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게 온통... 보존식 같은 거잖아... 계속 이렇게 먹으면 영양실조가 올지도 모른다고 들었어." "잉? 그래요? 저는 여태 괜찮은 거 같은데... "
오물오물 칼로리 바를 씹어 넘기던 벨라의 눈이 휘둥그레 커지는 것을 보며 라임이 물었다.
"여기 혼자 살면서 별다른 채집 같은 건 안 해본 거야?" "네...! 이곳엔 아직 먹을게 풍부하거든요. 예전에 이곳에 정착하면서 아직 온전한 시설들을 살피던 사람들 중에서 어떤 발전 시설을 손대다가 실수로 큰 사고가 일어난 후 저 도시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없어요. 그래도 곤충들을 잡아가면 젤리나 과자로 만들어주는 무인 공장도 남아있고 그때 이 도시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 남긴 보존식이나 비상식량들이 무지 많았어요..! 지금도 크고 넓은 건물들 중엔 간간이 통조림이나 음료수를 찾을 수도 있어요." ".............."
먹을 것을 가릴 때가 아닌 것을 알지만 모처럼 달콤하고 촉촉한 크림이 배어 있는 샌드 쿠키와 젤리를 맛볼 수 있어 내심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곤충을 가공한 제품이었다고 생각하니 한순간에 싸늘하게 식는 듯한 기분이었다.
"금방 잡은 고기... 먹어본 적 있어?" "네? 어떤 고기요?" "토끼 같은 거..."
벨라의 시선이 잠시 라임의 머리 위로 머물렀다. 연녹색의 머리칼과 같은 색을 띠고 있는 토끼와 흡사한 두 귀를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던 벨라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토끼... 드셔도 되나요?" "난 토끼가 아냐.."
빈 가방이 식료품과 이런저런 쓸만한 물건들로 묵직하게 차올랐고 각자 가방을 어깨에 둘러맨 두 사람이 다시 은신처로 향하려 할 때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어딘가에서 톡 튀어나온 얼룩 토끼 한 마리를 보고 라임이 입가에 검지를 들어 보이며 조용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조심스럽게 그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활을 뽑아들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코를 벌름이며 작은 공처럼 몸을 말고 무언가를 먹고 있는 토끼를 향해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에 매긴 화살 깃을 잡으며 활을 겨누고 있던 라임이 천천히 깃을 잡고 있던 손가락의 힘을 풀었고 작게 피잉 하고 울리는 소리에 뒤늦게 낌새를 알아차린 토끼가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화살이 쏜살같이 바람을 가르며 작고 가련한 생물의 숨통을 단숨에 꿰뚫고 말았다.
"와 정말 대단해요...!"
처음으로 화살로 표적을 맞혔을 때 그 사람에게 칭찬을 들었던 것을 떠올리며 절로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라임은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화살의 회수와 단말마로 움찔움찔 희미한 숨을 부여잡고 있는 토끼를 거두기 위해 다가서려던 찰나..
-그어어어어어.... 그으으으..- -으으어으.... -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척을 느낄 수 없었던 뒤틀린 자들이 희미한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움직임은 느릿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느릿한 탓에 저들을 따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포착된 이상 어느 한순간 무리에 포위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뛰어..! 어서! 빨리 여길 벗어나자." "그렇지만 저거 빨리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은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뛰어..! 나중에 또 잡아도 돼!"
++++
한동안 정신없이 내달린 끝에 가방도 잃어버리고 무겁고 허탈한 발걸음으로 벨라의 은신처로 향하던 중 라임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지금 목마르고 배고프지 않니?" "네... 얼른 집에 가서.. 퍽퍽하고 딱딱한 건빵이라도 먹고 싶네요.." "이 풀도 먹을 수 있는 거 아니?"
라임은 높이 솟아 있는 쓴엉쿨풀 중 하나를 단도로 끊어내며 말했다.
"질기고 써 보이는데요? 정말 먹을 수 있어요?"
손톱으로 질기고 거친 껍데기를 조심조심 벗겨내면서 손톱으로 당겨 보이자 금세 흰 속살이 드러났다. 라임은 그것을 반으로 잘라 벨라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겉껍질을 벗겨내면.. 달콤하고 껌을 씹는 것처럼 오래 씹을 수 있는 쓴엉쿨풀이야." "우와... 이름은 되게 쓴 것처럼 들리는데... 정말인가요?"
라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앞니로 흰 속살을 톡 끊어내며 씹는 모습을 보여주자 발라도 조금씩 풀을 씹기 시작했다. 과연... 희미하게 단 즙이 혀끝에 감기는 것이 느껴졌다. 고소한 풀 내음이 입안을 감도는 것을 느끼던 두 사람은 이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씹던 풀을 내뱉고 말았다.
"우왁... 진짜 쓰네요.... 이름값하는 거 같아요... 질기고.... 엄청 써요... " "미안... 아무래도 아직 덜 익은 모양이야." "에이 뭐예요~ 입만 버렸네."
짐짓 볼멘소리로 투덜대던 벨라가 미안한 얼굴로 어쩔 줄 모르는 라임의 얼굴을 보며 다시 장난기 어린 얼굴로 돌아오며 풋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