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버렸다. 이게 빈센트의 삶이었다. 일이 힘들면 어쩔 건가. 돈 버는 일이 힘든 거고, 힘들어서 못 견디겠으면 때려치고 쉬어야지. 이것도 그랬다. 헌터 일이 위험하면 어쩔 건가. 헌터 일이 위험한거고, 헌터 일 힘들어서 못해먹겠으면 특별반 들어가기 전에 진작에 손 씻고 범죄이력 세탁하고 때려쳤어야지. 그러지 못한 죄인지 업보인지, 빈센트는 이 위험한 도서관에 다시 들어왔고...
'좋은 거래를 하나 하죠. 책 정리만큼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 확실한 의뢰를요.'
...라면서, 궤종시계는 빈센트와 여선을 붙여서 의뢰를 보낸 것이다. 이번에는... 책을 읽다가 미쳐버리고, 이면에 잡아먹힌 광인을 잡아 족치라는 것 같은데... 빈센트는 의뢰 설명을 떠올리고는, 함께 전투 지역 직전까지 온 여선을 보며 말하는 것이다.
"의뢰 설명만 들어도 그 호기심을 여기서는 접어야 할 이유를 알 것 같지 않나요. 여선 씨?" //1
빈센트는 그러헥 이야기하면서, 여선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아니, 생각해보니 빈센트 스스로가 남의 진정성이나 남이 말 생각 없이 내뱉는 걸 뭐라 할 자격이 되나 싶기도 했다. 빈센트가 그동안 죽인다고 말하길래 기겁한 사람이 몇이었으며, 그걸 또 즐겼던 빈센트의 성정은 무엇인가. 빈센트는 여선을 보면서 뭐라 말하려다가, 적어도 남의 목숨이 아닌 자기 목숨을 가지고 농담을 한다는 점에서 여선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면서 한숨을 쉰다.
"아니, 아닙니다."
빈센트는 그렇게만 말하고, 여선의 물음에 의뢰 설명을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그 말을 눈을 감고, 다시 떠올려서, 그대로 말한다.
<당신들이 온 세계의 어떤 시대에서는 현상 수배자의 얼굴과 신상명세, 보상금을 종이에 그려서 넣었다고도 하는군요. 하지만 우리 세계의 종이와 활자로 구성된 정보가 당신들의 정신에 허용 가능한 해악만 끼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에 음성으로 대신합니다. 이면 숭배자, ND8712!-827831!U8^& 서재에서 발견. 중요 정보의 추가적인 무단 열람 시도를 제지하시오. 저지 대상의 생사 여부는 상관없습니다.>
"그렇죠~ 안됐다. 정도가 아니지만 굉장히 먼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읽으려고 하면 경고가 팍 올 수도 있으니까 더 그런 걸지도..." 사실.. 여선의 진정성은 비교적 낮은 수치일 것 같습니다. 그야 기본적으로 무관심을 관심으로 돌리려고 꽤 노력하는데 심력이좀 쓰이나보죠?
"...?" 뭘 말하려 했냐는 듯 빈센트를 바라보긴하지만 추가적인 질문은 없이 외운것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럼 그쪽으로 가자는 듯 발걸음을 하나 옮겼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알고 계시죠..?" 라고 묻네요. 하지만 여선이 내디딘 한발짝이 그쪽으로 가는 정확한 발걸음이긴 할 겁니다.
"그냥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여기서 뭔가를 읽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뭔가 다른 걸 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다. 궤종시계 양반들한테 계속 귀찮게 질문을 한다던지, 아니면 뜨개질 도구라도 가져와서 책장을 꾸밀 장식이라도 뜬다던지요."
...라고 말하지만, 어쨌든 오늘 받은 의뢰는 장식 의뢰가 아니라 이면의 숭배자인지 삼발이인지를 잡는 의뢰다. 빈센트는 '어디로 가는지도 알고 계시죠...?'라는 말에, 어깨를 으쓱이더니 궤종시계가 이어준 말을 그대로 꺼내 놓는다. 그렇게 말하면 어딨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따지니, 궤종시계는 이런 말을 한 것이었다,
<물론 이해합니다! 고작 3차원까지만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4차원까지만 살며, 11차원도 이론적인 수준에서만 논의하고 있는 지구 세계의 차원 이해 수준으로는 거기까지 한번에 닿기가 어렵겠죠. 그러니 말씀드리자면, ND8712!는 여기서 서쪽에 있으며, 나머지 827831!U8^&는... 여러분의 2차원적 시각과 3차원적 행동 반경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테니, 제가 계속해서 그 위치까지 갈 수 있도록 도서관 배치를 조금씩 바꾸겠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냥 서쪽으로 무작정 걸어가시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라는군요.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하면 덧나냐는 이야기는 안 했습니다. 이 게이트 평균레벨이 108이라 하니 입이 다물어지더군요."
...라고 말하면서, 빈센트는 걸어간다. 그리고... 강산과 함께 왔을 때의 그 끔찍한 느낌이 드는 순간, 멈춰서더니 여선을 부른다.
느낌 확실하네요, 라며 가리킨 곳으로, 뭔가 알 수 없는 형체가 슬쩍 지나갔다. 책장과 책상 사이로, 그리고 책들과 책들 사이로. 빈센트는 정말로 힘든 싸움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한숨을 쉬었다. 이 책장은 어떻게 하지? 좀 파괴해도 되나? 아니, 그래도 될 리가 있나. 빈센트는 이제 와서 자기에게 물어봐야 아무 의미도 없는 고민을 되뇌이면서... 다시, 그 때의 목소리를 듣는다.
<오기 싫다면서, 다시 여기 왔군.>
"...그 목소립니다. 지난번에 들었던 거요."
<그렇다면, 이유는 뭘까?>
그리고... 빈센트의 귀에만 들렸을 목소리는, 형체를 얻어서... 둘 앞에 선다. 그리고 빈센트는, 눈 앞에 서 있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온 몸에 알아볼 수 없는 글자를 새긴... 빈센트였다. 물론, 빈센트는 여선이 저것과 자신을 헷갈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빈센트는 온 몸에 문신을 하지도 않았고, 손발 말단이 저렇게 검게 물들지도 않았으며, 저런 옷의 최소한의 기능조차도 못 갖춘 것 같은 넝마를 입지도 않았고, 결정적으로... 빈센트가 눈에 괴물을 품었다고 욕은 많이 먹었어도, 눈구멍에 눈알 대신 수십개의 괴물이 들어있지는 않았다. 빈센트는 여선을 쿡쿡 찌르며 말한다.
빈센트는 중첩했던 마도를 이면의 자신에게 쏘아 버린다. 수천개의 가지들이 자라나서 엮인 그물망이 이면의 빈센트를 향해 날아가고, 이면의 빈센트는 손을 위로 휘저어 흙벽을 만든다. 하지만... 그 그물망은 흙을 찌르고 나가 이면의 빈센트까지 찔러버린다. 하지만 둘 다 알고 있듯, 이건 의미가 없었다.
<꽤 하는군.>
...이라는 말과 함께, 이면의 빈센트는 자신을 찌른 그물망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그리고 그물망이 이면의 공포에 물들고, 그 공포는 그물망을 타고 빈센트와 여선 바로 코앞까지 닿으려 한다. 빈센트는 그물망을 불태워버리면서,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한다.
"젠장. 생각 좀 하자 생각... 여선 씨! 뭐라도 써보란 말입니다! 바디 트레멀이건! 하이퍼텐션이건!"
"솔직히 빈센트씨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얼씨구나 하면서 잡아갈 것 같은걸요!" 아니다 이녀석아. 걱정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여선. 근경련이나 색전증이라는 말에 그걸 왜 일으켜요.. 라는 말을 할 것같은 표정으로 빈센트를 쳐다봅니다. 여선이는 치료가 주기술이지 그런거 만드는 기술이 없어요(?)
"어. 분석을 돌려본 결과 분석 썼다가는 망할 것 같은데욮" 물론 바디 트레멀을 써보려고 시도는 합니다.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지만요. 저게 뭐 디버프.. 쪽이라면 ★최초 일상에서 제네바 선언쓰기 같은 걸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긴 하지만?
그물망을 불태우면서, 이면의 어둠과 빈센트의 불이 만난다. 그리고... 불마저 이면에 잠식되어, 우리가 불 하면 아는 흔한 그 색깔이 아닌... 우리가 알 수 없던, 이 세상의 그 어떤 단어로도 정의할 수 없는, 아니, 빈센트의 모든 것을 걸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알 수 없는 색채가 불꽃을 덧입힌다. 그리고, 이면의 빈센트는 그 불을 보면서 미친 듯이 웃었다.
<빈센트! 알잖아. 넌 불을 참 좋아했던 거. 그럼 당연하지 않나? 내가 가장 잘 쓰는 것도 말이야...>
"아, 제기랄."
이면의 빈센트가 손을 저어 이면의 불을 여선과 빈센트 쪽으로 쏘자, 빈센트는 두꺼운 얼음벽을 만든다. 하지만 그 이면의 불꽃은, 우리가 불꽃 하면 아는 그 정의를 한참 벗어나서, 빈센트가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뇌가 불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빈센트는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애써 '느낌'일 뿐이라 무시하려고 애쓰면서, 여선에게 말한다.
"여선 씨... 약점 간파... 그걸 꼭... 쓰십쇼... 제기랄..." //11 저게 뭐 디버프.. 쪽이라면 ★최초 일상에서 제네바 선언쓰기 같은 걸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긴 하지만?
빈센트는 여유를 잃고, 힘겹게 타박한다. 지금 빈센트는 다 죽어갈 것 같은 마당에, 여선은 죽어도 혼자 빠져나갈 방법이라도 있는 것마냥 태평하다. 여선이 메리 교관 수준의 뒷배를 가진 게 아닌 이상에야. 그리고 빈센트가 여선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정도의 뒷배나 믿을 구석이 없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었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쿨럭!"
얼음은 점점 녹고, 저 기이한 불은 가까워지고,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빈센트의 말단은 점점 검게 변한다. 아무래도, 여선도 약점 간파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 약점 파악에 오래 걸리는 모양이었다. 남은 시간 5초, 그마저도 잘 쳐준 수준. 빈센트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걸 해보기로 한다. 빈센트는 코피가 강물처럼 흐르는 참담한 꼴로 여선을 바라본 채 말한다.
"미리 미안합니다."
빈센트는 해보려다가,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는 이론상 결론에 도달해 하지 않았던 짓을 해보기로 한다. 지금 당장은, 저 괴물 같은 놈한테서 거리를 벌리는 게 중요했으니까. 빈센트는 저 놈의 불에서, 화학 에너지에서 전기를 뽑아내는 느낌으로 전기 발전을 시도하고...
펑!
간결한 소리와 함께 빈센트와 여선 쪽으로 폭압이 밀려와 날아간다.
//13 대충 이 다음 답레에서, 빈센트가 사경 헤매다가 여선의 천운을 덤으로 받아서 겨우 살아남고, 그 다음은 응급치료로 갈지도요?
"폭압..?" 아니 그런 걸 지금. 같은 소리를 하기 전에 일단 그게 실수인지 감은 안오니까 괜찬ㅍ겠지 싶을지도.
폭압이 밀려와 날아갈 것 같은 여선입니다만. 빈센트를 깔아눕히며 여선은 별 피해가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남을 방패로 쓰다니. 천운 이녀석이 일한건지 안 일한 건지.. 물론 여선의 천운이 빈센트도 조금 보호한 모양인지 데미지를 받긴 해도 약간 폭압이 퍼지다 만 곳으로 처음 날려져서 덜 데미지를 받은 걸지도 모릅니다.
"음.. 저 그. 이단 숭배자는 확인사살 되었을까요." 빈센트를 툭툭 건드리려 합니다. 의식유무를테스트 하는 건가봅니다.
빈센트는 멀리 날아갔고, 여선은 빈센트를 밟은 덕분에 좀 나았지만 멀리 날아간 건 매한가지였다. 빈센트는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온몸이 망가진 느낌에, 그리고,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제대로 느꼈다. 아니, 죽음의 공포라기보다는, 그보다도 더한 운명에 대한 공포일까? 빈센트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모든 것을(빈센트의 동료를 포함하여) 밀치고 오는 이면의 빈센트를 보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소한 여선에게는 '당장은' 관심이 없어서, 도망칠 틈은 있다는 것일까. 이대로 여기서 저 놈처럼 될 순 없다고 생각하며, 빈센트는 남은 망념을 그러모아 자살을 할 수 있는 마도를 시동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이 세상에서 자네를 제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뒤로 하고 도망치려 하면 쓰나,>
'마도 역분해'
빈센트가 피워내려던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불꽃은 허무하게 꺼지고, 빈센트는 위를 올려다본다. 이야, 저렇게 못생긴 걸 보니 진짜 이면이 무섭긴 한가보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든 끔찍한 공포를 회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면의 빈센트는, 그에게 그럴 틈도 주지 않고, 빈센트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자아, 알아서 제 명을 재촉한 이 멍청한 빈센트는 지금 어느 순간에서 왔을까? 다윈주의자? 시체칼날? 프리 핸드? 아니면 아예 다른 세계선인가? 잠깐 실례하지. 자네에게 가장 끔찍한 운명을 선물하려면, 자네가 누군지를 제일 잘 알아야 해서.>
...라고 말하며, 이면의 빈센트는 빈센트의 지갑을 뺏었다. 헌터 네트워크로 어지간한 건 다 되지만 혹시 몰라 신분증, 카드, 베로니카의 사진 같은 것을 넣어둔 지갑이었는데... 지갑을 뒤지던 이면의 빈센트는, 베로니카의 사진을 보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알 대신 괴물이 들어가 있고, 흔히 눈물 하면 생각하는 투명한 물이 아닌 검고 짙푸르고 걸쭉한 액체였지만, 그걸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온 몸이 꿀럭대기 시작하더니, 이내 형체를 잃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젠장. 이 놈을 사냥하려면 이거 말고 다른 몸을 가져와야 했어.>
...라고 말하며, 빈센트의 형태를 취했던 이면의 숭배자가 액화되어 바닥에 눌어붙었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킨 빈센트는 자기가 이겼나 고민했지만, 자신의 몸 상태를 다시금 깨닫고는, 코피를 흘리면서 뒤로 뻗어누워 한 마디를 겨우 말했다.
빈센트는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폭압을 거의 다 받아내면서 몸이 망가진 상태였는데, 폭압으로 내출혈이 일어난 폐에 부서진 갈비뼈까지 가세하면서 빈센트의 상태는, 그나마 말이라도 하던 상태에서 말조차 못하고, 죽어가는 이의 단말마만 내뱉는 수준이 되었다. 그야 당연했다. 빈센트는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빈센트는 자신을 진단하려는 여선의 팔소매를 붙잡은 채, 그녀를 똑바로 바라본다.
"윽... 커윽..."
...말은 못 했지만, 어쨌든 빈센트는 자신이 전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좀 있으면 난 진짜 죽는다'를 전하려고 했다. //17
>>251 네 딱 그 느낌입니다. 평행세계에서 베로니카를 구하자고 책을 펼친다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가 자신의 기억과 습관만 조금 남긴 채 이면의 노예가 되어버린 느낌... 이건 다키스트 던전에서 기이한 색채에 침식된 방앗간지기 몬스터가 아내의 유품을 보고 울면서 전투를 포기하고 자기 턴을 넘기는 장면을 보고 생각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