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새해 참배를 마쳤다면, 보통은 이미 들렀던 신사에 다시 가는 수고를 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다른 사람과 한 번 더 방문한다든지, 신사에 돈을 더 기부하고 싶다든지 하는 이유가 있는 경우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다시 안 갈 거다. 참을 수 있다! 사미다레는 저 자신에게 하는 다짐 다시금 결연하게 되새겼다. 신사 구경을 하다가 기념품 가게에서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인형을 보아 버린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돈은 모자라지 않았지만 공간이 문제였다. 오늘처럼 인형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사 모으다 보니 어느샌가 그렇게 되어서…… 사미다레의 방 안은 이미 이런저런 깜찍한 장식품들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은 크게 나무라지 않으셨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제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그래서 사미다레는 마음 굳게 먹고, 눈도 꾹 감은 채 뒤돌아 그대로 신사를 내려갔다. 그것이 약 하루하고도 반나절 전의 일이었다. 소비 욕구가 치솟을 때엔 그 물건이 꼭 필요한 것인지 고민하고 일단은 참은 뒤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생각해 보라고들 한다. 물건이 보이지 않고 거리까지 멀어진다면 원하는 마음도 금방 사그라들 것이라는, 자제심을 불러 일으키는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신사를 떠나고 나서도 욕망이 건재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니 오히려 더 의식하게 되는 것도 같고……. 그리 한탄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사미다레는 이미 아카미 신사의 기념품 가게 앞에 서 있었다. 그렇다. 결국 욕망에 져 버렸다. 자제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실망감이 잠시 들었지만, 원하던 물건이 손 안에 들어온다는 기대감에 그것 또한 곧 까맣게 잊어버렸다. 사미다레는 그렇게 기대감에 상기된 얼굴로 기념품 가게에 들어섰다. ……그리고 곧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나올 수밖에 없었다.
벌써 다 팔렸다고. 생각하느라 시간을 너무 끌어버렸다…….
울적한 나머지 가게 문 앞에서 비킬 생각도 못하고 그저 우두커니 서 있다. 통행 방해라는 사실을 신경쓰지 못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아카미 신사를 다시 한번 찾게 된 것은, 느긋하게 컨디션을 끌어올리고자 한 외출 때문이었다.
외출을 나선다고 하면, 트레이닝과 인연이 없는 곳으로 가는게 좋았다. 눈 앞에 트랙이 아른거리거나, 뛸만 하겠는데? 같은 생각이 든다면 중압감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겨울에 시내로 가는것도 애매했다. 가서 뭘 할까? 오락실 같은 곳은 인연이 없었고, 뭘 먹으러 다니기에도 조금 애매했다. 다 나아서 내일부터 트레이닝을 해도 괜찮다고 하지만, 굳이 위에 부담을 줘서 괜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 겨울에 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낚시를 나갔다가 또 감기에 걸린다면, 말로 다 이루지 못할 만큼 멍청한 일이리라.
'뭐, 좋은 생각이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신사는 제법 괜찮은 곳이었다. 적당히 괜찮은 공기, 적당한 인파. 느긋하게 산책하다가 배가 고파지면 적당히 뭔갈 먹어도 좋았으니까. 나는 그렇게 신사를 조금 거닐었다. 따듯한 옷을 입고오길 잘했다. 안쪽이 양털로 마감되어, 소매 끝자락과 카라 부분에 양털이 드러난 크롭 가죽 재킷, 흰색 터틀넥 스웨터와 기모가 들어간 따듯한 블랙 진. 운동화 대신 검은 단화를 신은것은, 오늘은 크게 뛰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대변한것 같았다. 입을 가리고 조금 하품하다가, 기왕 온 거 기념품이라도 사갈까 싶어 가게쪽으로 향한다.
"..."
기념품 가게 쪽으로 향하자, 보인것은 진한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우마무스메. 신장이 꽤 컸다. 나도 작은 키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스트라토 주법을 사용하는데, 역시 이정도 사이즈가 일반적으로 어울리는 주법인걸까? 체격도 다부진게, 이 아이가 마군을 형성해서 길을 막는다면 빠져나갈수 없을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이렇게, 기념품 가게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은 것 처럼. ...조금 무례한 생각일까. 보자마자 레이스 상대라는 가정을 하고 체크하는거, 별로 좋지 않은 버릇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