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핫, 바로 얼마 전까지는 이런거,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데이트를 하고, 그런 행복하고, 평범한 일들.“
”응. 주인공 자리를 주겠다는게 아니야. 열심히 살아야지. 나냐쨩과 함께 미래를 그려가기로 했으니까.“
내 인생을 만화 주인공에게 대입했다던가, 그런게 아니라. 조금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행복해서. 막연히 흐르는 시간의 흐름이 두려웠던 과거와 다르게, 앞으로의 시간들이 기대되게, 그렇게 변했으니까. 그래서 조금은 믿겨지지 않는다, 얼떨떨하다, 그런 느낌. 그리고, 앞으로는 이 행복을 꼭 움켜쥐고서.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일궈나가보려고.
”부끄럽지만... 솔직해지고 싶은걸.“
나는 수줍게 웃었다. 솔직한 감상을 말하고 싶으니까,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싶어서. 부끄럽지만, 그런 마음이 더 크니까. 그러다, 이어지는 너의 말에. 나는 작게 소리내어 웃고는, 네 손을 제 뺨에 대어주려고 했다.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그래.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라고. 시간이 흐를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질거라고... 우리는 약속했을때부터, 행복한 마음이 통했네.“
뺨이 너무 뜨겁다. 좀 부끄럽네. 너도 그래? 가벼이 덧붙이고는, 눈을 접으며, 씨익 하고 웃었다. 너도 화아, 하고 색깔이 변하는것처럼 붉게 물들었고. 너라는 새하얀 도화지에, 내가 긍정적인 색깔로. 아름다운 색깔로 너를 물들일수 있으면 했다. 사람이라는것은 도화지와 같아서, 물감이 없으면 어느 색으로도 그림을 그릴 수 없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감은 남을 위해 쓸 수만 있어서. 그렇게 서로의 물감으로, 도화지 위에 추억이란 그림을 그리면. 인생의 마지막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노라고. 분명 웃을 수 있겠지. 내게 그림을 그려줄래? 네가 가진 아름다운 색으로, 나도 물들고 싶어. 나도 너를 위해, 내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물감을 줄게.
“엣, 이거 그정도로 위험한 농담이었어?”
어쩐지 주변에서 들려오는건 아무렇지도 않기에, 단순히 별 뜻 없는, 사소한 농담인줄 알았는데. 어쩐지 네 반응에 조금 시무룩해져, 귀를 추욱 떨구고는.
“...미안, 진짜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
“우마무스메가 더 우수하다거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니까...”
각자 뛰어난 부분이 있는거지. 누구는 머리가 좋고, 누구는 힘이 강하고, 누구는 노래를 잘 부르고... 그냥 그 정도. 개성과, 재능이라는 영역. 그런 거니까.
“그래도, 돈 부족할 생각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거. 정말이니까?”
“돈 때문에 이래저래 신경쓰는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리고 나도, 나냐쨩을 위해 돈이고 집이고 다 해주겠다는, 그런 일방적인 관계를 원하는게 아니니까.”
“부족한게 있으면 서로 채워줄수 있는거니까. 응, 진짜 신경쓰지 않아도 돼.”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네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응, 정말로. 그래도, 너도 갑자기 고민을 전부 내려둘순 없겠지. 나도 네게 무리를 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우선은 천천히 발걸음을 맞춰서 걸어가보면 된다고 생각해. 너도, 나도, 부담없이 만날 수 있게끔. 돈이 부족하다면 벤치에 함께 앉아있는것 만으로도 즐거우니까.
“...우으...”
조금 뺨에 바람을 넣어 부풀리고는, 널 바라보다가. 네 귀가 화끈거리자, 나는 키득이면서 좀 더 쓰다듬다가.
돌아오는 건 마미레의 경악스러운 시선뿐. 당신을 던져 버리면 그대로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빙글빙글 돌리는 것으로 대신 혼을 내고서 내려놓으면 토를 해버리는 것에 마미레 깜짝 놀라며 한 발짝 물러난다.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자업자득, 학생들에게 손을 댄 벌이라고 해둘까. 이어 당신의 말을 듣고선 마미레 제 관자놀이를 짚으며 앓는 소리를 낸다. 제 생각보다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었다만. 그래도 말야. 한숨을 내쉬며 다가가 괜찮은지 당신을 살피며 말한다.
"...꽃길만 가득하지는 않을기라. 뭐 흙한톨 묻지 않구로 한다, 그런 이야기는 몬혀야. 하지마는... 니가 사는 데 이유가 없다 느낄때, 이유를 찾구로 도와줄 수는 있어야."
"내는 참으로 수수한 아라가꼬, 뭐 게임기, 화려한 집, 떵떵거리믄서 살 돈. 그거를 약속하기는 어려버야. 그리고... 이루기 어려븐 꿈을 약속할 만치 염치가 없지도 안하고. 하지마는..."
"니가 더 행복할 수 있구로. 도와주는... 그 최소한도는. 약속해줄수 있어야."
손을 잡아온다. 정말 연인으로써는 꽤나 꼴사나운 말이 아닐까. 하지만... 그정도가 자신으로써는 최선이다. 약속을 어기고 싶지도 않고, 그저 진심으로만 상대하는...바보같은. 수수한. 그런 우마무스메가 당신이 연인으로 맞은 우마무스메라고. 당신에게 이야기를 해오는 것이다.
사실 그냥 넘어갈 일들이란 없는 것이고, 타인의 상처에 공감하지 못할 정도로 세상은 무관심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당신 역시 좋은 사람이기에, 주변에도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을 두고서 착한 사람이라 하는 당신의 말에 마미레는 그저 옅게 웃어만 보인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하며 삼켜버린 뒷말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부럽다는 말에 마미레는 시선을 발치로 살짝 내리 깐다.
"나라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냐."
트랙에 설 때, 최선을 다해서 달린다 하여도, 내 결과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이고. 그러니 그 결과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마음을 먹어도, 마음속에 조금이나마 남은 불안의 감정은 부풀고 부풀어 올라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곤 하는 것인데. 그때마다 트랙에 서는 것이 싫어지지만, 그래도 그곳에 즐거운 순간이 있기에. 미칠 듯이 달리는 것만 생각하며, 미래의 순간을 상상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라.
"나도 아직 현실에 타협하고 하는 어른이 아냐. 결과를 생각하면 절벽에 떨어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어." 그렇지만..... 포기할 수는 없잖아. 달리는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생각 안 해도 되니까. 그저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