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케이크 한 판을 그 자리에서 비우면 난 내일부터 지옥의 부트캠프를 가야 할걸... 아니, 게다가 이거 그냥 케이크도 아니잖아. 너무 달아서 살찌기도 전에 달아서 죽을지도.. 식겁한 얼굴을 하고 순식간에 간신배 모드가 되어 두 손을 맞잡고 헤헤 웃는다. 아...아니이... 안 먹어서 다행이다 진짜. 그러다 주방에서 음식이 나왔다는 외침이 들려 호다닥 가지러 갔다온다.
"자아, 늘 먹던 거 나왔습니다~ 흐흠~ 그나저나 의외네. 내가 누굳가에게 그런 존재가 됐었다니."
스태미나 정식, 보너스는 초콜릿 칩을 그득 넣은 쿠키다. 이것도 내가 만들었지만 함정은 없다구요 아마? 음식을 스트라토 앞에 내려놓고 슬쩍 옆 테이블에 기대서 섰다. 뭐랄까, 의외다.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일 대상이 되었다니. 레이스에 적극적이지도 않고, 아직도 뭘 할지 어영부영하기만한 내가 말이지. 예상 외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진 않은 느낌.
브로콜리를 입에 넣고, 입을 꼭 다문채 씹어도 이 우적거리는 소리가 크게 퍼지니, 영 먹는 맛이 나지 않았다. 누가 들으면 경박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 식사 매너를 지적받는건 최악인데. 좀 천천히 씹어야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느릿하게 브로콜리를 먹고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와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누구더라? 내 이름을 아는 사람 많이 없는데. 잠시 너를 빤히 쳐다보다가, 아, 하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소리내었다. 그때 모의 레이스에서 쓴 패배를 맛보여준 그 우마무스메잖아. 그때 나는 분명히, 혼자 있게 해달라고 성질을 부리고선, 말에 대답도 안하고 훈련을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살갑게 말을 걸어오는게, 자신으로썬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싸움이라도 걸려고 온 건가? 치고 박는건 사양인데. 수업도 아직 남았고, 정학이라도 먹어 레이스에 못 나가게 되는 멍청한 일 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특히 어이없게 부상이라도 입어 훈련에 지장이 간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 브로콜리를 몇번 더,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신경써서 씹다가, 꿀꺽 삼키고는 얘기하기 시작했다.
"안녕, 분명히 그때 레이스에서 봤던... 언그레이 양 이던가? 이름이 틀렸다면 미안해, 기억력이 좀 떨어져서."
애써 생긋, 웃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땐 미안했어. 고작 레이스에서 졌다고 화를 내다니, 한심하지? 기분이 나빴다면 정말 미안. 용서해줬으면 좋겠는데... 아, 뭐 원하는거라도 있으면 되도록 들어줄테니까."
일단은 조금, 저자세로 나갈까. ...이런 생각을 하는 음습한 내가 싫어, 나는 조금 쓰게 웃었다.
아슬아슬한 경합이 이어진다. 예민하게 곤두선 감각을 통해 뒤따르는 기척들이 선연하게 느껴진다. 금방이라도 따라잡힐 것만 같은 불안에도 불구하고, 떨쳐낼 수가 없다. 달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보아도 기적처럼 근성이 살아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초조한 질주였음에도, 끝내 선두를 유지한 채 들어올 수 있었다. 골인 지점을 지나며 서서히 속도를 늦춘다. 경기가 끝이 난 후에야 바짝 힘 들어가 있던 목덜미에 힘이 빠진다. 사미다레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덥수룩하게 내려온 머리카락을 치워 넘겼다. 포스터를 볼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음, 그, 긴장감이 들어서…… 좋았다고 해야 할까요."
레이스에 대한 소감은 뭐랄까. 막 진력을 다했기 때문인지 명확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았다. 감각으로는 선명하게 느껴지는 이 기분을 명확하게 표현하기가 힘들다. 사미다레는 아쉬운대로 그렇게 대답하고는 언그레이를 바라보았다.
"언그레이 씨도 대단하셨으니까요……."
특히 초반에는 거의 나란히 붙다시피 했었지. 그 뒤에도 무섭게 따라오셨고. 이겼음에도 마냥 마음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대답하며 끄덕이는 고갯짓이 조금은 무거웠을까.
마음이 앞선건가... 스퍼트를 위해 힘을 준것이 독이 되어버렸다. 너무 깊게 박힌 오른발은 되려 균형을 잃게 만들었고 되려 실속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었다. 실속을 회복시키기 위해 발을 내딛은 것은 더 안좋은 판단이었나. 결국은 원래의 속도를 회복하지 못하고 4착으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다음은!!!! 없다!!!"
울분에 못이겨 소리를 지른다. ...한번 정도는 승리의 미주에 취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설렁설렁 걸어오는 밤색머리의 우마무스메는 크기도 그렇게 크지 않아서 그렇게 협박하려 오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물론 이 139cm(쩜육붙이라고)의 작은 우마무스메를 보고도 놀라는 우마무스메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어린 녀석이라 보는 것이 꽤 자주 있던 일이였다. 벙찐 모습을 잠시 지켜본다. 음, 한달이 지나기는 했으니 기억을 못하는 것도 어쩔수 없는 일이려나, 하면서 자기 소개를 다시하려던 와중에 당신이 이름을 불러준다.
"어, 나니와서 온 우마무스메, 언그레이 데이즈. 전에 그 미즈호 언냐랑 이짜 토레나랑 청문횐가 했을때도 만났지 않았나."
그때 마지막에 와서 갑자기 말을 하던 것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기에, 다시금 이야기를 하지만 거기서 자신의 존재감은 없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다.
"아, 전혀 한심안혀야. 우마무스메므는 승부욕 있는거이 당연한거 아이가. 이기므는 즐겁고 지므는 분한기 당연한기제. 이미 용서한지 오래여, 오래. 오히려 열심히 노력허고 있는거 보이는구마."
당신의 식도락을 가르키며 어깨를 으쓱인다.
"아, 옆에 잠시 앉아도 되제? 한 10분만 얘기하다 내도 식당 가야허고 말이제."
정말로 신경쓰지 않는듯 손을 살래살래 쳐가면서 원하는건 없다고 말하고 있는 밤색머리의 우마무스메였다.
>>948 "뭐얼, 너짜의 그 폭발력은 진짜 대단하지 않았나. 근디 확실히 초반에 거의 쌍둥이 마냥 똑같이 간거는 아직도 의아허기는 혀야. 내가 니랑 같이 달리는게 많아사서 이래 된길지 확인은 혀봐야겄구마. 헌디 이번에 끝에 심이 제대로 안나왔제. 그므는 중반의 스퍼트를 조금 오래 끄는것도 괘아는 방법이 아일까 싶고..."
자신이 본 이번 레이스의 데이터로 벌써부터 스와브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는 언그레이 데이즈.
이것만큼은 진심인 사과였다. 그때 꽤 재밌게 이야기 나눴는데, 잊어버렸네. 이런 습관, 정말 안 좋은데. 사실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싶어서 주는게 아니었다. 불필요한 트러블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쁜 생각을 마음속으로 주절거리며 혼자 생각하는것도 그만두자. 나는 천천히 당신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보니까, 이짜 토레나라.
"...야나기하라 트레이너 말하는거야? 이짜라니, 꽤 신기하게 부르네. 꼭 아기같아서 귀여운걸."
작게 웃으면서 네게 이야기했다.
"...그런가. 용서해줘서 고마워."
나였다면 너처럼 용서 못해줬을테니까.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리다가, 살짝 옆쪽으로 비키며 네가 앉을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리고는, 옆에 둔 가방 안으로 손을 넣어, 도시락 통을 다시 꺼내었다.
"괜찮으면 먹을래? 별로 맛은 없지만 몸엔 좋은데."
오후에 먹을것 말고도, 저녁에 먹을 것 까지 미리 만들어왔으니까. 하나를 줘도 큰 무리는 되지 않았다. 저녁도 여기서 대충 먹고 트레이닝을 하려고 했는데, 집에 들러서 저녁을 먹고 다시 워밍업 겸 학원으로 돌아오는것도 크게 나쁘진 않았으니, 전혀 문제될 것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