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는 옆에 앉도록 자리를 내주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본다. 게이트 얘기야... 지금 얘기하면 입만 아플 것 같았다. 워낙에 겪은 게 많으면서도 적은지라, 이걸 한번에 이야기하면 밑도 끝도 없어서 강산의 머리만 아프게 만들 것이 뻔하니. 빈센트는 강산에게 묻는다.
"혹시... 제가 없는 사이에 어떤 진전이라도 있었습니까? 우리가 잡아야 하는 괴물의 정체라던지... 그런 것들 말입니다."
진짜 구세대 각성자처럼 "구세대 각성자가 맞을 것이어요." 언제 가져갔는지 어느새 고양이 장식을 무릎위에 올려 놓고 손가락으로 조각의 손부분을 톡톡 치며 말한다. 매끄럽고 부들부들한게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소녀또한 같은 의뢰를 받은 입장으로서 조사를 따로 하고 있었으니 편히 말씀하셔도 되어요. 저희가 가려가며 행동할 계제는 아니니 말이어요." 놀랄만한 소식에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차분하게 앉아 담담하게 제 말을 하며 강산의 말을 듣겠다는 듯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다.
"상대는 매복과 기습, 즉사 공격에 특화되어 있고...입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건 조금 돌려서 말하긴 했지만, 자료들을 본다면 무슨 말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것이다.
"...통신 기록 끝에 나노머신 통역이 적용되지 않은 외국어가 남아있더군요. 상대가 나노머신 칩을 사용하지 않는...엄청은 아니지만 제법 옛날 사람임을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죠. 어쩌면...저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인 건 알지만, 정말로 나노머신 칩 없던 시절에 살다가 죽어서 칩의 존재를 몰랐을 수도 있고요. 특별반 인원들 사이에서 떠돌던 소문대로 말예요."
나노머신 칩은 현대의 각성자들에게 있어 의념시대 이전의 스마트폰과 같은 것이다. 즉 그 편리성 때문에 쓸 수 있는 사람은 웬만하면 다 쓰는 것이고, 그걸 안 쓴다는 건 몰라서 안 쓰는 거거나 쓸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거다. 오래된 자들이 되살아나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도 슬쩍 덧붙인다. 이제 그 가능성이 제로라고 보기도 어려워졌으니.
"또 이건 여선이가 사고 현장을 조사해서 알아온 건데...상대는 의념으로 된 공격을 전부 흡수할 수 있습니다. 마도가 통하지 않는다는 거죠."
필연적으로 진지해질 수 밖에 없는 얘기다. 강산이 빈센트에게 주변을 경계하라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우리는 단독으로 그 괴물과 맞닿트리면 오래 저항하지 못할 테니까.
빈센트는 한숨을 한번 쉬었다. 세상 어느 적이 다루기 쉽겠냐마는, 매복과 기습, 즉사는 빈센트에게 무슨 악의라도 있나 싶을 정도로 안 맞는 조합이었다. 입학 이후 얼마 안 가 다윈주의자가 빈센트를 습격했을 때는, 솔직히 말해 놈들이 너무 멍청해서 이긴 거였지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놈들이었다면 빈센트도 손가락 몇 개 정도는 내줘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즉사라고? 세상에.
"...의념으로 된 공격을 전부 흡수."
거기에 이르면, 빈센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옛날에 보았던 만화의 장면이 생각난다. 초능력이 없는 우리는 할 일이 없으니 팝콘이나 가져오라고.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만화는 팝콘이나 먹고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해줄 슈퍼 히어로가 있지만, 빈센트가 조져야 할 상대한테는 그런 것도 없었다.
"아직 그거에 대응할 방법은 나오지 않았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여선 씨 이름도 오랜만에 들으니까 참 반갑군요. " //9 나머지는 내일 이어도 될까요?
토고쪽은 직접 겪은 것을 바탕으로 말했을 것이고 시윤은 얘기를 들어 본 바 알렌에게 들은 정보를 은연중에 전했을 가능성이 컸다. 린은 얘기를 차분하게 끊지 않고 끝까지 듣다가 입을 연다.
"마카오에...많은 분들이 좋지 않은 일을 겪었다 들었사와요. 참으로 슬픈 일이어요." 고양이 조각상을 매만지던 것을 그만두고 가만히 두 손으로 조각을 부드럽게 쥐어본다. 마치 아이가 마음의 안정을 위해 인형을 끌어안는 듯한 손짓이었다.
"소녀는 관련이 있을것이라 확신하여요. 만일 강산군이 그들이 맡긴 의뢰와 관련하여 제주도로 가셨다면 말이어요. 알아본 바 마카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어났사와요. 또..." 아직은 더 들어볼 필요가 있다 판단하고 린은 입을 다물었다. 다시 되살아난 이란 표현을 쓴 것을 보아서는 이미 마카오에서의 얘기를 들은 것이 틀림없었다.
"분명 제국주의 시대에 프랑스가 영역을 적극적으로 확장했던 것은 맞사오나 구세대 빌런이라 하더라도 그 만큼 오래전에 살았거나 그 영향을 받을 세대는 아닐것이어요. 혹시 그 외에 다른 특정할 만할, 분별되는 특징이 있었는지요." //16
"...명백한 목적에 의한 살인이 아닌 포식을 위한 사냥이라," 덧붙여 의념 흡수라면, 잠시 생각에 빠진 것처럼 눈을 감다가 이윽고 말을 잇는다.
"포식과 흡수, 두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사와요. 강산군의 말씀대로 프랑스어를 쓴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사와요. 하지만 앞의 두 사실은 상당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어요. 식인을 하는 범죄자들은 그리 드물지는 않사오나 의념 흡수가 가능하다면 이는 상당한 실력자로 수사 범위의 폭을 좁힐 수 있을 것이어요." 여기까지 알아내었으면 되겠지. 강산이 뭔가 아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자 린은 잠시 말을 고르는 듯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신께서 가로되 사악한 신의 희롱으로 망자의 기억이 담긴 꼭두각시가 각지에 일어섰다 하셨사와요. 그 주체의 이름은..." 입을 한 번 꾹 다물다 다시 말한다.
"검심교단의 죽음심장, 그 강림의 매개인 죽은 심장의 태아라는 흉물의 소행이어요. 소녀는 더 이상 이것의 이름을 입에 담고 싶지 않사와요. 태호군께서는 원숭이 손이라 이를 부르시더군요. 그리고...시윤군과는 의견이 갈렸으나 소녀는 이는 강림 의식의 일부라 보고 있사와요." 시윤씨께서는 그저 유희일수도 있다라 하셨사오나...판단은 강산군께 맡기겠사와요. 말을 끝내고 린은 다시 입을 다물고 고양이 조각상을 좀 더 꼭 쥐었다.
나름 도와주려는 거였나. 강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린의 말을 듣다가...린이 자신이 모시는 신의 말씀을 입에 올리기 시작하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바로 방음 배리어를 주변에 친다. 린에게 종교가 있다는 것은 이전에 들은 바 있었지만, 신의 계시를 받을 수 있다니...다른 사람이라면 거짓된 계시일 가능성을 떠올리겠지만...
'특별반 소속인 점을 감안한다면, 마츠시타 씨는 진짜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당장 세력은 미약하더라도.'
그리고 강산이 기억하는 린은, 돈을 좋아하는 듯 하여도 결코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종교와 신앙을 욕되게 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자였다.
"사교도들이 관련되어 있다곤 시윤 씨에게 이미 들었지만...알려줘서 고맙다. 원숭이 손이라, 나쁘지 않네. 마츠시타 씨도 알 지 모르겠는데 그런 옛날 괴담이 있거든. 소원을 뒤틀린 방식으로 이루어주기에 결국 소원 빈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마는 이상한 아이템에 대한 괴담이지."
끝까지 듣고 다시 입을 연 강산은 핏 웃으며 태호의 암호명 선정 센스에 동의한다. 악신인지 귀신인지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보다 이 편이 귀찮은 일을 방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테지.
"원신의 부활 의식이든 악신의 유희이든 간에... 노이즈 마케팅도 마케팅이다. 윗대가리가 어떤 의도였든지 간에 일단 일을 벌여놨으니 그들 입장에서 '우리가 모시는 분은 이런 권능을 부리는 대단한 분이시다!'는 걸 만 천하에 알릴 기회가 될 테고, 그리하면 해당 종교의 세를 불리는 데에 분명히 기여하게 되겠지. 그리고...지금 그게 원인이 되어서 분명히 되돌릴 수 없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잖아. 지금도 계속 발생하고 있을 수도 있고."
조금의 생각 후 강산은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다. 좀 화난 듯 하여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들을 방치하면 어떤 식으로든 그들만 이득이고 그들 교단에 속하지 않은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거야. 그건 확실하잖아. 그런 자들과 맞서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필시 대비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