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희 인간들이 상상도 못할 것들을 봤어. 오리온의 어깨에서 불타오르는 강습함들, 탄호이저 게이트 곁의 암흑 속에서 반짝이는 C-빔들도 봤어. 그 모든 순간들이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야.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잘게 떨리는 손으로 제롬을 붙든 여인은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도 시선도 보이지 않았다. 늘 시선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던 모습과 달리 고개를 숙인 채 일방적으로 소리를 질러 댄 것이었다. 상처 입은 짐승이 격렬히 반응하듯이. 제 멋대로, 필터 거치지 않은 말들을 한참 쏟아 낸 후에는 고개가 더 아래로 숙여져서 흘러내린 머리카락과 그 위를 덮은 검은 천만 보이게 되었다.
그 상태로 놓지도, 물러서지도 못 한 채로 여인은 생각했다. 다 쏟아내고 나니 오히려 이성이 돌아왔다는게 모순적이었다. 아.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평소마냥 굴려고 했을 때부터? 의미 없이 옷을 갈아 입었을 때부터? 아니면 그 전? 모르겠다.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시작은 분명 있겠지만 깨닫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엔 너무 힘들었다. 전부 다.
"...알면서 묻지 마..."
여인이 하지 못 한 말을 제롬이 대신 했을 때도 거칠게 갈라진 목소리가 그렇게만 대꾸했다. 알고 있었던 건가. 아니, 여인의 말이 깨닫게 만들었을지도. 눈치가 빠른 제롬이 여인의 태도에서 그 생각 하나를 유추하지 못 할 리가 있나. 그것까지 알아버렸다면. 이제 무엇 하나도 제대로 된 건 없겠구나. 그렇다면 차라리...
제롬이 여인에게 팔을 뻗음과 동시에 여인의 팔이 제롬을 놓고 아래로 떨어졌다. 간신히 서 있을 뿐인 몸은 역시나 저항하지 않고 안겼다. 여인은 가는 숨을 쉬며 아까보다는 희미하게 떨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고집스럽게 고개를 숙여서 제롬이 하는 말들을 듣는지 어쩌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한마디 두마디 흘러가고, 끝끝내 선택을 하도록 만들게 하는 말까지 듣고서야 흐느낌 같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목소리는 낮고 먹먹했다.
"후회하기 싫다면서 후회하지 않을거라니.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 너는 나로 인해 다쳐도 좋다고 했지만. 그걸 보는 내 생각은 안 해? 최근만 해도 약냄새에 절어서 와 놓고 아무 말도, 얘기도 안 해준 주제에. 거기에 나 때문에 다치는 것까지 그냥 보고 있으라고? 잔인하네..."
흐흐. 하고 음습하게 흐르는 웃음소리를 따라 어깨가 떨렸다.
"그럼에도 그렇게 말하는 너희는, 정말, 부러울 따름이야..."
밑바닥을 드러낸 사람이 무얼 깊게 생각할까. 여인은 선택하기로 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분명 그랬으니까. 휩쓸린 판단 역시 그렇겠지. 안 그래?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용케 자리를 유지한 검은 천과 땀으로 엉망이 된 머리카락이 들러붙은 얼굴은 전에 없을 정도로 창백했다. 그 가운데 보랏빛과 보랏빛의 눈이 제롬에게 향했다. 지친 기색을 빼면 감정이라곤 보이지 않는 눈빛이었다. 고개를 든 여인은 작게 한숨을 쉬고, 늘어뜨리고 있던 팔을 들어 제롬을 안았다. 그냥 둘렀다는게 맞는 표현이겠지만. 안기기만 한게 아니라 기대어서 중얼거렸다.
"선택할게. 네 곁에 있는 걸로. 그 날이 충동이 아니었던 걸로, 하고 싶으니까. 적어도 지금은."
씁쓸하고 체념 섞인 말을 흘리곤 제롬의 등을 한번 쓸어주었다. 여인이 밀어 문에 부딪혔던 등을. 그리고 재차 한숨을 내쉬곤 어떻게 하겠냐고 묻는 시선을 내비쳤다.
"으응~? 정말 그렇게 생각하셔? 아무래도 이 도시에는 복제인간도 떠돌아 다니는 모양인데~ 헤, 스캔 당한 기억같은건 없는데 말이야. 니시시, 아니면 혹시 모르지~ 지금 여기 마주하고 있는 이 '로미 카나운트'님이 오히려 복제된 쪽일지도. 어쨌든 이 도시에겐 행운일지도 모르겠네~ 천재가 순식간에 두 명으로 불었잖아? 그건 축복할 일이지."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날 것으로 내뱉는 것에 불과하고, 무엇보다 정말로 로미가 둘이라면... 이 도시는 지금쯤 어떤 방식으로든 작살이 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헛소리다. 로미는 남은 맥주를 마시다가 이어지는 페로사의 말에 '~그건 생각하기에 따라 달렸지.'라면서 되돌려주었다. 로미의 얘기를 페로사가 들었는지는 몰라도, 그녀는 세상에는 없는 잃어버린 기술들을 찾기 위해 기꺼이 도시에 홀로 발을 들인 군상이다. 그러니 그런 식으로 0과 1을 들이민다고 한다면 대답이 긍정적인 쪽일 것이 분명해보였다. 로미가 페로사의 말에 눈 한 쪽을 가늘게 뜨더니 -신경질 적인 느낌은 아니다- 페로사를 따라 창밖으로 던졌던 시선을 다시 회수했다. 그리고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