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의 담배냄새가 아닌, 좋은 향이 물씬 풍기는 유우가의 목이 코앞까지 확 다가온다. 비강을 간지럽히는 어른스러운 향수내음에 귀가 삐죽 서고 꼬리가 팽팽해졌다. 이, 이상해. 갑자기 부정맥이.... 이러다 유우가한테까지 들리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될 정도로 심장이 엄청나게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근거림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조금 멍하니 있다가 손에 들고 있던 당근 소다를 빼앗겨 버렸다. 엑, 에엑?!
"에, 뭐야. 돌려줘—!"
왜 갑자기 가져가는거야? 항의하면서 되찾으려고 손을 뻗지만 그러기도 전에 유우가는 내가 마시던 당근 소다를 아무렇지도 않게 홀짝인다. 으, 으아?! 그거 조금 전까지 내가 마시던 거라고!? 거, 거기 내가 입 댄 곳인데?!
"하아? 무슨, 아니, 잠깐?!"
장소의 분위기 때문인지, 조금 전의 향수 때문인지, 어딘지 멍해진 머리로는 즉각적인 대응이 힘들었다. 결국 내가 받아든 건 조금 전까지 유우가가 마시던 음료잔이었다.
"술이었다고? 유레카는 그냥 소다라고 했는데...." ".....유우가, 안경을 안 쓴게 아니라 눈을 어디 팔아먹고 온 거야? 나 아까까지 엄청 돌아다니면서 춤추고 얘기하고 했단 말이야. 난 유우가랑 다르게 인싸라서 바빠 죽는 줄 알았다고❤️"
옷차림 뽕은 뽑을만큼 뽑았단 말이지. 그렇게 투덜거리듯 내뱉고나서 손에 쥔 잔으로 시선을 내렸다. 천천히 잔을 들어올린다. 조금 전까지 유우가의 입술이 닿았던 글라스에 가만히 입을 겹쳐본다. 남들이 보기엔 조용히 홀짝이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정작 음료는 하나도 입에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뭔지 모를 자괴감에 결국 꺾어서 원샷을 때려버렸지만. 아니 뭐, 유레카가 소다라고 속이고 준 술 때문인지 묘하게 목이 타기도 했고? 아마도? 아마? 그게 원인이지 않을까??
"—후아. ...유우가는 춤 안 춰? 모처럼 그렇게 차려입고서. 아깝잖아."
그리고는 들었던 말을 똑같이 돌려주는 것이었다. 약간의 미소와, 약간의 들뜸과... 약간 뜨거운 뺨과 함께.
하, 후. 하고 의미 없는 숨을 내뱉는 것도 질려갈 때쯤, 야속하게도 하늘에서는 하나둘씩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츠나지의 눈은 도쿄의 눈과는 달라, 곧 있으면 세상은 도화지의 빈 여백과도 같이 하얗게 지워지고 말 것이다.
레이니는 이제 와서야, 계절이 하나 지나간 뒤 알게 된 비밀 하나를 떠올리고 만다. 솔직하게 털어놓기까지 어떤 각오가 필요했을지도 모르는, 허리 부상 이야기.
“나고야에 갔으려나...”
마구로 기념과 함께, 공식적인 클래식 시즌의 일정은 막을 내렸다. 자신에 대한 것을 뒤로 숨겨두곤 했던 다이고가, 이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검진을 받기 위해 담당 몰래 고향으로 내려갔을지도 모른다는 야속한 망상은 꽤나 그럴듯하게 느껴져 레이니는 생각을 멈추기 위해 선물상자에 볼을 비벼대었다. 매끈한 포장지는, 주변 온도의 영향을 받아 서늘하다 못해 냉기마저 뿜어 나올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옥색의 우마무스메는 미련하게 기숙사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다이고.”
울리는 벨소리에 황급하게 화면을 확인해 보면, 발신자명에는 선명한 녹색 하트가 띄워져 있다. 집에도 없으면서, 왜 전화를 건 걸까. 잠깐의 고민을 하며 화면을 톡톡 두드리다가, 전화벨이 끊기기 직전에서야 레이니는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다이고, 왜-?”
데이트 신청 하려고? 라는 말을 장난스럽게 덧붙일 계획이었는데, 엣취! 하는 기침 소리가 먼저 레이니의 말을 가로막았다.
>>886 기숙사를 나서면서 무슨 용건으로 나서는지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단순 외출이라면 이상할 건 없지만... 눈이 내리는 상황인지라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어서, 끊기기 직전까지 울리는 연결음에 다이고는 조금 초조해졌다. 결국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그 자리에 잠시 정지해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화를 하느라 잠깐 멈췄으니 많이 다르진 않지만.
"아, 레이니!"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아직 어디에 있는지, 우산은 가지고 나갔는지 등은 전혀 모르지만서도) 조금 들뜬 목소리로 레이니를 부르던 다이고는, 왜 전화를 했느냐는 레이니의 물음이 기침 소리로 끝나자 아이고...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감기 걸렸어? 지금 어디야?"
코가 빨개질 정도로 쌀쌀한 날씨에 눈까지 내리고 있는데, 외출했다던 사람이 기침을 하고 있으면 걱정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낡은 장갑 탓에 미끄러질 뻔했던 휴대폰을 다시 고쳐 잡고, 장을 본 종이봉투와 선물 상자를 옆구리에 낀 채 말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