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어느새 클래식 시즌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것은 마구로가 코앞이라는 말과 같다! 클래식 시즌... 더 나아가 츠나지의 로컬 시리즈에서 가장 큰 무대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단 하나뿐인 G2 대상경주. 당연히 클래식 시즌을 보내는 우마무스메들에게는 꿈의 무대이자 두려운 감정이 느껴지기도 하는 무대일 것이다.
직접 달리는 우마무스메들은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트레이너는 어떨까? 트레이너에게도 마구로 기념은 커다란 일정이기 때문에 트레이너들 역시 마음이 두근거리는 걸 참기는 어렵다. 마구로 우승은 트리플 반다나, 사카나 삼관을 달성한 것과 같은 대우를 받아 중앙에 진출할 기회가 된다.
"...이제부턴 정말 기도하는 것 뿐이려나."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고, 정신적 케어도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왔을 것이다. 다들. 정말 코 앞으로 다가온 마구로 기념을 생각하면 무리가 될 수도 있는 훈련은 오히려 안 하는 게 낫다. 그보다는 심신의 안정을 찾는 게 더 중요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이고는 창 밖에 내린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에... 뭐가 꼬물거리는 거 같은데."
저만치 눈밭에서 뭔가 점 같은 게 꼬물거리고 있다. 뭐지? 눈을 찌푸리며 쳐다보다 보면...
마구로 기념을 앞둔 지금. 나는 거대 눈사람 mk.2를 만들고 있었다. 음. 정정하지. 정확하게는 눈더미 밑에 상반신이 깔린 채로 바둥거리고 있었다... 아니 하지만 의도는 눈사람을 만들려다가? 잠시 세워둔 거대 눈덩이가 굴러서 깔렸으니까 역시 눈사람을 만드는 중인걸로 해도 되지 않을까? 안 되겠죠? 네 잘 알고 있어요...
"————!!!!!!"
눈은 소리를 잘 흡수해서, 눈이 오는 날이면 사방이 고요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눈에 사방이 둘러싸인 지금, 아무리 소리를 쳐도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거나 개미소리처럼 들리겠지... 그래서 도와달라고 외치는 것과 동시에 다리와 꼬리를 마구 휘저었다. 누, 누가 좀 도와줘!!!! 바둥바둥거리다가, 이렇게 다리를 막 휘두르고 있으면 도와주려다 발에 채이는 거 아닌가? 싶어서 멈췄다가. 하지만 움직이면서 어필하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다시 마구 휘두르는 걸 반복한다. 우, 우웃...! 마구로도 못 나가고 죽을 순 없어!!!! 누가 좀 도와줘! 유우가!! 마마!! 파파!!!
학생들을 괴롭히던 연말 고사도 어느 새 끝나고, 큼지막한 레이스는 마구로 기념만을 앞둔 어느날, 프롬나드 트웬티 세븐은 개최되었다. 프롬, 프롬나드는 프랑스어로 산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프롬이라는 것은 프롬나드 댄스라는 무도회에서 대체적으로 추는 사교춤을, 그리고 현재로써는 그것을 추는 연말의 무도회 그 자체를 의미한다. 대체적으로 인기인들이 더 빛나는 무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다면 언그레이 데이즈는 어째서 맞지도 않는듯 정장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안절부절 하면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약속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자신과는 영 맞지 않는 것 같은 곳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요청하는 그녀가 썩 행복해 보였기에... 허나, 춤을 춘다 하더라도 그녀와 자신과의 신장의 차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든 춤 연습을 해본 그녀였다. 물론 라이브 등을 위해서 춤 연습을 한 적은 많지만 그 위닝 라이브같은 곳에서는 커플 춤이 나올 수가 없었으므로... 이런 경험은, 여러모로 처음이였다. 전년도에서는 이 무도회가 열리는 줄도 몰랐으니.
시계를 바라보면, 아직 열리기에는 이른 시간. 최종 점검은 미리 끝마쳐둔채, 복도에서 아직도 어색한 정장에 묻지도 않은 먼지를 털어내며 그녀는 자신의 그녀를 기다리는 것이였다.
>>170 계단을 뛰어내려가면서 다이고는 창 밖을 보았다.(착한 어른이는 따라하면 안 됩니다! 넘어지면 크게 다쳐요!) 한 층 내려갈수록 선명하게 보이는 눈밭에 파묻혀 바깥으로 튀어나온 두 다리와 꼬리가 마구 파닥이고 있다... 밤색의 꼬리와 저 아담한 사이즈(?)를 보면 우마무스메가 확실하다!
"도대체 어쩌다 파묻힌 거지??"
교문을 열고 눈을 헤치며 다가가 보니 잠시 멈췄던 다리가 다시 맹렬히 휘둘러져서 다이고는 차마 손을 대지 못한 채 휘둘러지는 다리를 피해 몸을 움찔했다. 이 다리 움직임...! 정강이를 부수고 머리를 걷어차는 데 전문일 것 같은 이 다리의 움직임은!
"메이사? 메이사냐!"
아니 대체 어쩌다가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있는 거냐...! 우마무스메라고 해도 이렇게 눈에 한참 파묻혀 있으면 문제가 생기겠지, 다이고는 다리의 궤도에서 슬쩍 몸을 비킨 뒤에, 메이사의 상반신이 있을 법한 위치를 찾아 눈을 헤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언니의 본가의 도착인가. 확실히 규모는 家라고 말하기엔 거대한 규모일까. 전통적인 모습은 아니다. 그리고 핵가족 규모의 사람이 살만한 크기도 아니다. 물론 내 외가의 풍경을 본 경험으로서는 그렇게 엄청나다라는 느낌은 조금 경감해서 받는다. 대단한 가문의 사람이라는 걸 실감하게 되지만서도.
"짐만 간단하게 풀고 이동할까요."
그래도 본가의 사람에게 줄 선물이랑 인사정도는 해야하는가 하고 물어는 본다. 여행동안 신세를 지게될텐데 예의상으로라도 하는게 올바르다고 생각했으니까.
눈에 가로막혀 작게 들리는 소리지만, 내 이름을 포착했다!! 분명히! 환청이 아니라면 누군가가 구하러 온 거야!! 도움의 손길이 왔다는 걸 인지하고 다리를 멈...추려고 했지만 이거 내가 멋대로 상상한 환청이면 어쩌지?라는 쓸데없는 망상이 다시 다리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는... 무언가를 파헤치는 소리와....
- 다리 그만 휘저어 요녀석아, 그러다 맞겠다!
라고 들리는 말에 공중을 걷어차던 자세 그대로 멈췄다. 얼어붙었다고 해도 좋을라나? 눈 속에 반쯤 묻혀있고.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누군가가 눈을 파헤치는 소리는...!!!
내 머리보다 더 더 더 위쪽에서 들리고 있었다. 어, 어째서!!!!!!!
"거, 거기가 아니야!! 좀 더 아래! 아래! 아래!!!!!!!!"
얼어붙었던 다리를 다시 크게 휘둘렀다. 좀 더 아래를 파줘! 지금 파는 곳은 너무 위쪽이야! 빌어먹게도 내 키는 그 정도로 크진 않다고..... 큿....
연말 고사가 끝났다. 잠깐 학교를 쉬거나 땡땡이 치기도 했기에 불안불안했지만, 90점이라는 제법 괜찮은 성적을 받아 안심했지. 이전같았으면 별로 마음에 안 들었을 테지만 말이야. 돌이켜보면 자신은 언제나 그랬다. 문무양도, 완벽한 나 자신을 꿈꾸며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만점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레이스에서도 1착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많은 것들을 버렸다. 친구를 버렸고, 가족을 버렸으며, 나 자신의 감정을 버리고 아픔을 끌어안았다. 이게 있으면, 내 목숨과 바꾼다고 한다면, 그토록 바라 마지 않던 1착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고. 아둔하게도 맹신했기에. 하. 짧게 숨을 뱉는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겨울. 이제 남은 것은 마구로 기념 뿐. 그리고 이 간극 사이에 열리는 프롬. 작년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만. 올해는 달랐다. 마사바와 싸우고 조금 화해한게 계기일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친해졌기 때문일까. 하하, 올해는 꽤 많이 싸웠네. 좀 부끄럽다. 마사바와도 싸우고, 레이니와도 싸우고, 나냐와도 싸우고... 메이사와도 두번이나 싸웠더랬지. 어쩌면 나의 삶은 전사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수없이 싸우면서 안주할 땅을 찾는 전사. 그토록 달리고 달려서 이뤄낸 꿈의 끝에서, 그 다음은 무엇일까? 에 대한 대답을 내리지 못했는데. 이제야 찾았다. 내 작은 안식처. 푸르른 꽃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 나의 소중한 왕자님.
시계를 바라보면, 아직 열리기에는 이른 시간. 한시라도 빨리 너를 보고 싶어서일까. 하늘거리는 검은 천. 조금은 얇은 것. 앞매무새가 조금 파였지만,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게. 금빛으로 반짝이는 체인과. 드레스를 수놓은 꽃 무늬. 등이 드러나있는 홀터넥. 하지만 팔 소매가 없는것은 아니었다. 시스루 형태로, 꽃 무늬가 얇게 비쳐보이는 소매. 하늘거리며 떨어지듯 마무리되는 곡선. 검은 색의 하이힐을 신은 채로, 복도 위로 구두굽 닿는 소리가 울려퍼지며. 나는 네게로 다가가 느릿하게, 눈을 접어 예쁘게 웃는다.
"나냐, 많이 기다렸어?"
소중하게 끼워진 왼손의 반지. 일찍 왔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네게 왼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