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해수면 온도가 관측이래 가장 높은 상황입니다. 온난화로 높아진 해수 온도가 우리나라 여름철 기온을 좌우하는 북태평양 고기압을 발달시키는 원인 중 하나인데요, 이 밖에도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빠르게 발달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폭염과 열대야 발생을 점점 더 앞당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Such a feeling's coming over me. There is wonder in most every thing I see. Not a cloud in the sky, got the sun in my eyes. And I won't be surprised if it's a dream. Everything I want the world to be is now coming true especially for me.
Something in the wind has learned my name. And it's telling me that things are not the same. In the leaves, on the trees and the touch of the breeze. There's a pleasing sense of happiness for me.
감자가 토마토나 사과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각각 그 사람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세월이 흐르든 환경이 바뀌든 관계없이 절대 불변한다는 것이 ‘유아’라는 개념입니다. 옛날 같으면 ‘양반과 상놈의 종자가 따로 있다. 그래서 상놈은 시대와 조건이 바뀌어도 절대로 양반이 될 수가 없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감자는 토마토가 될 수 없다는 것처럼 생각한 거예요.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종자도 알고 보면 유전자일 뿐입니다. 유전자는 물질이 고도의 설계도에 따라 조립된 것에 불과합니다. 유전자를 바꾸면 종자도 바뀝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회 시스템 안에서 양반과 상놈이란 게 있지 시스템을 바꾸면 양반도 없어지고 상놈도 없어집니다. 이것이 무아의 뜻입니다. 질문자도 나라고 할 만한 절대 불변하는 요소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인연에 따라서 이렇게도 바뀌고 저렇게도 바뀔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무아의 의미입니다.
러나 질문자는 이러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현재 이러이러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성질대로 행동하면 본인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성질을 거스르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겁니다.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그 성질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성질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가능한 한 자신의 성질대로 살도록 놔두는 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자기한테도 큰 손실이 생긴다면 아무리 성질이 나더라도 좀 고쳐야 됩니다. 고칠 수 있는 이유는 절대 불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쉽게 고쳐지는 건 아니에요. 성질이란 말이 붙었다는 것은 쉽게 안 고쳐진다는 뜻입니다. 쉽게 바뀌면 성질이라는 말을 쓰지 않죠. 어떤 성질이 있다는 말은 벌써 그것을 유지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유지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불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무상과 무아의 개념입니다. 유지시키는 성질을 갖고 있으니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성질대로 살도록 존중하는 게 좋습니다. 각각의 성질, 성격, 특성에 맞게끔 활동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에게나 타인에게 손해가 될 때는 고쳐야 합니다. 불변한다고 하면 못 고치죠. 죽여 버리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절대 불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상충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질이 급한 것도 불변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성질이 급한데 천천히 하려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안 주면 ‘저 사람은 성질이 급한 사람이야. 빨리 하도록 두자’ 하고 가능하면 성질에 맞게끔 배치해 주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자기 성질을 다 뜯어고치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런저런 성질로 태어난 것에 대해 좋든 나쁘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낫습니다. ‘왜 나는 이런 성질을 가졌나, 전생에 죄를 지었나, 하느님의 벌을 받았나’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자기 성질에 맞게끔 살되 성질이 나에게 큰 손실을 가져오거나 타인에게 손해를 준다면 힘이 들어도 바꾸라는 말입니다.
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편안하게 살고 싶다면 아무도 질문자를 미워하거나 오해하지 않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야겠죠. 그런데 그런 세상은 없어요. 예를 들어 우리 몸이 건강하다는 것은 주변에 아무런 세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러 세균이 있지만 내가 거기에 대한 면역력을 갖추어야 건강한 겁니다. 면역력은 내가 갖추는 것이고, 무균 상태는 세상의 주어진 조건이에요. 내가 아무리 면역력이 있어도 주위가 너무 불결하다면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을 청결히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변을 100퍼센트 깨끗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세균이 없다고 해서 꼭 좋게 볼 수 없습니다. 세균이 적당히 있어서 거기에 한두 번 감염되면 면역력이 생깁니다. 면역력을 가져야 진정으로 건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문이나 비난, 욕설, 모함이 지나쳐서 범법 행위에 해당한다면 신고해서 개선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 적당한 수준이라면 ‘아! 이런 건 세상을 살면서 늘 있는 일이야. 기분이 좀 나쁘지만 금방 지나갈 거야’ 하고 가볍게 넘어가야 합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건강한 상태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면 또 어떤 사람이 ‘진짜 그랬나?’ 이렇게 따질 수도 있어요. 그럴 때 기분 나빠하지 말고 ‘네, 그런 일이 있었어요’ 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그 사람에게 해명을 해서 나에게 도움이 될 게 없습니다. 한번 물으면 설명하지만, 따지고 물으면 ‘알아서 생각해’ 이렇게 얘기하고 넘어가야 해요.
그 사람들을 내가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일단 놔두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첫째, 나부터 면역력을 좀 키워서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어지간한 욕설, 어지간한 비난, 어지간한 오해, 이 정도는 뭐 세상에 늘 있는 일이야’ 이렇게 생각하면서 면역력을 키워야 합니다.
검사해 보고 이상이 있으면 조심하면 되고, 이상이 없으면 그냥 넘어가면 됩니다. 왜 그걸 안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병원에 가서 한번 상담하는 데에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잖아요. ‘요즘 이런저런 소문을 들으니까 심리가 좀 불안한데 어떻습니까?’ 하고 물어보니 의사 선생님이 약을 3일 처방해 주면서 좀 쉬면 괜찮다고 하면, 내가 조금 과민했다는 뜻입니다. 약을 한번 먹어보고 다시 오라고 하면, 이는 내가 예민해서 생긴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의사가 괜찮다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누구나 다 이런 민감성이 있는데 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