 고려가 대원에게 휩쓸리고, 조선 건국 당시에도 대토벌에 나섰고,
이후 대청의 침공으로 인해 또 다시 휩쓸린 덕에 앵간치 조선에게 해악이 될 괴력난신은 대부분이 죽음을
맞이한 것이였습니다. 그 덕분일지 적어도 태조의 통치시기, 괴력난신을 적극적으로 막기 위한 갑사.
착호갑사의 재창설 역시 긍정적으로 논의되었습니다.

효종은 이따금, 선조가 다시 세운 성리학적 질서에 반하는 것이냐, 대청의 원정은 언제쯤 이루어지는 것이냐며
신하와 대신들의 상소문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권위로서 입에 못오르게 했지만 말이예요.

조선의 개혁은 어느정도 의미를 볼 수 있었는지, 대청의 또다른 요청으로 파병을 요구했고,
당시 루스 차르국과 대청의 국경 분쟁에, 효종의 개혁으로 완전무장한 조선군이 적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활약했으며,
루스 차르국의 범선, 카라벨과 코르벳에 대항하여 강력한 포탄과 탄환을 쏟아냈으며
루스 차르국이 강력한 화망 속에서 철퇴하자, 대청은 이에 잘 싸워준 조선군을 치하하였습니다.

이를 나선정벌이라 칭했으며, 비록 조선은 북벌론의 토대가 될 군대의 상태를 보고 만족했지만,
이 군대를 첫번째로 상대한 적군과 같이 참전한 아군이 좀 그랬는지 그렇게 만족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나선정벌로 얻은 전리품들은 조선의 화기병조창으로 옮겨가 나름대로의 실전기술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허나, 이런 효종의 개혁은 황당무개하게도 효종 본인이 의료사고로 인해 사망함으로서 중단되고 맙니다.

사망의 원인은 종기의 치료를 위해 침을 놓다가 침을 놓는 부분에서 당시 어의인 신가귀의 수전증으로 인해
잘못된 곳을 침을 꽂았고, 첫 치료에는 무사히 종기가 검은 혈색을 내뱉으며 사라졌으나, 후속치료 때
종기를 제거한 부분에서 피가 멈추지 않았고, 수차례의 지혈 시도와 의원들이 애써 막아내려 했으나,
이미 효종의 상태는 치명적이였고 결국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의료사고로 인해 효종의 개혁은 갑작스레 중단되었으며,
당시 치료를 맡던 어의 중 침을 놓은 신가귀는 극형에 처해졌으며, 다른 의원 역시 책임을 통감하고 사직하여
궁궐에는 비탄과 침묵의 소리가 이어졌습니다.

급작스런 왕의 승하로 인해, 효종의 다음 왕위계승자인 현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현종의 즉위와 함께 효종 자신이 권위로 찍어눌렀던 신하와 대신들 사이에서
다시금 다툼이 발생했습니다.

'예송논쟁'이라고 불린 이 당파논쟁은 단순 예복같은 것으로 싸움이 나는게 말이 되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왕의 정통성'에 가까운 논쟁을 상복같은 예의 규정으로 이의를 제기한 것이였습니다.

즉, 예송논쟁은 지금 즉위한 왕이 조선의 적법한 군주이냐고 물을 수 있는 것이였습니다.

또한 왕의 정통성 문제는 자칫하면 피를 부를 수 있으며, 아버지가 만든 개혁의 결과물을 자칫하면
대청이 아닌, 조선을 상대로 휘두를 수 있거니와 최악의 경우, 개혁이 모두 무의미해질 정도로
조선군의 해체, 신하들의 난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였습니다.

효종이 승하한 후 즉위한 현종은 이를 지혜롭게 대처했습니다.

말했듯이 상복의 이의제기 문제로 문제의 단위를 당파에서만 논할 수 있도록 제한을 걸고
또한 당파의 사이를 중재하여 문제의 난립이 벌어지지 않고, 격화되지도 않게 했습니다.
이것은 후일 성조와 장조, 정조의 통치시기에 자주 애용하던 탕평론의 기틀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했습니다.

잠시 이전으로 돌아가, 선왕의 개혁 조치로 인한 들어온 괴력난신 중에는 송시열이라는 자 역시 존재했습니다.
'요정' 혈통의 계승자이자 성리학의 여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조선의 학자인 그녀는
효종의 은혜에 힘입어 착호갑사의 재건과 조선에 숨어있던 영물을 찾아내 결집시키는 것으로
효종에게 보은하였습니다. 비록 여성의 몸과 자신의 신분 탓에 사대부와 대신들로부터 비방을 받긴 했지만,
효종의 호통과 함께 그녀는 큰 방해 없이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또한, 그녀는 착호갑사의 재건이 끝나자 잠시 물러나 후학을 양성하고 있었던 도중, 효종의 승하와 함께
잠시 관직을 내려놓고 영릉(寧陵)에 들러 그를 추모하였습니다.

그런 도중, 갑작스런 현종의 요청에 의해 다시금 관직에 오르게 되고, 그녀는 현종의 계획을 듣고 자신이
직접 이 논란에서 선두주자가 되어 관심을 끌겠다고 했으며, 현종이 이를 수락하고 조선의 '예송논쟁'이
그녀와 다른 이들의 주도로 큰 문제가 되지 않도록 소통의 격화를 방지했습니다.

처음 현종과 발을 맞추는 것은 생소하였으나, 이후 예송논쟁을 제대로 휘어잡은 것을 보면
송시열이 큰 잡음없이 임무를 수행했고 현종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을 물려받은 것인지 현종은 질병을 거의 달고 살았으며, 치료를 위해 온천을 계속
들락날락거린다거나, 자주 병약한 모습을 보이기 일수였습니다.

그럼에도, 현종은 왕의 업무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선왕의 개혁 당시, 미처 완수짓지 못한 대동법의 도입을
완수하였고 임진왜란 초기, 왜군에게 초기진입을 허용한 탓에 쑥대밭이 된 행정망과 이후 공납의 구조적 한계의
극복을 위해 선조시기부터 꾸준히 입에 오른 새로운 조세 제도는 이후 현종에 와서야 완전히 도입이 된 것이였습니다.

또한 이에 더불어서 선왕이 꾸준히 준비해오던 발판들을 펼치는데 성공하여
대동법을 도입하는데 거대한 걸림돌이 되었던 조선의 교통도로의 문제를 해결하고 선왕 때, 괴력난신들도 조선에
제대로 입국할 수 있는 제도를 이용하면서 백성들의 통제를 강화하는 오가작통사목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이때 궁궐의 오밤중, 몸이 편찮은 현종의 침실에 현장보고를 하기 위해 직접 들어온 조선의 괴력난신들이
궁에 아직 제대로된 업무도 수행해보지 않은 어린 궁녀와 어린 내시들의 시선에 발각되어
'궁궐에 귀신이 있다' 라는 소문이 퍼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현종 통치시기 조차, 조선은 곱게 지나갈 일이 없었는데, 아버지 효종의 죽음으로 그동안 억누르고 있었던
왕의 정통성 문제, 예송논쟁 다음으로 '경신대기근'이 발생했습니다.

1620년 당시, 후금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농사를 짓는 농지에 더 이상 농작물을 심을 수 없게 되며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의 전조는 후일 1670년, 조선 땅에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여
수많은 이상 징조가 조선을 강타한 후에 마찬가지로 농지 대부분이 박살나자 조선의 식량수급이
완전히 박살났습니다. 이를 '경신대기근'이라고 칭하며 굶주림에 미친 백성들이 뜯어먹을 수 있는
어떤 물건이든 씹어먹기 시작했고, 심각하면 식인까지 확인될 정도로 고난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때 같이 발생한 대청과의 국경분쟁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후일 백두산정계비(간도) 문제라 칭하는 이것은 당대에도
문제를 제기했지만, 적어도 경신대기근이 발생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신경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현종은 앞서 준비한 것들로 경신대기근의 천신만고를 견뎌내야 했으며,
그동안 도입시킨 대동법, 조선의 영물로 새로이 편입된 착호갑사, 재난에서 피해간 곡창지대들,
대청의 구휼물자, 일본국에게 바가지를 무릎쓰고 구입한 식량까지

앞서 준비한 것들이 결코 허례의식도 장식도 아님을 증명하듯이 현종은 경신대기근을 무사히
넘기는데 성공합니다.

모든 위기와 아버지의 개혁을 끝마치는데 성공한 현종은 경신대기근의 끝을 알리는 풍작 소식을 들으면서
'다 이루었다'라는 말과 함께 몸져누웠고, 이내 다시 일어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조선의 대위기와 개혁을 끝마치는데 모든 성을 다한 현종은 경신대기근의 종료와 함께 승하하였습니다.

그렇게 세자는 자신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가꿔놓은 최고의 환경과 역대 최강의 왕권을 물려받고
조선은 제 19대의 왕조를 맞이했습니다. 왕조의 19대 왕, 숙종이였습니다.

그는 변덕스럽고, 성질이 고약한, 성난 심성의 왕이였으며, 다행히 그의 능력은
조선을 이끌어나가는덴 큰 문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헌종의 승하 시기, 숙종은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며
다른 어린 왕이 갖는 수렴청정 시기를 갖지 않고 곧바로 친정으로 나아간 것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숙종은 '환국정치'라 하여 전대 왕조들이 펼쳤던 정책과 달리 그는 탕평에 가까운 정책을 피지 않고
일당 독재에 가까운 형태의 정책을 펼쳤으며, 한 당파에게 권력을 몰아 조정에 계속 피바람이 불게 하였습니다.

이 탓에 숙종의 평가는 그의 포악한 성질과 더불어 능력을 인정받았음에도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 펼친 환국정치는 앞으로의 조선 조정이 지혜로서 다스렸던 현종과 이전 선왕 시기의 당파정쟁이
매우 치열하게, 피비릿내가 날 정도로 격화될 단초를 제공해주었으며,
이 때의 상흔은 이후 몇대에 걸쳐서도 해결하지 못했고 이후 조선 왕조가 불안정해지는 가장 큰 요인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숙종은 잦은 신경증과 성질에 불구하고 민생 안정과 전대로부터 내려오는 개혁정신을 제일 많이
본받은 것으로 유명한 왕입니다.

특히 이 시기에 만들어진 '상평통보'는 조선의 대표적인 화폐가 되어 조선이 이후 대조선으로 바뀌고
대한민국의 화폐개혁전까지 신용성 있게 계속 애용되던 해동의 대표적인 화폐로 뽑힙니다.

또한 환국 정치로 인해 조정에 혼란을 가져왔지만, 이것은 숙종이 나름대로 주도권을 잡고있다는 것을 증명하며
호란 및 잦은 외세로 인해 거의 단절되었던 외교관계를 회복시키고 연결시킨 업적또한 그의 의외의 일면입니다.

자신의 이전 왕조, 헌종 때, 조선의 제일 약한 시기를 노려 국경선을 체결한 대청의 백두산정계비에 대한
문제역시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일본이 비슷하게 약해진 시기를 노려 대마도와 구주에 영향력을 투사하는
것을 방지하고 그들의 연결을 거듭강조 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성과가 있었던건 빠르게 굽힌 일본밖에 없었고
대청은 오히려 노발대발하며 사신을 내쫒아 이후 천자전쟁의 단초 중 하나로 자리잡습니다.

그리고 역사 문헌과 왕조의 명예 회복에도 관심을 기울여 이전 왕조의 지나친 처벌을 다시 처리하여
처벌을 완화하거나, 복권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정통성 확보는 부가적으로 얻어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후 성조때 이루어질 천자전쟁의 기반이 되는 조선군의 재정비를 도맡았으며,
수도방위체계와 효종 시절부터 내려져 오던 북벌론의 꽃, 대청원정군의 정식 창설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나중 해체와 결집을 반복하지만, 조선후기까지 그 전통을 잇습니다.

이 시기의 숙종은 왕후들을 이용하여 주도권 뒤집기를 시도했으며, 대표적인 왕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녀들의 이름은 인현왕후, 희빈 장씨입니다.

숙종의 첫 왕후이자 금슬이 좋았던 아내인 인경왕후는 후사를 위해 숙종과 최선을 다해 정사를 치뤘으나
어린 나이에 일찍 죽어버리거나, 유산되어 인경왕후의 심신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그녀는 결국 출산 후유증을 견디는 도중, 질병까지 얻어걸리는 불행을 맞이했고, 곧 몇년이 지나지 않아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일각에서는 그녀의 죽음이 향후 숙종의 정신에도 영향을 주어 희빈 장씨와 인현왕후의 권력 장악에
지대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그다음 맞이한 인현왕후는 다름아닌 '요정'의 혈통이 섞인 괴력난신에 가까운 여인이였고,
본래라면 금혼령의 실시 이후, 처녀단자 수집 과정에서 대신들에 의해 걸러졌어야 할 인원이였으나
송시열의 추천과 간택된 인원의 미달로 인해 그녀를 명단에 기입하게 된 것이 요인입니다.

또한 괴력난신의 배제를 기조로 세워졌던 조선은 초간택과 재간택 과정에서도 걸러져야 하는 것이
정상이였으나, 당시 숙종의 강력한 왕권으로 인해 간택 인원을 왕이 간섭할 수 있었고, 대외적 관계는
좋지 않다고 평가했으나, 이후 들인 왕후들과 후궁의 금슬은 매우 좋다고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정작, 이들이 권력을 두고 싸운 바람에 경종은 물론, 성조에게까지 안좋은 영향을 준건 두말할 수 없겠네요.

희빈 장씨는 그 이전 예송논쟁의 당사자이자 피해자로서 끌려다녔던 장렬왕후의 총애를 받고
왕후를 위로해주며 왕조를 밑에서 모셨던 중인 가문이였습니다. 그녀 역시 요정 혈통의 계승자였으며
그 신분이 미천하고, 취급이 박해 외로이 궁녀로서 할일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장렬왕후의 급진한 보조로서 숙종 눈에 들어오게 되니, 그녀가 인현왕후 다음에 들인 또 다른 요정혈통이였습니다.
숙종의 치세와 왕권에서 신하들은 숙종이 벌인 환국정치 탓에 크게 관여치 못했던건 인현왕후를 아무 저항없이
들이게 된 원인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말했듯이 희빈 장씨와 인현왕후의 싸움은 환국정치, 더 나아가 조선 왕조의 권력구도에 안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며 이것이 후대 삼여제의 등장의 배경으로 칭송하는 자도, 이때 벌어진 상흔이 결국 조선을 망쳤다며
비판하는 자도 존재합니다.

어쨋거나 이때 일어난 수많은 환국들은 숙종이 들인 왕후에 의해 일어났으며 이것은 후일 조선 왕조 시기 중
'여성'이 왕으로 즉위하는 초유의 사태를 촉발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렇게 즉위한 경종, 성조, 장조는 왕으로 기록되었으나, 당대의 기록과 실록의 간접적인 묘사,
환국 당시 일어난 신하들의 모함, 비방, 비난들을 종합할 때, 3명 모두 왕조 최초의 여왕이였으며
셋의 시기 모두 조선이 극도로 혼란스럽고, 극적으로 치세를 이룬 3명 이기에 '삼여제'라는 표현이
나오기도 합니다. 실록 상, 그녀를 왕과 세자로만 기입되었으나 정황 기록을 포함할 때, 눈뜬 장님처럼
표현을 외면한 듯 합니다.

숙종의 개혁 이후 그는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후회때문일지, 후일에 생겨날 난세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건지
몰라도, 그는 사관없이 신하를 독대하는 불법을 저지르며 이때 독대한 신하는 송시열과 이이명이였으며
기록이 제대로 남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추정상 경종과 이후 이어질 '혈통'에 관한 논의로 추측됩니다.
이 사건을 '정유독대'라고 칭하며, 처벌을 받게될 원인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는 둘 모두 궁궐에서 파직당하게 되는 불명예를 맞이하였으며, 이후 이이명은 경종 독살 음모라는 죄목을 씌워
극형에 처해졌고, 송시열은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하여 직접 공과를 모두 삭제하고 당파를 해산하여
오직 그림자 속에서만 왕조를 모시는 것으로 조선의 처벌제도인 백의종군과 비슷하게 그녀는 더이상
공직이나 공적을 받을 수 없는 상태로 격하되었습니다.

후일 조선 왕조를 좋든, 안좋든, 심각하고 위대한 방향의 씨앗을 심은 숙종은 1720년, 궁궐에서 승하합니다.

그리고 곧 희빈 장씨의 폐비 사건과 또 다른 환국으로 다시한번 조선의 조정이 뒤집힐 때 쯤,
숙종이 몸져누워 당시의 대리청정을 맡고 있었던 세녀가 숙종이 병을 이기지 못하고 승하하자,
그녀가 즉위하게 되니, 왕조 최초의 여왕이자, 기록 상의 제 20대 조선 국왕, 경종이 즉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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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불탄다..!) 20:02:13

5.천상전쟁(天上戰爭)(18세기)경종즉위-영조(성조)즉위-천자전쟁, 삼전보복전-칭제건원(17세기)


경종은 숙종의 금지옥엽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숙종이 왕후를 많이 들인 원인과 정사를 많이 치룬 원인으로 지목되는 왕후의 늦은 회임 탓에
경종은 태어난지 몇일조차 안 되어 적정자 책봉을 논의했고, 앞서 말했듯이 환국 정치의 혼란과
왕권의 강력함으로 인해 그녀는 기록상 세자, 최초의 세녀로서 바로 왕조의 후계로서 지목됩니다.

그녀의 성격은 아버지를 이은 것인지, 상당한 불같은 성질을 보유했다고 말하지만,
신하들과 대신들 사이에서는 되려 예를 갖추고, 부모 앞에선 효자로서 활동했습니다.
단, 자신의 이복자매인 이금, 후일의 성조에게는 본색을 드러내어 그녀에게 바친 집착과 사랑은
유독 그녀에게 독하게 작용되어 성조의 정신상태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합니다.

경종은 유독 병약적 기질이 재위 기간 전체에서 언급되며,
송시열의 조언과 어의의 진단에 따라, 그녀가 가진 혈통적 기질에 의해 발생된 것이라는 원인이 지목되며
다시 한번 조선 왕조에 괴력난신을 들인게 옳은 선택이냐는 논쟁이 다시금 재점화 되었습니다.

이러거나 말거나, 경종은 짧은 재위 기간을 가지며, 이복자매를 정말, 끔직하게, 금지옥엽으로 여겼고
심지어 당시에 떠도는 이야기에 귀기울여 본다면, 아예 이복자매가 자신을 결코 잊지 않을 저주를 퍼트렸다
라는 야사가 조정에서 떠돌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짧은 삶을 영위한 경종은 1724년, 35세의 나이로 승하합니다.

여기에는 또 다른 논란이 붙어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경종은 혈통적인 기질 탓에 짧은 생과 재위기간을 가졌지만, 본인의 포악한 성질이
더 강화되어 이복자매에게까지 해악을 끼친 바람에 이를 참지못한 성조의 계략으로 그녀가 암살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환국정치의 후유증에 따른 또 다른 트집이였으나, 이후 성조가 자신의 자식에게 벌인 짓을 생각한다면
제 아무리 자신의 공적으로 음모론을 찍어누른다 해도 암살 음모의 꼬리표가 자신의 재위 내내 붙어다녔습니다.

이후 즉위할 성조 또한 요정 혈통이였고, 그 이후 대를 이어 즉위할 장조에게 조차 신경증 적인 증상이 진단되었으니
혈통이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음해까지 들었어야 했습니다. 이 음모는 정조에 가서야 겨우 진정이 되지만
또 다른 당파의 호랑이가 조정을 완전히 차지함으로서 세도정치를 세워버린 탓에 아무래도 좋지 않을 이야기가 되었지요.

그후의 이야기는 여기까지하고, 경종의 승하 이후 즉위할 성조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성조는 즉위이전부터 총명하다는 평가를 받고, 이복자매인 경종과 다르게 자식을 호되게 다룬 사건 이전까지
그녀는 무려 10살의 나이부터 대신들과 신하들의 회의에 참석해도 쏟아내는 주제 사이에서 혼란이 일어나지 않고
논증과 논거를 정리 증명하여 그 자리에 있던 경종조차 놀라게했던 '천재'였으며, 군략은 송시열과 당대의
조선의 무관들이 감히 견줄 수 없었던 무신이였습니다.

허나, 성조는 경종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옥체를 가진 요정 혈통의 국왕이였습니다.

경종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국왕을 지칭하며 여왕의 칭호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여성의 왕위 즉위에 대해 성조는 유독 꼬리표가 잡혀 그를 재위기간 내내
괴롭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조는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녀는 앞선 신하와 대신들의 비방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조선 왕조의 오랜 목표, 북벌원정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고, 그녀의 세녀 기간이 1704년, 10살이라는
왕조 역사상 그 누구보다 빠른 임명을 받고, 역사상 가장 젊은 왕세녀의 탄생에 여성이라는 성별에 불구하고
신하와 대신들의 탄복을 받기도 했습니다.

임명된 다음 해, 그녀는 무관들과 항상 북벌에 대한 깊은 담론을 나눴고,
문관들과는 선왕이 벌인 환국정치에 대한 수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얼기설기에 가까운 봉합이였지만, 적어도 자신이 전쟁을 일으키는 동안에 난이 발생하진 않겠죠.

경종이 사실상의 권력을 세녀에게 물려준 가운데, 그녀의 북벌 준비는 날이 갈수록 강성해져 갔습니다.
비록 조선의 문관들은 여전히 극단적인 당파정쟁에 크게 휘둘려 난초를 겪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경종이 결국 짧은 생을 끝으로 승하하자, 성조는 끝까지 자신에게 집착하던
이복자매를 떠나보내며 바로 북벌 원정을 준비했습니다.

당시 대청의 상황을 봅시다.

대청은 강희제의 치세 아래, 호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른 바, 강건성세(康乾盛世)라 칭하여 대청의 황제, 강희제는 기여코 대명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그들을 멸망시켰습니다.

또한 오랜 전쟁의 영향으로 골골 거리던 대청의 상황은 자칫하다 군마 위에서 모든 것을 통치하려한
자들의 말로를 재현할 수 있기에 대명 시기 시행했던 정책을 역수입하고, 관료제 정책을 새로이 펼쳐냈습니다.

또한, 황제 주변의 유능한 신하들이 그를 밑받침 하고 있었습니다.
황제가 펼친 관료제 정책에는 감찰관들이 존재했는데, 감히 부패할 수 없는 자들이
대청의 황제 앞에 무릎 꿇고 중원 전역을 황제에게 보여드리니
강희제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도 보였으며, 무엇하나 감출 수 없다고 말합니다.

또한 효종 시기, 조선군이 참가한 나선정벌은 강희제의 주도 하에 벌어졌으며
러시아가 제국을 건설하기 이전시기, 루스 차르국을 중원에서 내쫒아내 북쪽 국경을 확고히 만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군사를 낭비하지 않고 청나라 최대 강역을 확보하는데 집중하여 주변의 유목 민족을
완전히 복속시키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일종의 병목현상이 그의 말기 시절, 관료제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대청의 대운하 재건, 황무지 개간의 명목 등으로 관료와 농민들의 세금을 일정량 인하하여 고정시키는
정책이 문제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다행히 이때 호영상회를 비롯한 황제의 치세 아래 도움을 줬던
신하들이 문제의 발생을 지연시켰고, 황제의 사후 후계자 다툼이 크게 일어났던 상황에서
무사히 웅정제의 즉위까지 넘기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웅정제는 황제로서 능력이 좋았을진 몰라도, 상당히 무자비적인 황제였습니다.
기강을 잡기 위해 시체의 산에 또 다른 산을 쌓는 숙청이 줄을 이었고,
자신이 여기에 오르기 위해 후계자 쟁탈전에서 다른 황자들을 모조리 죽였으며,
중원 내 다른 민족들과 유목민을 통합시키기 위해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철저하게 시행했습니다.

그런 그의 치세는 계속 이어져, 천민 제도의 개선까지 이뤄내고, 사회 안정에 온 힘을 쏟아붇고 있었습니다.

1722년, 그의 재위 1년차에 그러한 통치가 대청에서 이뤄질 쯤, 조선에도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조는 마치 웅정제의 행보처럼 국가의 전운을 북벌에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자신의 선대, 선왕에 이른 목표이자, 더는 조선이 오랑캐의 발 밑에서 살 수 없다는 목표이래,
멋대로 국경을 설정한 원한, 삼전도의 굴욕을 갚고, 대명의 복수를 대신 갚고자, 성조의 천명이 궁궐에서 선포됩니다.

'해동천자'

대청은 정말 갑작스런 소식에 관료와 신하들이 뒤집혀졌습니다.
자신들이 이 중원의 천명을 쥐고 대명까지 박살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정묘년과 병자년 때, 속수무책으로 뚫려버린 저 미천한 국가가 갑자기 복수를 선언하며
자신들이 해동의 새로운 천자라고 선포하며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심지어 그 이후 헌종 때, 조선측 국경 담당자가
대놓고 얼기설기로 국경을 설정하여 심-요 지역과 연해주 지역쪽까지 지배 영역으로 박아버린
대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황당한 것이였습니다.

선전포고문이 대청에 도달한 이후, 그들은 모두 비웃었습니다.

강건성세의 치세가 눈에 보이질 않은건지, 호란 때보다 군사력이 더 약해질거라 기대한 저들의 오판인지
정말 뜬금없는 저 선포에 대해 웅정제는 코웃음을 치며, 조선에게 중원의 천하가 누구의 것인지 아직도 모르냐는
비아냥을 시작으로 군신관계를 어긴 죄를 조선 팔도에 새겨주겠다는 강력한 협박 서한을 마지막으로

천자전쟁이 개전되었습니다.

우선, 전쟁 발발 이전 잠깐 조선의 외교상황을 살펴봅시다.
성조가 북벌을 천명하기 전, 그녀는 총명하고 영리한 지혜를 활용하여 대청을 치는데 협력할
동맹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외교할 수 있는 대상이 별로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서역은 이역만리의 국가에게
전쟁군자금이나 지원같은걸 해줘야 할 이유는 크게 없었고, 그들 역시 한창의 난세로 바빴습니다.
아 물론, 돈에 관심있는 녀석들은 조선이 대청을 타격해서 얻는 콩고물을 좀 얻어먹겠다고 붙는 쪽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대청과 원수관계를 맺고 있는 루스 차르국 이였습니다. 당시의 러시아 제국이죠.
그들은 이전까지 '타타르의 멍에' 라고 하여 대원의 지배하에 있었던 국가였습니다. 이 때 당한 핍박과 모욕은 후일
루스 차르국, 러시아 제국까지 계승되어 이들 역시 기회가 온다면 중원을 계승한 대청에 대해
그 어떤 자비도 보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조선의 제안에 원정군의 파견은 어렵다고 말했으나
먼저 선제공격 시에 군사와 보급을 지원할 수 있다고 의사를 표명하여 그들과의 동맹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들이 진짜 도와줄건지 말지는 조선이 정말로 대청의 기세를 밀어내는데에 걸어야겠죠.

일본.. 역시 고려될 수 있는 대상입니다. 그들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고, 왜란 이후 일종의 고립상태로
들어갔다고 판단한 조선 조정은 간간히 그들과 교역으로 물품등을 주고받거나, 대기근 때 바가지 요금을 받고
식량을 받아온 것 말고는 큰 접점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들도 어느정도 자금을 대주겠다고 하긴 합니다.

마찬가지로 앞선 조약 등으로 시간을 끌었던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며 일본역시 전세가 기울어지기 시작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뒤통수를 칠겁니다.

그렇게, 대청은 중원을 지배한 자신들의 군사와 천명을 믿고 출전하며,
조선은 자신의 이전 선대부터 준비해온 북벌의 기치를 완성하고자, 출정합니다.

이 전쟁은 누구보다 대청이 유리했습니다. 강희제의 치세로 하여금 호란 때보다 더 강성해졌으며
웅정제의 치세는 세계를 벌벌 떨게 하였던 유목 민족과 다른 민족들을 중원에 품게 만들어
더더욱 강력하게 정비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조선이 이길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대청은 확신했죠.

그러나, 모든 예상과 기조를 깨버리고 조선이 첫 공세전에서 대청의 국경수비대를 완전히 돌파하는데 성공합니다.
대청은 고작 첫번째 성벽이 뚫렸을 뿐이라며 후속 대응에 나서지만 황당하게도 기병의 정면대결에서
대청군의 기마 부대가 조선군의 활약 아래, 처참하게 분쇄되고 맙니다.

일찍이 다음 황제의 이르어서 물려줄 생각이였던 몽골 팔기군의 초기형태는
조선군에게 확실히 갈려나가 부대가 완전히 와해되고 말았습니다.

대청은 그제서야 상황이 매우 심각했음을 깨달았으며 조선 왕조의 국왕, 성조 역시
이 전쟁에 직접 참가했음을 확인하자, 정면대결을 우회하고 기존 대청군은 조선군의 발목을 잡고,
참수작전으로 전략을 변경, 성조의 목을 수급하는 자에게 현상금과 벼슬을 약속하며
중원에서 가장 비싼 현상금이 성조의 목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소용 없었습니다.

저 여인이 가진 능력이 뭔지는 몰라도 신묘한 능력과 번개를 몰고 다니는 그녀의 영역 안에서
총탄이든 포탄이든 화살이든 어떤 공격도 제대로 먹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백병전으로 접근해 군대를 우회하고 그녀만 따로 상대한다는 발상은
오히려 그녀가 도전을 받아주는 듯한 태도로 선봉으로 나와 직접 자신을 상대하는 자들의 목을
'직접' 수급하며 상대조차 불가능 함을 체감했습니다.

조선군과 정면대결은 이미 팔기군이 박살나며 막을 수 없음을 증명했고,
성조를 참수하는 작전은 직접 목을 따러간 현상금 사냥꾼과 장수들이 모조리 목이 따이고 나서야
더는 조선의 기세를 막을 수 없다는 것만 재차 확인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조선이 대청의 수비대와 팔기군을 돌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외세로부터 준동이 심각하게 다가왔습니다.

루스 차르국, 이제는 러시아 제국이라고 불리는 그들은 표르트 대제의 능력에 힘입어 일개 유목국가에서
제국이라는 강력한 국가를 세우는데 성공했으며, 비록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들의 힘은 이제 대청에서도
함부로 힘을 쓰기 어려운 까다로운 상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조선과 동맹을 통해 대청 원정에 동참하였고, 그전까진 조선에겐 별 기대하는 바가 없었지만
그들이 기여코 성채를 뚫고 팔기군을 격파하자, 러시아 제국군이 돌격하는 주요 경로의 군대가 조선군을 막기위해
대청이 수도로 불러들였고, 완전히 뻥 뚫려버린 진격로를 향해 그들은 이전 북원 지역과 현대의 몽골 수도 지역인
울란바토르를 완전히 불태워버리며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적극적인 지원을 표명하지 않았으나, 지속적으로 콩고물을 받아먹으면서
챙겨갈 수 있는 이득을 전부 챙겨가고 있습니다. 조선이 어차피 주워먹지 않을 콩고물은 주워먹는자가 임자니까요.

이들 뿐만이 아니라 웅정제의 통치시기에 기강을 잡았던 관료들이 점점 대청의 패색이 짙어지자
대청을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청의 패배가 코앞이였습니다. 조선군의 화포가 수도의 성벽을 박살내며 화포의 포격이 지나간 사이로
성조를 포함한 금위군이 대청의 황제, 웅정제 앞으로 독대했습니다.

그들은 황제에게 '그나마' 예를 차리며 항복을 요청할 것은 중용했습니다.

그러나 웅정제는 후계 싸움을 거치고 강희제의 사후, 날뛰려고 한 관료와 토호들의 기강을
시체의 산을 쌓으며 집권한 인물,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해동천자를 지칭하고 싶다면 내 목을 가져가야 할 것이다'

대송이 그랬고, 대원이 그랬고, 대명이 그러했듯, 그들 역시 최후의 저항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대송이 그랬고, 대원이 그랬고, 대명이 그런 결말을 맞이 했듯이, 성조가 웅정제의 육체에 치명상을 내며
웅정제의 앞에서 과시하는 모습과 동시에 웅정제를 끝까지 보호하려 했던 만신창이가 된 팔기군의 항복을 마지막으로

천자전쟁이 끝났습니다.

대청의 패전과 조선의 승전 소식으로 전쟁의 막이 올랐습니다.

조선에서 더이상의 천세 삼창이 아닌 만세 삼창이 울리며 소중화의 의지를 조선이 이었음을 탄복하는 신하와
대명의 원수를 갚고, 삼전도의 굴욕을 갚은 오랜 원한의 청산에 대해 기뻐하는 대신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성조가 친위대인 금위군과 총포로 무장한 조선군, 기병대를 끌고 조선으로 귀환하여 궁궐에 도착했을 때는
온 백성이 성조가 복귀하는 길을 축복하였으며, 궁궐에는 만세삼창이 일주일 내내 끝날 기미가 안보였다고 합니다.

곧 성조는 신화들과 대신들의 권유, 그리고 송시열의 조언 아래, 장백산에 올라 '해동천자'가 되었음을 선언하며
칭제건원을 선포합니다.

조선은 대조선국으로 국명이 바뀌며, 대청은 더이상 대청의 명칭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위대하지 않은 청나라에 불과하며 완전히 쑥대밭이 된 울란바토르 지역과 대조선군이
제대로 박살 내놓고간 수도는 '강건성세'라는 이름에 우습게 더는 천명의 가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쌓아놓은 재산이 있지 않느냐 라고 반문할 수 있으나, 우습게도 대청이 패전으로 수도까지
적이 침입하자 호영상회는 전운을 감지하고 애진작에 해산하였으며, 휘하의 상가들은 우왕좌왕하며
챙겨갈 수 있는 자산을 챙기고 급하게 도망치는데 바빴습니다.

이것은 아예 청나라의 물류망을 조각내며, 대운하의 상태는 멀쩡하고 다른 상회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국가 자체가 발전 가능성이 심각하게 저하되며 국가 전체가 천천히 가라앉게되는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결국 청나라는 다음에 즉위할 건륭제.. 아니, 애신각라홍력 고종(高宗)은 이른 나이에 청나라를
수습해야할 상황에 처했으며, 대조선국의 '관대한' 처분에 관해 감사를 건네고 청나라는
이후 잠깐의 치세와 함께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대조선국이라 칭제건원한 대조선은 이제 전후 수습을 위해 참전한 동맹들과 패전한 청을 회담장에
참가하게 하여, 전리품을 나눠갖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자신들을 지배한 몽골 지역의 일부분을 가져갔으며, 네르친스크 조약에 의거했던 국경선을
더 확대하여 영토를 가져갔고, 일본국은 늘 그런듯이 배상금만 뜯어갔으며, 대조선은 기존 군신관계의
완전파기 후, 새로운 군신 관계를 형성하고, 백두산정계비 등으로 결정해놓았던 국경을 다시 재설정했습니다.
앞서 두 국가가 배상금을 가져간 것과 달리, 성조는 청나라가 가진 지배권이 완전히 와해될 것을 우려하여
적은 배상금과 현 왕조의 유지를 배려하는 선에서 협상이 체결되었습니다.

청나라는 이제 더이상 천하의 중심지가 아니었으며, 기존의 중화사상이 금이 가기 시작해 곧 국가 전체가
침수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청나라의 국왕은 이를 어떻게든 이끌지만 말입니다.

이 전쟁의 당사자이자, 최고의 승리를 맛본 대조선은 더는 두려운 것이 없었습니다.

성조는 이 때를 기점으로 자신에게 붙은 낙인들이 하나 둘 떨어져갔으며,
후일 천자전쟁에서 승리해 권력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갈 것을 두려워한 신하들의 난이 시작되었지만
다시한번 힘을 증명하며 당파 분쟁 속에서 밀려나자 권력을 차지하고 싶은 권신의 세력을 완전히 박살냅니다.
이 이후로도 결코 성조의 치세는 끝이 안날 것 처럼 빛났습니다.

성조, 아니 대조선국의 1대 황제, 태명황제는 다시 옥좌로 돌아와 조선이 가져온 전리품의 관리를 시작했습니다.
우선, 선제의 환국정치로 망쳐놨던 당파의 정쟁을 다시금 재위치시켰고,
조선의 다양한 하천 지역에 관해서 개발을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자들을 치적하고, 금품을 하사하였으며
이 전쟁 이후 거대한 전쟁이 짧은 시간내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래
균역법을 실시하여 군역을 치루는 대신 세금을 받는 방법으로 전쟁비용으로 빠져나간
국고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조선이 대조선으로 변한 만큼, 영토도 늘어나고 새로운 규칙의 선서가 필요로하니
속대전의 편찬과 간도 개간을 실행하였으며, 개간하고 관리하는 땅의 크기가 넓어진 만큼
여자 종의 공역 폐지 및 해방, 서얼이나 미천한 신분의 등용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면서
대조선 전체의 차별인식과 제도를 완화하였습니다.

제일 큰 업적으로는 제 14대 왕조, 선조의 통치시기, 대명의 한 해적에 의해 일어난 대항해시대의 재건을
성조가 이뤄냈으며, 인조반정과 호란 당시 방치되고 망가진 항만과 항로를 재건하는데 온 힘을 쏟아붇고
대조선은 동아시아 전체를 관통할 거대한 무역항로를 완성합니다.

가끔 야사로 송시열과 태명황제는 따로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으며,
선대의 대계가 성공한 것에 축하하는 말과 서로간의 칭찬으로 말을 아끼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합니다.

대조선국이 그렇게 치세와 해동성세의 판을 마련하고, 성조는 이 치세속에서 안정된 통치을 지향했습니다.

결코 이 치세가 끝나는 일이 없기를 모든 이들이 간절히 빌었습니다.

물론, 사건이 없진 않습니다. 천자전쟁과 귀환 직후 칭제건원을 선포한 몇년 다음에 개인적인 오명이 붙습니다.
성조가 유일하게 저질렀던 실책이라고 표현하며, 인간과 인외가 가진 시선을 요약한 사건이라고도 불립니다.

'임오변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넓게는 성조가 자신의 아들인 장조에게 벌인 일련의 학대를 뜻하며
좁은 뜻으로는 결국 한 공간에 세녀를 가둬 그녀가 거기서 빠져나오는 시련에 빠트렸던 사건을 뜻합니다.
정작 장조와 성조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 기록하는 사관들이 경악하면서 실록에 요동치는 표현이
그대로 실려져 있습니다.

당사자들의 표현이나 받아들였던 의사에 의하면, 이것은 시련의 일환이고
자신의 이복자매가 보냈던 표현의 산물처럼 이 역시 부모 되는 자가 자식에게 보내는 찬사이자
돌파해야만 천자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당시 이걸 기록하던 사관들과 신하, 대신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실록에 실려져 있어서
당대에서도 이런 행위는 결코 상식과는 거리가 멀었음을 증명합니다.

또한 인외종 중 하나이자 그림자 속에서 성조를 보필한 송시열 역시 이에 대해 성조와 여러차례
대화를 나눈 기록 등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하들과 같은 의견이였고요.

이런 사건 이후에 성조에겐 하나의 흠집이 생겨났으며, 이후 즉위할 장조조차 비슷한 신경증과
정신증세를 앓고 있었으니 이를 개의치 않는 자는 없었고, 장조 시기의 다른 논쟁의 씨앗이 됩니다.

많은 사건이 대조선을 지나고, 성조는 이후 1754년을 마지막으로 친정을 끝내고, 1736년 세녀로 책봉된
이훤에게 황위가 돌아가니, 그녀가 제 2대 문헌황제, 장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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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불탄다..!) 20:02:29

6.해동성세(海東盛世)(18세기)장조즉위-정조즉위-치세의 끝


세간에선 장조의 즉위가 생각이상으로 빨랐다고 진술합니다.

실제로 성조는 아직 강건했고, 혈통까지 각성한 군주가 계속 대조선을 다스리며 천명을 확고히 하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행위는 아닙니다.

허나, 성조는 자신에게 들이닥치는 정신적 문제와 신체적 기질이 임계점에 다가왔음을 직감하며
일례로 임오변괴는 나중에 스스로 돌아보니 상당히 정신나간 행보임을 인정한 바가 있습니다.

결국 60세의 나이로 그녀는 황위에서 물러났으며, 이는 곧 왕세녀가 다음 황제 자리에 즉위됨을 알렸습니다.

장조는 어릴적 자신의 선제와 마찬가지로 무예를 좋아했으며, 자신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기를 원했습니다.

정작 성조는 이를 그닥 탐탁치 않게 여겼으며, 날마다 두명이 궁궐에서 싸우는 것은 일개 노예조차 알만한
그런 사이였습니다. 마저못해 장조는 학문과 문헌을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무예 말고 문예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서로를 면박주는 관계가 이어지는 와중, 성조가 어느날, 세녀 활동을 하고 있던 자신을 불러냅니다.

'무슨 일 이십니까?'

아무 말 없이 세녀를 궁궐의 뒤뜰로 안내한 성조는 신하와 대신들, 사관들, 송시열이 지켜보는 가운데
난데없이 세녀를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알 수 없는 적의는 세녀조차 당황한 것이였으며, 그걸 지켜보고 있는 자들의 입이 닫혀지지 않았습니다.

공격을 받아치고, 아예 공간채로 가둬버리기 까지 하는 성조의 강압에 세녀는 이를 돌파하여
그동안 단련하던 무예가 결코 장식이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훌륭하다'

마치 기뻐하는 듯한 성조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장조역시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이때의 경험이 장조 본인의 정신 상태에 큰 영향을 줬었고, 무를 숭상하는 자신의 상태가 어느정도 억제는 됬습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장조는 대조선의 황제로서 즉위합니다.

자신이 그동안 선보였던 무예의 기질로 보아 필시 군을 증강하거나, 괴력난신에 대한 원정을 갈거라
예상하는 대신들과 신하가 있었지만,

모든 예상을 깨고 그가 우선 진행한 것은 선제가 만들어놓은 판도의 유지보수였습니다.

성조는 효종이 만들어놓은 탕평책의 기초를 다시 풀어썼으나, 범인이 읽기엔 지나치게 광범위했습니다.
균역법과 차별 규제 철폐는 자칫하면 남용과 오용의 기준이 될 수 있을 만큼 기준점이 이상했습니다.
그 외 등용시킨 관료와 땅 관리가 필요로 하는 수요에 비해서 공급이 지나치게 협소했습니다.

성조가 천자전쟁으로 대부분의 힘을 소진했고, 관리에 들어갔을 시점에는 이복자매가 그랬던 것 처럼
신경증과 광증이 종종 성조를 괴롭혀서 제대로 만들지 못했던 것입니다.

장조는 심각한 제도의 상태를 보며 하나하나 정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괴력난신 원정이나 군 정비는 아쉽게도 상당히 밀린채 항상 궁궐에서
일에 둘러쌓인 채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듬해 다른 곳에서는 연속된 여제의 즉위에 관해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성조의 공적은 인정할 수 있는 바입니다. 호란 이후 부터 계속 아픈 손가락이였던
삼전도의 굴욕과 당대에서 일어난 추했던 왕가의 모습을 이제서야 청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장조는? 이미 경종의 즉위부터 왕위의 책봉에 관해 의구심이나 의문을 품던 신하가 많았습니다.
단순 여성이라는 이유 뿐만이 아닌, 인외의 혈통까지 섞인 자를 왕에 책봉하고
경종부터 지금에 이르어서 까지, 광증과 신경증은 대를 이어 발현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때 일어난 임오변괴는 그만한 공적을 세운 성조도 인간의 기준에서는 도저히 정상이 아님을
증명했을 뿐입니다.

지금은 성조가 세운 탕평책에 응해 모든 신하들이 조용히 이를 넘어갈 뿐, 앞서 일어난 이인좌의 난은
그저 권세를 누릴려고 한 권신의 멍청한 난에 불과했습니다.

나중에는 송시열 역시 이런 신하들의 우려하는 목소리에 끌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대답은 곤란하다는 말만 반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은 이미 공적과 신분을 더이상 쌓을 수 없는
상태고, 장조는 원인불명의 불임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이 노력해야 했던 상황이였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장조의 불임 문제는 대조선이 최초로 여왕을 들였다는 것에 최초의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그전까지
경종과 성조는 이복자매로서 둘의 통치기한이 끝나면 다른 세자가 이를 잇는 것이 되어있었기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당시에도 실록에는 국왕으로 기록되어 정사를 치룰 수는 없으나, 왕후를 들였습니다.

또한 이 두명이 황실의 정식 계승자로서 양위받을 수 있는 이유는 숙종의 강력한 왕권 및
적정자의 자질 부족, 뒤늦은 회임으로 인한 혼란 등이 겹쳐 대조선의 황실에서 2번이나 여왕의 즉위를
허락한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성조 때 거대한 공을 세우고 그녀가 결국 자신의 공적으로 밀어붙여 '정인국서'(貞仁國壻)까지
들이게 되니 기여코 후사 문제까지 해결하고 말았습니다. 대신과 신하들은 제발 세자가 나오기를 빌었지만
이번에도 또 세녀가 나오게 되니 그녀가 바로 사도세자입니다.

결국 이번에도 여왕이 즉위했으니 더는 국왕이라고 기록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성조부터는
제대로 여왕이라고 기록되며, 또한 이번 황제는 여제로 기록되며, 실록에는 여전히 국왕과 황제, 세자로
기록된 판본이 남아있고, 또 여제와 여왕, 세녀로 기록된 판본이 따로 남아있는 것을 보아
여기에서 사관들이 많은 다툼이 있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문제는 송시열의 분석에는 요정으로 물려받은 혈통 자체가 장조의 회임을 방해하고 있다며
이에 용한 국서를 등용해야 한다는 것이 송시열의 진단이였습니다.

송시열의 진단에 조정은 한탄에 잠겼습니다.
'당장 국서의 등용 문제는 둘째치고 어디서 그런 인재를 주워와야합니까? 땅에서 솟아오르는게 아니잖습니까?'
당시 숙종의 회임 문제는 이번 문제와 반대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이번에는 또 반대로 해결해야 하니 조정의 속이 뒤집히고 있었습니다.

이런 뒷이야기는 뒤로 하고 장조는 자신의 회임 문제에 별 문제를 신경쓰지 않고
계속된 업무처리에 질린 잠시 업무를 뒤로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업무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간도 및 연해주에서 날뛰는 괴력난신의 토벌을 주도하기도 하고
조선군에 다양한 무기를 수입하면서 효종 시기 건설되었던 화기병조창의 개선을 돕기도 했습니다.

비록 주변 외국은 대청이 무너졌고, 조선 역시 피로도가 엄청날테니 이를 노려 영토를 노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러시아 제국은 몽골을 먹고나서도 연해주를 호시탐탐 지켜봤고,
일본은 언젠가 큰일을 저지를거란 신호를 보내고 있었죠.

다만, 신경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생활을 보내고나면
자신은 또 다시 어머니가 건네준 해동성세의 치세를 계속 이어나갔어야 했으니 말입니다.

항구로 가끔 밀수품이 들어온다던가, 일본에서 떠돌던 해수가 난리를 친다던가의 문제는
평소대로의 문제였습니다.

이후 장조는 평화로운 치세 속에서, 제 19대 숙종이 행했던 추증과 복권을 자신의 대에서도
행했으며, 이때 수많은 황실의 이름과 왕조의 이름이 복권되거나 불명예를 회복시켜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실록과 별개로 대조선의 문헌을 많이 남겨두기도 했습니다.

곧 장조의 친정이 41세의 나이로 1776년에 자신의 자손, 이성에게 양위하였으며,
자신은 끓어오르는 투쟁욕을 참지 않고 간간히 사냥을 보내는 방식으로 노후를 보냈습니다.

이후 즉위하는 제 3대 대조선국 황제, 성문황제 정조는 이번엔 신하들과 대신들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제대로 황제가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계승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송시열의 진단 이후 '소성국서'(昭聖國壻)를 결국 들이는데 성공해
빈말로도 장조의 성질과 크게 어울릴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결국 장조의 회임에 성공해
황실의 대를 잇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정인국서와 소성국서는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들인 정말 몇도 안되는 국서이며, 결국 이후 황실을
다시 황제가 맡게 되면서 국서 제도는 대조선국에서 잊혀진 제도가 되었습니다.

결국 이러나저러나 장조는 회임이후 게으르게나마 국가 업무를 돌보고 있었고, 그렇게 세자를 낳은 후에는
자신의 탕아적 성질을 억제하면서 세자 교육에 집중하여 세자가 황위를 이을 정도로 확실히 성장하자
거의 탈출하는 느낌의 기세로 황제의 자리를 양위했습니다.

이성은 거의 어리버리한 상태로 황위를 잇게되니, 그가 성문황제 정조였습니다.

그는 선제와 마찬가지로 천재의 소리를 듣는 총명한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신하들은 안도와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세계관은 대신들이 또 고통스럽게 여기는 임오괴변을 기점으로 변화했습니다.

그의 세자 시절, 갑작스럽게 싸우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다툼을 보았고, 자신은 이를 말릴려고 성조에게
가까이 접근한 적이 있습니다. 성조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고, 자신의 몸에 들고있었던 무기를 휘둘러
큰 상처를 낸 적이 있습니다. 신하들이 급히 수습하고 결국 본인의 상태가 제정신이 아님을 확인한 영조는
이후 장조에게 황제직을 양위했습니다.

이후 정조는 세자시절 어머니 장조와 할머니의 총애를 받고 학업에 치중하여 그 성과를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재빠르게 이륙했습니다. 다만, 본인은 여전히 그때 모습의 성조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그녀를 두려워했습니다.

장조는 그런 세자를 보필했으며, 눈에 띄일 정도로 혈통적 기질이 낮아진 정조에게 안심시키는 말을 했습니다.

곧 성조가 노환으로 몸져눕고, 장조가 선제와 똑같이 신경증과 광증에 시달리고 있었을 때,
자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통감한 정조는 이후 어머니를 찾아가 임오괴변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자격을 증명할 기회를 달라 말했고,

그것을 경청한 신하와 대신들이 급구 반대하며 말리다가 장조가 이를 진정시켜
'나는 어머니와 다르다'
그에게 학문적 소양과 무예적 소양을 점검시키는 그때에 비해 가벼운 느낌으로 자질을 보았고

곧 장조는 자신이 더이상 가르칠 것이 없었고, 날이 지날수록 심해져 가는 자신의 상태를 보아
정조에게 황제의 자리를 양보합니다.

그렇게 즉위한 정조는 선제가 그랬던 것 처럼, 강력한 황권 위의 황제로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여제처럼 성별로 걸릴 일도 없었거니와 결론적으로 위대한 공을 세운 여제의 황제라는 치적하에
그는 큰 장애 없이 황권을 휘두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선왕 숙종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결코 편의를 위해 붕당을 자신이 멋대로 좌지우지 하지 않았으며
제 2의 대항해시대를 연 성조의 뜻을 본받아 하루 편안한 일 없이, 업무를 보는데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장조가 정리만 하고 본격적인 적용을 힘들어하던 탕평책을 다시 펼쳐냈고,
신하들의 불만을 천천히 잠재우니 그 실력이 조선을 바로 세우던 태조의 치세가 떠오른다고 하시더라,
지나치게 비대해진 몸집의 영향으로 반란이나 반정을 꿈꾸는 신하들의 희망을 짓밟고
암행어사의 대대적인 등용과 이전 선대부터 지속해왔던 차별 규제 철폐의 연속으로
괴력난신의 명칭을 영물과 기인으로 바꾸며 같은 인간의 신분 문제도 동일하게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비대해진 국가의 크기를 감안하며, 규장각을 설치하고, 과거제 쇄신의 일환으로
초계문신제 제도를 도입하여 관료의 세대교체를 지향하였다.

그리고 성조 시기 폭주 단절의 일환으로 감축시켰던 조선군을 개편하며 특정 정당이 이를 좌지우지 할 수 없도록
이전 성조의 친위대 성격의 금군을 개혁시키며 후일 대조선국의 황실친위대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선제가 그러했듯 이번에는 복권 대신 역사적 문헌의 재복구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 때 남긴 문헌들은
대항해시대의 항로와 조선 이전의 역사, 고려, 신라, 백제, 고구려 등의 복구된 사료로서 현대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헌데, 이런 문치주의를 숭상하고 모범상으로 삼는 것과 달리, 생각 이상의 탄압적 행동을 많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문체와 서체를 대폭 개편하는 사안을 추진하기도 했는데, 상당히 제한적인 요구가 많이 들어가있는
규제에 가까운 제도입니다. 당대 신하들이 반대를 했을만큼 강압적이였습니다.

정조는 이를 무시하고 강행, 기록문의 글씨체가 정조의 서체반정을 기점으로 '正'자 수준으로 고쳐졌고
문체반정을 기점으로 많은 시학와 문학들이 대조선에서 꽃피지 못하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대항해시대의 전성기를 유지하고 좀 되지않은 시기에 고친 법전을 다시 편찬했을 정도로 그의 업무는
상당히 살인적이였고, 모든 걸 수행한 만큼 천재의 재능이 돋보였습니다.

신하들은 성조에서 부터 정조까지 '삼대'(三代)가 진정으로 '천방지축'이라 평가하며,
짧은 삶을 영위한 경종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대조선국의 해동성세이자 폭풍과 번개를 몰고온 인물들이였습니다.

그리고 항상 끝은 있는 법, 정조는 선제의 기질 대신 성격을 이어받아 논쟁적이고 다혈질적이라고 표현되며
평소에 그가 즐기는 술과 담배는 딱히 삶의 연장에 도움을 주진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와 신하가 벌인 논쟁의 담화가 격해지자 결국 그는 성질을 버티지 못하고 절교를 선언.

그는 더 나은 환경의 황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4년의 생각보다 짧은 재위기간에 몸져눕고 말았습니다.
아직 그를 이을 세자는 너무 어려 보위를 이을 재간이 안되었고, 그가 신하와 논쟁의 담화를 후일로 갈수록
더 자주, 더 깊게 터트렸던 만큼 탕평책의 유지력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어린 세자가 즉위한다면, 결국 자신의 친위세력이든, 다른 정치세력이든 대조선의 상황이 생각이상으로
기울어질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의 걱정은 어린 세자가 이어받는 삼대(三代)가 단명함으로서 현실화되고
아직 자신의 개혁이 완전히 못마쳤다는 생각에 몸져누운 상태에서도 업무를 하려 시도했고
건강 상태가 최악으로 치닫자, 그는 1800년, 19세기의 시작을 앞에두고 승하합니다.

송시열은 이 시점까지 계속 황제를 보필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정조의 죽음을 여부로 그 이후
실록이나 기록에서 그의 행적이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직감으로 대조선국의 파멸을 예감했을지
이후 삼대가 단명한 것을 충격적으로 여겨 떠났을진 추측만이 무성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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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불탄다..!) 20:02:50

7.패망흥기(敗亡興起)(19세기~20세기)일본의 위대한 인내-천황의 귀환-대조선의 몰락


이 중원의 천상결전에서 완전히 밀려난 일본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일본은 조선과 대명의 활약으로 완전히 몰락당했습니다.

당대 이전, 대원이 중원 요수 대부분을 토벌하고, 고려를 짓밣고, 대송을 무너트리며, 중원 뿐만이 아닌
그 주변과 일본까지 완전히 장악하려던 찰나, 대원에게 '신풍'(神風, 카미카제)이 들이닥쳐
원정군과 대원의 수군을 완전히 전멸시킵니다.

실로 천운이였습니다. 바닷가의 요수들이 도와줬을지, 일본의 수많은 신성들이 그들을 도와줬는지 모를 일입니다.
어쨋건, 이것으로 인해 대원은 해상역량을 완전히 상실했고, 이후에도 실시한
2차 원정 때도 신풍이 들이닥쳐 대원이 일본 원정을 포기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신풍이 조선의 원정 때도 들이닥치지 못했으며, 오히려 본토까지 침범당하고
전국시대를 통일하여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정이대장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순신에게 참수당했습니다.

일본의 새로운 정이대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입술에 흐르는 피를 머금고 조선과 대명의 항복문서에
서명했으며, 대마도와 구주를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치욕의 시기였습니다.
자랑스러운 일본 수군은 전원 수장당했고, 전국시대를 향유하던 사무라이는 조선과 대명의 칼날 아래 쓸려나갔습니다.

그 이후 일본은 완전한 복수혈전에 돌입합니다.

중원의 역사에서 와신상담을 하던 오나라와 월나라의 심정이 이것이였을까요?
자신들도 와신상담의 이야기를 되세기며, 도쿠가와의 지도 아래에 내치와 체급 상승 시도를 수행합니다.

일본은 그전까지 제대로 된 열도의 통일국가가 아니었으며 전국시대 이후에도 몇몇 국가들은 일본의 영향력에서
빠져나간 상태였습니다. 그 탓에 직접적으로 휘둘리지 않은 에조 공화국과 류큐 왕국은 통합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겼고, 도쿠가와는 완전히 박살난 군의 재건과 조선과 마찬가지로 기반이 초토화된 일본국의 내정에 집중하여
열도 대륙의 통일을 향해 견실히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이후 조선이 병자호란으로 쓰러지고 대명이 멸망하고 대청이 세워지자 그들에게 아부하였고,
조선이 성조의 치세에 힘입어 대청을 무너트려 청으로 격하시키고 대조선을 세웠을 때도 아부하였고,
이따금 재건된 수군을 통해 서역과 교류하던 그들에게도 아부하였습니다.

단 몇번의 권토중래를 위해 그들은 마치 겉보기엔 고립되어 있는 듯한 움직임으로
최대한 기회를 엿봤습니다.

그리고 이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서방은 산업혁명을 천명하여 그들의 국가권력, 생산력의 효율이 감히 어떤 국가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합니다.
이후 벌어지는 대영제국과 러시아 제국의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은
생산력이 더이상 자국을 감당치 못하고 외부로 나가 식민지를 생성했던 시기의
각 국가간의 식민지 경쟁에 따른 두 제국의 강력한 대전략전을 뜻합니다.

이 대전략전에서 일본은 대영제국의 눈에 띄는데 성공했고,
대영제국은 일본을 자신들의 대전사로 길러 동양에서의 패권 장악을 위한 패로 성장시켰습니다.

비록 대전사로 길러지는데 많은 비용을 일본이 적지않게 지불하여 빚더미에 앉았으나, 복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내, 영일동맹과 미합중국과의 교역을 타결함으로서 그들의 준비에는 박차를 가했습니다.
강력한 서양의 문물을 들이고, 국가 생산력을 혁신적으로 늘리면서, 천황을 중심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을 형성하는
명치유신(메이지유신)도 큰 문제없이 도입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이렇게 개혁시킨 일본국은 이내 류큐 왕국과 에조 공화국의 통합도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대통합에 합류하게
만들었고, 곧 열도통일을 완성하여 이것을 천황중심의 중앙집권으로 일본제국을 이륙하는데 성공합니다.

이후 일본은 영국에게 군사지원 요청을 받고 파병을 나가거나 조선이 가끔 대마도와 구주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을 때, 간접적으로 투사할 수 있는 밑작업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시간대를 이전으로 돌려, 대청과 조선의 분쟁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이전 왕조와 황제는 그나마
어려울 때 서로 응하거나, 군신관계를 어느정도 지속하고 있었으나, 한창 경신대기근 때 조선 왕조가
투사할 수 있는 힘이 매우 적었던 시기를 이용하여 국경을 대청 마음대로 지정해놓은 백두산정계비의 문제가
그들의 각 왕조와 황조시기, 성조 통치시기와 웅정제의 통치시기 때 다시 제기된 것입니다.

이 문제의 골은 서로 타협할 수 없는 것 만을 증명하며 상호간의 반목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조선과 대청은 전쟁을 결심합니다.

성조는 그간 설움과 앙갚음을 위해 출병을 결심했습니다. 동시에 천자의 자격 역시 얻기 위해서.

옹정제 역시, 조선의 오만함이 극에 달했다며 강희제의 치세 때 길러온 군사를 통해 조선의 침공에 대항하였습니다.

일본은 당시에도 계속 비닉을 유지하며 군수물자를 팔아치워 이득을 보는 행위에 집중했습니다.
이들의 분쟁은 결국 조선의 승리로 끝마무리를 지었으며, 대청은 천자의 자격을 상실함과 동시에
청으로 격하되었고, 조선은 대청을 완전한 굴복으로 몰아넣음으로서 천자전쟁을 끝마쳤습니다.

그러나, 두 국가간의 벌인 전쟁의 영향이 만만치 않았던터라, 오히려 방관하고 있었던 일본과 그 외 세력들이
이 전쟁에서 큰 이득을 보왔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몽골에 대해 이를 갈고 있었고, 복수를 위해서라면
대청의 패전으로 혼돈의 도가니에 빠진 몽골을 좀 '쑤시는 것' 정도는 손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은 여기서 두둑하게 챙긴 재물을 계속 국가의 부국강병에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칭제건원한 대조선국에게 일본은 여전히 허리부러질 듯이 굽혀가며 비닉을 유지하고,
이번엔 병자호란 때와 반대로 청에게 영향력을 투사하여 일본의 영향력을 차츰 늘려갔습니다.

이것이 꽃피우는 날은 바로 명치유신이 제자리를 잡고 일본이 통일국가를 완성할 때였습니다.

이때의 청은 여전히 패배한 후유증이 국가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대조선은 순조의 즉위와 함께 갑작스런 쇠퇴기를
맞이했습니다. 이것은 일본이 기회를 갖춘다는 말이였습니다.

곧 청은 아편전쟁을 위시한 열강의 침탈과 침공을 받았고, 청의 강건성세는 진작에 성조에 의해 끌어내려진지
오래건만, 결국 큰 저항조차 못한채 열강들의 '나눠먹기'가 시작되었고 청의 몰락은 시작되었습니다.

대조선 역시 순조의 즉위와 함께 시작된 세도정치로 인해 대조선 몰락의 첫걸음을 나아갔습니다.

일본은 이미 통일국가를 수렴하고 곧 일본제국의 이륙을 목전에 둔 상황, 그동안 유지해왔던 모든 비닉을 깨버리고
다시 중원으로 '천황의 귀환'을 시작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서역의 다른국가들이
써먹는 수법을 이용하여 윤요호를 출격시켜 대조선을 도발하였고, 이 도발에 그대로 반응해버린 대조선을
'자기방위'를 명분으로 도발에 응한 성채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고 강제로 대조선을 회담장에
끌려오게 만들어 자신들의 유리한 협약을 체결시키게 함으로서 대조선 치욕의 날, 경솔국치까지 발돋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조선은 이미 세도정치로 조정이 분열되어있는 상황, 그나마 남아있던 인물들이 일본의 조약에 관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위험한 약조 내용을 빼버립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초전이였으니, 곧 일본은 영일동맹을 체결하고, 그 이전부터 미국과의 했던 교류를 확대함으로서
점차 힘을 늘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대조선을 잠시 웅크리게 한데 성공했으니 대마도와 구주 지방에도
영향력을 투사해야겠죠?

일본은 첫 승리를 자축하며 곧 청에게도 손을 뻗었습니다.

청은 청으로 격하되기 이전, 대조선의 상국이였으며, 조선이 천자전쟁의 승리를 차지하자
중원의 주도권을 잃음과 동시에 날마다 몰락기를 걷던 중원의 통일 왕국이였습니다.

간도를 포함, 연해주의 영토는 조선이 가져갔고, 현대에서 몽골이 있는 영토는 러시아 제국이 날름가져갔죠.
자신들도 여기서 조선에게 약간의 지원을 해줌으로서 이득을 땡길 수 있었습니다.
중원의 천하관이 깨져버린 청나라는 이후 강역을 회복하기 위해 건륭제가 다시금 수차례의 원정에 회복은 됬지만
되려 이후의 후유증을 전혀 극복하지 못해 점점 난세의 늪에 빠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일본국은 아무리 청과 대조선의 관계가 나쁘다고 한들, 대조선을 침공하기전, 이들을 손보지 않으면
청나라에서 기회를 노린 자들에 의해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수 있기 때문에, 가능성을 원천차단 하기 위해
청나라에게 선전포고를 가합니다.

이후 발생한 청일전쟁은 안그래도 자신들이 천하에서 끌려나왔다는 충격에 헤어나오지 못한 중원인들을
완전한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게하여 동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져있던 중화사상을 문자그대로 박살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이렇게 박살난 청은 곧 의화단의 난과 온갖 세력의 난립으로 몇 십년 내로 멸망을 맞이했습니다.

대조선은 이미 풍전등화의 상황에 처했습니다. 군신관계를 역으로 정립해버린 청은 일본에게 맥없이 박살나고
청의 함대가 완전히 수장당했습니다. 딱히 자신들이라고 다르진 않았습니다. 청의 함대가 저리 박살난 것을 보고
현 일본국의 군함과 지금 갖추고 있는 조선의 군함으로는 대적할 수 없음을 직감했고, 그나마 육군으로
대항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차이를 벌릴 수 없었습니다.

순조 때 시작된 세도정치의 난립으로 군은 점점 축소되었고, 그나마도 앞서 겪어본 '제너럴 셔먼호 사건'
과 '병인양요', '신미양요'로 인해 근대화를 거친 군대와 거치지 않은 군대의 차이는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결국 청일전쟁 때, 청이 저리 박살나는 동안 대조선은 최대한 일본군이 상륙거점에서 나오지 못하게 저지하는 것이
그들의 최대 전공이였으며, 청은 일본의 항복서한에 싸인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대조선의 영향력이 더이상
청에도 못미치고, 대마도와 구주는 물론 다른 지방에도 닿지 못하는 것을 확인한 일본은 대조선에 투사하는
영향력을 점차 늘리기 시작해 후일 이뤄지는 경솔국치의 인사들을 양성합니다.

일본국은 비록 같은 국가는 아니었지만, 대명 때의 치욕을 갚은 것을 축하하며 그 다음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다음 상대는 러시아 제국이였습니다. 원래라면 자신을 후원해주는 대영제국의 요청에 맞춰서 대조선을
러시아가 낼름 먹을 수 없도록 견제를 하는 것이 주 역할이였지만, 대조선의 황후, 한 여우년에 의해서
계획이 틀어지고 맙니다.

민황후, 그녀는 대조선국의 위기에 대해 외세를 오히려 더 많이 끌어들여 각국의 수많은 이해 관계속에
묶이게 함으로서 대조선국을 지탱하는 대전략을 내세운 인물입니다. 상당히 어리석은 생각이였지만.

일본국은 그녀를 암살할 계획까지 세워놨지만, 대조선과 직접적으로 충돌할 일이 생긴다면,
필연적으로 러시아의 개입이 생깁니다. 복수는 이뤄지겠지만, 일본군과 일본국의 상태는 만신창이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였습니다.

결국 일본국은 러시아 제국을 치워버리기로 결정합니다. 대영제국의 요청에 어느정도 응하면서
다른 국가의 러시아 견제에 대해 지원도 같이 받을 수 있었으니깐요.

대국적 논의가 결정된 몇 일 후, 러시아 제국은 일본국으로부터 선전포고문을 받게됨과 동시에 기습을 받습니다.
문자그대로 파죽지세로 치고드는 일본군의 기세에 러시아 제국은 기습공격으로 혼비백산한채 일본국에 의해 유린당했고,
자신들이 자랑스러워 했던 함대는 타 국가의 견제에 의해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으며,
곧 자신들에게도 국가 존속의 위기, 차르가 민중을 상대로 총탄 발사를 명령하여 혁명이 터지게 된 사건이 발생하자
일본국을 밀어낼 반격 병력의 편성에 불구하고 그들은 항복서한에 사인합니다.

그렇게 다른 열강과 청, 대조선의 예상과 다르게 러시아 제국의 우세라 말했던 모든 이들의 생각을 박살내며
일본국은 승전을 거둬냈습니다.

연속된 전쟁, 점점 쌓이는 빚, 생각이상으로 거셌던 러시아 군의 저항.
일본군의 피해가 생각이상으로 누적됬지만 상관없습니다. 이제 조선의 여우 녀석이 끌어들인
모든 지원군을 거둬내고 우세를 점했으니, 이제 대조선을 무릎 꿇일 일이 남았습니다.

일본의 오랜 치욕이자 몇번을 치룬 권토중래 끝에 맞이할 이 전쟁은 일본이 그토록 염원하는 것이였습니다.

곧 이들에게 복수하는 자들의 지지를 모아 대조선에 선전포고문이 전달되었습니다.

이제 시점을 돌려 대조선의 상황으로 돌아가봅시다.

대조선은 성조-장조-정조로 이어지는 삼여제의 해동성세(海東盛世)의 시기에도 불구하고 모든 영광과 희망이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정조 시기부터 이따금식 금이 갔던 탕평론 정책이 점점 그 빛을 잃어갔으며, 그 이후 삼대의 황실이 단명해버린 바람에
황권은 완전히 공중분해되었습니다. 또 다시 신하와 대신들의 권력이 강해졌고, 그들이 무책임하게 휘두르는 권력은
곧 '세도정치'의 발현으로 가시화되었고, 안그래도 대조선에게 남아있는 과업의 해결을 더더욱 늦췄습니다.

정조 이후 즉위한 황제, 순조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홍경래의 난과 산발적인 기근발생으로 안그래도
짧은 세자 생활과 너무 어린 나이에 즉위해버린 나머지 성조의 계비, 정순황후의 수렴청정을 받고
짧지 않은 수렴청정 시간을 거친 후 그에게 겪을 사건으로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인성황제, 순조는 나름대로의 해결방법을 찾기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적지 않은 시간 내로 들이닥치는 위기와
자신에게 물려준 권력의 부담감을 견디지 못해 지속적인 만성두통에 시달려야 했으며 결국 심신이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강건했던 옥체가 쓰러지며 조정에서 황제의 영향력이 완전히 증발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른 인물이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순조가 쓰러지고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대리청정이 시작되지만,
그 역시 부담을 이겨내지 못한 것인지, 순조 이전의 선제에게 물려받은 질병이라도 있는 것인지 그 역시
짧은 수렴청정 기간으로 사망합니다. 결국 순조 역시 아들의 뒤를 따라 승하하며 황실의 적자들이
너무나도 짧은 시간내로 친정을 끝마쳤습니다.

이후에 오른 헌종역시 심각한 질병을 앓고 순조부터 본격적으로 점화되기 시작한 삼정의 문란과
심각하게 약해진 왕권 사이에서 세도가와 권신들에게 저항하다 그 역시 짧은 친정을 마치고 승하합니다.

효문황제, 헌종은 순조와 비교하여 너무 적은 나이때 즉위했고, 제대로 된 수렴청정 시간도,
학문을 이수할 시간조차 받지 못했으며, 질병은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며 황조의 적자조차 못남긴 채,
이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결국 그렇게 황실의 삼대(三代)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버리고 만 탓에
다음 황실의 후계자는 세도정치로 하여금 권력을 잡은 세도가와 권신의 몫이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자로 태어나 평범하게 나무꾼을 하던 원범은 갑작스럽게 집에 들이닥친 신하들의 인도를
받으며 그들의 알 수 없는 속내와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황제에 오릅니다.

즉위한 조선 왕조의 6대 황제, 강유황제 철종은 당연히 교육은 물론 황제의 업무와 어떤 접점도 없었던 탓에
그는 수렴청정 기간을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학업에 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꼭두각시에 가까웠던 황제나 다름 없었던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건 별로 없었고
황실의 손에서 완전히 떠난 또 다른 예송논쟁과 임술민란, 삼정의 문란 문제가 더더욱 불거워져
결국 그 마저 짧은 친정을 마치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전, 자신이 입던 황룡포를 내던지고 다시 나무꾼 복장을 입은채로 조선의 영물과
대신, 신하들 사이에서 짚으로 만든 깔개를 펼치고 무릎 꿇고 앉아 대조선을 보신(普信)해달라며 절규하던
일화는 백성들 사이에서 간간히 도는 이야기였으며, 민심이 대조선을 외면했다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이 다음 황제에 오른 황제는 광무황제, 고종이였습니다.

그 역시 철종과 마찬가지로 꼭두각시 임금이나 다름 없었으며, 이후 흥선군 이하응이 직접 대조선의 개혁을
선도하고 집도할 때를 제외하고는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이후 벌어지는 윤요호 사건과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도 고종은 졸속에 가까운 행정처리를 해버리고
제 역량을 증명하지 못했으며, 아버지 흥선대원군을 쫒아내고 나서야 그제서야 제 능력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고종의 자질은 황제로선 부적합한 '범재'에 불과한지라 앞서 짧은 재위시간을 마치고 떠나버린 선황에
비해선 좀 더 나았겠지만, 결국 그는 쉽게 변심하는 마음과 친일파가 점령한 황실에 의해 항상 대부분의 행동에서
제동이 걸리고 거동에 제한이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황위는 일본의 조선 침공 결정 당시, 고종을 안락의자황제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진행하면서
그를 살려둬야할 필요성을 일본 대신들 사이에서 논의되었고, 그의 황권을 남겨두기로 결정하며 황제 직위는
사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본의 대조선 침공이 시작되었고, 대조선은 모든 것이 불리한 상황 속에서 일본군과 난전을 펼쳤습니다.

대조선은 이를 '을사왜란'이라고 지칭하였으며, 여전히 그들을 이길 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과
윤요호 사건과 달리 이번엔 군이 준비되어있다는 근거로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절대로 지지 않을 것을 천명했습니다.

일본국은 이를 '천황의 귀환'이라고 표현하며 본격적으로 비닉을 끝내고 이빨을 드러낸 윤요호 사건을 기점으로
청일전쟁, 러일전쟁, 조선침공까지를 표현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승자가 누구인지는 이미 우리 모두 알고있습니다.

대조선국의 상황은 이미 최악입니다. 끝까지 군제개혁을 못마친 군대는 근대화된 일본군과 최악의 교전비를 냈고
앞서 민왕후가 지원으로 끌어들인 러시아 제국, 청은 이미 한번의 패배를 경험하고 오히려 간도를 빼앗고 싶은
러시아 제국의 지원과 앞선 천자전쟁으로 관계가 이미 최악으로 치닫은 청은 청일전쟁을 마지막으로 대조선을 향한
모든 조공과 지원을 끊어버렸습니다.

그 외 다른 서역의 국가들도 조선의 구조요청을 무시하거나, 이권만을 챙긴채 전장에선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반면 일본국은 임진왜란으로부터 지금까지 약 200년.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대조선을 향한 복수심을 씹어가며 에도 막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비닉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비닉은 조선이 대조선국으로 천명할 때도, 서역과 제살을 깎아주며 받은 근대화의 기술을 적용할 때도,
계속 유지시켜 지금까지 유지된 것입니다.

일본국은 대영제국의 지원과 러시아 제국 및 청나라부터 조선을 상대로 승전시 몇몇 부분의 이득을 양도하기로
결정하며, 다른 국가로부터 조선침공을 암묵적으로 승인하는데 도움을 받습니다.

대조선은 더이상 어디로든 퇴각할 수 없는 독안에 든 쥐가 되었습니다.
망명은 불가했고, 아관파천같은 상황은 더이상 재현할 수 없었습니다.

상황은 모든 것이 대조선국에게 불리했고, 일본국은 그토록 군자다움을 꿈꾸던 조선의 정신을 비웃듯
새로운 시대정신이 곧 조선을 쓸어버릴 것이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벽난로의 불을 보듯 뻔하게 흘러갔습니다.
시작부터 얻어맞고 시작하는 대조선군의 수군은 문자그대로 표적지로서 포탄의 착탄점이 되었고
일본의 군함에게 약간의 손상만을 입힌채 전원이 바다로 수장되고 맙니다.

상륙은 손쉽게 이루어져 그들이 한강을 도하하고 있을 때, 이미 육군은 임진왜란 당시를 방불케하는
일본의 대군을 보고 사기가 바닥나거나, 진작에 무기를 버리고 탈영하여 완전히 와해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조선군과 황실친위대는 구식 총기와 구식 화포로 최선을 다해 저항했습니다.
황실 친위대의 마지막 영물들은 끝까지 손과 이빨에 피를 묻히며 일본군의 총칼에 찢기고
황실 친위대의 마지막 군인들은 끝까지 방아쇠를 손에 놓지 않다가 일본군의 총탄에 쓰러지며
조선군은 와해된 상태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진격에 발목을 잡아 시간을 끌었지만, 역부족이였고
어떻게든 모인 의병들은 일본군 야포의 사격에 노출되어 사지가 분리되었습니다.

그렇게 대조선은 끝까지 궁궐에서 피난하지 않은 고종 황제가 일본군에게 포위된 것을 마지막으로
대조선은 패전하였습니다.

이후 일본은 고종을 일본이 대조선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기 위한 패로 안락의자에 앉히는데 성공했고,
또한 대조선이 가진 영토 중 제주도, 간도, 구주, 대마도는 아예 본인들의 영향력 내로 들이는데 성공했습니다.
오직 대조선의 본토, 한반도와 여전히 일본국에 저항하고자 하는 민중만이 남았습니다.

물론, 완전히 주권을 빼앗진 못했습니다. 황실친위대는 끝장냈으나, 흩어진 조선군을 일일이 찾아서
토벌하려 군사력을 더 쏟는순간, 일본국조차 더이상 쌓이는 빚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조선국의 군대를 해산시키는 순간, 대조선은 천자전쟁 이후의 청나라처럼 대조선 본인조차
감당될 수 없는 난세가 열릴 것이고, 당연히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일본군이 이걸 바로잡기 위해
군대를 오래토록 타국에 둬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였습니다.

다른 요인으로 연이은 전쟁에 군의 피로도는 심각했고, 의회는 군부의 폭주에 지금이라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계속 안건이 제기되었습니다.

불만족스러웠지만, 원수를 갚았다고 생각하는 일본국은 조선의 주권과 황제의 권한을 유지하는 것으로 타결,
다른 사안으로 임진왜란때 뺏긴 구주와 대마도를 지금 와서 되찾거나, 간도와 제주를 자신들이 지배한다 한들,
오히려 이것을 다시 융화시키는데 일본을 고생시킬 것이다 라는 판단이 당시 일본국의 의회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좀 더 영리하게 굴어서 직접적으로 붙어있는 구주 만을 정식으로 할양받고,
나머지 대조선 영향력에 들어가 있지 않은 영토는 일본군이 '친절하게' 도와준다고 명시하며
영향력이 닿는 섬에는 자치령에 가까운 식민지 조성과
본토에 있는 대조선의 주권을 남겨둠으로서 화살 방향을 고종에게 돌렸죠.

어차피 계속 헛짓거리만 하던 황제, 이렇게라도 써먹어야 도움이 되지 않겠나요?
지원해준 '적같은 동맹'에게도 떡고물을 물어줘야 하니까요.

일본은 그때부터 자신들도 서역의 국가처럼 식민지를 거느리고 지지 않는 해의 제국이 되었다며,
국명을 '일본제국'으로 명명하고 대조선의 황위는 일본 천황의 권위 아래에 놓이는 형식으로 만들어
일본은 중원으로 '천황의 귀환'을 화려하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복수혈전 끝에 모든 목표를 마친 일제는 비닉을 다시 시도하는 대신, '다이쇼 로망'이라는 문화의 꽃을 피워
일본의 영향권 내 국가는 모두 이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오직, 청과 대조선만이 이를 끔찍히 여겼습니다.

일본은 조약상으로 대조선의 주권을 남겨뒀으나, 이미 꼭두각시가 된 정권과 안락의자 황제가 된 고종에겐
모든 업무의 결제를 일본의 감시하에 받아야 했습니다.

누구든 절망할 수 있었던 상황이며, 심지어 독살까지 고려될 수 있는 상황이였습니다.
고종은 현실에 절망했고, 청을 포함한 어떤 국가의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을 마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종의 아버지이자, 대조선의 재상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고종의 아내, 민황후의 처우가
일본의 요구로 인해 폐서인이 결정되자, 자신 역시 머지않아 자발적인 사직을 요구받았으며,
민황후 그리고 이후의 고종과 마찬가지로 궁궐에서 남은 여생을 보냈습니다.

고종은 허심탄회하게 뒤늦게라도 선황의 정신을 이어 광무개혁을 실시해 대조선의 문제를 고쳐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업무가 일제에게 감시되고 있었던 상황이지만, 고종이 제시한 개혁안은 당시 일제에게도 대조선 통치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그의 개혁을 승인해주고, 찝찝한 마음 속에서 고종은 개혁을 끝마칩니다.

그리고 일본의 재빠른 침공 결단으로 인해 밀린 서류와 고종의 퇴위요구와 비판 속에서 설립된 대조선국 중추원에 대해
건설만 승인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1907년, 고종은 건강상의 이유로 퇴위하였으며, 그에 따라 다음대의 황제 순종에게 다음 제위가 계승되었습니다.

그의 역사적 행보는 좋든 나쁘든 크게 눈에 띄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업무가 일제 손아귀에 있었고
본인이 참가하지 않더라도 황실의 대리인이 따로 대조선의 일을 결정해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았습니다.

대조선국의 황제로서 백성을 격려시켜준다던가,
이따금 제사나 행사에 얼굴을 비추면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준다던가,
거의 와홰되었으나 착호갑사에게 대민지원 활동을 명하는 등의 그의 활동은 이후 몇십년이 지나
일제가 결국 서역의 다른 동맹들과 세계정복의 야욕을 꿈꾸다가 그들의 옛 동맹, 대영제국과 미합중국으로부터
버림받고, 거대한 버섯구름이 열도에서 피어났을 때, 대조선은 광복절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기여한 것이 없었던건 아닙니다. 청은 청일전쟁 당시 또다시 외세에 의해 짓밟혀지고 절치부심하여 이홍장 주도의
부국강병 운동과 의화단 운동 등 여러차례에 걸쳐 다시 기상하려 했으며, 이는 대조선에게 복수하기 위함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대조선의 몰락 이후에 세워진 중원의 국가 중국에게 다시금 학살과 충격을 안겨준
일본국에게 앙갚음을 선사해주려는 마음이 많은 지분을 차지했습니다.

우습게도 러시아 제국은 일제가 간도를 포함 일부 섬의 햘양권에 대해 시치미를 떼면서 양도할 의향을
전혀 내비치지 않자 일제에서 벌여지고 있는 테러활동에 자금후원을 넣기도 했습니다.
결국 러시아나 테러단체나 자기들끼리 치고박고를 반복하며 유명무실해졌다는 결과는 허탈하지만 말입니다.

또한 대조선은 여전히 그림자 속에서 황제를 보좌하는 착호갑사와 조선군에서 관직을 내려놓고
간도와 대마도, 구주, 제주에서 일제의 식민지 독립을 계속 도와주고 있었던 열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일제의 공산품 수입에 저항하고자, 대조선의 부호들이 한데모여 '물산장려운동'을 펼쳐
서역으로부터 많은 물건을 들이고 조선의 중공업과 고부가가치 산업들을 유치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는 조선군에서 도울 일이 없다 판단한 군인들은 패전 직후 직접 서역과 온 대륙을 쏘다닌 끝에
이역만리의 국가에서 병법을 배우고 오거나, 직접 그들 사이에서 복무하여 힘을 길렀습니다.

학자들은 대조선이 패배한 덕택에 권력만 노리는 권신과 세도가들이 되려 쓸려나가고
'그나마'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는 친일파들이 국가에 남아 대조선이 세도가와 권신들의 행패로 방치시켜놓은 조세 제도와
흩어진 도량형 단위를 통일시키고 대조선이 선포된 이래 중화사상이 박살나고 조선만의 소중화 사상을
서방에서 주창한 '민족주의'와 연결시켜 발전시켰습니다.

민중은 인내했습니다. 일본국도 했고, 과거 왕조의 효종이 그랬듯이 언젠가 빛은 옵니다.
비록 이 패전에는 조선 황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지만, 그 때의 앙금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고나서 였습니다.

대조선은 적극적인 참여는 힘든 상태였으나, 간접적으로 일제와 그들의 동맹인 추축국에게 대항하는 전선을
계속 후원하였으며, 후일 일제의 몰락작전에 참가할 수 있음을 연합군에게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일제에게 대항하던 중국은 이를 감명깊게 여겨 이후 추축국에 관한 전후처리 회의에 초대받을 수 있었습니다.

연합국은 수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참여한 이 회의 속에서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하며 식민지의 해방과
세계국제연합의 창설을 논의했고, 마지막으로 인권에 대한 논의가 체결됨으로서
세계의 난세는 끝을 맞이했습니다.

이후 대조선은 순종의 양보 아래, 황실이 가진 모든 권한을 민중에게 양도했으며,

그동안 대조선에서 '물산장려운동'을 주도한 '기업가'
간도와 제주, 대마도와 구주를 드나들며 그들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독립열사'
조선군에서 뛰쳐나와 연합군에 의용병으로 합류하여 일제와 추축국에 직접 대항한 '군인'
혼돈과 격변의 시대 속에서 '조선왕조실록'과 '한국어와 한글'을 보존한 '학자'
대조선의 주권 독립을 격창하며 일제에게 저항 운동과 시위를 전개한 '민중'

순종은 더는 조선 황제가 대조선의 주도권을 쥐어야 할 이유가 없다며 그들에게 주권을 양도했습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대조선국 중추원에 대한 권한이 인정되었으며, 현 대한민국 의회의 모태가 되는 기관이
수립되었고, 대조선국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변경되며, 조선의 황실은 이름만이 남게되었습니다.
순종은 마지막 여생을 아버지와 다른 형제들이 그랬던대로 궁궐에서 보냈습니다.
제위는 그 다음 적격자인 의성황제, 의종에게 제위가 넘어갔습니다.

이후 역사는 다들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의 역사로 흘러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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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불탄다..!) 20:03:22

8.대한민국(21세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륙하고, 제 5대 대통령, 박정희의 주도에 의해
새마을 운동이 전개됩니다.

갖가지의 시간 사이에서 부정선거 사건이나 민주화 운동이 군사혁명에 대항하여 기상하기도 했고,
의종이 주도하는 해동 대통합 운동이 여론의 기세를 받아 대한민국의 이데올로기로 제시된 적도 있습니다.

각 지방의 통합을 상징하는 보도연맹이 창설되고, 이를 탄압하는 당대의 역사,
만화와 온갖 오락을 부정하다며 금지시키고 소유를 금지했던 역사,
국가의 긴장이 최고도에 달한 쿠바 미사일 위기에 한국군과 미군을 전진배치 했던 역사,
그 외 다양한 사건들이 대한민국을 거쳐갔습니다.

이후 한국 외 대조선의 역사를 함께해오던 실질 분리 독립된 지역이 다시금 통합을 제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멀어진 시간의 간극으로 인해 이따금 통합 논의가 말로 오가는 것 외엔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럼 여기까지 대한민국의 역사였습니다. 즐거우셨나요 여러분?

110 텍스트 참치◆hS.UgB4KQQ (4ZOtbjHPvY)

2024-07-05 (불탄다..!) 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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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황조

21대 조선 국왕, 1대 황제
성조 - 태명황제(台命皇帝)(영조)
ㄴ높고 존귀한 명령을 가진 황제

22대 조선 국왕, 2대 황제
장조 - 문헌황제(文獻皇帝)(사도세자)
ㄴ온갖 난잡한 문헌을 후대에도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든 황제

23대 조선 국왕, 3대 황제
정조 - 성문황제(聖文皇帝)
ㄴ성스러운 덕과 슬기로운 문예를 가졌던 황제

24대 조선 국왕, 4대 황제
순조 - 인성황제(仁成皇帝)
ㄴ끝까지 대조선을 위해 고군분투한 인자하고 덕을 가진 황제

25대 조선 국왕, 5대 황제
헌종 - 효문황제(孝文皇帝)
ㄴ효심과 문예를 갖추고 짧은 친정으로 일찍이 세상을 떠나 남은 이들이 황제를 기리며 애도되는 황제

26대 조선 국왕, 6대 황제
철종 - 강유황제(剛柔皇帝)
ㄴ부드러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고, 어떻게든 세도가와 권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한 강력한 황제

27대 조선 국왕, 7대 황제
고종 - 광무황제(光武皇帝)
ㄴ뒤늦게라도 초대 황제의 정신을 가지고 광무개혁을 주도한 황제

28대 조선 국왕, 8대 황제
순종 - 순덕황제(純德皇帝)
ㄴ백성에게 주권을 넘겨줌으로서 평화로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주도한 덕을 갖춘 황제

29대 조선 국왕, 9대 황제
의종 - 의성황제(義成皇帝)(의친왕)
ㄴ현재까지 남아있는 마지막 황제, 조선 황실은 이미 순종 때 모든 권한과 특권을 포기했으나,
그는 마지막 황제로서 대한민국의 통합을 주도하고 간도, 대마도, 구주같은 영토 문제를 해결하려 크게 애쓰고 있음.

조선이 대청으로부터 천자지위를 쟁탈하고 해동천자의 지위를 확고하게 만들며
성조의 칭제건원으로 선포된 조선의 황실입니다.

왕조로부터 이어지는 황실이기에 중원의 국가처럼 황제의 시호만을 받는 것이 아닌,
국왕으로서 시호도 같이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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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괴력난신

조선의 건국 이전 고려말은 혼돈의 도가니였습니다.

미처날뛰는 산군, 여기저기서 날뛰는 요수, 호시탐탐 인간을 유혹해 권력을 휘두르는 요괴.
부처의 말씀과 불교의 경전을 따위로 취급하는 승려, 시장 바닥판이 되어가는 불교의 교구.
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 조선의 태조 이성계와 그의 지지세력인 신진사대부는 고려의 타락을 두고볼 수 없으며
저 땡중들과 괴력난신을 모두 쫒아내자는 표어아래 결집했으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기점으로
고려는 멸망했습니다.

조선은 아예 중원의 '이매망량', 일본의 '백귀야행'이라는 칭호조차 허용하지 않은 채
공자의 '괴력난신'을 인용하며 그들의 격을 한층 낮춘 표현으로 하대했습니다.

또한 그것의 혈통을 지닌 자들이나 모셨던 자들에겐 고관대직에 오를 수 없도록
제한 조치를 취한 제도가 성립되었으며, 이는 효종의 제도 완화까지 조선 시대에서 천민에서 중인 정도의
신분 층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습니다. 가끔 고위층에서 그들의 존재를 목격하는 이들의 증언이 이따금
들려오긴 했으나 이들의 존재는 왕조에 의해 감춰지거나, 함부로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요수는 조선의 건국과 동시에 조선의 정책 아래 토벌되었습니다.
물론, 조선에게 협력한 괴력난신들도 존재하고, 왕의 수호자로서 남은 자들 역시 존재합니다.
착호갑사는 아예 조선 당시 미쳐날뛰던 산군과 요수를 토벌하기 위해 조직되었으며 이들은 필요에 따라
다시 재건되어 요수의 상대를 맡았습니다.

향후 이들은 조선의 영물로서 인간과 섞여 자연스레 동화되어 사라지거나, 충성을 바친 왕이 사망한다면
절조를 지켜 은둔하기도 했습니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어 격변하는 근현대 속에서 그들은 제목숨이라도 건지거나, 조선을 위해 사라지거나,
목숨바쳐 산화하는 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조선 후기에서 영물을 직접 눈으로 본 자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격분하는 시대 속에서도 생존한 자들이 존재하고, 이들은 후일 대한민국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도깨비', '요정'은 살아남은 대표적인 영물이고 이들의 존재는 쉽게 확인되지 않지만, 혈통은 아직까지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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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호갑사

조선의 대요수 부대로서 뜻에 맞게 주로 산군의 상대를 맡았으며, 이따금 정신을 차리고 교화한 산군이
부대로 합류함으로서 산군의 등에 얻어탄 갑사의 부대라는 명칭으로 굳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조선 초기에 주로 활동했으며, 필요에 따라 활동하고 세종을 전후로 토벌한 요수와 산군의 수가
많아지면서 더이상 조선에 위협이 안된다고 판단되자 해산되었습니다. 여기에 소속된 인간들은 조선군으로
재편입되거나, 인외들은 은둔하거나, 인간과 짝을 맺어 후사를 남긴 후에 사라졌습니다.

효종시기, 조선이 다시금 괴력난신에 대한 제한 절차를 완화시켜 그들을 다시 조정으로 불러들였고,
이 때 활약한 송시열이라는 요정은 당대에서도 여성 주자라는 별호를 받으며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을
재정비하는데 도움을 줬습니다. 그 외에도 자신들을 '등불'의 후예라 칭하는 학자 무리가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완화 시기, 다시금 착호갑사의 재건이 이루어졌으며, 이들은 왕조와 후일 황실의 친위대가 되어 조선을 보필했습니다.

그러나, 정조의 죽음 이후 이들의 향후 방향성이 다시 변동되었고, 황제의 연속된 짧은 단명으로 인해 대조선 황실의
운명을 직감하고 떠나는 자들이 생겼습니다. 아니면 꼭두각시 황제에 분노한 친위대가 세도가와 권신에게
직접적인 무력을 휘둘러 변이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이들은 세도가와 권신의 선동으로 왕조와 황실을 위협하는 자들이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실망한 자들이 대조선을 비판하며 나가버리거나, 더는 견딜 수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떠났습니다.
그림자 속에서 그들을 보필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이들만이 조정에 남게되어 이후 현 시대의 황제까지
대한민국을 보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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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의 요정 혈통?

옛 시절의 일입니다.

태조 이성계는 어렸을 적, 활의 재능이 높아 고려의 국방에 힘쓰고, 고려왕의 총애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장군이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비밀은 있었습니다. 괴력난신이 사방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시절, 그는 누군가와 비밀스러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요정'이라 불리는 한반도에 존재했던 수많은 인외 중 하나였습니다.

그와 그녀의 밀회는 이후 이성계가 조선건국까지 계속 유지되어 왔으며, 또한 조선 왕조에서
수많은 괴력난신에 대한 탄압에 불구,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조선의 인외종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씨 왕조의 혈통이 흩어지고 정통성까지 옅여진 조선의 난세 속에서 요정 혈통은 점점 희미해졌고
이 혈통의 진가를 발휘한 '성조'를 제외하고는 현세대에서 정통성 확보를 위한 수많은 이야기로서 치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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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병대기근

숙종 시기에 발생한 여러 년도에 걸친 대규모 기근 사태이며, 처음에는 이를 해결하지 못해
조선이 무너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뻔하나, 숙종의 신묘한 힘으로 토지를 비옥하게 만들어 해결했다는
출처 불명의 야사가 존재합니다.

실록과 당대의 기록을 대조했을 때, 대기근이 벌어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대 왕조가 그러했던 것처럼
구휼미를 제공하고 기우제를 지내며 자신들이 해볼 수 있는 사안을 시도했습니다.

이에 역부족이라 판단한 숙종은 이후 '어떠한 수법'을 써서 대기근 당시 토지를 회복시키는데 성공했고,
숙종이 들인 왕후 또는 관직에 갑작스레 조선 권력층에 의해 배제되었던 괴력난신이 대량 유입되었던 것이 확인되어
이것이 원인이라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즉, 조선은 해당 대기근을 해결 하기 위해 괴력난신들의 힘을 빌렸고, 이 때를 기점으로 고위층에 오른
괴력난신이나 관직에 오른 자가 급증했으며, 조선 후기, 황실친위대를 이루는 영물들의 근간이
이때를 기점으로 발생한 것이라는 정설 또한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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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선의 삼여제(三女帝)

경종-성조-장조로 이어지는 3명의 여성 황제를 뜻하는 말입니다.

공통적으로 '요정'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는 3명의 여인이였으며

대명의 영락제와 달리 그녀들은 자신을 딱히 여제나 여왕이라 지칭한 기록은 없습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 의한 자신들의 양보일지, 조선의 전통에 따른 규칙일지는 모릅니다.

경종을 제외하고 정조를 넣는 표어에선 '해동성세'(海東盛世)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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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선국 중추원

현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 간도, 대마도, 구주 지방의 통치기관이 되는 모태입니다.

대조선국의 좌충우돌 근현대사는 많은 혼란과 분열을 야기했습니다.

고종은 자신의 황권을 민중에게 양보할 의향따윈 없었고, 민중은 일본의 을사왜란까진
아직까지 대조선국의 천명은 황제가 쥐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미 천명을 떠나있음을 체감한 학자와 군인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을사왜란의 전후로 결국 경술국치라 불리우는 일련의 사태가 지난 뒤,
민중들은 더이상 고종에게 황제의 자격이 없다 말하며 거리로 나왔고,
반발을 어떻게든 감추기 위해 고종은 그들의 불만이라도 수용해줄 건물 건설을 허가합니다.

이것이 그때의 대조선국 중추원이였으며, 정식으로 받은 권한조차 없어 민중들이
대조선의 조정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고종이 건강을 이유로 퇴위하여 순종이 즉위하고 난 다음,
근대사에서 빼놓으면 이야기할 수 없는 1차, 2차 세계대전의 충격이
동아시아 전반에서도 일련의 타격을 주고 있었을 때,
순종은 이들의 권한을 수락, 대조선국이 가진 주권을 민중에게 양도하고
대조선국의 중추원이 정식으로 수립되면서 제대로된 의회가 출범되었습니다.

허나, 그동안 국가 시스템은 황실이 유지해왔던 것입니다.
중추원의 첫출발은 계속 삐그덕 거렸고, 광복이후 합류한 다른 대조선의 시민들까지 합세해
중추원은 혼돈의 도가니나 다름없는 상태였습니다.

이후 상태가 점점 안정화되며, 광복 이후 실시된 연합국의 임시 국권대행 기간이 끝나자
대조선국의 모든 시민이 모여 총선투표를 실시했고, 이 때를 기점으로 북한과 남한, 간도, 대마도, 구주의
국권분립이 이루어졌고, 북한은 공산주의 기반의 서기장이 남한은 자유주의 기반의 대통령이
각 지역의 실질 독립에 가까운 지역들은 각각의 국가지도자를 뽑으며 중추원은 해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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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윤요호 사건을 기점으로 발생한 일본국이 대조선국에게 행한 침탈과정 시기를 뜻합니다.

대조선국은 연속된 황제의 죽음으로 황권이 약해져가며, 세도가와 권신이 본격적인 권력을
잡으면서 대조선국을 퇴화시켰습니다.

일본국은 근대화를 마치고 복수혈전에 들어가고 있었으며, 청나라는 아편전쟁과
대조선과 똑같이 쇠락과정을 거치면서 열강의 이권침탈이 가속화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대조선국은 흥선군 이하응의 개혁으로 가까스로 제힘을 되찾는데 성공하나,
독일의 몇몇 인물들이 행한 왕릉의 도굴사건 때문에 근대화에 다시 제동이 걸리게 되었고

이후 발생한 윤요호 사건은 대조선을 충격에 빠트리게 하고 대조선국의 상황이 매우 심각했음을 증명합니다.

이 상황 속에서 재위 중인 고종은 황권 강화를 위해 여러가지를 시도했으나
앞서 일어난 사건들로 인해 제동이 걸리는건 매한가지였고, 그나마 황실친위대라도 재건하여
세도가와 권신들을 물리적으로라도 내쫒기 위해 힘을 길렀지만, 시간과 비용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대조선국은 민황후의 조언에 따라 타국가를 대조선의 동맹으로 끌어들이고 일본국이 행한대로
이권 몇개를 열강에게 넘김으로서 일종의 유치(誘致)를 시도햇습니다.

그러나 일본국이 행동이 생각이상으로 재빠르고 영악한 탓에 대조선국은 금방 수세로 몰립니다.
동맹은 일본국의 공격으로 무력화되고, 유치시도는 이권을 가져간 열강들이 일본에게 이중조약을 맺는 짓거리를
행함으로서 가진 패가 모두 무력화되었습니다.

결국 조선침공까지 제대로 기동할 수 있는 군은 대조선의 황실친위대와 민병대밖에 없었으며
이들은 최후의 돌격을 감행해 대부분이 산화되고 전멸합니다.

일본은 대조선과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이를 '경술조약'이라고 합니다.

이 조약에는 일본국이 일본제국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는 협약과
구주 할양, 영토에 일본군이 진주할 수 있음을 표기하는 약조들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들은 주권을 남겨주긴 했으나, 정권자체가 윤요호 사건을 기점으로 친일파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패전 이후에는 친일파가 과반수가 된 상태에서 실질적인 일본의 영향권 내로 들어왔다 해도 무방합니다.

고종은 쓰라린 입맛을 집어삼키며 서명했고, 대조선국의 실질적인 기반이 일본국에게 넘어감으로서
대조선의 모든 시민과 지식인과 생존자들이 비탄에 잠겼습니다.

흥선군 이하응과 고종의 황후 민자영은 마찬가지로 일본의 요구로 퇴진 및 폐서인당하여
더는 이들이 황실에 간섭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 까지의 과정을 '경술국치'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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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의 귀환

일본이 임진왜란의 이후 실시한 오랜 비닉을 깨고 청나라, 러시아 제국, 대조선국과 벌인 전쟁과
대영제국, 미합중국으로부터 근대화의 꽃을 피우던 시기를 뜻합니다.

또한 임진왜란 전후, 천황의 귀환 이전 시기를 '위대한 인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다른 명칭으로는 당시 내세우던 문화통치의 표어인 '다이쇼 로망'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일본은 명치유신의 시작으로 대조선과 청나라의 강력한 중앙집권 형태의 국가를 본뜨고자
천황 중심 체계의 개편을 시작, 의회까지 설립되며 흩어져 있는 열도의 국가를 통합하여
제대로 된 통일국가가 출범하였습니다.

이후 일본국은 적극적인 교역을 통해 서역의 국가와 교류를 주고받았고,
의회의 나쁘지 않은 첫 출발과 천황의 치세 덕분에 그들은 다른 서역의 국가보다
빠른 근대화를 수립하며, 당대의 동아시아 국가보다 강력한 전력을 갖추는데 성공합니다.

쌓인 빚과 팔려나간 이권은 당시 열강들이 일본을 먹어치울 대상으로 밖에 안보았다는 근거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그레이트 게임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어필 끝에 그들이 맛보는
근대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청일전쟁, 러일전쟁, 조선침공의 과업을 성공시키고
청나라는 향후 붕괴되고, 러시아 제국역시 크게 흔들리고 있었으며, 대조선국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였으니 그들의 승리라고 자축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승리에 너무 취한 나머지, 대조선국이 그랬고, 대청이 그랬듯, 쇠락을 피할 수 없었고
군부의 폭주와 간간히 발생한 천황과 의회의 충돌로 인해 이 치세를 누릴 수 있었던건
적어도 그들이 원자폭탄 폭격을 맞기 이전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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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백귀야행

해동과 중원에서 요수를 칭하는 명칭이 제각각이듯, 그것은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의 백귀야행은 열도 전체에 퍼져나가 있는 온갖 해수와 난립되는 재앙신들을 가리키는 단어이며
그 숫자가 백에 달해 열도 전역을 휩쓸고 다니는 무리의 통칭이였습니다.

고대 시절에 일본은 이들을 신으로 모시거나, 신사의 무녀에 의해 해치워야 할 대상이였으며
나중 이것은 일본의 전국시대를 전후로 열도에 존재하는 인간과 요수들의 상하관계가 어느정도 정립되었습니다.

중원에는 대원의 해수대정벌이 있듯이, 일본에는 제육천마왕 오다 노부나가의 '해수굴복령' 이라던가,
전국시대를 통일한 정이대장군 도요토미 히데요시 휘하의 '오니키리 타이'(鬼斬り隊)
조선과 대명의 패전 이후 설립된 에도 막부의 군제개혁으로 탄생한 대요수부대 '오니모리 케이'(鬼守警)
등이 그 예시입니다.

또한, 일본국의 위대한 인내 이후 천황의 귀환에서 활약한 백귀야행은 천황의 백귀야행이라는 약칭을 가진
'신슈 시구레 타이'(神獣時雨隊)는 매 전투마다 활약하고, 그 악명이 하늘에 달하는 수준으로
지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당시 일본제국 군부의 폭주로 인해 군부의 미친개가 되어 향후 일제가 군부 고삐줄을 잡지못해
세계대전에 말려드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들 대부분이 전장에서 사망하거나, 전범으로 끌려가 극형을 당했습니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백귀야행들은 일본국의 명치유신 당시 일본에 충성하지 않는 요수를 쓸어버리는 토벌작전에서
살아남은 자들이거나, 그들을 모시던 신사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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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텍스트 참치◆hS.UgB4KQQ (4ZOtbjHPvY)

2024-07-05 (불탄다..!) 20:05:00

원역사와 이 세계선 역사 비하인드


임진왜란(선조는 런조라는 멸칭이 붙은 원역사랑 다르게 잠깐의 피난은 있었어도 조선을 떠나지 않음)

정유재란(도쿠가와는 원역사에서 세키가하라 전투를 포함, 도요토미가 구주 결전에서 사망했기에 거의 전투없이
일본을 먹은 것으로 역사를 수정함, 또한 정치력이 상승해서 은근하게 조선을 압박하는 이미지 정도로 수정됨)

세키가하라 전투(원본 역사에서 도쿠가와가 일본 먹어버린 대표적인 전투인데, 솔직히 이순신이랑 이여송이
본토 침입하는 와중에 또 전쟁할 역량이 남아있으면 그것대로 호러라서 도쿠가와가 정치력을 발휘해서
오직 '대치전'만으로 승리를 따낸 전투라고 변경했음)

제 2차 당포해전(일본 수군이 노량해전에서 완전히 박살남으로서 임진왜란 전후로 해전자체가 일어날 여지가 없어짐)

흥양 해전(조선 수군이 멀쩡할 뿐더러 이미 대항해시대때 서역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면 헤프닝 정도로 끝날거임)

나선정벌(조선군은 농담않고 청군에 비해 숫자가 매애애애애우 적었음, 활약도 걍 총 잘쏜게 전부.. 대포는
가져오지도 못했음..)

일본(아예 조선이 본토를 두드리고 간 턱에 일본이 더이상 휘두를 수 있는 군사적 역량이 박살,
세키가하라 전투를 포함, 오사카 전투등이 일어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해서 여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쇼군 자리를 잠깐 내려놓고 물러나는 대신, 원역사에 비해 높아진 정치력을 기반으로 쇼군자리를 유지한 다음
에도 막부를 일제 성립 이전까지 유지하는데 성공, 이후 에조 공화국과 류쿠 왕국와 서로 교류하면서
일본 대통합을 성공, 조선에게 완전한 복수를 위해 서역까지 가면서 용병노릇을 하며 힘을 길렀다고 표현함)

에도 막부(얘내들도 도쿠가와가 살아남고, 일본의 군사적 역량이 박살나면서 바뀌었는데, 기존 역사에선
사무라이 계급의 쇠퇴와 함께 흔들렸지만, 나중가선 복수를 위해 뭐든 흡수할거라 천명한 도쿠가와의 정책을
계속 이으면서, 얘내들이 후일 천황체제를 설립하는 명치유신에 도움을 줌)

쿠로후네 사건(원역사 일본이 고립 깨고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한 사건인데, 여기 일본은 진작에 서역이랑 교류하고
일부러 이권 좀 팔아넘기면서 까지 서양에게 아부했기에 사건 자체가 없거나, 헤프닝 정도로 끝날듯)

일제(그 이전까지 군부가 좀 많이 건강했다가 조선전쟁 치루고 1차 세계대전으로 힘 기르다가 원역사처럼 뇌절 on
또한 원역사랑 다르게 선포시기는 조선전쟁(경솔국치 시기 1910년 쯔음?)을 치루고 난 뒤임
원역사는 메이지유신 시작하자마자 바로 일제 선포했음)

인조(소올직히 얘가 긍정적인 평가가 그닥 없는데, 난세 속성 좀 강하게 줘서 걍 불쌍하게 만들어버렸음)

정순왕후 → 정순황후

환향녀 문제(과격하게 해결했다 고 표현했는데, 원역사에서는 최명길이 사대부보고 걔내들은 억지로 끌려간거다
정절을 못지켰다는 이유로 죽이지 말라고 경고했고, 인조도 이를 수용했는데 당시 백성들은 적당히 수긍했지만
사대부는 그딴거 없다 로 걍 이혼시켜버림. 여기선 아예 인조가 최명길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음)

효종(딱히 화기도감비슷한걸 만든적은 없음.. 북벌론에 호응한 것도 어디까지나 대신들이랑 여론 호응에 응해준거라서..)

주화파와 척사파(원역사에선 주화파 2, 척사파 8이였고 삼전도의 굴육 이후에도 계속 유지가 되었는데
여기서는 졸속 패전으로 4:6까지 조정되었고, 대표격 인물인 최명길과 김상헌은 원역사와 비슷하게 유지됬음)

소현세자와 아내(얘내들은 인조가 개판으로 내쫒았는데, 그래서 신하들 입에 독살설까지 입에 오르고 내릴 정도로
조정이 개판되었음. 여기에선 그나마 대청의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오는 눈치없는 행동으로 숙청당한 것처럼
묘사해놨음)

정유독대(이건 원역사에서 이이송만 불러들인건데, 추정상 경종 제거하고 다른애들 세자로 올릴려고 한
음모로 추측된다고 함; 여기는 숙종이 말년에 요정 혈통 때문에 고생할 애들을 떠올리면서 이이송과 송시열에게
불법을 무릎쓰고 꼭 그녀들을 보호해달라는 사건으로 변경됨. 이이송은 원역사랑 비슷하게 딴 맘 품고
쿠데타 시도하려다가 결국 정유독대의 문제를 한몸에 받아 죽었고, 송시열은 공적 전부 반납하고 자기가 소속되있던
당파를 제손으로 해체한 뒤에 공식적인 직함을 가지지 않는 처벌로 끝냈음)

영조(다 변경됬네.. 시호도 '성조'로 변경됬고..)

사도세자(장조.. 로 변경됬고, 이 녀석은 행적이 싹다 창작이 됬어; 송시열은 어떻게 처리할지도 모르겠고 허헣)

임오화변(헤프닝 정도로 기록됨.. 이름도 임오변괴로 변경함.. 정확히는 인외와 인간의 관점 차이 정도로..)

소성국서, 정인국서(걍 원역사 왕후 뒤에 붙는 이름 하나씩 따와서 지은거임.. 후계자인데 그 후임 되야할 왕후를
어떻게 임신시킬거야.. 당연히 여왕이 임신해야 겠지 해서 왕은 아니겠거니 해서 대충 명칭 찾아보는데 그게 국서였음.
여제 상대로도 국서가 적용되는지 모르겠는데 어쨋든 그렇게 설정했음.. 역사를 잘 알면 서인이랑 남인이나
소론이나 노론 중에 인물 아무나 한명 잡아다가 붙여두는데 힘들어서 걍 창작했어..)

고종(얘도 원역사 평가가 그닥; 여기서는 독살같은 거 없이 광무개혁 끝마치고 순종에게 물려주는 걸로 끝났음
아마 이후는 자연사 했을듯, 아버지랑 사이 나빠서 죽기 전에는 찾아왔을진 몰라도 나머지 행보는 원역사와 동일)

광무개혁(이건 일본이 더 전에 조선에 간섭하면서 1897년에 실행한건데 여기선 일제에게 패배하고 난뒤에 했음)

경술국치(원역사에서 1905년 러일전쟁을 끝마친 뒤, 몇달 후 바로 조선침공 들어가서 1910년에 경술국치가
발생했는데, 일본 애들 준비해놓은거 생각하면 1900~4년 쯔음에 러일전쟁 터트리고, 1905년에 조선침공
터트려서 경술조약 끝마친 시점이 1905년이나 1~2년후 일듯?)

명성황후, 흥선대원군, 을미사변(일본이 아무리 영향력 투사해도 직접 황실 침투해서 죽인다는건 거의 불가능하고
흥선대원군이 이 세계선에서 청에게 끌려나가는 모습이 잘 상상되진 않긴한데, 명성황후가 황후 지위를 이용해서
청군에게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이긴 할듯. 원역사처럼 청이 조선에게 영향력을 투사하진 못하겠지만..
흥선대원군은 사변 이후 토사구팽 당하지만, 경술국치의 상황이 많이 개변된 만큼 을미사변 자체가 축소되거나
사라진 다음, 일본 탓에 퇴장하고 명성황후는 직위는 유지하지만 일본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폐서인되서 암살로 죽진 않을거고..
휘두를 권력도 없고 인맥도 다 박살났으니 고종의 사망과 비슷한 시기에 사망했을듯?)

대한제국 중추원 → 대조선국 중추원(원역사에서 대한조선 의회의 모태가 될 수 있었던 기관, 원역사에서
친일도 보이고 고종이 황권 강화할려고 해서 군대 동원해서 쓸어버림;
여기에선 중추원 설립이 상당히 늦어졌고, 고종 때 건물만 지어주다가 순종때 정식으로 권한 이양받아서
대한민국 의회의 모태가 됨. 모태라고 부른 이유는 결국 대조선국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바꾸는 시점에서
시민층의 분열이 발생했고, 북한은 공산주의, 남한은 자본주의, 다른 영토민들도 싹다 갈라져서
제갈길을 가버린 탓에 대조선국 중추원 자체는 분열되고 각자 국가기관을 따로 설립했다고 뇌피셜 돌려봤음.)

순종(얘도 적다보니까 황제 칭호 그대로 덕이 많은 인물이 되버렸네. 원역사에선 걍 아무의지없던 일반인1이였는데)

착호갑사(원역사에선 그냥 호랑이 잡는 부대인데, 이걸 그냥 조선에게 우호적인 산군(호랑이)과 함께
괴력난신 때려잡은 부대라고 대충 칭했음)

대동법(경신대기근 이전 완전도입이 아닌 오히려 경신대기근 도중에 완전도입)

괴력난신(이거 그냥 공자 논어?에 나오는 내용인데 글귀 자체는 맹목적인 믿음이나 그런거 가지지 말라고 뜻에 가까움
걍 요즘 대중이 쓰는 괴력, 난신 의 의미로서 조선은 이매망량이나 백귀야행이라고 부르지 않고 모든 요수와 괴이를
이렇게 부르는 걸로 설정했음)

경신대기근(이거, 은근 잘 안배워서 그렇지 막 메뚜기떼 들이닥치고, 우박도 내리고, 온돌 보급에도 영향을 준
사건이고 정확히 언제 끝을 맺었는지 잘 몰라서 약간 지어냈음)

을병대기근(숙종 때 일어난 사건인데, 경신대기근이랑 다르게 이건 조선이 해결할만한 상황도 안됬거니와
이걸 해결 못하면 후일 영조의 천자전쟁에도 영향 오는데 이건 아예 문단을 따로 분리하는게 나을듯함
원역사는 해결못해서 북벌같은거 절대로 못하는 상황이였음.)

궁궐에서 내쫒다 = 암살하거나 더는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입힘

중원은 이매망량, 조선은 괴력난신, 일본은 백귀야행.. 비슷한가?

112 텍스트 참치◆hS.UgB4KQQ (4ZOtbjHPvY)

2024-07-05 (불탄다..!) 20:05:31

(털썩)

113 코토리◆7A333VkTn2 (H7u2A9NaqU)

2024-07-05 (불탄다..!)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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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이야(전부 읽음) 확실히 검수하려면 엄청나게 걸릴만하네요.천천히 검수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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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코토리◆7A333VkTn2 (H7u2A9NaqU)

2024-07-05 (불탄다..!) 20:09:52

 >>113 전부 보기 페이지로 하나 열어둬야겠다.최근 보기 페이지는 잡담용으로 써야겠네요

115 텍스트 참치 (4ZOtbjHPvY)

2024-07-05 (불탄다..!) 20:12:31

이제.. 게임하러 갈끄야..

116 514◆0BwFht3K7I (osx5lRUCNk)

2024-07-05 (불탄다..!) 20:39:23

                      z  _
                         /| \ ハヽ     . .-=ニ_
                      〃 {   ヽ ヽ\,        /
               _. .-=ニ=- N|  '.    '. マヘ- z     /
            ヽ,     _」x|  ≧zt ┴ .   ゝ    〈
              \   > | X       ヽ,  {    ノ
                 `ヽ  7 〉′ !    !ヽ  X  / `ニ=- ._
                /`く 7/   」_   斗=--  `く       /
          r - 、 x≦     ノ | , ヘハ  /iム_ _}_ .| {くヽ:     {, ュ
        `ヽ , `  _ _  八 | ム=ミ   '⌒刈}イ \ _ . -  rく_. ' 7__
      z-= ヘ- rヽ_   ヾ \_ { i|人´  r ヽ  )イレ′ //  f {//ノ∠z<
.    z -=ヘヽ Y }_`    |i   `ヽ/  ヽ  ヽ ノ ,ィ } L厂 {{、. 」 y」/ヽ.  ヽ
         . '::ヽ. .-=ニヘ||: :ヽ } 〉i  个ニ=-壬ヘ,| i} 〈: ヽ_....┘:::::::::::::≧x
       /::::::::::::::::::::::::::::::||: : ノ  / } 八 У /イ! 人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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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二ニ=- ミY  -=ニ二7 } 〃::::::::::::::::::::::〃
      〃:::::::::::::::::::::::::::〃 / 八 ̄ `ヽ /´  ----= 」 L{:::∨:/:::::::::::::《ヽ
       《::::::::::::::::::::::::::::〃/    > _,//  , -=ニ二/  `ヽ:V::::::::::::::::::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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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ニニγ ヽ_ _::,::::::ヽ    ヽ::::::::::::彡′
. /   .             /::::::_兀:::::::::`:¨::::ニ=‐-ノ:::::::∧ .     `¨¨
. :    \          . ':::, く   ヽ::::::::::::::::::::::::儿::::/::∧ ヽ

정독완료
오졌다(끄덕)

117 텍스트 참치 (4ZOtbjHPvY)

2024-07-05 (불탄다..!) 20:43:43

원래 계획 : 대충 해동역사 비슷하게 5000 자 정도 끄적이겠지?

지금 : 60000자 로 불어나는건 웬말이냐 진짜

118 코토리◆7A333VkTn2 (H7u2A9NaqU)

2024-07-05 (불탄다..!) 20:48:23

 >>116 대 공 감(영혼의 하이파이브)

119 코토리◆7A333VkTn2 (H7u2A9NaqU)

2024-07-05 (불탄다..!) 20: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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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7 6만자로 불어나니까 엄청나네요.근대사 파트를 제가 알맞게 각색하면 오케이겠구요(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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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코토리◆7A333VkTn2 (H7u2A9NaqU)

2024-07-05 (불탄다..!) 21:30:19

 >>115 쉬고 오세요! 저도 쉬면서 느긋하게 해야겠습니다ㅋㅋ

121 텍스트 참치 (Zrbzc0dDdY)

2024-07-06 (파란날) 01:38:04

https://youtu.be/JDzYCy8dQTE?si=WR4bvRTf7oTTqF3X

결국 기절했다. 게임이든 뭐든 하려다가 걍 자버렸으야..
영상은 아이언 하베스트 컷신 중 일부인데 이 세계에서 1차 세계대전은 저럴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서 바로 녹화찍고 가져왔음.
항상 수고하십셔 여러분

122 텍스트 참치 (Zrbzc0dDdY)

2024-07-06 (파란날) 03:18:48

>>116 내가 이거 올린지 30분 만에 이걸 다 읽었다니.. 엄청난 속도다..

123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05:50:43

 닥터 스톤 상영회 너무 좋아!!!

 >>121 Good Job!(👍)

 >>122 속독왕이네요ㄹㅇ

124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06:59:51

 닥터 스톤을 7시까지 그냥 다 봤네.

 으와─ 재밌었다! 이제 자야지ㅋㅋ

 남은 것들은… 차근차근 생각하자…

125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19:28:37

 컴퓨터 안착! 후아아아──

 진짜로 닥터 스톤 상영회 챙겨보느라고

 엄청나게 접속할 여유가 없네

126 514◆0BwFht3K7I (XxMLbO6PE.)

2024-07-06 (파란날) 19:37:12

             ,. -―‐- .,_  ,ィ ,、
            ,;;'゙;;;;;;_;;;;;;;_;;;;;;;`V//
            /-‐_',_'´`ヽ/`ヽ;;";~;ヽ.
         ,;;'"´;;:r,'γ⌒`'⌒ヽーヽ;;;;;;ノ_
   ((  ,ヘ,. 弋ゞ.( ノ.コ.イシλレ'.レソメ.人/ | ))
       '、 ソ;;ク〈/,レi ○   ○ λ/,;;;\ゝ
       /;;;/ ノ'レル""r-‐¬""イ/  ヾ;;;ノ
       \   ソゞゝヽ、__,ノ_ノ/   /
         `ヽ.  /ゞ_/〈〉ヽ__ス  /
.           弋!i|   〈〉`Θ´i_ノ´
.             ノ___〈〉__λ´
.            く__ハ、___ゞ
.            /: :`: : : : : : :.:ヽ,
.          /: :/: : : : : : ノ:ヽ: :.:\

느아앍

127 텍스트 참치 (Zrbzc0dDdY)

2024-07-06 (파란날) 19:59:37

닥터 스톤이면 그건가.. 전인류 석화되고 지능만렙이랑 육체만렙이 고군분투하는 만화..

128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21:05:18

 >>127 (긍정) 그거 맞아요!(끄덕끄덕)

 진짜로 같이보기 전부 챙겨보느라 시간이 없음;;

 이러다가 2주 지나서 하는건 아니겠지

129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21:07:51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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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 |∨V:|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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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 닥터 스톤 덕분에 수면패턴이 엄청나게 꼬여가지고 진짜로 뻐근해죽겠다니까ㄹ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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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텍스트 참치 (Zrbzc0dDdY)

2024-07-06 (파란날) 21:34:42

전에 소개글도 읽어봤고 리뷰영상도 봤는데 생각한 것과는 달라서 리뷰만 보고 안봤음..

131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21:37:28

 >>130 같이 보기로 보면 엄청나게 재밌던데 취향에는 안 맞았나보네요(과연)

132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21: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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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치지직에서 엄청나게 같이보기 하고있는 사람이 많으니까 한번 봐보세요.꽤 재미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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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21:4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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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서 보면 뭔가 재미없는 애니메이션인데 같이 보기하면 진짜 시간을 죽이는 타임머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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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텍스트 참치 (Zrbzc0dDdY)

2024-07-06 (파란날) 21:47:23

전인류가 석화됬는데 시간대가 몇천년 훅뛰더니 석기시대에서 서바이벌.. 감성이 아포칼립스에서 갑자기 살아남기로 바뀌는데 석화랑 시간 얘기는 불필요한거 아닌가 싶어서 하차..

135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21:52:17

 >>134 ㅋㅋㅋㅋㅋ 자세하게 생각하면 그렇긴 해요.

 근데 저어는 그게 신경쓰이진 않더라고요.역시 취향이려나?

136 514◆0BwFht3K7I (XxMLbO6PE.)

2024-07-06 (파란날) 21:56:40

             ,. -―‐- .,_  ,ィ ,、
            ,;;'゙;;;;;;_;;;;;;;_;;;;;;;`V//
            /-‐_',_'´`ヽ/`ヽ;;";~;ヽ.
         ,;;'"´;;:r,'γ⌒`'⌒ヽーヽ;;;;;;ノ_
   ((  ,ヘ,. 弋ゞ.( ノ.コ.イシλレ'.レソメ.人/ | ))
       '、 ソ;;ク〈/,レi ○   ○ λ/,;;;\ゝ
       /;;;/ ノ'レル""r-‐¬""イ/  ヾ;;;ノ
       \   ソゞゝヽ、__,ノ_ノ/   /
         `ヽ.  /ゞ_/〈〉ヽ__ス  /
.           弋!i|   〈〉`Θ´i_ノ´
.             ノ___〈〉__λ´
.            く__ハ、___ゞ
.            /: :`: : : : : : :.:ヽ,
.          /: :/: : : : : : ノ:ヽ: :.:\

같이보면 블아애니도 재밌어진다
물론 드립만 재밌음

137 텍스트 참치 (Zrbzc0dDdY)

2024-07-06 (파란날) 22:00:52

>>136 오..(외면)

138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22:01:03

                    ___
       x―:.、  /: : : : : :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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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V:| : : : : |
.     |: /| : : |: : |八|: :\ : : 斗ャ笊从: : : :|
.     l/ 八: : :|: : :斗ャ笊ハ\:,| Vしリ |: /: : |
         \|八: | VJり       ,, |/: : : |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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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rっ イ: : 八!\| /:i:i〈i:i:〈
            八|\::∧从≧  ≦「\/__ /:i:i:i:i:i/´
.              「 \/::Λイ⌒y゙  |::|^7ニニ|:i:i: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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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_/ ⌒'J/Λ:::::::し⌒ r 、∨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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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6 ㅋㅋㅋㅋㅋ 맞긴함(긍정) 별개로 닥터 스톤은 블아애니(…)만큼 망작까지는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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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22:01:19

 >>137 아무리 못해도 블아애니는 아니야 확실하게.

140 텍스트 참치 (Zrbzc0dDdY)

2024-07-06 (파란날) 22:16:32

전에 취향얘기했던거 기억나네요. 은근 갈리는 감이 있어 어장주랑은..

141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22:18:07

 >>140 아아── 뭐어 확실히 취향 이야기를 했었죠.

 이러쿵저러쿵해도 현실성을 아예 갖다버린 것은 아니니까

 아무래도 좋아하는게 있는듯? 과정은 비약이지만

142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22: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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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 뭐라고 말했었더라? 현실성과 비현실성이 공존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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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22:24:57

 >>142 >1597048181>653-723 이거였다! 이거에 잘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144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22: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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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 잘 생각해보니까 진짜로 닥터스톤이 이것(↓)과 엄청 잘 부합하니까 >>123-142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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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감조차 안되는 비현실성이 적당히 있고 여기에 손에 닿을랑 말랑한 현실성이 적당히 있다?

145 텍스트 참치 (Zrbzc0dDdY)

2024-07-06 (파란날) 22:32:40

이쪽은 닥터스톤으로 펼쳐야 했던 이야기가 기대했던거랑 다르게 나왔다는 느낌

아 씁, 취향 얘기랑 별개로 유린 얘기 나오니까 생각난건데, 걔는 어디서 최후를 맞이할지 떠올랐음..

146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22:36:27

 >>145 아아─ 그런 거라면 하차할만하네요(하기사)

 유린이 어디서 최후를 맞이할지가 떠올랐다고 하면?(기웃)

147 텍스트 참치 (Zrbzc0dDdY)

2024-07-06 (파란날) 22:40:05

처음부터 사람들이 석화되었다. 우린 그걸 해결해야 한다고 운 떼고 시작하는 이야기가 석기시대부터 다투기 시작하니까 이거 언제가야 사람 구하겠냐 하고 하차했음..

아직 어장주가 해동역사 검수를 다 끝내지 않아서 확답은 어렵지만, 유린이 난민이랑 같이 북원→대청 교체 시기에서 몽골지역 근처에서 조용히 살고있다고 가정했을 때, 천자전쟁에서 끝맺음 지을 수도 있음.

148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22: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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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 사실 석기시대부터 다루기 시작한건 맞는데 석기시대부터 시작이라고 해야할까ㅋㅋ

 (인터레스팅) 확답하긴 힘들지만 북원과 대청 교체 시기에서 천자전쟁에서 끝맺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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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텍스트 참치 (Zrbzc0dDdY)

2024-07-06 (파란날) 22:52:26

뭐, 그러합니다. 원래 작성하려 했던 이야기도 해동역사 작성하는데 기가 다 빨려서 쉬고있는지라..

150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22:58:04

 >>149 아니 진짜로 휴식해야한다니까요? >>101-111은 진짜로 휴식해도 인정입니다.

151 텍스트 참치 (Zrbzc0dDdY)

2024-07-06 (파란날) 23:01:54

(뇨롱 짤방)뭐 그러하다..

152 514◆0BwFht3K7I (XxMLbO6PE.)

2024-07-06 (파란날) 23:02:57

             ,. -―‐- .,_  ,ィ ,、
            ,;;'゙;;;;;;_;;;;;;;_;;;;;;;`V//
            /-‐_',_'´`ヽ/`ヽ;;";~;ヽ.
         ,;;'"´;;:r,'γ⌒`'⌒ヽーヽ;;;;;;ノ_
   ((  ,ヘ,. 弋ゞ.( ノ.コ.イシλレ'.レソメ.人/ | ))
       '、 ソ;;ク〈/,レi ○   ○ λ/,;;;\ゝ
       /;;;/ ノ'レル""r-‐¬""イ/  ヾ;;;ノ
       \   ソゞゝヽ、__,ノ_ノ/   /
         `ヽ.  /ゞ_/〈〉ヽ__ス  /
.           弋!i|   〈〉`Θ´i_ノ´
.             ノ___〈〉__λ´
.            く__ハ、___ゞ
.            /: :`: : : : : : :.:ヽ,
.          /: :/: : : : : : ノ:ヽ: :.:\

저걸 보고 차라쟝 검수건을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153 코토리◆7A333VkTn2 (4z1B6gRKGc)

2024-07-06 (파란날) 23:04:34

 >>152 아직 만물객당도 검수를 완료하지……

 뭐어 이제 대문 AA만 넣으면 검수 완료입니다만

154 텍스트 참치 (Zrbzc0dDdY)

2024-07-06 (파란날) 23:07:40

(눈짚)그럼 슬슬 물러날게용.. 잡담판은 늘 들리고 있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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