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희 인간들이 상상도 못할 것들을 봤어. 오리온의 어깨에서 불타오르는 강습함들, 탄호이저 게이트 곁의 암흑 속에서 반짝이는 C-빔들도 봤어. 그 모든 순간들이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야.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고갯짓 하자 천연덕스럽게 집 안에 들어섰다. 상대가 기분 나빠하는 것 명백히 알았으나 무시했다. 시안은 제 기분 거슬렀다 하여 멱살부터 잡는 부류에 속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잦아지면 곤란할 수도 있겠지만, 한 두 번 이랬다 해서 거래를 끊을 것처럼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것은 프로스페로의 추측일 따름이다.)
"조금만 있으면 더 두꺼운 파자마가 필요할 수도 있을걸. 요즘 바람이 꽤 날카롭더라고."
그라탕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자리 권유받지 않았으나 이미 새벽 한 시에 쳐들어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례했다.
칸나는 이리스의 말을 확실히 들었다. 그러나 침묵하였다. 그저 삐죽이는 이리스의 입술에 말없이 웃어보일 뿐이었다. 못 들은 척 한 것인지, 침묵 그 자체가 대답이었는지.
칸나는 이리스에게 본인의 어두운 생각을 말하고 싶지 않아하였다. 아끼는 만큼 숨기고 싶은 것은 많아지는 법이다. 비록 이미 서로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그런 식이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걸."
그러니 시치미 때며 가벼히 얘기하게 되는 것이다. 김빠지는 듯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리스를 향해 손을 내뻗는다. 이렇게 그대로 들어올려 편히 쉴수 있는 침대로 옮길 생각이었는지 그녀의 등을 받치려 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이리스의 행동에 당황하고 만다.
"...? 이리스?"
목에 둘러싸이는 온기에 연신 눈을 깜박인채로 굳을수 밖에 없었다. 언제나 처럼 내려다보는 자세가 아닌, 그대로 눈을 마주칠수 밖에 없는 각도와 거리. 혼란이 뚜렷히 칸나의 얼굴에 모습을 드러낸다. 누군가에겐 악몽일 새까만 눈이 이리스의 입술을 따라 읽어버릴 즈음.
"...이리스, 무슨- "
칸나의 눈이 커졌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연기를 하는 어른이라도 결코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란 존재했다. 미처 뇌가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부드러운 촉감이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머리를 미미하게 내뺄 시간도 없이 이리스의 움직임에 따라 뒤로 밀려났다. 갈 곳을 잃은 두 손이 허공을 짚었다.
조용해진 방에는 빗소리만 들려왔다.
멈추어버린 시간을 깨는 것은 이리스였다. 미동없는 칸나의 입술에게서 온기가 떠나갔다. 칸나는 그런 이리스의 움직임을 흔들리는 눈동자로 따랐다. 그리고 자신의 상의가 그녀의 손 아래 구겨지자, 그제서야 칸나는 움직였다. 그게 그녀를 깨우는 신호탄이라도 되는 양.
"............이리스."
반쯤 벌려진 입술. 왠지 추워진 입술 사이에선 이젠 어리지만은 아닌 소녀의 이름이 흘러나온다.
"이리스..."
한 손을 들어, 싸구려 가죽 재킷을 움켜지는 이리스의 손위에 포갠다. 부드러히, 다정하게. 이어질 말에 미리 사과하듯이. 왜냐하면 이리스를 바라보는 칸나의 얼굴에 띈 감정은 기쁨도 무엇도 아닌.
"미안하다."
괴로움이었으니까.
***
칸나는 이리스가 소중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었고, 가지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손에 쥐어두고 싶었다. 그녀를 완벽히 지킬 권위도 힘도 허락도 없었기에 더더욱. 열세살의 아이를 작고 작은 선안에 들였을때부터 그리 생각했다. 곁에 있지는 못해도 할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줄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이게 칸나의 「소중함」의 형태였다. 가능한 것은 뭐든 지 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건 「불가능」의 범주에 들었다.
"미안해, 이리스."
칸나는 이리스의 손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미 후끈해진 집에서도 자신의 온기로 데우는 듯히 감싸안은 모양이다. 칸나는 이리스가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다. 이것 또한, 둔한 칸나로선 이해 못하는 가벼운 장난일지도 모른다. 요즘 애들 사이 유행하는 놀이일지도 모르고, 고통과 빈혈에 취한 헛소리일수도 모른다. 그럼에도 느리게, 허나 뚜렷하게, 굳게 다문 입매와 함께 칸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사과는 무엇에 대한 답이며, 무엇에 대한 사죄일까? 칸나는 이리 답할 것이다. '그 무엇이든, 그 모두' 라고.
칸나는 이리스를 바라보았다. 금발의 소녀를 담은 두 어두운 눈은 너무나도 씁쓸한 슬픔을 담고 있었다.
칸나의 시간은 멈춰있었다. 고인 빗물과도 같은 그녀였기에, 그녀의 눈에 비치는 이리스는 언제나 그저 보호해야 할 어린 아이였다. 어느새 훌쩍 커버려 20대에 발을 들였다고 해도 그랬다. 머리로는 안다고 자부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언제나 그저 사랑스런 동생으로 봐왔고, 그 이상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리스가 원하는 것은 모든 지 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존재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칸나 브라이트'였고, 이 도시는 '뉴 베르셰바'였다.
곁에 있어달라는 부탁 하나 들어주지 못하는 현실이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칸나 브라이트에게는 사명이 있었다. 그 사명 단 하나를 위해 칸나는 스스로를 불태웠다. 정의의 탈을 쓴 분노, 그 끝 없는 열기에 뼈를 녹여 죄인을 단죄하였다. 책임감이라는 오만에 휩싸여, 누군가는 해야만 했던 일을 행했다. 손이 피로 절어졌다. 미처 구하지 못한 소녀의 텅빈 눈이 그녀를 원망스레 노려보았다. 상냥한 아버지를 빼앗긴 소년이 울부짖었다. 동료를 잃은 자들이 이를 갈았다. 그들 모두가 '케르베로스 블랙'의 이름을 울부짖었다. 그에게 절망을, 고통을, 죽음을!
그럼에도 칸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정의'를 관철하며 앞으로 움직였다. 주춤거릴때마다 죄책감이 그녀의 목을 조였다. 이미 죽은 자가 속삭였다. 나를 죽게 나둔 네가 행복할 자격은 없어. 아직 살아있는 자가 흐느꼈다. 아직 구하지 못한 나를 두고 행복해할 시간이 없어. 멈출수 없었다. 쉴수 없었다. 인간의 온기가 사무치게 그리워도. 그게 '사명'이라는 것이었다.
'칸나 브라이트'든, '뉴 베르셰바'든, 둘 중 하나가 부숴져 스러질때 까지 칸나는 멈추지 않는다.
...어느 쪽이 먼저 일어날 확률이 높은 지는 뻔했다. 그리고 칸나는 이리스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칸나는 한 동안 그렇게, 말없이 이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두 손을 뻗었다. 한손은 등에, 한 손은 이리스의 머리를 받치며, 그대로 이리스를 끌어안았다. 제 가슴팍에 가까이 대려와, 자신의 온기를 온전히 전하듯이 품에 가두었다.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자세에서, 칸나는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너는 똑똑한 아이니까, 내가 이러는 이유를 이해하겠지, 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네 진심어린 부탁도, 네 사랑스런 입맞춤도, 그 무엇도 나는 보답할수가 없어.
품에 안긴 이리스를 감싸안아, 그 숨결을 느낀다. 고인 빗물의 운명은 그대로 마르거나 썩거나, 둘 중 하나 였다. 그런 운명에 이리스라는 이름의 작은 불꽃을 끌어들일수는 없었다. 칸나가 생각하는 어른의 책임감이었다.
미안, 이라고, 몇번이나 입에 담은 사과를 되뇌인다. 그녀가 '칸나 브라이트'고 이 도시가 '뉴 베르셰르'인 상, 어느 형태로서라도 곁에 남을 수 없었다. 그리고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던 칸나는, 면죄부가 되기에는 이미 낡아 너덜해져 버린 단어를 끝없이 속삭였다. 자신은 비겁함을 어른스러움으로 포장하려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고, 문득 든 생각에 이리스의 등 뒤로 보이지 않는 조소를 머금었다.
이리스는 자신을 감싸안고선 몇번이고 미안하다 되뇌이는 칸나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쩌면 칸나보다도 더욱 잔잔하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칸나의 품에 고개를 박고선 고개를 저어보인다. 미안할게 무엇이 있을까, 지금 미안하다 되뇌이는 것도 결국엔 자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이리스가 모를리가 없었다. 이리스는 멍청한 듯 하면서도, 멍청하지 않았다. 지금도 칸나의 마음 속에 타오르는 불꽃을 알고 있었다.
사실은 이런 대답, 이런 반응이 돌아올 것이라는 것도 어차피 알고 있었다. 단지 칸나가 지금 무언가 잊은 것은, 눈 앞에서 피어나고 있는 또다른 불꽃은 종잡을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이겠지. 그런 점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으니까.
" 왜냐하면 나도 미안하다고 할거니까. 언니한테 미안하다고 할거야, 지금. "
이리스는 천천히 파묻고 있는 고개를 들어선 다시금 칸나의 깊게 가라앉은 눈을 응시한다. 분명 너는 우울함을 담고 있을거라 예상하고 있을지 모를 붉은색 눈동자는 오히려 빛을 띄고 있었다. 이미 마음을 먹은지 오래라는 듯 차분하기 그지 없는 모습. 그 모습으로 칸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 길고양이들은 말을 안 들어. 아무리 먹을 것을 주고, 간식도 가져다 주고, 놀아주면서 친해져도 막상 내가 부르려고 하면 다들 제갈길, 제멋대로 가버리고 말아. "
이리스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은 잔잔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갑작스레 길고양이 이야기를 꺼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둔감한 칸나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는 말이지만, 어차피 그것도 상관없었다. 빙글빙글 돌려가며 이야기 하는 건 이리스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 언니가 나한테 뭘 해주려고 할 필요도 없어. 내 길은 내가 정하고, 내가 나아가는거야. 언니는 언니가 하고자 하는 걸 해. 나는 그 곁을 내 나름대로, 내 마음대로 나아갈꺼니까. 그렇게 서로 나아가다가 그 길이 겹쳐서 마주치고, 또 겹쳐서 마주치고, 또 마주치면 언니도 조금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지. "
그러니까 언니는 당장 뭔가 해주려고 생각할 필요도, 이유도 없어. 그냥 지금처럼 언니는 하면 되는거야. 이리스는 살며시 칸나의 뺨에 손을 얹고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어보인다. 어려울 것 없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하면 되는거니까.
" 언니가 하는 일은 방해하지 않아. 위험하다며 막지도 않을거야. 오히려 도울지도 모르지. 물론 나도 지켜주기로 한 사람들도 있어서 때론 돕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대신... 그냥 나랑 이렇게 만나서 시간을 보낼 땐 나만 봐주는거야. 그건 해줄 수 있잖아, 그치? 어려운거 아니잖아. 오히려 여태껏 우리가 걸어온 나날들이랑 별로 다를 것도 없으니까. 난 그거면 되거든. "
그러니까 그래줄래? 이리스는 기나긴 말을 늘어놓는 동안에도 칸나와 눈을 마주한 것을 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