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서울총독부가 배경인 작품을 쓴다고 할 때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도 안나올수 있을까? 그럴수 있을 것이다. 차별이나 제국주의에 대한 이야기도 안나올수 있을까? 그럴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전혀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를 만들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글을 쓰면 독자들은 다음과 같이 질문할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작품은 무너진다. 배경에서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충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제시대라면, 한국인들은 좋건싫건 제국주의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장소가 총독부라면 말할것도없다. 일제 치하의 일은 좋건 싫건 한국의 흉터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욕구에 맞춰서, 총독부에 조선인이 폭탄을 터트리는 이야기를 쓴다고 하자. 여기서 어떤 캐릭터가 등장할수 있을까? 등장하지 말아야 할 캐릭터는 없다. 라인하르트가 나오건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는 일본인이 나오건 상관없다. 중요한건 그래서 독자가 납득하느냐니까.
덴노 헤이카 반자이 외치는 라인하르트가 총독부에 폭탄을 던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지랄말라며 뒤로 가기를 누를 것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캐릭터를 설득시켜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서 캐릭터를 설득시킬것인가? 하나는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고, 두번째는 독자를 납득시키는 것이다.
이 둘은 같은 이야기같지만 결이 다르다. 공감은 서사를 기반으로 한다. 라인하르트가 사실 일뽕 한국전생자고, 친일파가 되어서 행복하게 살려고 했지만 일본제국에 차별받고서 마음이 꺽인 다음 저렇게 외친다? 전생이란 이상한 요소가 개입하긴 해도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을거다. 잘하면 좋지만 이 정도만 해도 문제는 없다.
납득도 공감시켜야 하는 것은 같지 않냐고 할텐데, 여기서 말하는 납득은 서사외의 것으로 독자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참치어장의 경우에는 앵커와 다이스가 있다. 5연 크리 떠서 앵커로 받은 라인하르트가 총독부로 반자이 돌격함. 공감되지 않아도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서사의 역활을 다이스와 앵커가 대신했기 때문이다.
독자는 욕망하는 것을 보길 바란다. 일반적인의 한국인은 일제시대에서 제국주의 찬양을 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일반적인 독자들은 캐릭터가 고난을 겪는 것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요즘 웹소설의 메타는 사이다다. 고난은 최소화하거나 없애고 그로 인해 얻는 것들은 최대화되길 바란다. 즉, 제국주의에 대한 고찰보다는 나쁜 일본제국을 시원하게 부수는 것을 바란다.
그러니 여기에 맡지 않는 요소들, 주인공의 고난이나 시련, 제국주의에대한 고찰, 폭력적 방법론에 대한 생각들은 쓰기 어려워진다.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독자가 바라는 것이 생기면서 나오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작가에게서 발생하는 한계도 있다.
밀리터리 매니아라면 일제시대의 무장과 라인하르트의 총과 그가 사용한 폭탄과 같은 무기류에 대한 걸 상세하게 서술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고증을 지키는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환빠인 어장주라면 다이스표에 대환제국과 관련된 내용을 쓸것이다. 작가도 사람인 이상, 좋아하는 걸 쓰고 싶어하니까.
이렇듯 작가가 누구냐에 따라서 전개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궁합도 달라진다. 그런데 왜 독자와 작가로 인해서 작품의 한계가 생긴다고 쓰지 않고 캐릭터와 배경에 따라서 한계가 정해진다고 했을까? 이 둘은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가는 독자를 고를수 없다. 독자 역시 마찬가지다.
바뀌지 않는 것은 탓해봐야 소용없다. 그러니 바꿀수 있는 것에 대해서 논해야 한다. 캐릭터와 배경은 바꿀수 있는 요소다. 작가는 자신에게 잘맞는 요소를 골라야 한다. 밀리터리 매니아가 라노벨풍 학원물 로맨스를 쓴다면, 자신의 특기를 살리기 쉬울까? 군대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전쟁물을 쓰는 것은 쉬울까? 어려울 것이다.
작법서에서 잘 아는 것이나 경험한 것에 대해서 쓰라고 말하는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본인이 뭔지도 모르는 걸로 이야기를 해봐야 만족할만한게 나오진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이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무슨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지 명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 따른다면 한계는 생기지 않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오를수있는 한계가 더 높아졌을 뿐이지, 천장은 존재한다. 이런 것들은 실력이 없을 때보다 있을 떄 더 마주치기 쉽다. 자신이 누군지 알고, 소재와 캐릭터가 뭔지 안다면 할 이야기는 정해져버리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다음 예시를 보자.
[일반소설] 뒤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다. 나는 놀라서 뒤돌아 보았다
[휴대폰 소설] 콰쾅!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김원호] 「뒤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다. 콰광! 콰광! 콰광! 콰광! 콰광! 콰광! 콰광! 콰광! 콰광! 콰광! 콰광! 콰광! 콰광! 나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라이트 노벨] 배후에서 강렬한 폭발음이 났으므로 나는 또 귀찮게 되었군, 이라든가, 도대체 녀석들은 밥 먹을 틈조차 주지 않는단 말이야, 따위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아보기로 했던 것이다.
[김성모] 그래 너의 폭발음의 패턴은 알고 있다 그리고 뒤에서 폭발이 일어나자, 후폭풍을 피하기 위해 후방낙법을 칩니다. 지금 들린 폭발음 때문에 나는 너무 놀랐다. 아마 너도 매우 놀랐을 것이다. 폭! 발! 음! 그래, 방금 저건 폭발음이야. 하지만 저걸 폭발음이라 부르는 건 참을 수 없어! '포...폭파시키겠습니다!' '필요 없어!' '지옥에서 아버지랑 폭발음이나 들어라!' 참고로 나의 서전트 점프는 2m다. 폭발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삼절 폭팔음!' 우와아아앙!!
[톨킨] 처음에 그는 앞에 놓여 있는 거대한 어둠을 그저 응시하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다음 순간 태풍이 몰아치는 듯한 소리와 젊은 태양처럼 솟구치는 빛이 은백색인 그의 갑옷과 어두운 바위산에서 초신성처럼 나타났다. 그리하여 그는 터키석 같은 눈동자로 꼼꼼히 조사라도 하듯 수풀을 바라보았다. 폭발의 역사를 알려주는 세세한 면면이 그의 주의깊은 눈동자에 새겨졌다. 수십 년 동안이나 사람의 손길이 없었던 바위산은 그 위를 덮은 강력한 폭발이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새겨놓았고, 그 주변에 흩어져있는 작은 돌의 수 많은 파편, 아마도 그것은 방금 전의 폭발로 인해 생긴 것이리라. 폭원지로 부터 솟아올라서 시야를 가리고 몸에 허약한 느낌을 주는 매연이 지속된다. 그는 마침내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작가가 많은 작품을 쓰면서 실력을 키워나갈수록 독자는 앎을 기반으로 구체적인 욕망을 가지게 되고 작가가 이를 맞춰주길 바란다. 작가 역시 자신이 무엇을 할수 있는 지 잘 알게 되기에, 무엇을 할수 없는지 알게 된다. 그렇게되면 정해진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작품을 보지도 않고 배경과 캐릭터, 작가만으로 스토리를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