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는 자신의 경쟁자이자 뛰어넘어야 할 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녀도 스스로의 재능을 믿고, 동생을 깔보기 일쑤였다. 그런 관계였으니 우애 따위는 없을 수밖에.
"우리 부모님 말이야." "그렇게 좋은 사람인 것도 아니었고."
집안의 외동아들이었던 야나기하라 마나부,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와 트레이너로서의 성공을 거두었던 야나기하라 메구미.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그들이 자식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명확했다는 건 확실했다. 그들에 의해 남매는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성공을 강요당하고, 완벽을 추구해야 했다.
"그냥 우리를, 「도구」로 보는 거 같았다고 할까." "대대로 내려온 가업을 이을 도구... 말이지." "기대도, 압박도 많이 받았어."
너희는 명문가의 피를 이었으니, 반드시 훌륭한 트레이너가 되어야 한다고.
"사실... 나는 어릴 때, 머리도 안 좋고 공부도 못하고 재능도 없었어."
중앙에서의 능숙한 면만을 보아온 그녀에게는, 정말 의외인 이야기일까?
"근데, 누님은 나보다 훨씬 뛰어났었어."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재능도 엄청났지." "그래서 부모님은, 나보다 누님을 더 사랑해준 거야." "나는 뒤떨어진 아이였을 뿐이니까."
가족의 관심이 제일 중요할 시기에,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건 비극이다. 그러니 그 어린 나이부터 애정과 관심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도 엄청 노력했어. 그 부모의 사랑이라는 거 한 번 받아보고 싶어서." "근데, 누님은 나보다 더 앞서가더라."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뛰어넘을 수가 없었어."
"뭐, 이제는 다 옛날 일이지." "근데 난 아직도 누님이 싫어." "누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식도 마음에 안 들고, 뭣보다 누님만 보면 자꾸 열등감이 느껴지는 거 같아서."
애써 웃음짓지만, 옛날 이야기를 하는 건 역시 조금 괴롭다. 어른이 되었어도 유년시절의 상처가 아직 남아있기에. 그렇지만 감춰두었던 비밀을 공유하는 느낌은 썩 나쁘지 않았다.
>>767 “형제가 있다는 건….그렇군요, 그런 기분이군요. ” “오라버니나 언니가 있는 기분은 이렇게 듣고 있자니, 마냥 포근한 기분이 아니네요…….”
조용히 이야기를 경청하던 니시카타 미즈호는, 외동으로 사는 것은 어떤 기분이냐 묻는 코우의 말에 그제서야 이야기를 시작했다.
“외동으로 사는 기분이란….. ” “글쎄요,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지나칠 정도로 짊어진 게 많은 기분? ”
어깨를 으쓱이면서도 표정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맞잡은 손을 살짝 더 꽉 쥐려 하며, 미즈호는 이렇게 말해오려 하였다.
“저는 혼자밖에 없으니까, 이어줄 사람이 저밖에 없어요. 그래서 부모님에게 사랑은 받았지만 그만큼의 기대 역시 많이 받았어요. 너는 하나뿐인 니시타카 가의 후계자니까, 그에 맞는 [ 격 ] 을 보여줘야 한다. 같은 기대 말이에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애정을 많이 표현해 주셨고, 부족함 없이 돌봐주신 좋은 분들이셨지만, 그만큼 또 엄격하셨어요. 특히 트레이닝에 관한 교육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셨어요. “
호칭에서 알 수 있는 부분은 상당히 많다. 파파나 마마 같은 친근함이 어린 호칭부터, 아빠나 엄마 같은 호칭.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예의를 차리는 호칭의 경우에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지나칠 정도로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던가. 또는 지나칠 정도로 상하관계가 잘 만들어져 있다거나.
“저 말이에요, 매번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답니다? 집안에서 원하는 대로 얌전하고 예의 바른 아가씨가 되려고 노력했어요. 후계 교육을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는 정말로, 줄곧 모범적인 일만 해왔답니다. 하지만 말이에요, 그건 너무……힘들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제게 맞지 않는 탈을 쓰는 기분이었어요. ”
“…그래서인지 모른답니다. 남몰래 [ 벗어나려 ] 고 시도한 것은. “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일탈을 위한 것. 얌전하고 예의 바른 아가씨에서, 한번쯤은 [ 탈선 ] 을 시도해 보려 한 것. 중앙 트레이너가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탈선을 했다. 이제는 조금 자유로워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중등부부터 고등부, 그리고 대학교까지. 이만하면 나, 충분히 모범적으로 살았잖아요? 같은 느낌으로 가볍게 시작했던 것이, 이렇게 본격적으로 될 줄은 상상조차도 못했었다. 정말로, 처음 펜을 잡았을 때만 해도 그랬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요, 코우 씨? “
살짝 검지를 제 입술에 올려보이며, 미즈호는 코우에게 들릴 정도로만 작게 속삭이려 하였다.
“[ 초록 장식의 다이애나 ] , 제가 쓴 글이랍니다. ” “이건….좀 많이 의외인 이야기려나요? 너무 놀라시면 안되어요? ”
이것은, 지금 들은 코우를 제외하면 오직 유키무라만 알고 있는 이야기. 그렇다. 지금 미즈호는 연인 앞에서 자신이 미즈농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후후, 이제는 코우 씨도 아는 탈선이 되어버렸네요? ” “이것은 유키무라 씨를 제외하면 코우 씨만 아는 비밀이니까, 기뻐하셔도 좋아요. 정말로, 정말로 비밀인 이야기니까요? ”
정확히 어떤 소설을 썼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것까지 이야기 하면 조금 많이....실망할 지도 모르니까. 탈선이란 그런 것이다. 모두가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 당신이야말로 정말 의외라 여길 이야기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