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딸처럼 보이길 바랐을리가 없잖아. 레이니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임에 맞춰 노천탕의 물이 찰랑인다. 어쩌면 내가 '유우가랑 같이 갈래!'라고 했을 때 필사적으로 설득했던 것도 그래서 그랬던 걸지도... 우우. 솔직히 나랑 레이니가 키가 작은 편이긴 하지만-물론 내가 더 작긴 하지만- 그래도, 작아보여도 마냥 어린애는 또 아니니까.
우마무스메의 나이는 판도라의 상자.. 하지만 확실한 건, 일단 우린 법적으로 혼인이 가능한 나이는 맞다. 맞다고. 아무튼 맞음.
그러니까 좀 더, 그... ...아무튼 어린애 취급은 안 해도 되잖아! 하지만 또 그렇게 대놓고 말하기는 참 뭐한지라. 결국 레이니와 함께 여기서 울분을 터트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아아,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군. 동지여..."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 죄는 방에서 내쫓는 것으로 단죄하겠다는, 매우 훌륭한 발상에 나는 슬그머니 엄지를 치켜올렸다.
"쫓아내고 우리끼리 수다나 떨다가 잘까? 어때? 흥, 온천만 들어갔다 나오면 술에 취해서 나오는 유우가 같은 건 복도에서 얼어죽어도 난 몰라."
여기서 잠깐!!! 레이니・왈츠는 프리지아의 탄생설화(?)를 듣지 못했다. 고로 유성우가 내리는 날 밤에 메이사가 히다이에게 사랑 고백을 했고, 히다이가 적어도 그걸 부정하지 않아 임시 팀이 정식 팀이 되었다는 것은, 앞 뒤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충 짐작만 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메이사 앞에서 딸 취급을 했단 말이지...
“정말 몰라서 그런 취급을 하는 건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최악이야...”
전자는 다이고고 후자는 히다이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마무스메의 나이는 비밀~❤️ 이지만 아무래도 이 둘은 법적 혼인 연령인 18세 이상인 편이죠. 메이쨔와 메이쨔주의 말이 맞다니까. 맞다고. (거기다 전지적 마주 시점에서 보자면, 그래도 둘의 나이 앞자리가 1일 가능성이 무한하게 존재하는 이상 트레이너와의 나이차가 더 벌어지면 곤란!!!)
“에... 미스터 히다이는 얼어 죽어...?”
다이고는 복도에 던져놔도 안 죽을 것 같은데(?)
“뭐... 그쪽이야말로 어린애도 아니고, 얼어 죽기 전에 알아서 잘 곳 찾아 들어가겠지. 쫓아내자.”
그보다 얼어 죽어..?라는 물음은 뭐야 레이니...? 잠시 레이니를 당황한 시선으로 보다가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아니 그... 죽진 않아도 골골거리게 되지 않을까? 유우가, 소싯적엔 달리기 천재였다고 했지만 솔직히 사바캔 전 트레이닝할 때도 나랑 같이 한 바퀴만(그것도 자전거로) 뛴 뒤에도 죽으려고 하던데. 그런 연약한 히또미미인 유우가를 이런 추운날 단열도 제대로 안 되는 목조식 건물의 복도에 내놓고 자면... 오늘은 생태 유우가였지만 내일은 동태 유우가가 되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될 것이다 확실하게.
물론 레이니의 말대로 그 전에 알아서 어딘가 기어들어가서 자고 멀쩡한채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지만.. ...인생이라는 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고 예측도 100% 들어맞는단 법은 없고 레이스에도 절대란 없기 때문에.. 뭔가 말이 이상해졌지만? 아무튼 아무리 화가 났어도 걱정하는게 맞..지...?
"그... 보통 그렇지 않을까...? 저체온증이라던가... 얼어죽진 않아도 입이 돌아간다거나...." "아, 아무튼! 레이니 말대로, 그래. 알아서 하룻밤 어디선가 잘 넘기고 돌아오겠지. 짐까지 내던지진 않을 거니까."
짐까지 같이 내놨다가 그냥 홀랑 가버리면 어떡해. 그건... 싫단 말이야.
"그럼 결정이네! 흐흥~ 누구네 방에서 잘까? 레이니네 쪽으로 내가 갈까? 아니면 이쪽으로 올래?"
어느 쪽인가 하면 시라기 트레이너가 일반적이지 않은 쪽 아닌가... 튼튼함이란 의미에서...(?) 하지만 둘을 같이 놓고 본다면 유우가 쪽이 연약해 보이는 건 사실이고, 실제로 유우가를 입원시켰던 전적도 있으니까 뭐라 아니라고 하긴 어려웠다. 근데 생각해보면 시라기 트레이너의 정강이도 바사삭 해버렸던 전적이 있단 말이지, 나.... .....결론은 내가 최강이라는 거 아냐?(????) 잠시 이상한 곳으로 샌 생각을 되돌린다.
"그-래. 그럼 돌아가면 바로 유우가를 들어서 내던질테니까." "...그래도 역시 복도는 불쌍하니까, 시라기 트레이너가 자는 방으로 배송해도 돼?"
야호! 걸즈토크 연장 확정! 유우가를 보내고 레이니를 데려와서 밤새 떠들 생각을 하니 조금 들뜬다. 아니 그, 뭐. 처음엔 둘이서 여행이다!하고 설렜는데(물론 마사바도 같이 온다는 조건이긴 했지만) 와 보니까 용기냈던건 거절당했지(...) 맨날 술마시고 있지 그래서 좀 괘씸하니까, 이런 걸즈토크.. 조금 반갑다고 해야할까. 마사바한테는 말하기 묘한 것들도, 레이니와는 털어놓을 수 있으니까. 적어도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레이니 뿐이니까.
"그러게 말이야. 레이니가 없었다면 이대로 잠겨서 우마=펌프가 되어 노천탕에서 공기방울만 부글부글 하고 있었을지도." "-헤헤, 겨울이라 밝은 별이 많아서, 여기서도 꽤나 보일 거야. 그러고보니 겨울에 별 보러 가기로 했었는데, 지금까지 못갔었네 결국."
하늘을 올려다보는 레이니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내 시선도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간다. 겨울의 대삼각형은 노천탕의 조명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