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3 요즘 조금씩 건드려보고 있습니다. 무기속 위임 나올때 깔았던가 그랬지 싶은데... 어몽 오징어 사태에 기겁해서 한동안 손을 안 댔었다가, 2차 해명영상 보고 돌아왔어요. 요즘은 반지하게임즈가 정말로 서울에 집중하는 편인 듯 하여 다행입니다. 아쉬운 부분도 없진 않지만요...
평탄히 풀려가는 듯하던 집에 불을 붙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었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내게 과자 같은 것을 사주며 흐뭇해하던 내 삼촌이 집을 무너트렸다. 미친 테러리스트 집단에 가담해선 동탄을 날려버리려 했다더라.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말도 되지 않는 거짓말이라 했다. 학교에서 보았던 열망자의 기록은 비틀린 신앙과 믿음으로 미치면 미쳤지, 절대 삼촌처럼 따스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날로 우리 집은 크게 휘청거렸다. 자신의 동생이 열망자였단 사실을 안 어머니는 혼절해 쓰러졌고, 그 기회를 노린 수많은 경쟁 길드들은 아버지마저 의심한단 이유로 당시 확실히 굳히지 못했던 우리 길드에 수많은 돌을 던져댔더란다. 어릴 적, 그래도 자주 웃어주며 웃음 많던 우리 아버지는 점점 웃음기를 잃어갔다. 아버지가 바빠지고, 어머니가 생기를 잃어가면서 나는 자연히 아버지에게서 형을 향해 눈을 많이 돌리게 되었다. 형은 그때에도, 내 어린 생각을 뒤져보더라도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 중 하나였다. 아홉 살에 의념을 각성, 열세 살에는 일반적인 의념 각성자라면 불가능할 10레벨을 넘었으니까 자연히 나는 형이 길드를 이을 거라 생각했다. 주변 어른들은 나에게 말하곤 했다.
“ 준혁이는 똑똑하니까. 나중에 형을 많이 도와줘야겠네. ”
당연히 형이 길드를 이을 것을 확신하는 듯한 다른 어른들의 말에 답했다.
“ 네! 언젠가 저는, 형을 도와서 북해길드를 세계적인 길드로 만들 거예요!”
그 어린 시절에는 나는 삼촌보다도, 가디언들이 미웠다. 누구보다 강한 아버지였지만 가디언들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만 했고, 열망자로 밝혀진 삼촌을 구속한 것도 가디언이었다. 세간에서는 가디언을 향해 이 시대의 영웅이라고, 이 세계가 만든 위대한 산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게는 달랐다. 누구보다 강했던 내 아버지를 고개 숙이게 만들었고, 내 어머니를 쓰러지게 만들었다. 그 어린 마음에 쌓인 증오는 쉽게 풀리지 않았는지 내 마음 속 증오는 점점 커져갔다.
헌터가, 가디언을 뛰어넘게 만들겠다.
그 꿈이 생겼던 것도 그 시절의 이야기였다. 나는 자주 형에게 그런 이야길 하곤 했다. 형이 길드장이 되고, 내가 참모가 되어서 북해 길드를 최고로 만들자고. 그리고 그 뒤에 헌터를, 헌터가 가디언을 뛰어넘는 존재가 되게 하자고. 그러면 형은 내 머리를 차분히 쓰다듬으며 웃음을 짓곤 했다. 그 미소가 나는 형의 긍정인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그 미소가 긍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형의 열 여섯 살 생일 때였다.
*
“ 가디언이 되겠습니다. ”
재석은 덤덤하게 말을 뱉었다. 그 행동에는 조금의 고민도, 망설임도 없었다. 단지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니 너희들은 그렇게 알면 된다는 통보에 가까웠다.
“ 삼년 전 스카우터를 만났습니다. 제게 가디언의 자격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뛰어난 가디언이 될 수 있을 거라고요. ”
그래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 말한 재석은 말없이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봤다. 현중석은 아들의 말을 듣고도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무언의 대답이었지만 더없이 두 사람에게 어울리는 표현이기도 했다. 현재석이 바란 것은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길 바란 것이었고 중석은 그 결정에 대답할 자격이 없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그렇게 깨졌다. 그러나 그 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그 자리에 있었다. 준혁은 자신의 형을 바라봤다. 눈동자는 어디에 둬야 좋을지 모르도록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는 웃지 않는 자신의 형을 향했었고, 하나는 그런 형을 말리지 않는 아버지에게로 향했고, 하나는 그 숨 막히는 분위기에 어린 아이가 견디지 못해 겁을 먹어 깔리려 했다.
“ 그만. ”
그러나 어린 준혁의 울먹임에도 중석은 더 듣지 않겠다는 듯 재석을 바라봤다. 두 무표정이 허공에 얽혔다. 그는 재석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나 재석은 그 질문을 매몰차게 내쳤다.
“ 청월고교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
일 년 느린 입학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 시절의 준혁이 알아내긴 힘들었다. 재석의 말을 들은 중석이 느릿하게 서류로 시선을 옮기며 입을 뗐다.
“ 창은 들고 갈테냐. ” “ 예. ” “ 이유는? " " 연을 끊길 바라신다면 그리 하겠습니다. “
그 말에 중석은 힘없이 고갤 끄덕였다. 허락이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었다는 듯 재석은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갔다.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준혁이 따랐다.
“ 형, 형, 형!! "
동생의 다급한 부름에 재석은 고개를 돌렸다. 아까 보여주었던 표정과는 달리, 준혁에게 익숙한 웃음이었다. 역시 형은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이건 열여섯 살 생일을 맞아 형과 아버지가 친 장난같은 것이었을 거다. 조금만 생각한다면 두 사람 다 장난을 칠 만한 사람들이 아니란 것을 알 법도 한데도 준혁은 그렇게 믿었다. 어린 준혁의 생각은 그 이상에서 더 이상 고민하길 바라지 않았다.
“ 가디언이 된다는 거. 거짓말이지? 응? " 그래서 준혁은 더 힘을 다해 형에게 물었다. 웃으며 평소처럼 ‘많이 놀랐지?’ 하고 형이 대답해줄 거라 믿었다. 그러나 형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준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형이 없어도 부모님 말 잘 들어야 한다? "
그 때의 충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더라. 어린 준혁에게는 인생의 여유가 없었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게으름과, 나태함을 알 시간이 없었다. 기억의 나태와 게으름은 사람을 충격에서 도피하고 수습할 수 있게 만든다. 지금의 고통과 충격을 잠시 내려두고 지나가며 수습할 수 있도록. 그러나 어린 아이에게 그만한 여유와 게으름과 나태를 알 시간이 있었을까. 아직 준혁은 한참을 내달리고 있었다. 자신의 형과 함께, 가디언을 이긴다. 최고의 헌터가 되겠다. 그 목적으로 달려오던 어린 준혁은 그날 무너졌다. 누구보다 믿었던 누군가가 자신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단 것. 그것이 준혁을 무너지게 했다.
그리고 그 날 밤, 준혁은 눈이 멀 것만 같은 새하얀 빛을 보았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저 끝없는 길을 향해 내달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만족감, 충족감, 우월감. 그 모든 것들이 몸을 세차게 충동질했다. 한참을, 그 끝모를 어딘가를 향해 내달리면서 준혁은 생각했다. 능력 있는 이들을 자신의 아래에 두고 자신이 그 위에 서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게 하겠다고.
의념을 각성한 날 아이의 얼굴에 생겼던 수많은 눈물 자국과 붉게 달아오른 몸은 의념이란 기적적인 힘에 의해 다음 날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누구도 그가 절망했단 사실을, 첫 배신 이상으로 상처를 받았단 사실을 숨겨주려는 듯 말이다.
>>720 "꿈에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의념 시대 초반 혼란기의 박살난 서울 같아보였지만 묘하게 다른 곳이었죠.
어쩌다보니 어떤 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여의도랬던가? 거기서 시윤 아즈바니와 여러 사람들이 큰 공룡에게 총구를 들이대고 맞서고 있었습니다. 그 공룡이 워낙 덩치가 커서 한두 발 맞아선 쓰러지지 않더군요. 여러 사냥꾼들이 놈을 쓰러트리기 위해 진을 치고 있었는데...그래도 며칠이 걸렸습니다. 그렇지만 시윤 씨의 총격을 마지막으로 맞고선 결국 쓰러지는 것이 인상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