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의 맛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알코올의 쓴 맛과, 그 뒤에 오는 인위적인 단맛. 하지만 앞으로 먹을 음식에 비하면 차라리 이것만 먹으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굳이 안 반복해주셔도 되는데요..!! 현실도피...현실도피가 필요해..."
내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경사님의 반복에 한번, 그리고 옆테이블에 나온 말미잘에 또 한번 현실도피는 실패해버렸다. 비주얼은... 끔찍하다. 냄새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어느 것 하나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희망회로가 이젠 절망회로로 바뀌어버렸다. 심지어 경사님은 그걸 보고 입맛을 다시고 계신 것이었다... 조금 공포스러운 감정이 들 정도다.
"그건 절대 아니에요..! 그냥, 여긴 좀 무리라서... 생리적으로..."
또다시 농담. 이런 농담을 능글맞게 받아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사람과 나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부정하며 거리를 벌리는 것 뿐. 하지만 거리를 벌리는 것 역시 경사님에게 제지당한다. 한쪽 손과 발에 부드러운 감각이 느껴지자 몸을 움찔거리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정말로, 여우에게 목덜미를 물린 기분이다.
"아니, 아니라니까요..!? 임자있는 남자라니 절대 아닌데...으.."
결국 반쯤 강제로 두번째 잔을 든다. 아직 말미잘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멘탈이 너덜너덜한 상태.
"꼬리만 만지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그 때문인지, 아니면 고작 두잔 들어갔을 뿐인 술 때문인지 경사님께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