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그레이 데이즈의 승부복은, 조금은 캐쥬얼하게도 입을 수 있는 복장이였다. 그렇기에 이번 프롬에서는 승부복과는 다른 느낌으로 어레인지를 주어 본 것이였다. 계속해서 초록색 후디를 입어서 자신의 이미지 컬러가 된 것도 있지만, 이 복장에는 자신보다 이 공간을, 이렇게 있을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을 고마워하는 느낌으로 옷을 골라 본 것이였다. 평소의 푸른 교복이 아닌, 따뜻한 색감의 겉옷. 누군가는 낡았다고 할 수 있는 색상의 선택이지만, 그것은 이 츠나센을 생각해서 골랐던 것이였다. 어두운 초록색 넥타이도 갈색 외투에 어룰렸겠지. 하지만 자신을 뽐내는 것은 그렇게 자신에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였고, 고마워하는 복장에서 초록색을 맨다면 뭔가 난 내가 좋아 같은 부끄러운 말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노란색이라는, 조금 특이한 선택을 한 것은 팀 블레이징을 생각한 것이였다. 그리고 브로치는.... 이미 알고 있겠지.
"핑크색은 쪼매 소화하기 힘들겄제..."
픽, 웃으면서 이야기를 한다. 당신의 중얼거리는 말에 긴장이 조금은 풀린 덕일까. 핫핑크를 입은 자신을 상상하고는, 분홍 꼬까옷을 입고 이빨을 드러내는 강아지를 연상하고 마는 것이였다. 놀리는 것은 싫지만, 그럼에도 자기 객관화는 철저히 되어 있는 언그레이 데이즈였다.
"고맙기는...."
승부복, 기념비적인 옷, 그런 것에는 사소한 하나하나에도 생각이 들어가고, 그것이 힘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된다는 의상쪽 승부복 제작 분야의 이론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순간이였다.
"ㅃ... 뺫..."
당신이 하는 칭찬에, 언그레이 데이즈는 당신에게 옮아온 그 특유의 소리를 무심코 내뱉고 마는 것이였다. 과분한 칭찬이라 생각되지만, 멈추고 싶지는 않은 이 몽실몽실한 마음. 부끄럽지만, 정말 기분이 좋아져버려서. 어리숙한 자신의 코디도, 좋다 해주어서.
"진짜 니는... 내 심장을 멈출라 카는기가..."
부끄러운듯 웃으면서 왼쪽 볼을 무심코 긁적이는 손의 4번째 손가락에는 작은 무지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근디 그마이 파인 옷 안 추브나...? 등짝 얼겄으야..."
역시 아름다움에 빠진 충격이 가시자, 들어오는 것은 걱정. 겨울인데도 그런 드레스인데,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일까. 외투는 입고 왔으려나, 아니면 저쪽의 탈의실에서 갈아입고 오는 길이였을까. 체육관 안은 적당한 온도로 되어 있는 것을 확인 했음에도, 감기에 걸린 당신을 봐서인지 물어보고 마는 것이였다.
"글고..."
"... 기꺼이."
에스코트는 자신이 받아 버리는 것일까. 그럼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대로 좋은 것일까.
“그때 동물 잠옷 입은것도 귀여웠는걸. 분홍 꼬까옷 입히고 마구 쓰다듬어 주고 싶기도 해.”
물론 그러진 않을거지만. 키득거리면서 네게 농담을 다시금 던진다. 픽 웃는 네 모습이. 어쩌면 긴장이 조금 풀린걸까, 하고 안심되어서.
“귀여워......정말정말 귀여워. 왜 그렇게 귀여운거야? 응? 내 심장을 얼마나 빨리 뛰게 하려는건지.“
”내 영혼의 반쪽을 가져갔으면서.“
키득이면서, 뺨을 긁적이는 네 이마에 가벼이, 다시금 입을 맞추려 했고. 이어지는 너의 걱정에 느릿하게 웃었다.
”헤헤, 괜찮아. 이 앞에서 갈아입고 오기도 했고... 나냐 덕분에 따듯해졌는걸.“
심장이 빨리 뛴다. 두근거리고, 얼굴이 조금 뜨겁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너와 이렇게 있는게 행복해서. 추위가 파고들 틈 같은건 없는걸. 상냥한 너의 걱정에, 나는 또다시 풀어져서 녹아버려. 솜사탕이 풀어지듯 마음이 흩어지고 너로 다시금 채워지니까. 느릿하게 웃으면서, 너와 함께 무도회장으로 들어갔지.
처음으로 들어가는 너와 나. 둘만의 무도회. 누가 미리 틀어놓기라도 한걸까.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어쩌면 마사바같은 장난꾸러기 친구들이 미리 음악을 틀어놓았을지도. 작게 키득거리면서, 천천히 네 손에서 손을 가벼이 놓으면서. 한바퀴 천천히, 부드럽게 돌면서. 발레를 하듯 두 손을 앞으로 뻗고, 다리를 들면서 유연하게 앞으로 미끄러지듯 나아가. 그리고 다시금 돌아오며 네 허리에 손을 감으려 해.
사실, 그것은 아직 조금 부끄러운 기억이였다. 동물잠옷이 한계고, 분홍 옷은 역시 무리무리라는 것이였다. 애초에 너무 프릴이 달려있는 옷이라던가는 어떻게 해서도 조금 거친 느낌을 숨길 수 없는 자신에게는 무리가 아닐까 싶었다. 눈매도 날카로운데 분홍옷을 입는다고 뭔가 달라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 내보고 귀엽다 캐도 넘어가는 거는 모카땅 뿐이라는거 알제..."
사실, 귀엽다라는 말은 은근히 언그레이 데이즈에게는 기분이 나쁜 말이였었다. 귀엽다는 말은 칭찬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어릴 적의 그녀에 있어서는, 그것은 완전히 자신을 낮잡아보는 것과 다름 없었기에. 자신 혼자 뿐이라면 보를까, 어릴 때에 어른이 되어야 했던 그녀에게는 그 말은 싸우자는 말과 동일했었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
정말 세기의 천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남동생과, 달리기로는 자신은 이미 한참 전에 뛰어 넘었을 여동생을 뒤에 두었기에.
"... 내도, 이미 영혼 반쪽 가져가뿐거 같은디, 니가."
"... 그려도, 조심혀. 감기 걸리므는 고생하이께..."
조용히 이야기를 하는 언그레이 데이즈. 그러면서도, 혹여 차갑지는 않은가 당신의 손을 살짝 매만지는 그녀였다. 어째서인지, 그녀가 느끼는 것은 겨울답지 않은 따스함이였다.
"... 이거, 금마들 하라는 점검은 안하고 우리 몰래 지키보고 있는기가... 기양 나와도 될 터인디 와중에 일은 하기 싫으다 이거제..."
조용히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살짝 낮아져 있지만, 표정은 니들이 그러면 그렇제, 라는 말을 하는 듯 조금의 체념을 동반하고 있었다가, 당신의 모습을 보고 이내 웃어버리고 만다.
"... 정말, 니는..."
"내도, 사랑혀야. 진짜, 좋아혀야."
춤의 시작은, 여리고 조금은 어색한 느낌이였다.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여태껏 혼자 연습을 해 온듯 편히 기대지 않고 조금 굳은 듯한 모습. 그래도, 가면 갈수록 조금씩 조금씩 긴장이 가시고 있는 듯하다. 발을 밟지 않은 것을 장하다고 여겨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