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도시에서 25년이야. 마피아들을 죽이는 건 나쁘지 않았지. 기억도 거의 나지 않아. 하지만 마을을 태우고 벌거벗은 사람들이 울부짖는 모습은... 매일 같이 지켜봤지. 이건 PTSD가 아니야. 이건 마약이야.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제롬과 달리 여인은 술을 넘길 때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자주 이런 식으로 마시는 걸까. 제롬의 모습이 평소 같지 않은 걸 여인도 보았다. 그러나 평소와 같은 따뜻한 말도 상냥한 손길도 내어주지 않았다. 옆에 앉아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긴 간격이나마 한마디씩 해주기만 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돌아오는 것도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이윽고 천천히, 조심히 들려오는 말들에 두어번 눈을 깜빡였다. 여전히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얼굴이 비스듬히 제롬에게 향했다.
"너만 안 온게 아니라. 내가 간 적도 없었구나. 그랬지. 음. 아늑하단 감상은 처음 들었어. 온 사람도 한 손에 꼽을 정도지만."
그래. 생각해보니 알고 지낸 동안 여인이 제롬의 집에 간 적도 없었다. 관심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여인은.
"예전에 후회할 일이 있었으니까.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단 의미 아니겠니."
술의 힘을 빌려 겨우 질문을 꺼낸 제롬에 비해 여인의 대답은 너무 가볍게 나왔다. 그게 다인 듯 말하고 술 한 모금을 넘기더니 잔 든 손을 바꿨다. 그리고 빈 손을 들어 제롬의 머리에 얹고 천천히 쓰다듬어주며 약간의 말을 보태주었다.
"어릴 때, 겨우 도시에 정착했을 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좋아했던 사람에게 버림받았어. 그 때 나는 너무 어렸고 아직 도시를 잘 몰라서. 멋대로 믿고 멋대로 좋아해버린 선택을 한 거야. 그 결과에 세상이 한번 무너질 만큼 후회한 거고. 다신 그러지 않겠다 결심 했던 거지."
그걸 네가, 깨게 만들었지만.
나직히 중얼거리는 여인의 얼굴은 희미하게 웃는 것 같기도 했다. 여인은 쓰다듬던 손을 내려 제롬의 얼굴을 한번 감싸고 떨어졌다.
"그 때 이후로 감정 표현 같은게 잘 안 되게 됐어. 그래도 어려울 건 없었지. 그런 척 하는 건 쉬우니까. 그 시절부터 알던 사람 아니면 늘 가면을 썼었는데.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네."
이번엔 확실히 보일 만큼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음기 선명한 입술 사이로 독한 향의 위스키가 멈출 줄 모르고 흘러들어갔다. 술을 넘기듯 고개를 뒤로 기울여 소파에 기댄 여인이 웃는 듯한 눈으로 제롬을 지그시 응시했다. 지금이라면 묻는 것에 다 답해주지 않을까 싶은 시선이었다.
냄새나는 창고였다. 스텔라는 이런저런 기자재가 어지러이 모여있는 어두운 창고 안으로 걸어들어왔고 안에는 두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은 공식적인 이름으로 협업을 맺은 조직의 보스, 다른 한 명은 그의 수행인. 스텔라는 자신의 가족이 아닌 돈을 주고 산 수행인을 데려왔다.
" 급하게 어딜 가던 중이라서. 부탁한건 가져왔나? "
" 고작 이 정보때문에 돈을 그렇게나 많이 주겠다니 많이 받은 만큼 제대로 만들어왔지. 자, 여기. 첫 번째 종이에 있는 명단은 내가 밀수를 하면서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명단이야. 즉, 너희를 위해서 정보를 캐줄 수 있는 사람의 명단이지. 두 번째 종이에 있는 명단은 그 중에서도 특히나 의심가는 사람들의 명단이야. "
스텔라는 종이를 건넸고 남자는 종이를 받았다. 그가 종이를 살피는 동안 스텔라는 어깨를 으쓱이곤 다시 말을 이어갔다.
" 당신의 그 빌어먹을 궁금증에 대해서 말인데, 돈을 준다니까 내가 우리쪽 사람들을 풀어서 정보를 캐주겠지만 말야.. 글쎄, 나도 그렇게 큰 기대는 안하니까 당신도 기대 안하는게 좋을거야. "
두 조직간의 전쟁이 있었다고 들었다. 한 쪽은 호라이즌 블라인더스와 협업을 맺은 지금 이 사람이 있는 조직이고 다른 하나는 그 쪽보다 크기가 큰 조직이라고 했다. 스텔라가 그럼 이만 갈게- 라고 말하려는 찰나에 총의 묵직한 쇳소리가 들렸고 눈 앞에는 총구가 들어와 있었다. 스텔라는 별다른 동요없이 뭐야? 하고 한 마디를 더했다.
" 명단에서 이름 하나를 뺐군. " " 내가~? " " 그래. "
총이 눈앞에 들어왔지만 스텔라는 이미 전부 예상하고 있었다는듯 별 다른 동요없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건들거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 이미 우리 쪽 스파이랑 얘기를 해봤지. 그들 말로는 이 구획에서 당신의 밀수품 그리고 밀주와 약을 구매할 사람들이 세 명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부자인 사람의 이름이 빠져있네. "
" 음, 그래. 이미 다 알고있었네. 그럼 왜 이런 시궁창을 날 부른거야? "
"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첫 번째. 확실히 아는 이름을 주지 않는 다는것 당신이 그 사람과 거래를 했다는 증거야. 그 쪽 놈들에게 우리의 본거지를 알려준 사람, 우리의 거래 장소와 다른 조직과의 관계를 알려준 사람도 당신이지. 두 번째 이유. 당신이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사람이 나의 적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그 사람을 보호해줄 이유가 없을테니까. "
" 저기, 귀염둥이. 사람을 이런식으로... "
" 정보를 넘겨준 대가로 돈을 요구했겠지. 그리고 당신이 만들고 있는 술의 통관과 유통까지 말이야. "
" Urgh..... 저기, 들어봐! 그 돈들은 진짜 네가 상상하는 액수 그 이상이야! 돈이 날 불렀다니까? 스텔라~ 난 너를 위해 여기 있어~ 우리 전부를 가져가줘~ 하고 말이야! "
요점은, 스텔라는 배신을 했다는 이야기다. 둘 중 더 이득이 되는 쪽에 붙어서 정보를 넘기고 그 대가로 돈을 받고 세력을 확장할 계획이었다. 이 쪽 녀석들과는 협업을 맺고 있었지만 원래 한 순간에 등 돌리고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붙는게 이 바닥의 규칙이니까. 호라이즌 블라인더스의 사장으로서 그리고 가족의 가장 큰 언니로서 스텔라는 옳은 결정을 내렸다. 그게 배신이라도, 우리 가족과 회사에 더 큰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 선을 넘었어, 스텔라. " " 망할 뭘 넘어? " " 선을 넘었다고. " " 선? " " 그 새끼들이 내 동생을 데려갔다고!! "
동생. 스텔라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동공이 흔들렸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이곤 그래서 어쩌라는건데? 라는 식으로 조금은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다.
" 너, 씨발 알고있었어? " " 뭐~ 그래. 당연히 알고있었지. 근데 난 원래 이런 놈이야. 그게 나랑 도대체 무슨 상관인데? "
남자는 순식간에 달려들었고 스텔라는 바닥에 넘어졌다. 그 위에 올라탄 남자는 목을 졸랐고 스텔라는 윽,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손목을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텔라가 돈을 주고 사온 사용인은 남자를 뜯어냈고 스텔라는 켁켁 대며 일어섰다.
" 으윽, 이런 씨.. "
그리곤 총소리. 스텔라의 사용인이 상대방의 부하에 의해 총에 맞고 쓰러지는 소리였다. 스텔라는 습관처럼 Urgh... 하고 앓는 소리를 내었다.
" 환장하겠네. 이게 다 무슨 난리야. "
스텔라는 비틀거리며 일어섰고 총구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 왜이래? 화가나서 맛이 간거야? 어? " " 그래, 잘 아네!!! " " 전부 네 생각이 글러먹어서 그런거야. 알아?! "
둘 사이에 파고 든 것은 남자의 부하였다.
" 보스! 안돼요! 참아요!! 이 새끼 죽어도 싸요! 저도 알아요! 그런데 지금 여기서 죽여버리면, 남쪽 구획과의 휴전 협상은 전부 다 날아갈거에요! " " 걱정하지마 꼬마야. 그 휴전 협상은 이미 엎어졌으니까. 이제 남쪽 구획의 무서~운 사람들은 네가 상관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게 됐으니까. " " 스텔라 당신 대체 누구 편이에요!! ' " 그딴 건 지금 아무 상관없어!! "
스텔라의 높은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자 잠깐 정적이 일었다. 스텔라는 화가 난 듯이 언성이 올라갔고 삿대질을 해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 그딴 빌어먹을 휴전 협상때문에 날 살려둬? 그딴건 나도 바라지 않아!!! "
스텔라는 성큼성큼 걸어가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로까지 다가섰다.
" 내가 원하는건 말야, 네가 느끼고 있는 그 분노. 그 분노가 정당하지 않다는걸 인정하는거야. 알아? "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가족이 다치는건 원하지 않으면서, 그도 다른 사람의 가족을 다치게 했다. 그리고 여기서 더 감정적으로 변한 것은 항상 챙겨주고 의지할 대상이었던 오빠가 어느 순간에 자신을 버리고 사라졌다는거. 그렇게 죽을 위기를 혼자 넘겼는데 이제와서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그 위선이 겹쳐보였기 때문이었다.
" 네가 칼을 들고 싸우면, 너도 칼에 맞아 죽는다는걸 인정하라고!! "
그제야 말의 요점이 잡혔는지 총을 들고 씩씩거리던 남자는 어느샌가 총을 내리고 거친 숨만 쉬었다.
" 그래, 그들이 네 동생을 납치했어? 그들이 네 동생을 데려갔군? ..... 그래서 내가 어떤 선을 넘었는데?! "
한 차례 더 언성을 지르고 스텔라의 목소리는 조금 잦아들었다.
" 다른 사람들의 얼마나 많은 동생들을, 얼마나 많은 오빠들을 네가 난도질하고 죽이고 살해하고 썰었는지 몰라? 무죄든 유죄든 전부 골로 보내버렸지. 나처럼 말이야!! "
결국 전부 똑같은 사람들이란 이야기다. 우리 모두 이 길바닥에서 구르고 있는데, 혼자서만 깨끗한 척이라니. 칼을 들고 싸우면 자기도 칼에 맞아 죽는다는 것 쯤은 알아야할텐데. 정당하지 않은 분노가 자신에게 향하는 꼴을 눈뜨고 보지 못하겠다는 이야기였다.
" 근데 넌 거기서서, 감히 날 비난하고 내가 선을 넘었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지껄이고 있어. "
스텔라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남자의 손에 쥐고있던 총을 잡아 자신의 머리에 가져다대곤 그 두 눈을 노려보았다.
" 그 방아쇠를 당길거라면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당겨. 고결한 사람처럼 말이야!! '
그리곤 손을 세게 쳐서 들고 있던 총이 바닥에 나뒹굴게 만들었다.
" 우리 세계의 잔인한 질서를 모르는 민간인처럼 굴지 말라고. "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두 눈동자. 스텔라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 ...네 동생 일에 대해선 정말 몰랐어. "
그리곤 뒤를 돌아 자신의 차로 돌아갔다. 가족, 동생. 지켜줘야하는 존재. 스텔라는 자신의 차로 돌아가면서 자신의 가족을 생각했고 자신을 버리고 간 오빠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이 일에 대해선 손을 떼야겠다고 생각하며 스텔라는 코트 속의 술을 꺼내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