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눈 앞이 어두워지는군... 부탁한다." "이곳을 너희의 거처로 삼겠다면 나와 부하들을 뒷뜰에 묻어줘." "우리 46명 다같이. 한 무덤에. 모두." "너네 진짜 개 많이 파야 할거다."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려고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로미는 보기 힘든 손님이다. 손님이랄지, 애초에 로미라는 인간 자체가 바깥에서 보기 힘든 부류의 인간이다. 하루 온종일 자기 가게에 틀어박혀서는 작업이 아니면 만화나 쓰잘데기 없는 영상물이나 보고 앉아있으니 말이다. 손님에게는 찾아오지 않으면 안 해준다고 하며 뭐라하고, 뭐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면 마음대로 배달을 보내고는 한다. '장사를 취미로 하느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서비스정신이 엉망인 가게다. 그러면서도 근몇년이고 간에 이 뉴 베르셰바에서 잘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입지를 굳히고 있는 것은 미스테리다. 장사라는 결국 사람의 이끌림이 있어야 되는 법. 그건 분명 로미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이 바의 바텐더도 바로 그런 점에 매료된 사람일 터였다. 그래도 바텐더는 운이 조금 좋다. '바텐더'로서 막되먹은 사장을 여기에 불러냈으니 말이다. 저기 문을 열고 그녀가 들어온다. 연분홍 코럴색 눈에, 지워지지 않는 느긋한 웃음을 걸치고 자켓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내려오는게 영락없는 로미 카나운트의 실루엣이다. 셰바가 아무리 개성파 도시라지만 이런 사람이 둘은 없다.
"오셨다~ 니시시."
로미가 천천히 걸어오며 고개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 탐색이라기 보다는 바를 무슨 테마파크로 취급하는 듯한 감각의 시선이었다. 이건 로미의 습관이다. 사람에게 워낙에 관심이 없으니 그 배경에서라도 뭐 재밌는게 없는지 찾아보려는 무의식의 소행이다. 하지만 역시 앤빌은 비스트로 바일 뿐이다. 조금 세련되었다는게 달랐지. 그것을 다시금 확인한 로미는 '출장비는 비싸게 받는데~'라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바의 스툴에 올라앉았다.
"웰컴 드링크! 어디이보자. 헤, 레이디 킬러인가~ 이런걸 먹여서 무슨 짓 하려고~? 여기 바텐더 아무래도 수상한데에. 경찰 불러 볼까~ 같이 좀 마시고 하게! 근데 웰컴 푸드는 없어? 난 참고로 피자가 좋아~ 페퍼로니로 해서. 흐음~ 페퍼로니랑 페퍼로미는 어쩐지 조금 닮았지? 이게 운명이란 건가~"
난데모 메카니컬 상점은 갈때마다 피자박스가 쌓여있지 않았던가? 어지간히도 피자가 좋은 모양이다. 그런 그녀가 잔을 입에 대고 기울이면서 바 위에 무언가를 스윽 올려놓는다. 그것 또한 사각형의... 피자박스?
"~자, 일단 이거부터 받으시라."
아니, 피자를 담았다기엔 좀 더 얇다. 좀 더 차갑기도 하고. 페로사는 금세 그것이 LP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전문용어로 Vinyl이라고도 하지~ 헤헤."
로미의 너털 웃음에서 알콜 섞인 쎄한 오렌지 향이 함께 묻어나온다. 내려 놓은 잔에는 담겨있던 술이 벌써 반 이상이 줄어들어 있었다.
비록 혼잣말을 중얼이듯 꺼낸 목소리겠지만 그녀의 귀에는 확실하게 와닿았다. 무엇보다 제가 상관할 일은 아니니 그냥 지나치려다가도 불러세워졌단 사실이 썩 유쾌하지 않다는듯 비틀어진 시선에서 곧이어 미간을 찌푸린 표정이 나왔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그런 실례와 민폐임을 알면서도 불러세우는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그렇긴 하죠~ 하지만 살다보면 가끔은 그런 실례를 무릅쓰고서라도 저질러야 하는 일이 있다고 하니까요~ 이런 도시에서 예의를 차린다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쉽지 않은 일이지만요~"
싱그러운 웃음과 함께 셰바의 탓을 하며 농담을 던졌을까, 그런 농이 지극히도 차가운 상대에게 먹힐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리지도 않은 것엔 분명한 감사를 표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지금의 상황이 그저 순전히 변덕으로 일어난 일이건, 우연이 다분히 섞인 기회이건, 쉽게 오지 않을 상황이라면 어느 누가 잡지 않으랴.
아무리 타인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가는 그녀라 해도 눈 앞에 버젓이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음에도 손을 뻗지 않을만큼 어리석고 야망이 없는 존재는 아니었다.
"다름이아니라... 모델이 되어주실수 있을까 해서요~ 그저 잠깐만 편하게 앉아계시면 되니까요~ 그리 길지도 않을 거구요~ 대략... 커피타임정도~?
아, 물론 얼마든지 거절하실 수 있답니다~? 억지로 해달라는건 아니니까요~ 다만, 뭔가 그림 한폭에라도 담아두지 않으면 세상이 꽤나 허전해질 것 같아서 말예요~"
다소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마치 '당신이라는 존재를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듯한 말투, 그것이 상대방의 특별한 외모를 칭찬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의 창작세계에 새로운 욕구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입밖으로 꺼내기엔 너무나도 사적인 이야기였다.
"일행분을 기다리시는 중이라던가, 갈길이 바쁘시다면 그냥 길거리의 그림쟁이와 몇마디 나눈 뒤 마저 지나치는 것이 전부라 여기고 깊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제가 초면인 분께 이래라저래라 할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아, 물론 구면이라고 하더라도 예의에 어긋나겠지만요~"
그럼에도 상대방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고 배려하는 길을 선택하는 그녀였다. 다만 살짝 가느다란 눈웃음을 끝에 남겼을까,
"이런 도시에서 예의를 지키는 사람이 있기는 하고? 그래도 신기하네. 이런 도시에서 예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거든. 아, 그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테이크 아웃 컵 끄트머리를 이로 물면서 말하느냐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지만 알아듣기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잘근잘근 끄트머리를 물면서 하는 말치고는 시니컬하거나 예민하지도 않았다. 무감하고 건조한 무표정과 똑같이 무심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웃어보이는 그녀를 향해 브리엘은 읊조리듯 중얼거리며 답문했다. 잠시 그렇게 선 채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구리색 눈동자가 잠시 그녀가 그리고 있던 것을 슬쩍 바라본다.
그림에는 조예가 없다. 애초에 그림을 보는 눈이 없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이기도 하나, 그저 그런 것에 관심을 둘 만큼 여유가 없었다는 게 더 정답에 가까울 거다. 모델이 되어달라는 그녀의 말에 브리엘은 물고 있던 테이크 아웃 컵 끄트머리에서 입술을 떼어냈다.
"다행히도 내가 스스로 꽤 예쁜 편이라는 걸 알고 있거든. 모델이 되어달라는 말은 처음 듣지만 말이야. 만약 이게 작업 거는 거면 꽤 구시대적인 방법이라고 이야기할게."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시간을 한번 확인하고 브리엘은 다시금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쓴 맛이 썩 구미에 맞았다. 한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어차피, 공적인 시간에 할애하는 스케줄은 끝났고 지금부터는 지극히 사적인 시간을 보내는 중이니까 잠깐 정도는 괜찮겠지. 잠시 그렇게 생각하던 브리엘은 그녀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겨서 가까이 다가가며 핸드폰을 집어넣고 흘러내리는 옆머리를 쓸어올려서 귀 뒤로 넘긴 뒤 비스듬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서, 어느쪽에 있으면 돼? 그리는 동안 너무 많은 질문만 안하면 되거든. 약간 여유도 있고."
실루엣은 차치하고라도 저 니시시 하고 무슨 까쓰 새어나오는 것 같은 웃음소리를 자연스럽게 내는 사람은 이 도시에 한 사람뿐이다. 그것만으로 신원은 확실하다.
"헤, 왜 무슨 짓 해줬으면 좋겠냐. 그래 오늘 재밌는 물건 보여줄 테니 느긋하게 시간 보내다 가라구. 술값 계산만 확실히 받을 수 있으면 경찰을 부르건 르메인 패밀리를 부르건 상관없어." 페로사는 장단에 맞춰 짐짓 고약한 농을 건넸으나, 간격을 두지 않고 뒤따라붙는 말장난에는 결국 당해내지 못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실없는 소리를 하는 걸 보니 한심, 아니 안심이네. 잘 지내는 것 같으니. 페퍼로니 피자라- 페퍼로니랑 초리조를 팍팍 넣은 스파이시 가든 피자가 있는데, 비스트로에 주문 넣어줄까? 돈은 받을 거야."
그리곤 자기 몫으로 따라놓았던 다른 스크류드라이버를 주욱 마신다. 레이디킬러도 레이디킬러 나름이지 보드카가 발만 담궈서 알코올 기분만 좀 낸 스크류드라이버로 죽을 레이디가 있겠는가. 절반 정도를 죽 들이킨 페로사는 로미가 건넨 독특한 실루엣의 무언가를 받아들었다. 레코드판? 페로사는 시선을 들어 주크박스의 상단을 바라보았다. 그 상단에 끼워져 있는 먼지가 잔뜩 앉은 투명 커버 안에는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된 턴테이블이 탑재되어 있었다.
"흠- 이건 턴테이블로 재생해주면 되는 거야, 아니면 이걸로 뭔가 해야 되는 거야?"
페로사는 잔을 내려놓고 LP판을 툭툭 쳐 보였다. 로미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게 순서에 맞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옷 스치는 소리가 났다. 제롬은 그 소리에 살며시 눈을 뜬다. 제 앞에는, 여인이 서있었다. 적막은 오래 가지 않았다. 가느다란 속삭임이 제롬의 귓가를 스치자, 그는 희미하게 웃음을 뱉었다. 아, 이 비겁한 사람.
"...비겁해, 벨라. 그 날도 그렇고, 오늘도..."
한껏 소리를 낮춘 속삭임은 제롬의 마음 속 무언가를 간지럽혔다. 당해낼 수가 없다. 제롬은 익숙한 호칭에 반사적으로 벨라, 라고 답하고는 깍지 끼워진 손에 힘을 풀어 그대로 끌려간다. 그 날도, 오늘과 마찬가지였다. 간드러진 속삭임과 요염한 표정으로 자신을 밀어 넘어뜨린, 비겁한 사람. 부드러운 손과, 그 끝의 검은 손톱이 깃에서 피부로 움직이며 스치는 감각에 그는 몸을 살짝 떨었다. 목소리, 표정, 손짓 하나하나에 마음이 살랑거리는 것 같다.
'벨라'라 부른다면, 그녀는 벨라라는 말에 제롬은 쓴 웃음을 짓는다. 결국 명확한 답은 내어주지 않았다. 그는 여인의 허리에 얹어진 손을 움직여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는, 그대로 제 쪽으로 끌어당기려 했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아무말도 못 하게 될 걸 알면서..."
그는 깍지 끼어진 손에 살짝 힘을 주어 여인의 손을 꾸욱 쥐더니, 끌어당겨진 여인과 이마를 맞대려고 했을 것이다. 피로한 시선 너머로 희미한 열기가 느껴졌다. 여인의 말로 인해 끓어오른 감정은, 그의 안에서 조용히 억눌러지고 있었을까. 이번만이야, 이렇게 넘어가주는 것도.
"다음번에는 이렇게 순순히 넘어가진 않을 거야..."
한껏 응석부리듯 느릿한 말을 끝낸 그는 다시 여인에게서 이마를 떼낸다. 그래, 넘어가기로 했으면 질문에 답할 차례다. 무엇을 질문했더라? 피피와 무슨 일이 있었냐였지. 제롬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할 말을 정리했다. 그러느라 잠시간 침묵이 이어졌지만, 오래가지는 않았을까.
"피피와 일 때문에 만난 건 아마 그녀석에게 들어서 알고 있겠지..."
그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평소 습관대로 피피가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뒷조사를 주문했던 일. 하지만 알고보니 뒷조사를 주문했던 레스터라는 친구가 귀찮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조사하기 어렵다는 뻥카를 쳤던 일. 그로 인해 제롬과 피피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생겨났고, 그걸 수상히 여긴 피피가 아스타로테에게 이런 부탁을 한 것 같다는 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