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594075> [현대판타지/육성] 영웅서가 2 - 137 :: 1001

◆c9lNRrMzaQ

2022-08-17 18:50:59 - 2022-08-20 14:12:08

0 ◆c9lNRrMzaQ (dNioheVkHA)

2022-08-17 (水) 18:50:59

시트어장 : situplay>1596301070>
사이트 : https://lwha1213.wixsite.com/hunter2
위키:
http://threadiki.80port.net/wiki/wiki.php/%EC%98%81%EC%9B%85%EC%84%9C%EA%B0%80%202
정산어장 : situplay>1596571072>
망념/도기코인 보유 현황 : https://www.evernote.com/shard/s551/sh/296a35c6-6b3f-4d19-826a-25be809b23c5/89d02d53c67326790779457f9fa987a8
웹박수 - https://docs.google.com/forms/d/1YcpoUKuCT2ROUzgVYHjNe_U3Usv73OGT-kvJmfolBxI/edit
토의장 - situplay>1596307070>

사자의 심장을 가진 영웅.
하늘의 운명을 타고난 왕.
누구라도 품을 수 있을 자애.

힘과 운명, 결속 중.
승리를 말하게 될 것은 무엇일까.

849 태식주 (gtEkwid0po)

2022-08-19 (불탄다..!) 22:59:42

ㅂㅂ

850 ◆c9lNRrMzaQ (DuYNO8Ec2Q)

2022-08-19 (불탄다..!) 23:04:10

디버프에 따라..? 일시적인 경우는 있지.
아니면 시체라던가.

851 태식주 (gtEkwid0po)

2022-08-19 (불탄다..!) 23:04:34

매력이 느낄게 없는 사물 같은건 0인거구나

852 토고주 (dKoY.Oi8b6)

2022-08-19 (불탄다..!) 23:16:28

그럼 매력이 마이너스인 사람은 시체보다 못하구나

853 오현주 (rKRvLLtTQs)

2022-08-19 (불탄다..!) 23:26:19

그냥 시체인듯 하다

854 라임주 (uqGSKL8lE.)

2022-08-19 (불탄다..!) 23:32:02

그것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그는 늘 그렇게 말했다. 지난날에 머물러 있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지만 소녀에게 있어 그날의 기억은 5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기까지

후회로 남아 깨어있을 때나 어렵사리 잠이 들었을 때나 한순간도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날 그의 말대로 따라나서겠다고 고집을 피우지 않았더라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한사코 그를 따라가겠다며 고집을 피운 소녀가 그를 따라 함께 들어서게 된 것은

어떤 '문'을 통해 연결된 진정 이 세상에 속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어둠이 내려앉은

불가침의 영역..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의 장막을 환하게 밝혀주던 불꽃...

그것은 거친 세상을 헤매는 이들의 어깨 위에 내려앉는 따스한 온기가 아닌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고 태우기 위해서 깊은 심연을 비집고 올라온 지옥의

화마였다.


과거 온 세상을 불태우고 긴 시간을 재, 그리고 얼음에 덮이게 했다는

전설 속의 검은 용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그것은 일렁이는 불빛을 말갛게 반사하는

검붉은 수정 같은 비늘과 강렬하게 이글거리는 호박색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그것이 자아내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열기와 빛, 그리고 굉음 속에서

그 괴물에게 맞서 싸우고 있는 한 사내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흐릿하게 보인다.

늘 자상한 목소리로 많은 이야기와 가르침을 들려주었던 사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고함을 쳤다.


-안돼 오지 마..!!"


-아저씨..! 아저씨....!!-


그것이 소녀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었다.

일순간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괴물은 괴성을 내지르며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뿜어내던

종전과 달리 애처롭게 메아리치는 울림을 남기며 소녀에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과 함께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져 빠르게 멀어져 갔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찰나의 순간 속에서 소녀가 맡은 냄새는 사그라드는 불꽃들에서

피어나는 재 냄새.. 소녀가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잿빛으로 바스러지며 그 끝에서

희미한 기억만을 감돌게 하는 쓸쓸한 냄새.. 그것은 소녀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떠오르게 하는 가장 슬픈 기억이 깃든 냄새이기도 했다.


그리고 점차 아득하게 느껴지는 소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짙은 청색으로 물든 밤 하늘 아래 여전히 황량함이 감도는 척박한 황무지에서도

점차 다시 우거지기 시작하는 녹음과 찌르르 울리는 풀벌레 소리와

이름 모를 짐승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쫑긋 솟은 소녀의 귀에 들어왔다.

여느 밤과 다르지 않은 그녀에게 더없이 익숙한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눈에 띄는 것, 귀에 들려오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가르쳐 주고 이끌어줄

유일한 사람은 이제 자신의 곁을 영영 떠나고 말았다는 현실과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을 상실감과 그리움이 그녀를 무겁게 짓눌렀다.

숯검댕이 묻어 새까맣게 된 뺨에 하얀 자국을 남기며 흘러내리는

눈물 한줄기와 함께 그녀는 자신에게 있어 더없이 소중한 사람과 더불어

어린 시절의 추억에 이별을 고하였다.


우우우 우우우


건물 전체를 감도는 구슬픈 바람 소리와 살짝 드러난 얼굴에 스며드는 냉기에

스르르 눈을 뜬 라임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 어느샌가 눈가에 맺혀 있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한동안 어두운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점차 눈이 익어가면서 천장에 배어있는 얼룩이 흡사 어떤 그림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하던 라임이 몸을 일으키자 푹 눌러쓰고 있던 후드가 뒤로 젖혀지며

붉은 기운이 감도는 연녹색 머리칼과 토끼를 방불케 하는 두 귀가 드러났다.


가급적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 홀로 돌아다니며 이따금씩 마주친 사람들 중에서

어쩌다 그녀의 귀를 본 사람들은 금방 적대적으로 돌변하거나 자신을 두려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형의 존재들에 의해 세상은 한차례 잿더미가 되었고

폐허가 된 세상을 떠돌거나 더디게나마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고자 복구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여전히 세상을 배회하는 이형의 존재들과 그들의 영향으로 변이한 토착 생물들도

큰 위협이 되고 있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이질적인 부분이 있다면

배척하고 배척받는 것이 인간사의 오랜 얼룩이 아니던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여주는 유일한 사람이 사라지고 나서

홀로 동떨어진 아이가 받아야 했던 차가운 시선과 두려움은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았지만 다음 날 머무르고 있던 건물을 떠나 다시 정처 없는 여정을

이어가려던 때 뜻하지 않은 어느 작은 만남과 이별은 그녀에게 있어

다시금 작은 불씨를 머금게 해주었다.



++++


-라임, 이걸 보렴 이게 무슨 풀인지 알고 있니?-


-몰라 이게 뭔데?-


-쓴 엉클풀이란다 껍질을 잘 벗겨내면 오래 단 맛을 즐기면서 씹을 수가 있어. 갈증과

허기를 달래는 데 있어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거란다.-


-와 정말?-


황폐한 건물들의 숲을 벗어나 다시 정처 없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라임은 예전 그 사람이

가르쳐준 풀 중 하나인 쓴엉쿨풀이 이곳저곳에 자라나 있는 것을 보며 어린 시절의

씁쓸한 추억을 떠올렸다. 달다는 이야기만 듣고 무작정 한 움큼 쥐어뜯은 풀들을 입에 한가득

넣어 씹고 나서 하루 종일 쓴맛이 감도는 탓에 단 것을 구해달라며 떼를 썼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웃음을 띠며 어디선가 구해온 사탕 한 주먹을 쥐여주던 아저씨..

잠시 발걸음을 멈춘 라임은 한동안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쓴엉쿨풀들을 바라보며

쓰면서도 달콤했던 어린 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띠었다.



855 오현주 (rKRvLLtTQs)

2022-08-19 (불탄다..!) 23:43:17

요즘 라임주가 글연성에 진심이로군

엉클풀... 왠지 뭔가 자주 들은 듯 한..?

857 라임주 (EpO3KKszgw)

2022-08-20 (파란날) 00:05:40

아저씨와의 추억이야

858 ◆c9lNRrMzaQ (wYNE8NUgUs)

2022-08-20 (파란날) 00:10:39

졸리군

859 오현주 (RupJhN954U)

2022-08-20 (파란날) 00:12:27

내 레스 누가 숨김했어 보는것도 안 되지롱
내 드립들이 모두 아가미됐어 젠장 누구냐고

860 태식주 (cGN6mw9x9E)

2022-08-20 (파란날) 00:12:46

여어

861 오현주 (RupJhN954U)

2022-08-20 (파란날) 00:16:53

>>858
캡하

>>860
그러는 너는 태식주인가

862 알렌주 (Nmf8IGdVS6)

2022-08-20 (파란날) 00:21:43

아임홈

863 태식주 (cGN6mw9x9E)

2022-08-20 (파란날) 00:24:11

ㅎㅇ

864 ◆c9lNRrMzaQ (wYNE8NUgUs)

2022-08-20 (파란날) 00:24:59

(멍함)

865 라임주 (EpO3KKszgw)

2022-08-20 (파란날) 00:28:13

다들 안녕

866 알렌주 (J2oyJPZt0M)

2022-08-20 (파란날) 00:28:32

다들 안녕하세요

867 ◆c9lNRrMzaQ (wYNE8NUgUs)

2022-08-20 (파란날) 00:29:31

점령전 특 : 플레이용 지도 제작 중

868 ◆c9lNRrMzaQ (wYNE8NUgUs)

2022-08-20 (파란날) 00:30:07

대략 7×7 타일이나 6×6 타일 지도 만들 듯?

869 라임주 (EpO3KKszgw)

2022-08-20 (파란날) 00:30:22

글 2만자 쯤 쓰여있는데 올리긴 애매한 느낌~

870 라임주 (EpO3KKszgw)

2022-08-20 (파란날) 00:31:35

지휘관이 시윤이와 라임을 장거리 저격? 쪽으로 활용한다 했으니까

장기로 따지면은 라임은 궁, 시윤이는 차 정도 느낌이겠네

871 라임주 (EpO3KKszgw)

2022-08-20 (파란날) 00:32:34

오현이나 알렌은 마 태식이나 강절이는 상

872 알렌주 (J2oyJPZt0M)

2022-08-20 (파란날) 00:34:45

>>868 굉장한 스케일...(떨림)

873 ◆c9lNRrMzaQ (wYNE8NUgUs)

2022-08-20 (파란날) 00:35:38

옛날에 게이트 지도 만들다가 이 기세면 2025년에 어장 열겠다 싶어 때려쳤었는데

874 라임주 (EpO3KKszgw)

2022-08-20 (파란날) 00:36:09

정병으로 탈주 안했으면 결승 갔을뻔한 라임.. 특별반 최강전력?
점령전에서 진심으로 해볼게 탈락처리라 정보도 그다지 안알려졌겠지!

875 오현주 (RupJhN954U)

2022-08-20 (파란날) 00:50:40

오현이랑 태식이랑 같이 있으면 마상

(마상)

876 태식주 (cGN6mw9x9E)

2022-08-20 (파란날) 00:51:02

무슨 소리인지 이해 못함;

877 라임주 (EpO3KKszgw)

2022-08-20 (파란날) 00:54:22

아 태식주 장기 잘 모르구나
마(말, 체스의 나이트) 상(코끼리, 나이트보다 대각선으로 한 칸 더 갈 수 있음)
이런 식으로 기물에 비유해본 거야!

878 태식주 (cGN6mw9x9E)

2022-08-20 (파란날) 00:59:24

장기는 알까기가 국룰이지

879 오현주 (RupJhN954U)

2022-08-20 (파란날) 01:00:48

인터넷 알까기 있는데 완전 고인물 천지더라

880 라임주 (EpO3KKszgw)

2022-08-20 (파란날) 01:00:51

앞으로 특별킹에 충성을 다할 것을

881 태식주 (cGN6mw9x9E)

2022-08-20 (파란날) 01:01:49

아니....충성은 필요없고....다들 사고 안치고 자기들 목표 이루어서 사회에 이바지 하길 바라

882 라임주 (EpO3KKszgw)

2022-08-20 (파란날) 01:03:19

대장이 물렀어

883 ◆c9lNRrMzaQ (wYNE8NUgUs)

2022-08-20 (파란날) 01:09:48

소소허네

884 태식주 (cGN6mw9x9E)

2022-08-20 (파란날) 01:10:57

애들이 잘나가면 그만큼 접근 가능한 정보도 많아지고 태식이한테 정들고 마음의 빚이 있다면 태식이의 부탁으로 여러 정보를 줄 수 있고 진실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다들 잘 성장해서 세상에 이바지하면 가디언 한이리씨가 지키려던 세계도 지킬 수 있고 캐릭터들도 행복하고

885 태식주 (cGN6mw9x9E)

2022-08-20 (파란날) 01:13:20

저런....

886 ◆c9lNRrMzaQ (wYNE8NUgUs)

2022-08-20 (파란날) 01:15:24

이제 시나리오 3 시작 전까지 새 시트는 없다

887 태식주 (cGN6mw9x9E)

2022-08-20 (파란날) 01:15:38

애매하긴 하지

888 ◆c9lNRrMzaQ (wYNE8NUgUs)

2022-08-20 (파란날) 01:17:54



Tmi나 풀까

889 태식주 (cGN6mw9x9E)

2022-08-20 (파란날) 01:18:23

좋지 한대 말아줘!

890 ◆c9lNRrMzaQ (5lHKTWEsrU)

2022-08-20 (파란날) 01:21:03

영웅의 목소리
- 영웅서가 2의 초기 컨셉 중 하나였던 '영웅의 후계자' 컨셉으로 가게 되었다면 아마 나왔을 듯한 기본 특성.
모든 레스캐는 이따금 위기 상황, 일상, 전투 불능 등의 상황에서 영웅의 자격이 있었던, 그러나 사망해버리고 만 여러 NPC들의 목소리를 듣거나 그들에게서 힘을 빌려올 수 있다는 설정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설정은 현재 영웅서가 2에도 일부 계승되어 있으며 타고난 감각은 이 영웅의 목소리의 하위 특성 중 하나이다.

891 태식주 (cGN6mw9x9E)

2022-08-20 (파란날) 01:22:30

그런 비밀이 있을 줄은 몰랐네. 타고난 감각도 서브 특으로만 있고
있었다면 재밌었겠는데

892 소녀의 꿈 (EpO3KKszgw)

2022-08-20 (파란날) 01:22:54


그것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그는 늘 그렇게 말했다. 지난날에 머물러 있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지만 소녀에게 있어 그날의 기억은 5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기까지

후회로 남아 깨어있을 때나 어렵사리 잠이 들었을 때나 한순간도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날 그의 말대로 따라나서겠다고 고집을 피우지 않았더라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한사코 그를 따라가겠다며 고집을 피운 소녀가 그를 따라 함께 들어서게 된 것은

어떤 '문'을 통해 연결된 진정 이 세상에 속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어둠이 내려앉은

불가침의 영역..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의 장막을 환하게 밝혀주던 불꽃...

그것은 거친 세상을 헤매는 이들의 어깨 위에 내려앉는 따스한 온기가 아닌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고 태우기 위해서 깊은 심연을 비집고 올라온 지옥의

화마였다.


과거 온 세상을 불태우고 긴 시간을 재, 그리고 얼음에 덮이게 했다는

전설 속의 검은 용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그것은 일렁이는 불빛을 말갛게 반사하는

검붉은 수정 같은 비늘과 강렬하게 이글거리는 호박색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그것이 자아내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열기와 빛, 그리고 굉음 속에서

그 괴물에게 맞서 싸우고 있는 한 사내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흐릿하게 보인다.

늘 자상한 목소리로 많은 이야기와 가르침을 들려주었던 사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고함을 쳤다.


-안돼 오지 마..!!"


-아저씨..! 아저씨....!!-


그것이 소녀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었다.

일순간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괴물은 괴성을 내지르며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뿜어내던

종전과 달리 애처롭게 메아리치는 울림을 남기며 소녀에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과 함께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져 빠르게 멀어져 갔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찰나의 순간 속에서 소녀가 맡은 냄새는 사그라드는 불꽃들에서

피어나는 재 냄새.. 소녀가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잿빛으로 바스러지며 그 끝에서

희미한 기억만을 감돌게 하는 쓸쓸한 냄새.. 그것은 소녀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떠오르게 하는 가장 슬픈 기억이 깃든 냄새이기도 했다.


그리고 점차 아득하게 느껴지는 소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짙은 청색으로 물든 밤 하늘 아래 여전히 황량함이 감도는 척박한 황무지에서도

점차 다시 우거지기 시작하는 녹음과 찌르르 울리는 풀벌레 소리와

이름 모를 짐승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쫑긋 솟은 소녀의 귀에 들어왔다.

여느 밤과 다르지 않은 그녀에게 더없이 익숙한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눈에 띄는 것, 귀에 들려오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가르쳐 주고 이끌어줄

유일한 사람은 이제 자신의 곁을 영영 떠나고 말았다는 현실과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을 상실감과 그리움이 그녀를 무겁게 짓눌렀다.

숯검댕이 묻어 새까맣게 된 뺨에 하얀 자국을 남기며 흘러내리는

눈물 한줄기와 함께 그녀는 자신에게 있어 더없이 소중한 사람과 더불어

어린 시절의 추억에 이별을 고하였다.


우우우 우우우


건물 전체를 감도는 구슬픈 바람 소리와 살짝 드러난 얼굴에 스며드는 냉기에

스르르 눈을 뜬 라임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 어느샌가 눈가에 맺혀 있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한동안 어두운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점차 눈이 익어가면서 천장에 배어있는 얼룩이 흡사 어떤 그림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하던 라임이 몸을 일으키자 푹 눌러쓰고 있던 후드가 뒤로 젖혀지며

붉은 기운이 감도는 연녹색 머리칼과 토끼를 방불케 하는 두 귀가 드러났다.


가급적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 홀로 돌아다니며 이따금씩 마주친 사람들 중에서

어쩌다 그녀의 귀를 본 사람들은 금방 적대적으로 돌변하거나 자신을 두려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형의 존재들에 의해 세상은 한차례 잿더미가 되었고

폐허가 된 세상을 떠돌거나 더디게나마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고자 복구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여전히 세상을 배회하는 이형의 존재들과 그들의 영향으로 변이한 토착 생물들도

큰 위협이 되고 있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이질적인 부분이 있다면

배척하고 배척받는 것이 인간사의 오랜 얼룩이 아니던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여주는 유일한 사람이 사라지고 나서

홀로 동떨어진 아이가 받아야 했던 차가운 시선과 두려움은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았지만 다음 날 머무르고 있던 건물을 떠나 다시 정처 없는 여정을

이어가려던 때 뜻하지 않은 어느 작은 만남과 이별은 그녀에게 있어

다시금 작은 불씨를 머금게 해주었다.



++++


-라임, 이걸 보렴 이게 무슨 풀인지 알고 있니?-


-몰라 이게 뭔데?-


-쓴 엉클풀이란다 껍질을 잘 벗겨내면 오래 단 맛을 즐기면서 씹을 수가 있어. 갈증과

허기를 달래는 데 있어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거란다.-


-와 정말?-


황폐한 건물들의 숲을 벗어나 다시 정처 없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라임은 예전 그 사람이

가르쳐준 풀 중 하나인 쓴엉쿨풀이 이곳저곳에 자라나 있는 것을 보며 어린 시절의

씁쓸한 추억을 떠올렸다. 달다는 이야기만 듣고 무작정 한 움큼 쥐어뜯은 풀들을 입에 한가득

넣어 씹고 나서 하루 종일 쓴맛이 감도는 탓에 단 것을 구해달라며 떼를 썼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웃음을 띠며 어디선가 구해온 사탕 한 주먹을 쥐여주던 아저씨..

잠시 발걸음을 멈춘 라임은 한동안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쓴엉쿨풀들을 바라보며

쓰면서도 달콤했던 어린 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띠었다


바스락


불현듯 귓가에 들려온 기척에 라임은 허리춤에 매어 놓았던 접이식 활의 날개를 펼치며

신속하게 활시위에 화살을 매기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겨누었다.

도시였던 폐허, 그리고 도시와 가까운 곳에는 언제나 살아있을 때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뒤틀린 자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화살 하나만으로 그들의 미련과 굶주림, 원한에 가득 찬 몸뚱이를 안식에 들게 할 수 없었지만

생전과 다름없이 자신들을 위협하는 무기들에 대해 본능적인 공포심, 그리고 썩어 문드러지거나

녹아내린 몸으로 빠르게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이 천만다행으로 저들에게 벗어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금세라도 화살을 날릴 수 있도록 팽팽하게 시위를 당긴 자세 그대로

수풀을 응시하고 있던 라임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헉... 깜짝이야...! 저... 사람 맞아요... 쏘지 마세요...!"


먼지투성이에 억지로 꿰매고 기워낸 흔적이 역력한 남루한 망토를 걸치고 있는

열다섯 남짓 되어 보이는 소녀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두 손을 높이 들면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지만 라임은 여전히 겨누던 활을 내리지 않은 채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누구야? 왜 혼자 이곳을 돌아다니는 거지?"


"그건... 그... 언니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덜덜 떨면서도 어딘가 정곡을 찌르는 것 같은 한 마디..

되려 이쪽에서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 나는 괜찮아.. 원래 혼자였으니까..."


"저도 그래요...! 혼자 지내게 된 지 2년 가까이 되었는데...

오랜만에 다른 사람을 보니 반가워요..!"


"... 일행을 잃어버렸니?"


소녀는 약간 쓸쓸한 얼굴로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골똘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라임에게 문득 소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언니...! 괜찮으시면... 저희 집에 잠시 들르시지 않을래요..?

식량은 저 혼자 먹기에 차고 넘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라... 괜찮으시다면 네..? 조금만 같이 있어주세요.."


어떻게 해야 할까 약간 망설임이 들었지만 먼지투성이면서도

밝은 웃음을 띠어 보이는 소녀의 모습에 라임이 활을 내리며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를 따라 구겨지거나 부서지고 새까맣게 그을린 차량들과 건축물들의

잔해가 이리저리 널려있는 도로를 지나 도착한 곳은 잡동사니가 산을 이루고 있는

쓰레기장이었다.


"........."


이곳이 과연 안전이 보장될만한 곳인지 의구심이 서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라임은 벌써 멀찍이서 손을 흔들어 보이는 소녀를 보며 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다시 소녀의 뒤를 따르면서 반 즈음 허물어진 담벼락을 넘어

도착한 곳은 육중한 철문을 단 한층 높이의 작고 낡은 창고 같은 건물이었다.

손잡이 옆에는 칠이 벗겨지고 색이 바랜 잠금장치가 달려있었고

소녀는 목에 걸고 있던 무언가를 꺼내 잠금장치에 가져다 대자 작은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리면서 어슴푸레한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케케묵은 냄새가 라임의 코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찰칵 지이잉


라임이 자신을 따라 들어서자 소녀는 문을 닫았고 잠금장치가 제대로 작동된 것을

확인한 다음 익숙한 동작으로 벽면에 자리 잡은 스위치를 탁탁 두드리자

금세 건물 내부가 백광 빛으로 환하게 밝혀지면서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보였던

용도를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물체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바깥과 마찬가지로 어수선하게 잡동사니들이 널려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정돈이 잘 되어있기도 했지만 반 즈음은 예상이 맞았다.

이런저런 가구와 기계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곳에 이런저런 공구들과 부품, 도면 같은

것이 잔뜩 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소녀가 멋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굉장히 어수선하죠? 손님을 모시고 올 거라고 생각도 못 했었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직 식사를 못하셨다면 요깃거리가 될 만한 것들을 가져올게요."


오래전 맹렬한 불기둥,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재와 얼음으로 덮인 세상에서도 살아남은

이들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도시와 설비들을 이용해 조금씩 먼 조상들이

이룩했던 문명을 다시금 재건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었고 실제로도 크고 작은 성과를

이루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이따금씩 보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아이 홀로

이렇게 외진 곳에서 건물을 밝힐 조명과 지금도 조용히 돌아가고 있는 설비들을

관리하고 있는 것인지 호기심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라임은 여전히 후드를 푹 눌러쓴 모습 그대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소녀는

잠시 구석진 곳에서 무언가를 뒤적이더니 이내 과일 그림이 그려진 캔과

단단히 밀봉된 비상식 봉투들을 들어 보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제 이름은 벨라예요 언니 이름은 어떻게 되세요?"


"라임."


다소 무뚝뚝하고 성의가 없게 느껴지는 짧은 대답에도 벨라는 반색을 띠었다.


"예쁜 이름이세요...! 누가 지어주신 이름인가요? 제 이름은 어머니가 지어주셨대요."


"... 나를 처음 발견한 사람..."


평소에 자신의 이름이 담은 의미에 대해 별반 생각하지 않았지만 라임은

저도 모르게 그 사람이 들려주었던 자신의 이름을 짓게 된 계기, 그리고

이름의 유래가 된 고향의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가장 일찍 떠오르고 가장 늦게 지는, 긴 밤을 헤매는 여행자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준다는 가장 밝은 별의 이름을 따서 지어주었다며 아주 멀리 떨어져 있거나

혹은 가까이 있을지 모를 자신의 고향을 떠올리며 언젠가 돌아가야 한다고

그리움과 쓸쓸함이 감돈 얼굴로 밤 하늘을 바라보던 그 사람의 얼굴..


그럴 때마다 정말 아저씨가 어디론가 훌쩍 떠날 것 같은 걱정에

가지 말라고 떼를 쓰던 자신의 머리를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주었던 손길..

이제는 먼 옛날인 것처럼 느껴지는 추억들을 떠올리던 라임은 무언가

퍼뜩 떠오른 것처럼 다시 현실로 돌아와 소녀에게 물었다.


"아까 혼자라고 그랬지..? 혼자 지낸 지 몇 년이나 된 거야?"


"아주 어릴 때부터 전 여기서 살았어요.. 엄마는 다른 곳으로 떠나신 후 돌아오지 않고

아빠랑 오빠랑 셋이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아빠는 괴물들에게 붙잡히고 말았고...

오빠는 작년에 먼저 별이 되었어요.. 이제 남은 건 저 혼자에요."


"........"


어떻게 상투적인 위로라도 건네줘야 할지 망설이며 선뜻 말문을 열지 못하는

라임을 보며 벨라는 이제 익숙하다는 듯이 쓸쓸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여기는 옛 물건들과 기술에 관심이 많던 아버지가 아직 쓸만한 물건들을 옮기고

좀 더 지내기 편안한 곳으로 개조하셨다고 해요..!어떻게 하신 건지 저는 잘 모르긴 하지만...

그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오빠랑 저도 이런저런 공구나 기계들을 만지는 게 익숙해요..

가끔 뭔가 직접 만들어 본다고 하기도 하지만 많이 부족해요. 아버지랑 오빠가

더 오래 있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아픔이 아닐까 라임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본

벨라가 허둥지둥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하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허둥대며 말했다.


"죄송해요...!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그만..."


라임은 괜찮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음...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것 좀 보여드릴까요?


이번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희색을 띤 소녀는

잡동사니들 사이를 가로질러 구석진 곳에 놓여있던 대차를 끌고 왔다.

대차에 놓인 상자 안에는 외관상 다소 거칠고 투박하지만

언뜻 드러나는 내부는 생각 외로 어떤 정교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둥근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기계에 대해 달리 아는 바가 없는 라임이 보기에도 조명의 불빛을 받아 오색으로 빛나는

구체의 외관은 눈길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골똘히 그것을 바라보는 라임의 모습에

벨라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어때요? 이게 뭐 하는 물건인지 혹시 아시나요?"


".... 잘 모르겠어."


대답을 하면서도 라임의 시선이 여전히 그 둥근 물건에 고정된 것을 보며

벨라가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저와 제 오빠의 꿈이 담긴 거예요... 멀리 어쩌면 살아있을지 모를

어머니에게 저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기도 하고...

먼 옛날엔 조상님들이 만든 신비한 별들이 있는데 드높은 하늘 위를 맴돌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눈이 되어 주기도 하고..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있어서도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그런 멋진 것을 만들어냈다는 게 정말 대단해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이런저런 지식을 배우고

연구하던 학교와 시설이 있다고 하던데 그곳에서 아버지가 구해온 설계도 중 하나가

그 '별'들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었어요.

이건 제 모든 게 담긴 마지막 꿈이에요...!"


"별을 만들어 띄워 올린다니... 그런 게 가능한 거야? 이게 별이라고?"


"아직은 조금 더 준비해야 할 게 남았지만... 이걸 쏘아 올리는데 필요한 장비는

이곳으로 오시는 동안에 보신 쓰레기 더미들 사이에 있어요...! 머지않아 완성이

되면 이것을 쏘아 올리고 싶은데... 저 혼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져요.

오늘 처음 만나 뵙게 된 분께 이런 이야기를 드리기 죄송하지만... 혹시...

저와 함께 이걸 하늘 높이 올려보시지 않겠어요? 제 마지막 소원이에요."


마지막이라니? 어딘가 의아한 기분이 들었지만 라임은 선뜻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단칼에 거절하기도 어렵게 느껴졌다.

자신을 바라보는 벨라의 얼굴은 말할 수 없는 간절함과 호소력을 담고 있었고

의지가 되어줄 사람들을 모두 잃고 홀로 남은 사람의 절절한 아픔을 알아서일까?

얼마간 망설이던 라임이 이윽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이 말했다.


"... 도와주는 것은 어렵지 않아... 하지만 이걸 보고도 내게 도움을 받고 싶을까?"


라임은 천천히 후드를 젖히며 소녀를 만난 이래 드러내지 않았던

한 쌍의 긴 귀를 드러냈다.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의 두 눈이 놀라움으로 커지는

것을 보며 뒤에 이어질 반응을 기다렸다. 당장 나가달라고 할까..

아니면 무언가 손에 쥘 만한 무기를 찾아 휘두를까..


"와...! 정말 귀에요? 머리띠 같은 게 아니라? 정말 너무 예쁘고 귀여워요!

언니 머리색처럼 붉은빛이 감도는 연녹색을 띠고 있는 것이 신기해요...

혹시 만져... 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


"..... 안 이상해? 무섭지 않아?"


"왜요? 그게 이상한 건가요? 저는 멀리 나가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잘 모르지만

아빠는 뿔이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하셨어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의 귀를 보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을 보는 것은

얼마나 오랜만인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는 생각에 라임은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감추기 위해 다시 후드를 눌러쓰며 얼굴을 가렸다.


"어... 불편하지 않으세요? 안에서는 모자 벗으셔도 돼요.."


"아니.. 난 이게 편해... 그보다 내가 도와주었으면 한다는 일이 뭐지?"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머지않아 이걸 하늘 높이 올리기 위해선 연료와 몇몇 부품들이 필요한데..

그걸 혼자 구하기에는 약간 막막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누군가가 그 순간을

함께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벨라는 이내 고개를 흔들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금 밝은 얼굴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질문할게, 내가 만약 너를 도와주기는커녕 가진 것을

송두리째 털어갈 강도로 돌변했다면 어떻게 하려고 처음 보는 내게 그런 제안을 하는 거지?"


"그럴 생각이었다면 아까 처음 만났을 때 진작에 그러셨을 테니까요...

저는 이제 달리 잃을 것도.. 제가 사라진다 해도 슬퍼해줄 사람도 없어서 괜찮아요.

저 말고도 다른 누군가가 이걸 띄워올리는 걸 가슴에 오래도록 담고 이따금씩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것뿐이에요. 지체할 시간이 없으시다면...

그냥 떠나셔도 상관없어요.. "


씁쓸함이 배어든 웃음은 어딘가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했다.

라임은 잠시 벨라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당장 정한 행선지도 없고 달리 거절할 이유도 없던 라임은 소녀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녀와 함께 필요한 부품들과 연료를 찾아 폐허가 된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도시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뒤틀린 자들을 피하거나 따돌리는 것은 홀로 행동하던 때에

비해 다소 녹록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이 거칠고

황량한 세상에서 얼마나 마음에 위안이 되어주는 것인지, 그날 이후 오래도록 잊고 있던

감정이 다시금 마음속을 충만하게 채우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긴 시간을 외로이 보냈으면서도 천성적인 밝음을 잃지 않은 벨라의

모습에 이따금씩 라임도 옅은 웃음을 띠었다. 어느덧 라임이 벨라의 거처에

머무르게 된 지도 벌써 한 달 남짓이 지났다.


그 사이 점점 하늘에 띄워올리기 위한 '별'은 온전한 구체의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이것을 띄워올리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시키기 위한 전력의 소모가 심한 탓에

이따금씩 깜박깜박 빚을 발하는 구체 이외에 어둠에 잠긴 벨라의 거처에서

두 사람을 밝게 비춰주는 것은 그날 어느 골동품 상가에서

발견한 구형 램프였다.


옛 기억을 더듬어 인근에 피어있던 몇몇 풀들과 열매를 짜내서 만든 기름으로

램프에 불을 붙이는데 성공한 것을 보고 벨라가 손뼉을 치며 물었다.


"정말 대단해요... 늘 지나가면서 보던 열매인데 설마 즙에

이런 효능이 있는 줄 몰랐어요. 어떻게 아신 건가요?"


"예전에... 알던 사람이랑 함께 지낼 때... "


벌써 아득한 오래전같이 느껴지는 추억들을 떠올리며 호롱 호롱 흔들리는

불꽃을 바라보는 라임의 눈동자가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한결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그런 라임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벨라가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다.


"예전에 알던 분이 누구신가요? 처음 뵈었을 때 말씀하신 분인가요?


"... 맞아.. 아주 어렸던 날 발견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돌봐주었던 사람이야."


"가족 같은 분이시네요."


"가족..."


선뜻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단어였다. 가족이라고 생각했던가...

잊고 있었던 복잡 미묘한 감정이 다시금 떠올랐다.


"글쎄... 늘 같이 있으면서도... 딱히 가족이라고 생각 안 해본 거 같아."


"그러면요?"


"늘 등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언젠가 함께 나란히 걷고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 보며 이야기하고 싶었어.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지만.."


"..... 그분도 별이 되신 건가요?"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고 말했어..

내가 갈수 없는 다른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지 않을까..."


"분명 그럴 거예요. 그분도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언니를 떠올리실 거라 믿어요."


상투적인 위로일지라도 홀로 위안을 삼으며 삼키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받는 것은 그 느낌이 확연하게 달랐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라임을 보며

벨라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아빠는 늘 말씀하셨어요. 밤이 찾아오기 시작할 무렵 가장 일찍 떠오르고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어두운 하늘을 밝혀주는 가장 밝고 크게 보이는 별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별이라 하셨어요.

분명 그분도.. 어딘가에서 같은 별을 올려다보고 계시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제 머지않아 저희가 띄워올리게 될 이 별도 지금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남았으면 좋겠어요...! 저를 위해서도, 언니를 위해서도, 그리고 밤 하늘을 올려다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이에요. 이걸 볼 때마다 저는 언니를.. 언니는 저를 가끔 생각해 주신다면 좋겠어요."


어느 세상이나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걸까... 그 사람이 들려주었던 이야기와 같은 말을 하며

따스한 미소를 짓고 있는 벨라의 얼굴을 보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라임은

파르르 흔들리며 희미해져가던 램프의 불꽃이 다시 너울너울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고마워..."


짤막한 한 마디를 끝으로 잠들기 전까지 더 이상 어떤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서로가 어떤 마음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임에게도 벨라에게도 이날 은은한 불빛을 받으며 나누었던 대화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이다. 그렇게 그날의 잊지 못할 밤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정오 무렵이 되어 구체에 충분한 전력이 공급되면서

구체를 띄워올릴 발사체의 연료 공급과 발사대에 대한 정비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비바람이 몰아쳤다.


촤아아아아아아아


사방에 떨어지는 빗줄기가 땅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면서 마른 땅을 적시는 소리

식수를 채우기 위해 내놓은 물통들을 통통 때리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왔다.

굳게 닫힌 육중한 철문 틈새로 비가 내릴 때의 비릿한 내음, 그리고 짙은 풀냄새가

섞인 냄새가 새어들어 두 사람이 머물러 있는 은신처에 감돌았고

편히 눈을 감지 못하고 살아있을 때의 희미한 기억을 잊지 못하고

이젠 폐허가 된 고향을 떠도는 망자들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구슬픈 바람 소리가

은신처와 은신처를 둘러싼 아름드리나무의 가지들을 매섭게 뒤흔들었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홀로 감내하기에 너무나 무겁고 두려운 것이었지만

라임은 벨라와 함께 지내면서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와 비슷한 안정감과

따듯함을 다시금 느끼고 있었다. 발라도 오빠를 잃은 이래 홀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

무섭거나 쓸쓸하지 않다고 백광 빛의 시리고 차갑게 느껴지는 불빛 대신

다시 피워올린 램프의 은은한 불빛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어쩐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눈에 띄게 창백하게 변해가는 듯한 벨라의 얼굴이

어딘가 신경 쓰였지만 요 며칠 작업을 하면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탓이라며

걱정하지 말라며 웃어 보이는 벨라를 보며 라임도 한층 부드러운 얼굴로 미소지었다.

그리고 다시 밤이 되어 한참을 뒤척인 끝에 겨우 잠이 들었던 라임의 귓가에

희미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꿈결에 잘못 들은 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이어 들려오는 고통을 참는 신음 소리에 라임은 퍼뜩 눈을 떴고

점차 눈에 익어가는 어둠 속에서 구석진 곳에 모로 쓰러져 누워있는

벨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벨라...!"


라임의 외침에도 벨라는 희미한 신음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벨라의 이마에 얹은 손을 통해 흡사 금방 모닥불에서 꺼낸 감자를 만지는 것처럼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는 것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럴 때 아저씨는 어떻게 했었지...


어린 시절 별다른 잔병치레를 겪어보지 않았던 라임이 단 한 번 알 수 없는 증상으로

열이 펄펄 끓었을 때... 그 사람은 종일 누워있는 라임의 이마에 물 수건을 얹어주고

따듯한 죽을 끓여 주었던 것을 떠올린 라임은 그녀를 부축해 다시 자리에 뉘여준 후

담요를 한층 두텁게 덮어준 후 식료품이 들어있는 선반을 이리저리 뒤지고 있을 때였다.

잔뜩 긴장한 탓에 쫑긋 서 있는 라임의 귓가에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벨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라임.. 언니..."


전에 없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라임을 올려보며

벨라가 사뭇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며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표정도... 지으실 수... 있군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기 저 선반에..

갈색 유리에 노란 라벨이 붙어있는 약병이 있는데.. 그것 좀... 가져다주세요..."


선반에서 꺼낸 갈색 약병은 그 용적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분량의 알약이 담겨 있었다.

거의 서너 알 즈음의 알약이 들어있는 약병과 찌그러진 스탠 컵에 물을 따라

벨라에게 돌아온 라임은 약병에 들어있는 알약 두 개를 입에 넣고 힘겹게

물을 머금어 삼키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벨라의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점차 본연의 혈색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라임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많이 놀라셨죠... 죄송해요...."


"아냐... 그보다 이제 괜찮은 거야?"


"일단은요..."


여전히 장난기 어리고 밝은 한편... 헤어 나올 수 없는 짙은 그늘이 드리운

그녀의 얼굴은 어딘가 처연하게 느껴졌다.


"일단은...이라니..."


"사실... 처음부터 말씀드려야 했는데... 아버지도, 오빠도, 저희 가족은 오래 도시의 오래된

쓰레기들과 저희가 행한 실험이나 제작으로... 어떤 물질에 중독되어 있대요...

제가 먹은 알약은 그 독성을 중화시켜 주는 약이고... 저는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기긴 했지만

그것도 오래 못 갈 거예요... 더 이상 이 약을 구할 수 있는 곳도 없고.. 아빠는 약을 구하기 위해

홀로 도시를 벗어나려다 돌아오지 못하시고 오빠도 더 이상 약으로 연명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제게 모든 걸 맡기고 제 곁을 떠났어요... 그리고 저도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어요."


순식간에 피가 싸늘하게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비로소 벨라와 처음 만난 날 언뜻 이야기한 '마지막 소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고 다시 한번 자신이 믿고 마음을 내어주기 시작하는 사람이 영영 다시 자신을

영영 떠날 것이라는 가혹한 현실과 차라리 처음부터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후회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미안해요... 저의 이기심 때문에... 언니에게 상처를 남기게 돼서... 정말 죄송해요...."


어느샌가 일렁이는 불빛을 받아 말갛게 반짝이는 눈물이 라임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니야...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마... 그 사람이 떠난 이후로 나는 늘 생각했어...

나는 언제나 내게 소중한 사람의 등만을 바라보며 걸어왔고 마지막 순간에도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 사람을 떠나보냈어. 다시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그리고 오로지 떠나간 사람만을 생각하고 홀로 긴 시간을 지내면서 잃어버렸던 것을

너와 함께 지내면서 다시금 깨닫게 되었어.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사실이 한탄스러워..."


"언니를 처음 본 순간부터 알 수 있었어요.. 사실 언니가 얼마나 따듯한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말 할 수 없는 상처로 마음을 닫아 거신 거라고...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 모두가

같은 아픔을 겪고.. 떠나간 사람들을 묻으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저도, 언니도, 그리고

앞으로 이 '별'을 볼 많은 사람들에게도 오래도록 희망으로 담을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어요..

누군가가 저와 함께.. 그 희망을 띄워올리는 데 있어 동참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제 욕심으로.... 언니에게 한층 더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기게 되어... 정말 미안해요..."


라임은 새삼 어린 소녀의 손이 흉터투성이인 것을 보고 마음이 아려왔다.

아버지, 그리고 오라비를 잃고 홀로 외롭게 살아오면서 밝음을 잃지 않았지만

하루하루 아이는 두려움과 맞서왔고 두 손은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오래되어 희미한 흉터

와 새롭게 새겨진 상처로 얼룩져 있었다. 얼마나 고된 것이었을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이 작은 손에 새겨질 상처를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라임은 말없이 벨라의 손을 어루만졌고 벨라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함께 깃들어 있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손을 힘 있게 쥐어 보이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간 밤의 비바람이 거짓말인 것처럼 어느샌가 창문을 감싼 덧문과 굳게 닫힌 철문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더없이 맑고 고요한 아침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지체할 사이 없이 작업에 들어갔다.

893 이름 없음 (EpO3KKszgw)

2022-08-20 (파란날) 01:23:27

갑작스러운 비바람이 몰아쳤던 탓에 발사체의 상단부에 구체를 조심스럽게 들어

장착시키고 발사대를 정비하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시간이 헛되이 느껴지지 않았다.

난생처음으로 기름으로 얼룩진 얼굴과 작업복 차림으로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군가에겐 다시 찾아오지 않을,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마지막까지 이 순간을 함께해 주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길면서도 짧은 시간이 지나 마침내 날이 저물어가면서 서서히 하늘은 붉은빛으로 물들어가고

머나먼 서쪽 하늘을 향해 새들이 무리 지어 선회하는 것을 잔잔한 바람을 맞으며

바라보고 있던 벨라가 입을 열었다.


"이제... 시작할까요?"


"응..."


라임은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벨라와 함께 지내면서 어느 사이 목덜미를

넘겨 어깨 길이까지 자라난 머리칼이 잔잔한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흩날렸다.

발사체의 연료 상태와 발사대와 연결된 설비들을 확인하고 마침내 한 소녀의

오랜 염원을 하늘로 올려보낼 준비가 끝났다.


"원래 하늘에 뭔가 쏘아 올리기 전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발사 시간이 임박하기 시작하면 예정 시간까지 거꾸로 초읽기를 하곤 했대요...

하루에 한 번 쏘아 올리는 것이 다이기도 하고 한번 놓치면 다시 쏘아 올릴

준비를 하는 것이 무척 오래 걸렸다고 하네요.


지금 저희가 별을 띄워올리기 위한 장비는 옛날의 정교하고

전문적인 형태의 발사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엔 저희 가족들

그리고 제 오랜 꿈 그리고 언니와의 잊지 못할 추억도 함께 담겨 있으니까...

한번 같이 세 보실래요? 이제 여섯시 반까지 30초 정도 남았어요."


벨라의 손에는 낡은 시계와 한가운데에 약간 조악한 빨간 단추가 자리잡은 단말기가 들려 있었다.

이제 성공 여부는 단 15초 남짓에 달려있다. 금이 가고 찌그러진 은 시계의 움직이지 않는

초침이 희미하게 달칵이는 소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며 벨라, 그리고 라임은

작은 목소리로 남은 숫자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9,8,7,6,5,4,3,2... 1 그리고... 제로..


라임과 함께 제로를 외치는 동시에 벨라가 단추를 꾹 눌렀고 안전상의 이유로

발사대가 자리 잡은 쓰레기장의 공터에서 약간 멀찍이 떨어진 고철 버스의 출입문에 서서

발사대에 전력이 공급되는 것, 그리고 '희망'이라 이름 붙인 구체를 쏘아 올리기 위한

발사체의 노즐에서 연기, 그리고 오렌지빛 불꽃이 피어오르며 길게 꼬리를 늘이며 먼

하늘로 솟구치는 것을 바라보는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냈다.

옛날 세상이 한차례 무너지기 고도로 발달한 세상을 살아가던 머나먼 선조들이 이룩했던 것에

비해 턱없이 조악하고 작은 것이었지만 이는 잃어버린 문명을 되찾기 위한 첫 발자취이기도 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역할을 다해 분리된 발사체의 하단부인 연료 저장탱크가 높이 쌓여있는

고철더미에 내리꽂히면서 요란한 소음을 냈지만 두 사람은 개의치 않고

서서히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발사체의 상단부를 바라보며 가슴을 졸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구름으로 띠를 늘어뜨린 듯한 궤적을 남기고 보다 높은 상공까지 솟구친 상단부가 떨어지는 것이

라임의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이를 전해주면서 자신도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서서히 진청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하는 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는

벨라의 어깨에 손을 얹어주었다.


그때 벨라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작은 탄성을 자아내는 것을 들은 라임도 보았다.

이제 완전한 검 푸른빛으로 물든 밤 하늘에 오색빛을 머금은 작은 별이 떠올라 있었다.

성공한 것이다...!


하염없이 여느 별 보다 밝고 따듯한 빛을 발하며 서서히 멀어지고 있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낸 '희망'을 바라보는 벨라의 얼굴에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이

바라보고 싶어 마지않아도 바라볼 수 없는 태양 대신 은은하고 시린 빛을

내리쬐어 주고 있었다. 말을 잊지 못하고 밤 하늘을 올려다보는 벨라의 눈에

고인 눈물이 달빛을 머금으며 방울지어 흘러내렸다.

오늘 있었던 일은 라임에게 있어서도 영원토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힘겹고 고될지라도 새로운 내일을 향한 길잡이가 되어주길 바라며..

지금 이 순간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눈에 새기고 마음속으로 품었다.

하염없이 먼 밤 하늘을 올려다보는 두 사람의 머리칼을 비가 내린 다음 날의

풀 내음이 배어든 바람이 멀리까지 소식을 날라주겠다며 속삭이듯

살랑이며 스쳐 지나갔다.



++++


무사히 '별'이 될 구체를 쏘아 올린 이후 발사대는 처음이자 마지막 발사를 마친 후 두 번 다시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벨라는 어딘가 홀가분한 기색이기도 했다.

이것이 온전히 남아있었다면 미련이 남았을 것이라며 차라리 망가진 게 다행이라며

빙긋 웃어 보였지만 앞으로 자신이 다시 맞이하지 못할 다음 기회에 대한 서글픔도 함께

떠올라 있었다.


그녀의 삶을 연명하기 위한 약이 떨어진 것은 별을 쏘아 올린 다음날

점심 무렵이었다. 첫번째 발작을 시작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벨라의 상태는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염원했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버텨왔다는 듯이.. 이제 자신의 소임을 다해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며 열이 끓어오르는 와중에도

벨라는 해쓱한 얼굴로 애써 미소 지어 보였다.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달라는 부탁에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벨라의 손을 꽉 쥐어주는 것뿐이었다.

고열을 앓으며 이따금씩 '아빠' 그리고 오빠임이 분명한 이름을 번갈아 되뇌며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던 벨라가 어느 순간 열이 내린 것을 보고 라임은 믿을 수 없었다.

이것도 다시 한번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난 기적이라는 것일까.


오랜 꿈을 꾸고 깨어난 것처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밝고 천연덕스러운

미소를 띤 벨라를 바라보며 라임도 정말 잘 됐다며 진심으로 기뻐했고 두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서로의 어깨를 부둥켜안고 제 자리에서 펄쩍 펄쩍 뛰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렇게 숨이 찰 때까지 방방 뛰면서 무언가 퍼뜩 생각난 듯한 표정으로 벨라가 말했다.


-저희 잠깐만.. 별구경 좀 하러 가요..! 오늘도 제가 볼 수 있는 곳에 떠 있나 궁금해졌어요.-


라임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어두컴컴하고 곰팡이 냄새가 배어든 은신처를 나와

탁 트인 밤 하늘을 올려다보며 여전히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머나먼 별들 사이로

가까운 듯 먼 듯 확연히 알아볼 수 있는 따스한 빛을 머금고 서서히 멀어져 가는 '희망'을 바라보았다.


-이제... 저 별이 이곳을 떠나면 다음에 다시 이곳의 하늘을 지나갈 때 저는 여기 없겠죠.-


-그런 소리 하지 마.. 나도 여기 같이 있으면서 다음에 찾아올 저 별을 기다릴 거야.-


-언니는 자유로운 여행자잖아요. 언젠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저 별이 언니의 새로운 여정을

이끌어주고, 때론 위로해 주는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가끔씩... 가끔씩...

잠시 멈춰 선 곳에서 밤 하늘을 올려다볼 때 저 별이 눈에 들어온다면 저를 떠올려 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 잊지 않을 거야.-


-고마워요. 그리고 잘 있어요...-


벨라는 마지막으로 라임을 품어 안아주었다. 따듯하고 밝은 느낌...

그리고 그 따스함은 점차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라임이 눈을 떴을 땐 어슴푸레하게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는 새벽녘이었다.


벨라의 손을 잡은 채로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어쩐지 생생하게 느껴졌던 꿈속에서 떠나간 벨라가 여전히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내심 안도하려던 라임은 문득 맞잡은 벨라의 손에서

전혀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조심스럽게 손아귀를 느슨하게 풀자마자 그녀의 손이 맥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려는 것을

다시 부여잡고 라임은 떨리는 손으로 벨라의 이마에 손을 얹어보았다.

고열로 뜨겁게 끓는 것 같이 느껴졌던 이마에서 느껴지는 싸늘함이

라임의 손끝으로 냉혹하고 서글픈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그렇게 고열로 사경을 헤매는 중에도 라임에게 미안해하고 걱정하지

않도록 웃어 보였던 소녀, 자신과 가족들의 꿈, 그리고 짧은 시간을 함께

자신을 도왔던 일면식도 없던 여인과 다른 이들을 위한 기원을 담아

희망을 띄워올린 소녀는 영원히 눈을 감았다.

선명한 미소를 띠고 깊이 잠이 든 것 같은 평온한 모습으로..

다시금 먼 길을 떠나야 할 여행자를 남겨두고 다른 세상을 여행하기 위해.



+++

다섯 해 전 즈음.. 그 사람이 떠나갔을 때도 그렇게 섧게 울어본 적이 없는데..

난생처음으로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어보니 어딘가 마음이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 살고 있던 어느 소녀와 함께한 두 달 남짓이 무척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 다시 혼자가 되어 먼 길을 떠나려 한다.

지금을 살아가고 앞으로도 여정을 멈추지 않을 여행자가

다시금 여정을 떠나기에 더없이 좋고 맑은 날이었다.


라임은 오두막과 더불어 자신의 집처럼 느꼈던 낡은 건물, 이제는

한 소녀의 영원한 안식처가 된 건물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등을 돌려 다시

정처 없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짐이 더 늘었다. 소녀의 부탁으로 여행을 하면서 언젠가 자신과 같이

잃어버린 옛 시대의 유산에 대해 연구하고 만들어내고자 하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면 전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과 함께 맡게 된

설계도들이 든 작은 가방이었다.


그리고 함께 지내는 동안 활의 휴대성을 더 개량해 주기도 하고 특별한 기능들이

들어간 촉들을 달았다는 화살 통도 하나 늘어있었다. 알게 모르게 받은 것이

정말 많다는 생각을 하며 라임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멀어지기 시작하는

고철더미들과 잊지 못할 소녀와의 추억이 깃든 건물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벨라.. 잘 있어.."


++++

어느새 풀이 높게 자라 있었다. 오두막은 최근 몇 달 전 보았을 때보다 더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그녀에게 있어 유일하게 돌아올 곳, 그 사람과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었다.

여전히 오두막 둘레에 무성한 잡초들과 함께 이름 모를 들꽃들이 가득 피어있는 것을 보며

라임은 약간 씁쓸함이 감돈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그 사람이 이런저런 풀들과 꽃들을 볼 때마다

꽃의 이름이라던가 이름에 담긴 의미에 대해서 가르쳐 준 기억이 떠올랐지만

여전히 이름 모를 꽃 들이었다.


어쩐지 이제는 옛날만큼 크게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라임은 오두막의 테라스에서

말라붙은 흙 위로 시든 줄기가 추욱 늘어져 있는 화분들 중 하나를 들어 올려

여전히 지난번 자신이 놓았던 모습 그대로 놓여있는 열쇠를 꺼냈다.

그리고 녹이 슬어 거칠하게 느껴지는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고 힘 있게 반 시계방향으로

돌리자 철컥하고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익


녹슨 경첩으로 인해 불쾌함이 감도는 금속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약간 케케묵지만

그리운 냄새가 코 끝에 감도는 것을 느끼며 라임은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짐짓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라임이 가장 먼저 향한 것은 그 사람의 방이었다.

5년 전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방에 머물러 있던 모습 그대로..

급하게 여행길에 나서면서 제대로 닫지 않은 옷장, 이따금씩 기름 열매의 즙을 연료로

불을 밝히곤 하던 램프... 집을 비울 때마다 먼지가 쌓이는 것을 제외하고

언젠가 그 사람이 돌아와 스스로 정돈할 때까지 그 사람의 흔적을 지우기 싫어

그대로 방치한 모습 그대로였다.


한동안 방 안을 돌아보던 라임은 여전히 그리운 냄새가 배어있는 침대 시트 위에

조심스럽게 몸을 뉘며 먼 길을 걸어온 고단함과 방안을 감도는 그리움과 추억 속에서

스르르 눈을 감았고 이내 고요한 방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그녀의 작고 고른 숨소리뿐이었다.


그녀와 오두막 위로 펼쳐진 별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짙은 구름이 드리운 검 보랏빛

하늘 위로 밝고 따듯한 빛을 발하는 별 하나가 떠올라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깊이 잠이 들어 모처럼 무거운 짐도, 활도 없이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

따듯하고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꿈을 꾸고 있는 라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끝-



894 태식주 (cGN6mw9x9E)

2022-08-20 (파란날) 01:23:58

왤케 길어

895 ◆c9lNRrMzaQ (5lHKTWEsrU)

2022-08-20 (파란날) 01:24:04

이번 대련 대회에서 대부분의 인원들이 결승, 또는 4강까지 진출하기 어려웠고 이 관계로 UHN에서는 레스캐들의 전투력이 레벨에 비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오가고 있다.
일부 의견으로는 현재 게이트가 다량 발생중인 오세아니아 지역으로 UHN의 명령권을 통해 보내어 이들의 전투 경험을 키워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경우가 되었을 때. 생존자는 현재 특별반 인원의 절반 또는 1/3 정도로 보고 있는 듯 하다.

896 태식주 (cGN6mw9x9E)

2022-08-20 (파란날) 01:25:54

우리가 약한게 아니라 다른 애들이 강한거라고!

897 ◆c9lNRrMzaQ (5lHKTWEsrU)

2022-08-20 (파란날) 01:26:31

각 캐릭터들이 얻는 '스승' 특성 때문에 '위대한 스승' 특성이 빛바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반 스승' 또는 특성으로 얻지 않은 '뛰어난 스승'들은 슬프게도 캐릭터간의 조합이나 교류가 많은 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가령 한지훈의 경우는 태식이 어떻게 성장하건, 그에 대해 태클을 걸지 않는다. 만약 수련법이 잘못되어 길을 잘못 들더라도 한지훈은 관심을 끊어버리면 그만.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며 다른 스승 NPC들은 현재 준영웅도 아닌 경우가 많다.

898 태식주 (cGN6mw9x9E)

2022-08-20 (파란날) 01:28:43

위대한 스승 메인특은 없고 서브특으로 토고만 있는게 지금 상황....

899 ◆c9lNRrMzaQ (5lHKTWEsrU)

2022-08-20 (파란날) 01:30:23

왜 열망자나 프리핸드같은 세력들은 잘 등장하지 않지? 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슬쩍 이야기해주자면.. 열망자의 경우에는 사제가 되기 위한 과정이 매우 힘들다. 일단 정신력이 갈리지 않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을 죽여야 하는 데다가 신앙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열망자의 경우는 그를 숭배하는 일반인이나 약한 의념 각성자들은 많더라도 위로 갈수록 정예화된 경우가 많다.
심지어 최근 권왕과의 일전 때문에 열망자의 세력이 많이 위축되었으나, 최근 다윈주의자 세력의 약화로 그 세력권을 집어삼키고 활동할 가능성이 높다.
프리핸드의 경우에는 원래 미친 놈들이라서 + 가입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자유 의지'로 확실한 사건을 발생시켜야만 개중 일부가 프리핸드의 접촉을 받는다. 점조직으로 연결된 선조직이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좀 편할 것이다.

그런 고로, 가능한 한 시나리오 4나 5 전까지는 이들이 등장하지 않길 바라는 게 좋다.
간단히 말하면 보스도 아닌 하이 네임 급이 수십씩 나올 수 있단 이야기이고, 지금 여러분에게는 캡틴 보정이 없으면 하이 네임 하나를 해치우기도 힘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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