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어……. 사미다레는 차라리 제 이마를 탁 치고 기절해 버리고 싶었다. 그러지 못해 제 양 뺨 손으로 감싸며 날뛰는 마음 진정시킬 뿐이다. 당장 실행에 옮기지 않은 것은 그 편이 나중엔 더 부끄러울 거라 판단할 수 있었던 한 줌의 이성 덕택이었다. 제 주인의 수치는 모른다는 양 다리는 이제 말짱해져서 괜히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반은 우마무스메고 반은 물고기라면 그건 뭐라고 불러야 할까? 마어(馬魚)? ……아니, 이게 아니지!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거고, 계속 이 민망한 자세로 대화를 할 수는 없었기에 사미다레는 다리에 묻은 모래를 털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런데 이 우마무스메, 키가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지?
"아, 혹시… 트레이닝에 방해가 됐을까요……."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것 보았고, 츠나센 이야기부터 나왔으니 상대도 아마 츠나센 학생일 테다. 꼬리에 범벅이 된 모래를 탈탈 털며 슬그머니 눈치 보던 중이었는데. 이어지는 이야기에 사고가 멈추고 말았다. 아하, 성함이 언그레이 데이즈라고 하는구나.
…언그레이? 순간 주마등같은 기억이 팟 스친다. 코우의 팀이 되며 초대된 메신저에서 본 익숙한 이름. 그런 멤버가 있다며 간략하게나마 소개도 받기는 했었다. 그러니까 이건, 앞으로도 자주 만나게 될 사람과의 첫만남을 이런 식으로 해 버렸다는 뜻이다!
"저, 저는. ."
사미다레는 이제 그냥 죽고 싶어졌다. 회상하자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 보니 아까 그건 분명 주마등이 맞았으리라……. 그러나 한창 달릴 우마무스메의 앞날은 아직 창창했으므로, 사미다레는 제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붙잡고 구불구불 굽이지는 머리카락에 뺨을 파묻었을 뿐이다. 차마 눈 마주치지 못해 시선도 아래로 향했다. 아, 그런데 아래로 눈 돌리자 도리어 눈이 더 잘 마주치는 듯해 위로 바꿨다.
코우는 여전히 고개를 떨군 채, 시선을 황망히 옮겨댄다. 진심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진심이겠지 하지만 상대는 그런 걸 묻는 게 아니다. 애초에 질문하려는 것조차 아니다.
"난..."
무어라 말하려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정곡을 찔린 기분.
"...나한테도... 책임이 있으니까..."
더듬더듬 이어나가는 목소리에 확신이 없다. 양친은 묵묵부답, 방관만 했을 뿐 그래서 그녀를 바른 길로 돌려놓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거의 강박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하지만 누나의 방식은 잘못되었다고, 아무리 설득하려 애를 써봐도, 오히려 더 큰 갈동을 빚을 뿐이었다. 그게 책임이라면 책임이겠지 하지만 이 아이는, 오늘 처음 본 사람이 대신 사과하는 걸 받아주고 싶어할까?
뭐어, 사실 인어공주라고 하는 것도 조금의 장난기가 포함된 말이였기에, 살짝 웃고는 일어나는것을 도와... 주려고 했는데 어데까지 가는겨, 이라므는 잡아 일으켜주려 했던 내가 곤란하잖여.
"아니 뭐, 방해는 아이라, 기양 의외라 가꼬 다가온기제. 사미다레... 아, 니가 그 토레나가 말하던 신입 아인교... 랄까 하늘에 뭐 있는교? 와 위를 보는긴데. 내 키 작다고 안보인다 카는기가, 어이."
그런게 아닌 건 알지만, 역시 키 작은 입장에서는 조금 불쾌한 행동이였기에.
"거따가 센세라 부르는기가... 이건 또 재마진 아구마. 뭐어, 너무 심한 장난만 안 치므는 괘않응게 앞으로 잘 지내보자꼬. 내는 여 해변가서 종종 연습하고는 허이, 뭐 만나고 싶으므는 여 오므는 되고... 아, 뭐하는 김에 연락처도 교환해두제이. 전화는 몬 받을 수도 있응게 전화 안 받으므는 문자주그라."
"책임인가요. 됐어요. 야나기하라 트레이너는 유능한 트레이너예요. 그리고 제가 내쳐진건 확실히 그 트레이닝 메뉴에 못 따라갔으니까고."
작게 한숨 쉬더니 속사포로 말 뱉어내듯 말했다. 그리 생각해야 편했다. 순전히 제가 그 트레이닝 메뉴에 못 따라갔고, 그래서 맞는 말을 들었을 뿐이며, 스프린터스 스테이크스에서도 14착이라는 멍청하고도 형편없는 기록을 내었고, 그렇기 때문에 쓸모 없는 우마무스메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은 채로 트레이너에게 내쳐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편했다. 과거는 과거이므로 굳이 꺼내고 싶은 것이 아니었던 건 이쪽도 매한가지였다.
"사과하지 마세요. 의무도 아니고~. …솔직히 부담스럽달까."
손 휘적이며 애써 아하하, 멋쩍게 웃어보였다. 꼴사납게 관련이 있을 뿐인 인물에게 화풀이라도 하는 꼴이 멋있어 보이지 않았으니까.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