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였다. 이 분위기, 둘만 있는 이 상황. 그리고... 벌써부터 콩닥거려오는 이 설렘. 하지만, 어째서인가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져서. 자신에게는 너무 과분하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아서. 아니, 이 상황 자체가 꿈인지 생시인지조차 믿기지가 않아서. 한 음악이 끝난 후, 당신을 보다 당신이 무릎을 꿇자, 조금이나마 굴러간다고 믿고 있었던 자신의 두뇌는 자신을 배반한 채, 제대로 된 단어하나조차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다.
유키무라 모모카. 그녀는 자신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일까. 처음에는 그저 승부욕이 강한 아이로 시작한, 정말 그 뿐인 관계였다. 모의 레이스에서 만났을때, 이런 관계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당신이라는 존재가 자신에게 이렇게 큰 존재가 되었던 것은. 당신에게 있어서 자신이 잠시나마 휴식처가 되고 싶다 생각하게 되었던 그 순간은. 어느새, 정말, 어느새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였다. 어느새, 그것은 설렘으로, 따뜻함으로 번져서, 이제는 당신과 함께하는 순간 그 자체가 소중해져버린 것이였다. 이건, 휴식처의 실격일까. 자신이 휴식처가 되어야 할 상황에서 자신이 더욱 안도감을 느끼고 있는 이 상황은.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느끼고 있는 자신이 우습다. 그 운동회에서 자신이 고백을 한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투박하고, 서투르고, 부끄러운 것이였다. 너무나도 아파보이는 당신을 보기가 싫었던 것은, 그 전에는 그저 친구가 아파하는 것을 보기 싫어서 하는 동정이라 합리화를 시도하고 있었지만... 과연 그것이 동정 뿐이였을까. 당신에 대한 사랑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이제는 흐릿한 기억일 뿐이였다. 정말 웃기기도 하지. 세간에는 두뇌파라, 모범생이라 과분하게도 불리는 자신이 이렇게 기억이 떨어지고, 이렇게 바보일 줄이야.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하기도 하다. 예전부터, 자신의 길은 혼자 걸어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이 연애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꺄꺄후후하고 있을 중학생 시절에는, 자신은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임을 떠넘길 수 없다고만 생각하며 이 짐을 혼자서 짊어지고 살 생각만 하고 있었던 시절이였기에. 자신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소중한 존재면서도,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러하거늘, 이 곳에서, 이 순간에, 이 상황까지 온 경위를 본다면. 자신이 없이도 자신의 동생들은 자신들을 챙길 수 있을 정도로 어느새 커 있었고, 어떤 때는 자신보다 더더욱 뛰어난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학생회들도 자신이 원하고, 안전한것이 제일이라 여겨졌기에 자신이 꽤 많은 일을 도맡은 것이였지 누구도 이것을 강요하지는 않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신은 자신이 상정했던 인생 최고의 순간을 세번이나 이루어내버렸다. 그리고 그 최고의 순간을 놓친 한 번 또한 최고가 아니였을 뿐, 믿기지 않을 성과를 내었다. 그리고, 트레이너 자격증 또한 손에 잡힐 정도로 가까웠다. 이것이, 처음에는 살짝 두려웠다. 얼마나 자신을 떨어뜨리려 이렇게 높이 띄우는 것일까, 생각마저 한 적이 있었다. 허나...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말해온 그 한 단어. 자신을 불러오는 달짝지근한 호칭.
이렇게 행복한 순간임에도, 자신의 뇌는 그저 헛바퀴를 도는 듯했다. 과거만이 생각나고, 과거에 자신은 어떻게 생각했을지를 생각해내고만 있었다. 당신이 과거의 나에게 그렇게 불렀다면 소름 돋는다고 했으려나, 그런 정말, 지금에 와서는 상관없는 생각들만이 나오고 있었다. 이것이, 자신이 현실을 회피하는 것일까.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이 두근거림에, 이 떨림에서부터, 멀어지려고 시도하는 것일까.
말을 못하고 굳어 있는 채, 시간이 조금 길어지고 있었다. 귀는 놀란 듯 서 있었으나, 꼬리는 옅게 살랑거리고 있었다. 정말,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어 입은 옷이거늘, 어째서 이렇게 이 옷은 얇다 생각하면서도 아름다워 고른 것이거늘 이렇게 뜨거운 것인지. 아니면 아무도 없는 이 무도회장에 누군가가 모닥불이라도 피운 것마냥, 자신의 얼굴은 왜 이렇게 뜨거운 것일지.
입을 열리고, 나오는 자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 진짜... 진짜 내로, 괘아는기가..."
그 목소리로 나오는 첫 말은, 역시나 두려움이였다. 자신이, 당신에게 걸맞는 대우를 해 줄 수 있을까. 옆에 있어주는 것, 당신의 고민을 조금 들어주고, 해결 할 방안이 있다면 제시하면서 같이 나아가는 것이 고작일 것이라 생각되는 자신이... 이 아름다운 흑장미를 정말로 자신의 가슴팍에 달아도. 이 흑장미를 장식하는 초록 이파리가 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 정말... 정말 고마워야..."
그리고, 이내 나오는 것은, 감사의 말. 누군가를 챙기는 것이 어느새, 버릇이 되어 버린 그녀였다. 어머니는 병약하고, 아버지는 가정을 위해 일하는 시간이 계속 늘어났기에, 자신을 챙기는 사람은 여태껏 많이 없었다. 그것이, 나니와라 불린 그녀의 나니와 시절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딱히 그것에 대하여 말하지 않은 이유는... 그저, 그것이 당연하다 여겼기에.
그럼에도, 츠나지에서 온 타지인인 자신을 챙겨준 사람은 꽤나 많았다. 그것이. 그것이 뭇내 너무나도 고마웠기에... 중앙 트레이너 자격증 시험이 아닌, 지방 트레이너 자격증 시험을 공부하는 것이였다. 비록 낡고, 안 좋은 면도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곳이 뭇내 좋았기에.
그렇기에... 나올 답은 하나였다.
"... 정말, 내로 괘안타므는..."
너와, 여생을 함께한다니. 그것은 얼마나 행복한 것일까. 이 순간에도 행복함이 너무나도 막강하거늘. 당신의 품 안에서 깨어나고, 함께 아침을 먹고, 당신의 옆에서 당신이 바라는 것을 듣고, 같이 생각하는 그런 시간도, 얼마나 행복할까. 하루의 24시간이 부족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너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으니까. 그 상처, 그 피로, 전부 보듬어주고 싶으니까.
타다닥타닥. 장작이 타는 소리도 아니고, 타자를 치는 소리도 아니다. 경기장의 대기실엔 벽난로도 없고 키보드도 없으니까. 그러면 대기실 가득 울려퍼지는 이 소리는 대체 뭐냐고? 뭐긴 뭐야. 긴장감에 발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닥을 탭댄스 치듯 차고 있는 내 발소리지...
"으.. 으으..."
근처에 걷어차기 좋은 나무나 울타리가 있으면 가차없이 발로 차버렸을텐데. 나무는 없고 경기장 울타리는 걷어차면 스탭이 주의주러 달려오니까 조금 차기 그래.(※주의가 없더라도 당연히 하면 안 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무든 울타리든 사람이든(?) 걷어차면 스트라토가 '편자는 그렇게 쓰라고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라고 무표정으로 혼낼 것 같고. 아니 그치만 이 긴장감, 이 초조함을 발차기가 아니면 뭘로 풀어내라는거지!? 난, 난 모르겠어..... 결국 적당히 타협해서 소파에 앉은 채로 대기실 바닥을 발로 도다다닥 차고 있었다. 우, 우우.... 무서워... 이제 곧, 이제 곧이야.
"...으무무..."
바닥을 차던 발을 멈추고 소파에 푹 기댔다. 하아.... 잘 해내야 할 텐데. 유우가랑 같이 중앙에 가고 싶으니까...
근데 시라기 트레이너 왜 갑자기 입을 만지는 거지.. 뭔가 묻었나? 똑같은 녹차를 마시고 있었을텐데. 어쩌면 추웠다가 따뜻한 곳으로 들어왔을 때 느껴지는 그 간질간질한 그건가. 아~ 그거라면 있을법하지. 나도 지금 그러니까.
"응! 고마워!"
응원해주는 말에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라? 그나저나 그렇게 순수하게 응원해줘도 되는 건가. 레이니도 마구로 나간다고 아까 그랬잖아. 내가 레이니를 이겨버릴지도 모른다고~?(물론 자신은 없는 쪽에 가깝지만) —뭐 그래도 응원해주는 건 고마우니까. 나도 레이니가 이긴다면 조금, 정말 조금은 분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응원하고 축하해줄테니.
"후헤헤~ 그럼 호의에 감사히 기대볼까나. 다녀오세요~"
머리에 얹힌 타올을 잡아 조금 더 문지르면서 시라기 트레이너를 배웅했다. 아, 귀 아직도 얼음장이야! 완전 차갑네... 문질러서 녹여야지.
네가 말을 못하고 굳어있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하지만 괜찮다. 이전의 나라면, 그런 너를 바라보며 불안함을 느꼈겠지만... 너 역시도 기억하고 있으리라. 너는 정말 나로 괜찮냐고 묻는 내게, 거짓말일리 있느냐고 말했다. 수많은 불안과 두려움, 좌절과 절망으로 둘러쌓였던 내게. 빛을 갈구하던 내게, 나는 너보다 더 빛날수 있는 원석이라고 말해주었다.
너는 내게 태양이기에 나는 그런 너의 달이 되어 네가 내게 주는 빛을 그 따스함을 조금이나마 네게 돌려주고 싶다.
겨울철에 깍지껴 잡은 손처럼 서로 꽉 껴안고 웃는것처럼 뺨에 입 맞추고 수줍게 웃는 조금은 붉어진 얼굴처럼 그정도의 온기. 그정도의 따스함을.
그렇기에 괜찮다. 나는 너의 대답을 확신하고 있다. 네가 내게 얼마나 빛이 되어주는지. 내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주는지, 몇번이고 말해도 모자랄 정도이기에. 놀란 듯 서있는 너의 귀. 가벼이 살랑거리는 네 꼬리. 붉어지는 얼굴. 작게 키득거렸다. 아아, 그래. 나도 똑같은 반응이었을거야. 뺘앗, 같은 소리를 내면서.... 응. 엄청 당황해서 백지가 되었겠지. 어쩌면 크게 울어버릴지도 모르겠네.
“응. 당연하지. 나냐, 나... 네게 거짓말 한 적 없는걸. 앞으로도 그럴거고. 오히려 네가 아니면 싫어. 다른 그 누구라도.... 사귀고 싶은 사람도, 결혼하고 싶은 사람도... 너 하나 뿐이야.”
알고있다. 그렇기에 너와 똑같은 대답을 돌려주는거야. 나의 방식으로. 네가 나의 빛이 되어주었으니, 나도 네 두려움을 밝혀주는 별이 되어줄게. 언젠가 두려움이 너를 감쌀 때, 그 두려움을 걷어내고 너를 상냥하게 안아주는 사람이 되어줄게.
“나야말로, 고마워... 내게 고백해줘서. 나의 빛이 되어줘서. 나를 구원해줘서. 내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건, 전부 너 덕분이야, 나냐.”
같은 행복을 공유하면서 같은 시간을 살아가자. 나이를 먹으면서 한 해 한 해, 좋은 추억을 쌓아가며 그렇게 같이 늙어가자. 좋은 기억도 싫은 기억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언젠가 뒤를 돌아봤을때 즐거운 추억이었지, 하고 웃을 수 있을 미래를 만들어가자. 그렇게 많은 처음들을 함께하고 익숙해지더라도 서로를 사랑하며 즐거운 매일 아침들을 맞아가자.
“응... 진심이야, 나냐. 나, 매일 아침... 너를 미소짓게 만들어줄게. 평생 행복하게 해줄테니까.“
그래. 함께 살아가자. 서로가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며 손을 맞잡고 발걸음을 맞추어 그렇게 살아가자.
나는 천천히 네 손을 잡고 일어나, 너를 그대로 공주님 안기로 안아올리려 하면서. 지긋이 눈을 감고, 네게 입을 맞추려했다.
뜨겁고 달콤한 우리의 사랑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 언제까지나 너만을 사랑할거야. 나의 작은 왕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