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인간 말고 사람이라고 해줘, 라고 하는 라임의 말에 강산은 군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미묘한 어감 차이, 알 것도 같았으니까. 그리고 나 토끼 맞아, 라는 말에 강산이 뭐라 답할지 고민하기 시작한 순간 라임이 포옹을 푼다, 그리고.
"흐긱!"
라임에게 옆구리를 찔려 놀란 강산은, 외마디 괴성을 내며 몸을 벌떡 일으키려다 균형을 잃고 뒤로 자빠지려 한다. 의념의 힘을 끌어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제대로 저항하기엔 너무 갑작스러웠다. 게다가 하필이면 꿇어앉은 자세라 곧바로 빠르게 일어나기도 어려웠고. 양 손을 뒤로 짚어서 몸을 받쳐 겨우 엎어지는 걸 막았더니 이어서 라임의 간지럼 공격이 들어오려 한다. 강산은 결국 의념을 끌어올려가며 벌떡 일어나더니 잡힐 듯 말듯 라임의 손을 피한다.
"그래서 거 한동안 감추고 다니던 거 다시 꺼내놓는 거냐?"
그러면서도 시선을 라임의 토끼귀에 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해도 말이지...
"그래도 일찍 죽는다니 뭐니 하는 소리 이제 하지말어."
강산은 그렇게 말하며 별안간 장난스레 빙긋 웃는다. 그리고 라임의 양 어깨를 잡더니 아까의 간지럼 공격에 대한 반격을 몇 초 시도하고는 빠진다. 라임의 컨디션을 고려해서인지 조금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라임은 옆구리를 쿡 찌르자 화들짝 놀라는 강산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게 웃어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놀래주려고 그의 옆구리로 손을 확 뻗었는데, 강산이 이제 일찍 죽는다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라임은 잠깐 고민했습니다. 머릿속에서 다음에 또 그러면 죽을 거라고 목소리가 그랬었는데. 조금 슬픈 생각이 들었던 순간, 강산이 어깨를 붙들고 반대로 간지럽히려고 하는 거 있죠?
"아악! 하나도 안 간지럽거든?"
라임은 소리를 지르면서 고개를 마구 휘저었습니다. 기다랗게 늘어진 토끼 귀가 찰싹찰싹 강산의 두 뺨을 때렸습니다. 귀는 부드럽고 힘이 없어서 하나도 아프지 않았겠지만 어찌나 빠르게 휘둘러졌는지 퍽퍽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솜방망이 같은 귀에 맞아서 강산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라임은 그를 제압하려고 어깨를 팍 밀쳤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 라임이 땅바닥에 드러누운 강산의 위에 올라탄 자세가 되었을 거예요.
"...."
라임은 강산을 싸하게 내려다봤어요. 토끼 귀가 길게 늘어져서, 강산의 눈가에 그늘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다지 이상한 분위기가 흐르지는 않았어요. 그저 조금 촉촉한 녹빛 눈망울이 강산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토끼귀에 맞을 걸 생각 못하고 덤볐던 강산이 황급히 뒤로 물러난다, 아니 물러나려던 차에 라임이 강산의 어깨를 밀친다. 강산의 몸이 뒤로 기운다. 어째선지 라임도 같이. 아까 의념을 끌어올려두었기 때문에 아프진 않았다. 라임이 강산을 내려다봤을 땐 좀 긴장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
그 뒤에 이어진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 한다. 얘가 함경도에서 왔던가? 아니 그러기엔 뭔가 어설픈데. 통역 기능이 오작동하기라도 했나? 아니면 뭔가 착각을 했나?
"친구 걱정하는 게 이상하냐? 이 정도 걱정은 할 수 있잖아."
통역 기능의 오작동일 가능성이 있었기에 강산은 일단 표준어로 돌아간다.
"너 좀 전에 상태도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고. 꼭 어디 아프거나 단기간에 스트레스 왕창 받은 사람 같았단 말이지."
그래, 상태가 좋지 않은 친구를 걱정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만 쟤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고 쟤는 나한테 별 생각 없었다면 그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라는 생각이 한 발 늦게 들었지만.
"...알았으면 비켜주라."
강산은 태연하게 나오기로 했다.
//팩트 : 지역을 틀림........ 강산이가 정주 주가라는 설정인데...정주가 평안도에 있는 지역이란 데서 평안도 사투리 설정이 추가된 거거등요...😅
그냥 고마워서 장난친 거였는데. 강산은 라임이 북지방 말투를 어설프게 흉내 낸 것에 기분이 언짢았던 걸까요? 그는 여태 잘 쓰던 사투리를 쏙 집어넣고 약간은 진지한 투의 표준말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어쩌면 라임에게는, 한강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 붙잡아 말린 거랑 비슷한 건가 하고 생각되기까지 했답니다. 으레 누구라면 해주는 그런 것처럼.
"그래. 내가 장난이 심했어."
알았으면 비켜달란 말에, 라임은 곧장 옆으로 기어가서 아까처럼 땅바닥에 몸을 붙였습니다. 땅을 잘 보고 있으면 개미가 뽈뽈 다니는 게 보여요. 개미집이 어디 있을까. 하고 손가락으로 흙땅을 만지작거리는 라임이었습니다. 가라앉은 녹빛 눈망울은 드문드문 바닥에 깔린 잡풀이랑 색이 비슷했답니다.
라임이 옆으로 기어서 비켜주자 강산은 웃으며 말하고는, 그 반대쪽으로 몸을 뒤집는다. 그냥 조금 놀랐을 뿐이다. 평소에 이러고 놀던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말이지...아니 그보다 얘는 그런 컨디션으로 장난질이 나오나? 잠깐 라임을 보며 생각하던 강산은 '기분이 좀 나아졌나보지.'라며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무고한 개미들을 최대한 피해가며 팔다리를 움직여, 다시 라임의 옆으로 다가간다. 라임의 등을 두어 번 가볍게 두드리고는, 좀 전의 그 소프트 캔디를 하나 까서 개미집 근처에 떨어트린다. 그리고 개미들이 캔디를 발견하고 모여드는 걸 가만히 바라본다.
"우리도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오늘은 내가 쏠까?"
오래가지 않아 다시 라임에게로 고개를 돌려버리지만.
//강산이라면 장난같은 거 잘 받아줄 법도 한데 안 그렇게 보인다는 건 오너가...진지충이라...캐오불일치가 여기서...^.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