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어로 '은둔자', '숨겨진 곳'을 뜻한다. 핀란드에서 추진하고 있는 방사능 폐기물의 심지층 영구 처분장. 앵시어스 웨이브 스레에서는 헨따이한 생각과 후히히한 망상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봉인하는 곳으로 통한다. 최근에는 인원이 늘어서 그냥 제2의 츠나지, 어둠의 츠나지가 되어버렸다는 소문이...
...준비운동도 하지 않은 채 20미터에서 다이빙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쉽게 예상할 수 있겠지. 어딘가 부러지거나 삐걱거리고 호된 꼴을 당할 거다.
내 상황을 구태여 비교하자면 그것과 비슷하다. 나는 검고 고졸이고 교원임시면허를 따뒀을 뿐인데, 악명 높은 그 D반의 담임이 우마=날라차기를 당해 양 팔이 분쇄골절된 이후로 그곳의 땜빵을 맡게 된 것이다.
아, D반이 왜 악명이 높냐고? 그야 여기는 여러모로 굉장한 녀석들이 모여 있으니까. 수업 진도는 제일 느리고, 수업 때 녀석들은 죄다 손거울을 꺼내서 갈기를 매만지고 있으며, 맨 뒷자리를 쟁탈하려는 스케반무스메들의 생사결이 벌어지는데다 "쌤~ 첫사랑 이야기 해주세요~" 하면서 분위기를 흐리는 갸루무스메들까지.
...내가 그 곳의 담임이 되었다고. 어쩌다보니.
옥상에서 연초를 뻑뻑 태우며 앞길을 비관하다보면, 철망 너머로 갈색 귀와 노란색 멘코가 쫑긋거리며 올라온다. 뭐시여 이거. 조금 기다려보면 흰색 이마점까지 있는 조그만한 애가 쏙, 하고 철망을 읏차 읏차 잡으며 올라오는... ... ......D반이구만. 거기 꼭대기층이었지 참! 근데 이렇게 배관 잡고 기어오르다니 너네 무슨 좀도둑이냐?! 그보다 얘 귤박스를 두르고 있던 나를 공주님 안기로 데려다줬던 걔잖아!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쟤 이름이 뭐더라!? 상상도 못한 광경에 머리가 얼어서 전혀 생각이 안 나 멧챠스키 프로키오니초프 하는 이름이었던 거 같기도 한데?
"...동작 그만. 좀도둑이냐?"
일단 이 무시무시한 행태부터 중지시켜야겠지. 나는 철망을 사이에 두고 나보다 머리 두개는 작은 말딸과 대치하기 시작했다...! 철망을 잡고 기어오르던 손을 철망째로 잡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다.
오늘도 츠나지의 공기를 만끽하기 위해- 아니 뭐, 사실 그냥 심심해서 옥상이나 갈까 했던거지만, 아무튼 그렇게 오르기 시작한 옥상에 이미 선객이 있었다. 그것도 매캐한 연기와 함께. 으 담배냄새. 인상을 있는대로 찌푸리며 본 얼굴은 어라, 어디선가 본 느낌이....
"아! 그때 귤박스 노숙자 아저씨! 뭐야. 왜 여기있어?"
물론 그때 학교로 데려다준 건 나였지만. 경비아저씨가 아직 안 내쫓다니 이 학교의 방범시스템 괜찮은건가?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좀도둑이냐고 묻는 말과 함께 철망째로 손이 붙잡혔다. 어. 어어? 뭐냐 이거?
"흐음.... 그러시겠다..?"
잠시 고민하다가 한쪽 발을 올려 철망을 딛고 그대로 몸을 뒤로 기울인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그리고 뒤로. 그렇게 앞뒤로 몸을 흔들면 옥상의 펜스에서 끼긱거리는 불길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펜스가 튼튼하긴 하지만 우마무스메의 힘으로 이렇게 일정하게 충격을 주면 금방 피로골절이 생겨버릴걸~
"이대로 철망째로 떨어지면 분명 죽겠지~? 이상한 아저씨가 츠나센 옥상에서 철망째로 우마무스메를 밀어서 추락사 시켰다고 신문에 대서특필되겠네~?" "학생출입금지 구역이라서 학생을 떨어트렸다고 진술하면 사이코패스로 명성을 얻겠는걸~"
나도 모르게 손을 꽉 잡고 애걸하다시피 타임을 부른다. 여러 우마무스메들의 폭거로 인해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철망은 벌써부터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 죽는다고 외치고 있다. 나는 진짜 물론 이녀석들은 4층에서 떨어져도 죽진 않겠지 하지만 이렇게까지 몸을 살피지 않아도 되는 거냐 하는 기분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 미친무스메의 손을 붙들었다.
너, 너 죽으면 나 학교에서 짤리는 거는 물론 어렵게 자리잡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살인자의 부모라고 손가락질을 으아아악 그건 안 돼...!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 이이, 이일단 건너와주시지 않겠어요? 진심을 다한 도게자로 사죄할테니까제발한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이 미친 무스메의 심기를 한 번만 맞춰주는 거다. 이 녀석이 만족하고 돌아가면 일단 철망부터 바꿔달라고 건의를 넣어야지. 성인 두 명이 옥상에서 싸움을 벌여도 버텨줄 만한 튼튼한 물건으로...(야나기하라 너 내가 살려준 거다ㅎ)
히죽히죽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네~ 그렇게 애원한다니 어쩔 수 없지. 이번만 봐주는거야~ 마지막에 꼬맹이 달래듯 나온 말은 좀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이미 봐준다고 했는데 '역시 아니야 아저씨 사회적으로 죽어❤️'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무엇보다 나도 이렇게 매달려 있는 것보다 안정적으로 땅에 발을 딛고 싶거든.... 아저씨가 손을 풀고나면 금새 철망을 다시 올라서 반대편, 옥상으로 가볍게 뛰어내린다. 음~ 오늘도 등반 성공~
"—자, 빨리 도게자 해봐❤️ 학생을 옥상 철망째로 밀어 떨어트릴뻔해서 죄송합니다❤️ 냄새나는 아저씨라서 죄송합니다❤️하고 꼴사납게 사죄해보라고❤️"
그리고 허리에 손을 얹고 당당하게 서서 아저씨를 보며 말했다. 아까 분명히 말했다? 진심을 다한 도게자로 사죄한다고?? 나 다 들었다고? ...물론 따지고 보면 옥상에 위험하게 올라온 내 잘못도 조금은 있겠지만? 그치만 다들 그렇게 올라오니까 딱히 큰 잘못은 아니고? 괜찮지 않나?? 아무튼 이 아저씨가 더 나쁘다고!
큿, 이, 이 녀석 평범한 양아치 갸루라고 생각했는데 정론으로 반박하고 있어...! 이건 어렵다. 어려워. 그, 그야 금연구역에서 피는 건 잘못이지만... 학교에 흡연실 하나 없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이것도 흡연자의 인권 침?해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해? 사과를 해야 한다면 이 세상이 해야 한다고. 담배 하나 마음 편히 못 피고 학생 없는 곳에서 피고 있으려니 훼방까지 받았잖아!
궤변이 꼬리에 꼬리를 얽으며 이어지지만, 내가 생각해도 이것들은 궤변이었기 때문에 입에 쉽사리 담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왤까, 허리에 손을 올린 채로 뭘 잘했다고 일갈하다가, 삿 대 질 까지 하는 녀석을 보자니 열이 받고 또 받아서...
-꼰대, 최악, 짜증나~ 역겨워~
...이 메스가키의 깐족댐을 제정신으로 버틸 수 없어서, 나는 눈 막고 귀 막고 똑같은 수준으로 떨어져주마 결심한 것입니다. 오스가키 히다이는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네가 만든 오스가키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아💕 담배 냄새 구려~💕"
삿대질한 손가락, 그건 내가 연초를 피던 손으로 꽉 잡았었던 손. 아직 불이 붙은 채로 땅에 떨어져 있는 장초, 피어오르는 연기와 계속 훈연되고 있는 메슥가키 녀석... 그리고 묘하게 불량한 행실. 이 정도의 심증이라면, 내가 메이사를 '옥상에서 몰래 흡연하는 걸 현행범으로 잡았어요' 라고 해도 설득력이 있다.
역습이라고, 메스가키 녀석아~!
"내가 사과를 해야한다니 ㄹㅇ어이없네💕 학생 출입금지 구역에 좀도둑처럼 들어와서 담배냄새 풍기는 불.량.아가씨를 내가 잡아가면 모를까💕 여기 몰래 들어오려던 것도 담배피려고 그런 거지? 주머니에 담배 분명 있을 거란 거 다 안다고💕"
음해와 날조는 앵시어스 웨이브 초반부터 전통으로 자리잡았었지. 나는 거기 충실할 뿐이라고.
다, 담배 냄새라니? 나한테서??? 말도 안돼! 그럴 리가!! 이건 누명이야! 하지만 옥상에 아직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는 담배가 떨어져 있는 건 사실이다. 물론 이건 저 아저씨가 피우던 거지만 철망째로 떨어지네 마네 하던 난리통 중에 나와 저 아저씨의 중간쯤 되는 위치에 떨어진듯한 느낌이다. ....그렇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3자가 와서 듣고 본다면 아무래도 내가 의심을 받...겠냐!!!!
"어이없네~ 경주 우마무스메가 흡연이라니 그런 거 할 리가 없잖아 바보야? 죽을래?" "내 주머니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학교 사람들 다 붙잡고 물어보라고. 난 아저씨랑 다르게 친구도 인맥도 넓어서 다들 내가 그런 애가 아닌 거 잘 알거든요~?"
인싸무스메가 우습게 보여? 애들한테 '메이사가 담배피웠대~'하고 말하면 백이면 백 '걔가? 농담도~' 하는 말이 돌아올걸?? 이게 바로 평소에 쌓은 인덕이라는 거지.
"누가봐도 담배 냄새에 찌든 건 내가 아니라 아저씨니까❤️ 의미없는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사과나 하라고❤️"
아 근데 손에 담배 냄새... ...슬쩍 손의 냄새를 맡아보니 진짜로 조금 나잖아! 으와, 기분 나빠.
"으, 이게 뭐야. 아저씨가 잡으니까 진짜 손에서 냄새나잖아.... 기분 나빠. 담배 냄새랑 아저씨 냄새 옮았잖아. 이거 어떻게 보상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