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요리 대회? 당~연히 참가해야 하는 거 아니냐! 너네가 내 음식을 맛볼 기회가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재료를 체크했다. 이미 여럿 가져가서 괜찮아 보이는 게 남은 건 연어, 미역, 그리고 자잘한 재료들 정도인가...
일단 냄비밥부터 짓는다. 사실 밥은 늘 밥솥으로만 지어서 이거로 해보긴 처음인데... 이론은 알고 있어. 냄비에 쌀을 넣고 강불로 끓였다, 불을 서서히 줄여서 압력으로 찌기. 가스렌지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미역. 불린 미역줄기를 잘게 썰어 식초와 설탕을 섞은 양념에 잘 버무려준다. 거기에 잘게 썬 마늘과 양파도 넣어 전체적으로 새콤달콤하게. 락교처럼 강한 맛은 아니고 바다풍미로 연어랑도 궁합이 좋도록.
남은 건 정성껏 연어를 굽는 일 뿐... 인데, 옆에서 푸쉭푸쉭쉬쉬쉬쉬 소리가 난다. 냄비밥... 개같이 실패를 알리는 소리다. 이,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데. 일단 할 수 있는 대로 약불에 올려놓고 최대한 달래주고, 연어를 구우면서 옆에서 짭짤한 소스를 배합해, 플레이팅.
히다이 즉석 백반 완성이오.
>>445 차례로 미역채, 냄비밥, 연어자반.
아, 냄비밥 누룽지 생겼어. 고소하지만 전체적인 풍미를 해친다고. 망했다. 그래도 짭짤달콤한 연어자반의 살만 골라 먹다가 새콤달콤한 미역채로 입가심, 그리고 냄비밥. 이건 못 참을걸?!
으음. 이 사람은 좀 꺼려지는데... 아니, 그치만 다 큰 성인이 내 앞에서 엉엉 우니까 좀 뭐랄까, 다시 얼굴을 봐도 민망해지는 그런 게 있다. 뭐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그쪽은 세심하니까 뭐... 이제는 좀 괜찮냐고 물어보기라도 해야 하나? 아니, 근데 그 성격에 '니 알 바 아님' 하면 더... ...아 진짜. 내가 이걸 왜 고민하고 있냐고.
내가 고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적처리서 문제 때문. 탈퇴했다가 팀에 가입하는 거면 모를까, 이건 팀 프러시안에서 팀 프리지아로 이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호간의 서명이 필요했다.
...일단 내가 메이사를 관리하기로 결정한 사항도 말을 해둬야지, 그렇지 않으면 트레이너들끼리 상도덕도 없는 거고. 나는 골머리를 앓다 내 머리를 박박 헝클이고는, 담배 한 대 태우고 니시카타의 교무실로 갔다. 그쪽 책상에 앉아있는 니시카타. 다가가서 이적처리서를 내려놓는다.
>>461 평소와 같이 업무를 보고 있던 니시카타 미즈호는, 갑작스런 히다이의 방문에 당황스러워 할 수밖에 없었다. [ 그 봉투 ] 를 전해드리고 나서 한동안 뵙지를 못했는데 어떤 용무인 것인가? 하지만 내려놓은 서류를 보자마자 니시카타 미즈호는 표정이 자연스레 밝아지게 되었다. 그 종이, 결국 파쇄하지 않았구나!
"제 부탁을 들어주셨군요, 히다이 트레이너님! "
밝게 웃으며 펜을 들어보이는 니시카타 미즈호이다. 그래, 이거라면 얼마든지 서명해줄 수 있다.
어릴때부터 동화가 싫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만 하는 결말, 누군가를 매혹시키는 것 처럼 이어지는 행복한 이야기가 말이다. 계모에게 구박받기만 하던 공주님이 마법사의 도움으로 왕자님과 이어지는 이야기가. 그냥 싫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여자아이가 동화를 좋아한다고 믿는건지 그런 행복하기만 한 이야기를 계속 권한다.
과자로 된 집, 반지와 마법, 못된 마녀와 난쟁이들. 독사과, 결혼식, 키스.
그런것이 싫었다. 두리뭉실한 희망을 갖게 하는 모든것들이 그저 싫었다.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것은 인어공주. 과분한 것을 바라는 대가로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되는 바보같은 여자의 이야기. 사랑을 원한 탓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기까지 하다니. 아이들이 보기에는 과했던 것인지 다시 찾아본 애니메이션에서는 해피엔딩이 되어있었지만... 중요한 내용은 변하지 않았으니 괜찮아.
그 무엇도 잃지 않고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싫어하던 동화책 속에서 깨달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역시 동화는 동화였던걸까. 모든 걸 잃어도 얻지 못하는 것 역시 있다.
남들을 따라가고 싶어서, 몸이 부숴져라 달렸다. 그걸 위해서라면 목표따위 어디든 상관이 없었어. 난 달릴 수있으면 충분했으니까. 나에게는 과한 무게를 등에 지고서, 내가 아닌 남의 꿈을 위해 달렸다. 결과가 이거다. 남들만큼 머리도 좋지 못하고 그렇다고 달리는 것 조차 언제 추월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이도저도 아닌 그냥 몸만 큼 머저리.
그리고 결국, 남들을 짓밟고도 눈물을 흘려버리는 쓰레기. 내가 싫다. 그저 약하기만 한 내가 싫다.
인정한다. 나는 지금 분하다. 조금만 더 멀었다면, 하다못해 단거리가 아닌 마일이었다면. 닿을 수 있었을거다. 2마신 반의 차이. 순식간에 3착이었던 저스트 러브 미와는 거의 5마신차. 거리만 따진다면 레이니 왈츠와 싸웠던 그때와 거의 비슷하겠지. 큰 차이가 생긴거다. 그 시절과는. 그렇기에 더욱,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뭐가 왕이냐. 이미 이긴기분으로 들떠놓고. 한심하다.
"너한테 그런 소리를 들을정도로, 멋진승부를 하지 못했어."
"다른녀석들을 무시하는 싸움이었다."
트레이너는 노력했다. 나의 억지에 맞춰주었으니까. 너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주제에 그런 말을 한거냐. 눈물을 멈추고 바라보자 주변은 조금 더 밝게 변해 있었다.
"졸전이었군."
가슴에 느껴진 가벼운 충격에 실없이 웃으며 대꾸했다.
"다음번엔 이겨."
트레이너를 지나치며 말했다. 여전히 빛날 수는 없다. 그야 돌덩이니까. 스스로는 빛나는 것 조차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미안하다. 트레이너. 당신의 말을 부수고 깨뜨려서 나를 위한 착화제로 삼을 수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