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나라"라고 이름 붙여진 게이트를 조사하라는 의뢰를 받은 빈센트의 감상이었다. 무슨 끔찍한 괴물이 나올까 조심스레 동료와 함께 들어갔던 빈센트는 10분 동안 극도로 경계하다가, 다음 24시간 동안은 1분 내로 전투 준비가 가능한 태세를 유지했고, 이제는 완전히 풀어졌다. 새들은 지저귀고, 꽃은 하얗고, 건물은... 중세를 다룬 판타지적인 음... 동화 같은 세상이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받아준다 하면, 그리고 그럴 수 있다면 그냥 이 세상에 눌러 살고 싶군요."
빈센트와 비슷하게 다소 나폴나폴한...그러나 차분한 색감의 서양풍 복장을 입은 강산이 말한다. 몇 번 안 입어본 복장이지만 강산도 어느정도 적응이 됐는지 느긋한 모습이다. 모든 게이트가 지구의 인류에게 적대적이진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경계를 전혀 안 하고 있던 것은 아니라서 항상 '백두'를 곁에 두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요? 그래도 전 역시 제 고국이 좋습니다."
빈센트를 보며 그렇게 답한다. 강산의 손에서 '여명의 개척자', 그 반지의 보석이 반짝이고 있었다. 게이트 안팎을 막론하고 요즘 그 반지를 꽤 자주 착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강산이었다.
"그쪽엔 아직 이뤄야 할 일들이 있잖아요. 은퇴 후 살 곳으로 추천하기엔 나쁘지 않을지도요?"
빈센트는 주변의 농민들을 보고 손을 흔든다.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공포를 잊은 듯, 언젠가 보답받을 것이 확실한 고단함에서만 보이는 보람이 가득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이곳 사람들은 친절했다. 처음에는 빈센트가 어디 먼 도시에서 온 불 뿜는 묘기쟁이인줄 알았고, 강산은 저 먼 동방에서 온 요술사인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들은 빈센트와 강산이 매우 강한 '마도사'이며... 다행히도 그들에게는 별 적의가 없고 오히려 우호의 뜻을 표함을 깨닫고 좋아했다.
"아, 여명의 개척자."
최근에 특별반에서 배포한 것이던가? 빈센트는 자기도 그것을 끼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강산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이죠. 저도 빼내야 할 베로니카가 있고,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죠. 그게 다 끝나면, 이런 데서 평생 살고 싶습니다."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함께 산책할 것을 권유한다.
"우리 임무는, 이 게이트를 최대한 조사하는 겁니다. 솔직히 말해, 뭐 적대는커녕 이상현상 하나 안 보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평화로운 것이 어쩌면 이 게이트의 이상현상일지도 모르죠. 그러니... 좀, 음, 걸으면서, '조사'하시겠습니까?"
빈센트가 손가락을 가리키는 곳에는 포도나무 사이를 따라 쭉 뻗은 자갈길이 보였다. //3 감사합니다!
강산 또한, 빈센트를 따라 농민들에게 다정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그는 가끔 게이트에 들어가면 '백두'를 들고 다녀도 이상해보이지 않도록 넌지시 '먼 나라에서 온 귀공자' 컨셉을 잡곤 했다. 그의 출신상 반 이상은 사실이기도 했고. 이번 게이트에서는 어찌됐든 곧 그들을 적대하지 않는 주민들을 보고 '굳이 안 그래도 되었던걸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형님도 받으셨습니까? 멋지기도 멋지지만 가끔 위력을 올려다준다든지 하니 나쁘지 않아요. 반지가 아닌 다른 쪽도 상당히 훌륭한 아이템인 듯 하더군요."
빈센트가 관심을 보인다면 강산은 길드 아이템들에 대해 그렇게 평할 것이다.
"사고만 안 치신다면...먼 훗날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요."
아무튼 그는 빈센트의 산책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나서서는, 주민들의 귀에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낮춰 말한다.
"어쩌면 저번의 페니뮬릭스 게이트나 몇몇 다른 게이트들처럼...여기 분들은 우호적이지만 다른 곳에는 적대적인 개체들이 있을 수도 있어요. 아직까지 그런 위험 요인들이 드러나지 않은 거라면 사전에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사고만 안 치신다면. 빈센트는 어깨를 으쓱인다. 강산도 충분히 알 것이다. 다른 이들처럼 그것에 대해 윤리적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일장연설을 하지 않는다뿐이지. 빈센트는 그냥 그런 것들만 하면 그만이었다. 중범죄자라고 태워죽이지 않기, 중범죄자라고 심문하는 과정에서 고문 같은 과격한 수단을 쓰지 않기, 그 외 기타등등. 누군가는 이게 그리도 어렵냐 하겠지만 빈센트의 과거가 그랬던 것을 어찌하겠는가.
빈센트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페니뮬릭스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페니뮬릭스 게이트는 정말로 위대한 사람의 역사가 있는 곳이었지만 동시에 시체 군대의 군세가 대단했던 곳이고... 벚꽃난성도 탈영병이며 하쿠진이며 아주 끔찍한 것들이 득시글거렸죠. 여기는..."
빈센트는 더 이야기하려다가, 고개를 젓는다.
"말이 씨가 된다고. 전 얘기 안 하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계속 걸어간다. 포도밭 사이에 난 길은 그들을 이제는 강가에 양 쪽으로 접한 노란 밀밭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빈센트는 밀밭 사이의 밭둑을 따라 먼저 내려간다. 밭의 경계를 삼으려고 인위적으로 만들었지만 그 후 몇번 밟지 않아서 그런지 발바닥이 부드럽게 땅으로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빈센트는 넘어져서 남의 농사를 망치는 일이 없도록 조심히 강가로 내려가면서, 특산물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페니뮬릭스 게이트의 생명밀, 같은 거 말씀이시군요."
생명밀. 정말로 기이한 작물이었다. 좋게 말하면 현대 지구의 식품공학도 어떤 부분에선 한 수 접어줘야 할 기적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한 괴생물체 같았다. 그래도 그것이 인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한 세상에서 새싹을 피우고 자라났다 시들어 죽는 삶을 반복하며 모두를 구원했다는 것은 다행이리라. 그런 좋게 말하면 신기하고, 나쁘게 말하면 기이한 무언가. 그런 거 하나쯤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그럼..."
말이 씨가 된다고, 그리고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 '특산물'이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빈센트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뭐. 특산물 있긴 있네요."
빈센트가 가리킨 하늘에는, 이마에 유니콘의 뿔, 날갯죽지에 독수리 날개가 달린 날아다니는 완두콩 깍지가 보였다. 빈센트는 어깨를 으쓱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