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고 말았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는 것도, 못 본 척 자연스럽게 넘기는 것도. 이미 처음부터 모르는 척 지나가기엔 정적이 길었다. 이, 이걸. 어떻게, 반응해 드려야 덜 부끄러우실까……. 그런 고민을 하는 시점에서부터 이미 망했다는 걸 사미다레는 몰랐다. 차라리 깔깔 웃고선 엄지척 하고 장난스레 떠나는 편이 유키무라에겐 덜 수치스러운 반응 아니었을까? 사미다레는 한 손으로 살며시 입을 틀어막고 미미하게 몸을 떨었다. 공감성 수치와는 조금 다른 결의, 이 우마무스메를 구하지 못했다는 무력감이다……. 그러나 이내 굳은 결의가 엿보이는 표정이 되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유키무라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성큼성큼 다가와 유키무라의 손을 조심히 잡으려 했을 것이다.
"ㄴ, 넷. 그, 그, 그 서비스. 부탁드립니다."
이제 와 아무것도 못 봤다며 도망친다면 분명 부끄러우시겠지. 그러니까 호객을 당한 손님이 된다면 덜 곤란하?지? 않을까? 사미다레는 진심으로 그리 판단했다…….
"다들, 요루의 공연을 봐 줘서 고마워! 그럼 이제, 모두가 기대하는 불꽃놀이 시간이야♡ 폭발음에 깜짝 놀라지 않도록 모두 조심해!"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의 눈이 밤하늘로 향한다. 우마무스메들은 벌써 귀를 가리고 있거나, 아예 멘코를 뒤집어쓴 경우도 있다. 요루니 앙카케는 인이어 때문에라도 귀가 활짝 열린 채로 두었다. 수많은 무대를 헤쳐 나온 그녀에게 폭죽의 소음 따위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A, B 조명 모두 스탠바이." "음향 송출 시작합니다."
무대의 불빛이 닿지 않는 막후에서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유유자적하던 소방대원들의 얼굴에도 긴장이 감돌기 시작한다. 불꽃이 터지기 전이지만 기계공학 동아리의 견학생들의 눈은 벌써부터 반짝이고 있다. 멀리 도쿄에서 출장을 온 불꽃연출가가 꺼내든 모듈에 관심을 빼앗긴 탓이다. 열심히 응원봉을 흔들다가 끌려온 우로코네틱스도 기계를 보자마자 빠져들었으니까. 아마 불꽃놀이가 시작된 이후에도 그녀들은 여기서 시선을 떼지 못할지도...
"그럼 함께 카운트다운을 해 보자!"
무대 조명이 암전되고, 모두의 목소리가 함께 모여 메아리친다. 5, 4, 3, 2, 1...
"......" 쿵────쿠궁───! "......"
수면이 순간 환해지며, 물결을 잔뜩 이지러뜨리는 폭음이 부둣가까지 울려 왔다. 찌가 드리운 물 아래는 컴컴한 어둠에서 화려한 만화경으로 변해 갔지만, 한 길 아래를 엿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두 우마무스메는 귀를 바짝 눕히고, 한 사람은 하늘의 불빛을, 한 사람은 물에 비친 불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둘은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공중에서는 폭죽 터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 왔지만, 낚싯대의 끄트머리는 잠잠해졌다. 입질하던 물고기가 도망갔다는 것을 알아챈 키마구레 에스커는 인상을 찌푸리며 낚싯대를 거두었다. 여기서는 더 낚을 수 없다. 물론 입질이 하나도 없는 날에도 물속에 찌를 드리운 채 가만히 있는 날도 있지만, 오늘은 그럴 형편이 아니다. 곁에 친구가 있으니까.
키마구레 에스커는 무심하게 낚시줄을 걷어올리다가, 폭음이 터지는 순간 반대편에서 느낀 위화감을 뒤늦게 떠올리고 뒤돌아봤다.
"... 레몬, 조금 전에 뭐라고 했어?" "아니, 아무 말도."
레몬 노 웨츠는 엷은 웃음을 떠올리고, 낚시 바구니를 챙긴 키마구레 에스커를 따라 마츠리가 한창인 시내까지 걸어갔다.
"올해는 무려 불꽃놀이! 쪼꼬미 선향이 아니라 진짜 불꽃이라구... 산끼야아아악!!!" "와아! 터졌어! 치~즈☆ #산포_더스트 #무쿠치_올리브 #케구링 #마인드리스_풀 #갸루즈 #불꽃놀이 #나츠마츠리" "나츠마츠리의 불꽃놀이! 친구들이랑 파리 타임♡"
갸루들이 옹기종기 뭉쳐서 저마다 셀카봉을 이리저리 내밀고 불꽃이 보이는 가장 좋은 각도를 찾아 애쓰고 있다. 하는 행동은 비슷해 보이지만, 누군가는 우마터에 올릴 사진을, 누군가는 우마스타그램에 올라갈 스토리를, 누군가는 우마튜브에 업로드할 브이로그를 찍고 있으니까 천편일률적인 것은 아니다.
물론 갑작스러운 폭발음은 우마무스메에게는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 얌전한 우마무스메를 깜짝 놀라게 할 수도, 또는 어떤 우마무스메를 들뜨게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시스붐바! 역시 일본은 화끈합니다!!" "텐 양, 생각하는 거하곤 달라!"
그래도 이 불꽃이 누군가의 지붕이나 머리털을 홀라당 태우는 일 없이, 여러분의 마음에도 떠오를 수 있기를.
원래 저런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같은 말로 수줍게 넘어가지만, 둘이서 걸어갈때 레몬쨩이 얼굴을 붉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에스커쨩도 시선을 슬쩍 피하면서 손으로 붉어진 뺨을 가리며 "...바보..." 같은 말을 중얼거리는게 정설입니다 제 뇌내망상에서는 이미 정설이 되었어요.... 너무 아름다워.............. 라는 의견을 "백합과 불온서적의 왕" 사미쟌에게 여쭤보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갑분인터뷰)
나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돌이켜보면 마음에 걸리는 일들이 제법 있었다. 첫 모의 레이스에서, 다가오는 네게 손을 내밀지 못하고 묵묵히 다시 트레이닝을 하러 간 것이나. 네가 내게 라이벌 선언을 했을 때, 자신은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라며 울었던 것. 네가 내게 고백을 할 때도, 나는 먼저... 그런 것들을 이야기 했었지.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자신이 얼마나, 남들에게 힘든 이야기를 뱉었던 것인지. 내가 이만큼 슬프다며,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에게도 오히려 감정적인 짐을 짊어지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몇번이고 말해줄게. 나는... 네가 좋아."
"너도, 내가 좋을거라고 믿어."
"그러니까, 더이상 슬픈 말은 하지 말아줬으면 해."
나는 진심으로 너를 사랑하고 있다. 몇번이고 말해줘도 괜찮을 정도로. 하루하루 너를 생각하는 마음이 커져가고 있다면 너는 믿을까. 그날, 네게 고백받았을때부터, 내 삶은 많이 달라진것같아.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러니까, 내가 네게 억지로 맞춰주고 있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전부 긍정해준다거나. 너 자신을 비하하며, 은연중에 너와 함께 걷는다는게, 손해가 아닐까 하고. 그리 말하는것을 들을때마다, 가슴이 찢어지게 아파서. 그래서, 일전에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할 때... 네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를 생각하면. 그리고, 나와 비슷한 말을 하는 네 말을 들을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파와. 나도 네게 어쩌면 상처를 입혔을지도 모르지. 너도, 나도. 은연중에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주변으로부터의 압박감,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가 낮은 점, 사람간의 관계가 서툰 것. 거리감을 잘 모르는 내 자신이 이토록 싫었던 적이 없을 정도로, 싫어서. 그러니까.
"나냐, 나는 네가 싫어지지 않아."
"떠나지, 않을거야. 내가 널 놓아주지 않을거니까. 추하게 매달려서, 오히려 네가 날 싫어하게 되더라도,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거니까."
"그러니까... 조금 더, 서로를 믿으면서, 시간이 우리를 치유하도록 하면 안될까."
"너와 나, 많은 그림을 그리고, 추억을 쌓아가면서... 지금은, 네가 나를 믿고, 내가 너를 믿는다면 바랄 게 없겠지만. 그때가 다가온다면, 너와 나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거야."
"의지해줬으면 좋겠어. 힘든게 있으면 말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런 슬픈 말을, 그런 슬픈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만들어주고 싶어."
나는 옅게 웃으며, 너와 시선을 맞추었다. 맞잡은 손에 힘을 꼭 주었고.
"나는 네가 좋아. 너는, 너 자신인 채로 아름다우니까. 이 마음을 참을 수 없이, 사랑하고 있어."
"정말 좋아해."
그렇게 말하면서, 옅게 웃었다. 흐드러지는 벚꽃잎처럼.
"에~ 나냐쨘, 불꽃놀이 데이트, 기대하고 있는거야? 기뻐."
키득거리면서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나냐, 네게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어. 사실 나, 가끔은 못된 상상을 하고는 해. 너를 사랑의 포로로 만들어버리고 싶다고 한다면, 너는 어떻게 반응할까? 케이크 위에 올라간 딸기를 아끼고 아껴서 마지막에 먹는것도 좋지만, 한입에 통채로 넣어서 먹는게 더 맛있으리라고 생각해. 혀 위에서 춤추는 달콤한 맛의 포로가 되어, 헤어나올 수 없는것도. 그런 바보같은 사랑도 좋지 않을까. 하지만 너와 손을 잡고 천천히 한 걸음씩 맞추는것도, 참을 수 없을만큼 즐거워. 어쩌면 사랑의 포로가 된 것은 내 쪽일지도 몰라. 이미 헤어나올수 없을 정도로, 달콤한 구름 안에 파묻혀있는거겠지.
"헤헤, 고마워."
말을 마치고는, 쭈뼛거리며 안아오는 너를 꼭 안았다. 너는 따듯하고, 부드럽고.. 좋은 냄새가 나서. 손을 뻗어 네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