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한 거냐는 물음에는 입을 다물었다. 아니 아무리 나라도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기엔 좀 마음이 아프달까. 좀 뭔가 나쁜 일을 했다는 자각은 아주 살짝 있기는 하니까... 근데 상대방이 먼저 도발했으니까 그쪽이 더 잘못한거 아닌지... 온갖 생각만 되풀이하던 머리를 백지로 만들어버린건 낮지만 분명하게 들리는 두 음절이었다.
"윽...!"
등골이 오싹하다는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은 감각이 덮친다. 위험해. 도망가야한다. 하지만 어디로? 여긴 옥상이야. 아무리 나라도 이대로 그냥 뛰어내리면 진짜 크게 다친다. 그렇다고 천천히 펜스를 넘어 벽타기로 도망친다고? 아무리 힘에서 밀리는 히또미미라지만, 우마그린이 그대로 날 보내줄리는 없다 잡거나 뭐 다른 사람들을 부르거나 아무튼 뭔가 하겠지? 어? 그럼 난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하지??? 뒤에서 따라잡히는 감각은 싫어, 하지만 이렇게 정면에서 무언가와 대치한다는 감각도 정말, 무섭고...싫다. 거기에, 평소에는 어떤 말을 해도 웃으면서 받아주던 상대가 처음으로 보여주는 낯선 얼굴이, 낯선 목소리가... ....무섭다.
"그, 그치만....." "상대가 먼저... 도발해서.. 무심코 해버린걸...... 내, 내가 하긴 했지만 원인 제공은 저쪽이고......"
더듬더듬, 어떻게든 말을 꺼내보지만... 이걸 믿어줄지는 모르겠다. 그치만 사실인데. 저쪽이 더 잘못한거라고!
윽, 하는 소리가 들리자 조금 너무 무거웠나 싶어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했으나. 이어서 들려오는 말에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상대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말, 솔직히 말하면 믿어주고는 싶었으나.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누가 원인을 제공했느냐가 아니었다, 잘못했다간 정말 큰 일로 번질 문제였다. 물론 지금도 전혀 작은 사안은 아니지만. 여전히 입가를 가린 채 메이사가 아니라 다른 장소, 정확히는 발 밑만 빤히 쳐다보던 다이고는, 조금 답답한 듯 셔츠의 목 부분을 잡아당겼다.
"...지난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잖아, 이건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야."
진심으로, 지난 일을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다 나았고, 메이사 본인도 미안해하면서 장소를 옮길 때마다 도와줬으니까. 그래서 결국 내 쪽에서 잘못한 게 있어서 일이 났거니 하고 넘어갔건만. 다이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면서 메이사를 쳐다보았다.
"혹시, 평소에도 힘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한 거야?"
지금까지 전혀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만큼, 이런 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답답했다. 혹시 상처 받지나 않을까. 그러면서도, 발이 나가는 건 악벽이라고 볼 수도 있는 만큼, 나중에 더 큰 일이 터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해결하고 싶기도 했다.
음 귀여워. 메스가키는 귀엽지. 아무한테나 그러지 않는다는 점이 좋아. 난 분명히 메스가키가 메가스키가 되려는 걸 보고 싶어서 객석에 앉았는데 반대가 되고 있어 크아악 비정기적으로 찾아올수도 아닐수도 있는 오늘의 산문입니다.
비를 맞으며 춤을 춘다는 건 알고 보면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을지도 몰라요. 비에 젖으면 춥고, 추우면 감기에 걸려버릴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내게 빗속에서 당신과 춤을 출 기회가 있다면. 당신이 내게 함께 춤춰줄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당신에게 손을 내밀겠죠. 결국 당신이 비에 젖어서 체온이 떨어지고, 결국 다음 날 기침을 하면서 이불 속에 누워 있더라도 당신의 손에 내 온기가 남아있길 바라면서.
온기를 잊지 않고 일어서게 된다면. 그 때는 내가 당신에게 손을 내밀며 말하게 해 주세요.
수업이 끝나고 트레이닝 시간까지 지나, 모두가 떠난 한적한 교실. 사미다레는 홀로 빈 교실 안에서 두꺼운 문제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동안 팀 부실에서 공부를 하나 싶더니 오늘은 웬일로 교실을 쓰고 있다. 부실은 편안하고 사람이 적어 편하다는 점에선 좋지만…… 역시 제노쨩이 너무 귀여워서 집중이 안 되지 뭔가. 그래서 오늘은 도중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미안, 제노쨩. 소홀한 건 오늘만이야. 다녀와서 간식 많이 줄 테니까……!) 이제 와 도서관에 가니 이미 자리는 만석이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찾은 교실은 생각보다 쾌적했다. 다만 너무 고요한 게 흠이라면 흠이랄 수는 있겠다. 길어진 해는 조금 늦어가는 시간에도 밝게 드리우지만, 학생들이 떠나 적막한 복도와 교실은 왠지 모를 으슥한 감상을 가져다 주어서…….
쫄보 특: 혼자서 잘 있다가 갑자기 무서운 상상함.
사미다레는 의식의 흐름에 섞여 돌연 펼쳐지는 공상을 막을 수 없었다. 한 번 그리 의식하고 나니 주변에 대한 불안한 기분은 점점 더해진다. 어, 자, 잠깐. 그러고 보니 왠지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그런 느낌 없었는데. 아니. 처음부터 잘못 알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언제부터? 아, 아니, 이것도 아니다. 그냥 착각일수도 있지 않은가. 사미다레는 책에 박혀 있던 시선을 들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려 했다. 돌아가는 고개가 어째 삐걱거리고 있다. 고개 돌리는 와중에도 <공포영화의 클리셰: 돌아보면 그 자리에 귀신이 얼굴 들이대고 있음> 따위의 생각들을 떠올리고 있었던 탓이다…….
역사가 그걸 증명하는거고!!! 달려나가면서도 조금씩 벌어지는 차이에 조금 격차를 느낄 뻔 했지만... 뭐 어떤가!!! 내가 찾아내면 그만인것을!!!
"코너를 이용해 도망쳤나..."
선택은 스스로 하는거라니... 마음에 드는 말이나 하고 말이야!!! 더더욱 가지고 싶어졌다!!! ...뭔가 떠오르는게 다섯군데 정도 있지만 다른건 확실히 아니고 답은 4번이나 5번중에 있는 것 같다... 분명 꼬리로 날 수 있을거야 그녀석은. 하지만 그것보다 확실한 방안이 있지
"네 이놈 초등부!!! 이 이상 나를 놀린다면 함무라비 법전에 의거해 지엄하게 벌을 내릴것이다!!! 혼나기 싫다면 썩 나오지 못할까!!!!"
그건... 진심으로 할 말이 없었다. 그때도 욱하는 마음에, 어릴 때부터 그랬던 버릇 그대로 다리를 휘둘러 버렸고- 그 덕분에 한동안 다이고는 반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어야 했으니. 미안한 마음에 이동할 때마다 도맡아서 도우긴 했지만, 그런다고 다 씻어낼 수 없었던 죄책감이 지금 또 슬그머니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꿀먹은 벙어리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슬쩍, 눈치를 살피듯 시선을 위로 올리자 그때, 이쪽을 보고 있는 눈이 시야에 들어온다. 어깨를 흠칫 떨고서 다시 시선을 내린다. 탁한 색의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다. 무서워, 무서워...
"——아,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힘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을 안 했다면 그건 거짓말이지만. 발로 찰 때 '일단 힘으로 때려눕히자'고 생각하고 한 적은 그다지 없었다. 너무 화가 나서, 감정이 날뛰어서, 저도 모르게 발로 차곤 했지만 그걸 정말로 의도한 적은... 물론 이번에 그 아저씨는 일부러 옆쪽 바닥을 걷어찬다던가, 살짝 그런 식으로 쓰긴 했지만... 직접 발로 찰때는 그저, 압도적인 분노라던가 충동이 더 컸으니까...
"화,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발이 먼저 나가서, 그런건데.." "나도 이렇게 될거라곤 생각 못했는걸.... 지, 진짜인걸...."
꼼지락거리던 손은 불안을 견디기 위해 체육복 앞을 꽉 붙잡는다. 지난 날의 죄책감이, 그리고 이번 일로 인한 죄책감이 가슴을 찌른다. 애써 별 일 아니라고, 죽지 않았으니 괜찮지 않냐고 하면서 외면하고 회피하던 사실이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눈 앞에 들이밀어지고—
"—우, 으.. 자, 잘못했어요오... 그치만, 그치마안 나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탁한 색이 점차 흐려지고, 이윽고 흘러넘치자 조금 맑아졌다가, 다시 흐리게 번지기를 반복했다. 맑은 날씨와 반대로 내 아래쪽 바닥은 색이 진한 원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빗방울처럼 눈물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