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런... 이게 끝인가." "이제 피를 존나게 흘려서 죽는 건가..." "네가 존나 잘났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넌 아직 모르고 있어." "뉴 베르셰바는 넓어. '진짜'가 너희들을 없애버릴거야."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려고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평범한 생활-아무런 이상 없는 평화로운 일상이, 페로사가 마음속 깊이 쌓아두었던 것들이, 미카엘에게는 영영 차례가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것이 미카엘을 탐욕스럽게 노리고 따뜻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눈에는 숨기지 않는 탐욕이 있었으나 손은 따스했으며 품은 편안했다. 아직 그 편안함이 가시방석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겨울 밤바람에 익숙해져 감각이 없어진 손은 미지근한 물에만 집어넣어도 찌릿하게 뜨겁지 않던가. 하물며 혼자 붉은 겨울 하늘을 누비던 새벽별에게는 오죽할까. 저 숱한 별들 중에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품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 "좋아. 그런 것들... 좋아해. 하나씩하나씩 해보자." 페로사는 자신이 갖고 있는 온기가 미카엘을 위해 충분하리라 믿었다.
"넌 그렇게 무례한 아이가 아니잖아. 내가 보기엔 그 양반이 별 괴상한 자기 고집을 예절이라고 강요하는 것 같은데." 꽤 높으신 분이던가, 꽤 규모있고 전통깊은 조직이던가, 둘 다던가 하겠네. 배틀리언 시절 겪어본 경험에 빗대어보면 대략적인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옷차림에 마음대로 간섭하는 행동에서 타인을 제 입맛대로 휘두르는 데 익숙한 인간이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페로사는 로미를 찾아가보자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절대로 쉽게 빼앗겨주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었으니까. 상대방을 아끼는 마음이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방향으로 표출되는 게 보통인 페로사였지만, 그런 페로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선은 있었다. "네가 준비가 되면 그 거래처 이야기를 나한테 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말해. 따라갈게." 상황이라는 게 꼭 사람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는 않는 법이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잖아?" 그러면서 페로사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미카엘에게는 담배 첫 모금이 생각하던 것보다 더 뜨겁고 독했다. 생애 처음으로 손을 대어보는 미지근하고 따뜻한 애정이라는 것이 얼어있던 몸에 따갑게 느껴질 만큼.
그러나 미카엘은 그것을 더 원했고, 페로사는 미카엘의 눈빛을 거부하지 않았다. 옷깃을 구기며 움켜잡는 그 손길을 떨쳐내려면 떨쳐낼 수 있었을 텐데 당연하게도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미카엘의 손이 남기는 흔적이 자신의 옷에도 남았으면 좋겠다는 듯이 미카엘의 손등을 꼭 쥐며 미카엘의 요구에 응해오는 것이다. 충분히, 조금씩 익숙해질 정도로. 페로사에게도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손에 든 길다란 연초가 모두 재가 되어 손끝에서 필터만이 툭 떨어질 때까지. "그러면, 들어갈까."
원래라면 손을 잡고 일으켜세워서 아직 익숙하지 않은 발걸음을 부축해줬을 텐데. 이제 그러기에는 네게 너무 욕심이 나고 네가 너무 소중하다. 네가 네 발로 걷고 싶어한다면 네가 걷는 것을 기꺼이 도와줄 테지만, 네가 딱히 그런 의사를 비치지 않는다면 발걸음 하나까지도 얼마든지 의지해도 좋다고 하고 싶다.
페로사는 손을 뻗어서 미카엘의 가면을 다시 씌워주고, "이것 잠깐 들고 있을래." 하며 지갑에서 웬 카드 하나를 빼어 미카엘에게 건네어주고는 미카엘의 허벅지와 어깨를 움켜잡고 품 안에 안아들었다.
* <별>, 알퐁스 도데
# 내가 레스를 쓸 때 디테일한 부분까지 참고하기 편하도록, 내 캐릭터의 방에 갈 일이 있으면 서술을 상세히 하는 편이라 분량이 길어졌는데 일일이 반응할 필요 없이 그냥 답레 쓸 때 페로사의 거처는 이렇구나 하고 참고만 해줘.
거주민들의 별난 성격을 맞춰주려는 걸까 아니면 거주민들의 신상을 조금이라도 배려해주려는 걸까, 오피스텔의 복도는 상당히 어둑어둑해 복도의 구조와 문들의 위치를 겨우 분간할 수 있는 정도였다. 현관에 걸려있는 '거주자들을 위한 규칙'을 적어둔 명패에만 환히 불이 들어와있을 뿐이다. 가장 맨 위에 있는 조항인 '복도에서 타 호실 거주자와 대화 금지- 단지 내에서의 대화는 합의된 방문, 혹은 흡연장이나 각 층마다 마련된 라운지를 이용하시오' 라는 조항이 먼저 보인다. 타인과 엮이는 자체가 위험부담이 될 수 있는 뉴 베르셰바의 주민들의 구미에 맞을 만한 조항이다. 엘리베이터로 가지 않고 곧장 복도로 향하는 것을 보니 페로사의 방은 1층에 있는 듯했다. 106호. "그 카드, 패드락에 대봐." 그 말대로 하면 딸깍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문이 스르르 열린다. 현관으로 들어서자 등 뒤로 문이 닫히고, 등이 서서히 밝아진다. 사자굴이 미카엘을 맞이했다.
전체적으로, 그곳은 꽤 호화로운 아파트에 가까운 오피스텔이라는 느낌이었다. 현관과 실내 생활공간을 분리해둔 것인지 페로사는 끈을 느슨하게 매어뒀던 워커를 대충 발로 슥슥 밀어 털어버리고는 실내화를 신고 들어섰다. 충분한 너비의 거실이 있었고, 거실과 이어진 주방, 분리된 화장실과 욕실. 복층형으로 마련된 침실까지. 거실에는 붙박이 옷장과 티비, N모 스위치, 소파, 민무늬 카펫, 그리고 이곳이 뉴 베르셰바임을 알려주는- 아무리 봐도 무기고로 쓰는 것 같은 철상자와 공작기계가 갖춰진 선반 작업대가 있었다. 여기까지 봤을 때는 사람이 사는 것은 같았지만 페라사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페로사는 미카엘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현관 옆으로 난 계단을 올랐다. 페로사가 낙으로 삼던 것들은 그 계단 위의 공간에 모두 있었다. 주방에 있는 냉장고와는 따로 마련된 작은 냉장고가 있었는데, 그 옆에 놓인 랙에 작은 바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갖춰진 리큐르들을 보면 냉장고의 용도는 안 봐도 뻔했다. 그리고 수집품을 모아놓는 데 쓰는 것 같은 조그만 나무 진열장이 있었고, 잘 정돈된 잠자리, 그곳에 쌓여있는 베개와 쿠션들... 그리고 엉뚱한 곰돌이 인형.
페로사는 침대에 얌전히 깔려있는 두터운 이불 위로 미카엘을 상냥하게 폭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곰돌이 인형을 침대 옆으로 치운 다음에, 미카엘의 발을 들고 굽 높은 힐을 벗겨주기 시작했다. 신발을 벗기면서, 페로사는 고개는 미카엘의 발을 향한 채로 미카엘에게로 눈을 치떴다.
퍽 호의적인 미소를 지어보이는 아슬란을 보는 브리엘은 시선이나 표정은 역시나 무감하고 무던하기 그지 없었다. 흔들림없이 일정했다. 이 도시에서는 이유없는 호의 없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선의도 없다. 호의에도 선의에도 조건이 붙기 마련이였기 때문에 브리엘은 누구도 믿지 않았다. 애초에 이 도시로 들어온 이유도 그와 비슷한 이유였으니 더더욱 그런 것에 예민하게 굴고 만다. 그래서 브리엘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공적인 자리가 편했다.
이득을 계산하고 손익을 계산하는 이해관계야말로 이 도시에서 그나마 담백한 관계이니까.
"왜?"
거짓따위 없어보이는 진지한 어조와 시선에, 브리엘은 끌어안고 있던 다리를 내리면서 침대가에 걸터앉아서 아슬란을 바라봤다. 읊조리듯 단조로운 물음이 불쑥 던져지고 비스듬히 시선을 올려서 아슬란을 올려다보는 구리색 눈동자를 봐도 딱히 감정이 묻어나지 않았다. 하, 하는 건조한 헛웃음을 터트리고 브리엘은 자신의 머리를 쓸어올렸다.
"이런 모습을 보이니까 마음에 든거야?"
시니컬한 물음이다. 신경질적이지는 않지만 예민함이 가득했다. 누군가를 신뢰한다던가하는 일이 얼마나 성가시기 짝이 없는데. 이어지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어투에 브리엘은 길게 한숨을 내쉬는 걸로 대신하고 말았다. 누가 의사 아니랄까봐. 브리엘은 머리를 쓸어넘겼던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작게 중얼거린다.
"나한테는 아스피린을 주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최고의 안정이야. 아슬란씨."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피를 수혈받는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사실 아슬란이 병실에 있지 않았더라면 링겔을 빼버리고 대기실에 있는 브라이언에게 집으로 가자고 하고도 남을 성격에 이렇게 아슬란과 잡담을 나누며 앉아있는 게 스스로도 신기할 지경이었다.
따져묻지 않자니 궁금하지만, 따져물을 이유도 개연성도 없다. 과도한 간섭으로 미움을 사는가, 겁쟁이의 위선으로 서먹함을 사는가. 어려운 균형잡기다. 페로사는 그것을 퍽 어려워했다. 미움도 서먹함도 모두 떨치고 누군가가 쓰고 있는 가면을 당당하게 깨어부수어서 둘도 없는 친밀함을 만들기도 했으나, 페로사는 그럴 만큼 능숙하거나 정밀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사람을 갑자기 엉뚱한 일로 끌고 들어가는 그 버릇은 여전하네, 로테." 페로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무대로 떠나는 아스타로테의 뒤에서 한숨을 푹 쉬었다.
무대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바텐더가 무대에서 뭔가 끼적거릴 때부터 무대에 약간의 관심이 쏠려있던 사람들도 있었고, 마이크를 톡톡 하고 두드려 점검해보는 소리에 꽤 많은 관심이 무대에 쏠렸던데다 일단 무대에 올라온 사람이 한껏 차려입은 미인이었으니까. 무대로 기울어지는 관심에 불쾌한 기색은 없었다. 누군가는 휘익 하고 휘파람을 불기도 했고. 어찌되었건 오늘 밤의 앤빌의 고객들은 어떤 사전 예고도 없이 등장한 디바를 환영해주는 분위기다. 페로사의 도움("뭘로 틀어줄까. 그거? 알았어.")과 함께 선곡을 마치고 무대로 돌아오며 전주가 시작되자, 그렇게 크진 않지만 환호성까지 있었다. 무대로 향하고 있는 시선들에는 페로사의 것도 물론 있었다.
노래가 끝났다. 노래의 마지막 울림이 사라지고 나서도 매장을 기분좋게 메우는 환호성과 박수는 꽤 오래 남아있었다. "이거 당장 내일 공연자를 안 구하면 안 되겠는데... 네 수준의 디바를 어디서 구하지. 야단났네." 아스타로테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거의 예닐곱 잔이 주문으로 들어오는 통에 아스타로테보다도 더 바쁘게 움직여야 했던 페로사는 이마를 슥 닦았다. 그러나 그게 그녀가 그 노래를 흘려들었다는 뜻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만 내놓으면 불공평하다고 해도 말이지." 페로사는 붉은 액체로 가득찬, 화려한 크리스탈 장식이 되어있는 리큐르 글라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 완성된 빨간 액체 한가운데에 스포이드로 무언가 액체 하나를 똑 떨어뜨린 페로사는 새 코스터를 아스타로테 앞에 깔고 글라스를 놓아주었다. "나는 대개 내 친구들이 내게 해주는 이야기만으로 내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나 판단하고 걱정하곤 해. 딱히 남의 뒤를 캔다거나 수소문을 한다거나 하는 짓은 내 성미에 안 맞아서."
"그 노래 말이지- 날 위한 노랜가? 하면 글쎄 싶던걸. 난 애초에 젊음이니 아름다움이니 하는 건 애진작에 다 뺏겨버린 사람이라." 페로사는 한쪽 팔만으로 팔근육을 과시하는 전면 이두근 포즈를 취해보였다. 소매 속에서 근육이 꽉 부풀며 와이셔츠 소매를 터질 듯이 채웠다. 상처투성이, 근육투성이. 먹이사슬의 상위에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환경에서 살아왔기에 최상위 포식자로 남기 위해 단련된 몸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네 아까 그 자신만만한 눈빛을 보면 내가 이걸 딱히 너한테 캐물을 필요 있나 싶기도 하고- 거기다가 넌 항상 바로 말하는 법 없이 지구 일곱 바퀴 반 정도는 돌려서 말하잖아. 친한 사람에게 속내를 내보이는 것마저도 무섭다는 것마냥." 두 번째 잔 옆에 다양한 치즈 조각과 하몽으로 구성된 플레이트가 놓였다. "네 이름값을 생각하면 며칠치 매상을 죄다 공연비로 줘야 될 것 같긴 한데, 우선 선금이라고 생각해. 바텐더의 추천, B&B와 치즈&햄 플레이트입니다."
술을 입끝에 대어보면, 자연스러운 단맛 위로 브랜디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지독한 알코올 향이 선명하게 은은한 허브향과 어우러져서 목구멍을 타고 넘어온다. "맞춰볼게. 아까전에 말했던 그 재밌는 일이라는 거, 사업이긴 사업인데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사업이 아닌가 본데." 잔을 기울여 마시면 마실수록 잔의 가장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짙은 액체 한 방울이 흔들리며 잔 안으로 조금씩 퍼져나가며 과수원을 연상케 하는, 어느 과일인지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선명하지만 달지 않은 과일향이 잔에 번져간다. "너도 재미깨나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멋진 파트너를 만났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