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착하게 비늘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천천히 회전 시킨다 단지 흉내내는 것 정도라면 진오현 보다는 못하겠지만 아버지의 창술을 나는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 경험을 토대로, 망념을 잔뜩 뱉으면 어떻게든..닿지 않을까
한발을 앞으로 힘껏 내지르며, 뒤에 있는 팔이 뒤따라 붙기 위해 망념을 불태워 창을 내지른다.
"..웨에에.. "
이길리가 없지. 한 평생 책상에 앉아서 생각만 하던 사무직과 현장직의 차이는 이 정도다. 아니 오히려 내가 이기면 그거야 말로 기만중에 기만 아닐까? 아무튼 망념이 목끝까지 차오르는 느낌에 구역질이 올라오지만 특별킹이 목뒷덜미를 잡아 끌어내준 덕에 훈련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어떤 요술을 부린건지는 몰라도 총을 쓰던 녀석이 창을 들고 와서 덤벼왔다. 창 총 발음이 비슷하긴 하지 북해길드의 비전이라도 이으려는건가? 같은 생각을 하며 창을 쳐낸다. 총의 숙련도가 창으로 변한거 같지만 그정도로늡 어림 없다. 창을 쓴 경험이 적고 무엇보다 근접전이란걸 해본적 없는 녀석이니까 근접전을 위한 능력치는 내가 우위고 기술도 경험도 내가 높다. 정면에서 싸울때 진다면 벽을 넘은 보람이 없지 준혁의 뒷덜미를 잡고 훈련장 밖으로 나와 적당히 쉴만한 장소에 내려 놓는다.
"무슨 바람이 분지는 몰라도. 제법이었어"
토고도 나한테 바람 구멍을 내더니 창 잡은지 1년도 안되었으면서 잘 싸웠다. 이대로 한달만 지나도 내가 위험하겠는데
"편입생들이면 정도면 좋은 승부가 되겠는데"
편입생들을 무시하는게 아니라 준혁이의 경험이 있다. 근접전은 없어도 게이트와 영월을 통한 경험 그 차이는 분명이 크다.
"한달 뒤면 내가 질지도 모르겠어"
물론 나도 성장할거니까 지금의 나 기준이다. 나도 새로 배운 기술을 이해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숙제가 있다.
" 대검을 쓰는 걸 상정해서...기초 검술에 덧씌워서 예상했는데..처음 보는 기술이잖아 그건"
적어도 내가 아는 한. 태식이 아저씨가 쓰는 기술은 기초 검술의 바탕에 무기가 대검이라 한번 휘두를 때 마다 강한 타격을 주는 검술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시뮬레이션한 태식이 아저씨의 검술과는 많이 달랐다. 이게 패착인 것도 있고, 또 ... 경험 부족 이건 부정할 수 없다. 압도적인 경험 부족..
전열에 나서서 싸웠던 경험이 부족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포지션을 워리어로 나서서 싸우기엔 맷집이 부족하고, 랜스로 나서서 싸우기엔 창이라는 무기를 들고 거리를 조절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이 검술은 상대를 봐주거나 하는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투쟁엔 적당히란게 없다. 언제나 어디서나 (피카츄가 함께있어!) 전력을 다해 싸우기 위한 검. 기존부터 근접전을 해온 태호, 지한, 명진이면 몰라도 아직 경험이 부족한 다른 애들한테 함부로 썻다간 크게 다친다. 이걸 좀 더 쓸 줄 알았더라면 에루나하고도 다른 결과가 나왔겠지만
"편입생도 꽤 하더라고, 토고는 내 배에 구멍을 뚫었고 에루나 녀석은 모든 능력치가 전투에 몰려있는지 결국 내가 졌으니"
다른 분야에 가야할 몫까지 전투에 끌어온 거 같다.
"성격도 불 같은게 의뢰 같이 갈 애들이 고생 좀 하겠어"
눈 앞의 준혁이와는 상극이 아닐까 상황을 지배하에 두고 통제하려는 자와 개인의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자
"사무직 편하게 하려면 꿀팁이 있지"
이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일단 본인이 손도 못댈 정도로 강하면 머리 아픈 문제는 대부분 해결 가능해."
신한국이 외교 문제가 생겼다고 치자 서로 명분이니 뭐니하면서 머리 싸움하고 있는데 홍왕님이 나서서 한마디 하면 바로 끝이지
여느 때와 같이 흘러가기만 하던,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날. 그리고, 늘 가벼운 잡담을 하며 따라 걷는 산책로에서 언제나처럼 음료수 캔을 몇 번 홀짝이며 길을 걷던 나는 뒤에서 따라 걷는 너에게 스치듯 말을 건네려 입을 열었지만 몇 번이고 생각하던 말을 내뱉는 그것이 조금 힘겨워서, 목에 걸려 넘어오지 못하는 말을 한번 씹어 삼켜 다시금 문장으로 조립했다. 그래. 마치, 산산이 부서진 것을 체에 걸러 고운 것만 남기는 것처럼 말이다.
"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
잠깐의 정적과 풀벌레가 우는 소리. 그리고 무엇이냐고 심드렁하게 말하는 평소와 같은 너의 반응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본래라면 시답잖은 이야기나 농담 같은 것으로 분위기를 띄우거나 했겠지만 경직된듯한 사고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너는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분명, 싫어하지 않을까.
" ... "
무표정한 너는 평소와 다른 나의 침묵에 약간의 의문을 건넸다. 무슨 문제라도 있냐고 말한 것 같았지만 그다지 잘 들리지 않았다. 풀벌레 소리마저 먹먹하게 귀를 울릴 때쯤 나는 발걸음을 멈춰 세우며 체에 걸러 정제된 말을 내뱉을 준비를 했다. 갑자기 우뚝하고 멈춰선 나를 왜 저러냐는 듯 쳐다보며 같이 발걸음을 멈춘 너에게 시선을 돌리며 평소와 조금 다른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인 나는 몇 번이고 부숴 모래가 된 듯한 말을 손으로 그러모아 입에 담았다. 정말로 모래를 입에 넣은 것 마냥 텁텁한 맛이 혀끝을 맴돌았다.
"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분명 싫어하겠지? "
흘러내린 모래처럼,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이 너에게 닿아 힘없이 흩어졌다. 입에서 느껴지는 쓴맛과 고요한 정적이 마치 시간을 길게 잡아끌어 이곳에 묶어두는 듯했다. 이윽고 억지로 끌어올린 입꼬리가 풀리고, 힘없이 웃어 보인 나는 볼을 두어번 긁적거렸다.
" 아니다. 괜한 말을 했네. "
입안에서 느껴지는 텁텁함을 억지로 털어내며 나는 시선을 돌려 다시금 앞을 바라보았다. 손에 들린 음료수의 차가움은 이미 사라져 미지근한 온도가 기분 나쁘게 손에 달라붙고 있었다.
[차라리 너희가 찍은 사진을 못 봤다면 좋았을 텐데.]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는데.] .. [네 행동을 탓하거나 진실성을 따지고 싶지는 않아.] [그냥. 간격이 너무 짧았을 뿐이야.] .. [사실 질투도 나고 너한테 배신감도 느꼈는데.] [못 본 체하고서 다 잊어버리려고 했어.] .. [근데 하필 그때 네가 만나자고 한 거라고.] .. [그러고선 나는 이제 마지막인 것처럼 굴었잖아.] .. .. [있지. 나도 네가 싫지 않아.] .. [그냥.. 나를 조금만 가볍게 대해줬으면 좋겠어.] .. [멀어지자는 말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줘.] [너무 서두르지 말자는 얘기야. 친구로 지내는 거.] .. [그리고.. 때로는 너무 솔직한 것이 독이 되지는 않을까.] [아직은 연인이 아니라는 말을 유하가 들으면 분명히 실망할 거야.] .. [속에 있는 모든 걸 숨김없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그 진솔함이 잔인하게 들릴 때도 있거든.] .. 시윤은, 앞에 앉은 라임이 그 말들을 모두 메시지로 보내는 동안, 한마디 말없이 눈을 내리깔고 화면의 자판을 터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 "마음대로 작별 인사처럼 말하지 말라고..." .. 라임은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숙인 채, 손에 든 선물상자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