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런... 이게 끝인가." "이제 피를 존나게 흘려서 죽는 건가..." "네가 존나 잘났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넌 아직 모르고 있어." "뉴 베르셰바는 넓어. '진짜'가 너희들을 없애버릴거야."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려고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따져묻지 않자니 궁금하지만, 따져물을 이유도 개연성도 없다. 과도한 간섭으로 미움을 사는가, 겁쟁이의 위선으로 서먹함을 사는가. 어려운 균형잡기다. 페로사는 그것을 퍽 어려워했다. 미움도 서먹함도 모두 떨치고 누군가가 쓰고 있는 가면을 당당하게 깨어부수어서 둘도 없는 친밀함을 만들기도 했으나, 페로사는 그럴 만큼 능숙하거나 정밀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말해도 내가 할 줄 아는 질문은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것뿐인데-"
페로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무대로 떠나는 아스타로테의 뒤에서 한숨을 팩 쉬어보였다.
무대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바텐더가 무대에서 뭔가 끼적거릴 때부터 무대에 약간의 관심이 쏠려있던 사람들도 있었고, 마이크를 톡톡 하고 두드려 점검해보는 소리에 꽤 많은 관심이 무대에 쏠렸던데다 일단 무대에 올라온 사람이 한껏 차려입은 미인이었으니까. 무대로 기울어지는 관심에 불쾌한 기색은 없었다. 누군가는 휘익 하고 휘파람을 불기도 했고. 어찌되었건 오늘 밤의 앤빌의 고객들은 어떤 사전 예고도 없이 등장한 디바를 환영해주는 분위기다. 페로사의 도움("뭘로 틀어줄까. 그거? 알았어.")과 함께 선곡을 마치고 무대로 돌아오며 전주가 시작되자, 그렇게 크진 않지만 환호성까지 있었다. 무대로 향하고 있는 시선들에는 페로사의 것도 물론 있었다.
노래가 끝났다. 노래의 마지막 울림이 사라지고 나서도 매장을 기분좋게 메우는 환호성과 박수는 꽤 오래 남아있었다. "이거 당장 내일 공연자를 안 구하면 안 되겠는데... 네 수준의 디바를 어디서 구하지. 야단났네." 아스타로테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거의 예닐곱 잔이 주문으로 들어오는 통에 아스타로테보다도 더 바쁘게 움직여야 했던 페로사는 이마를 슥 닦았다. 그러나 그게 그녀가 그 노래를 흘려들었다는 뜻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만 내놓으면 불공평하다고 해도 말이지." 페로사는 붉은 액체로 가득찬, 화려한 크리스탈 장식이 되어있는 리큐르 글라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 완성된 빨간 액체 한가운데에 스포이드로 무언가 액체 하나를 똑 떨어뜨린 페로사는 새 코스터를 아스타로테 앞에 깔고 글라스를 놓아주었다. "내가 남의 뒤를 캐고 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소문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아니니까, 나는 내 바를 찾아오는 친구들이 내게 해주는 이야기만으로 내 친구들을 판단하고 걱정하곤 해."
"그런 의미에서 그 노래 말이지- 딱히 내 이야기라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 난 애초에 젊음이니 아름다움이니 하는 건 애진작에 다 뺏겨버린 사람이라." 페로사는 한쪽 팔만으로 팔근육을 과시하는 전면 이두근 포즈를 취해보였다. 소매 속에서 근육이 꽉 부풀며 와이셔츠 소매를 터질 듯이 채웠다. 상처투성이, 근육투성이. 먹이사슬의 상위에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환경에서 살아왔기에 최상위 포식자로 남기 위해 단련된 몸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나는 말야, 오히려 어쩌면 그 노래가 네가 너에 대해서 주는 힌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렇지만 난 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 노래를 불렀는지 캐묻지 못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칵테일 한 잔 따라주는 것뿐이야." 두 번째 잔 옆에 다양한 치즈 조각과 하몽으로 구성된 플레이트가 놓였다. "네 이름값을 생각하면 며칠치 매상을 죄다 공연비로 줘야 될 것 같긴 한데, 우선 선금이라고 생각해. 바텐더의 추천, B&B와 치즈&햄 플레이트입니다."
술을 입끝에 대어보면, 자연스러운 단맛과 어우러지는 부드러운 씁쓸함과 함께 달고 은은한 허브향이 선명한 알코올 향을 타고 올라온다. 잔을 기울여 마시면 마실수록, 잔의 가장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짙은 액체 한 방울이 흔들리며 잔 안으로 조금씩 퍼져나가 과수원을 연상케 하는, 어느 과일인지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선명하지만 달지 않은 과일향이 잔에 번져간다. "그래. 좀 어떻게 지내?"
딱밤을 맞곤 눈물을 찔끔 흘린 이리스가 너무하다는 듯 볼을 살짜 부풀리며 웅얼거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수작질이 뭐야! 단어 선정이 이상하잖아! 이리스는 그렇게 따지고 싶은 듯 눈을 부릅 뜨곤 다시 칸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날아오는 딱밤들은 용케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 밤이 길지, 그럼 뭐가 길다고 해! 그리고 언니랑 나랑 그렇게 나이 차이 안나는데! 둘 다 20대잖아! "
이리스는 꼰대처럼 굴기 시작하는 칸나를 보며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휙휙 저어보이며 외친다. 이 둔감하기 짝이 없는, 꼰대 기질이 흘러나오는 언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리스는 요령좋게 꿀밤을 먹이려는 것을 피하더니 아예 칸나의 목에 팔을 둘러 꽉 끌어안는 것으로 칸나의 움직임을 막아버린다. 덕분에 한껏 가까워진 거리를 확보한 이리스는 가까워진 칸나의 귓가로 입술을 가져갔다.
" 제대로 좀 봐줘봐, 언니. 진짜로 꼬맹이 시절이랑 똑같다고 생각해? "
약간은 퉁명스러운 듯 하면서도, 조금은 진지한 목소리로 이리스는 칸나의 귓가에 그렇게 되뇌였다. 정말로 그때 그시절의 꼬맹이로만 보이냐는 듯. 속삭임을 칸나의 귓가에 흘려넣고는 슬며시 몸을 맞대며 귓가로 가져갔던 고개를 떼어내어 정말로 가까워진 거리에서 칸나와 눈을 맞춘다. 목을 감싸고 있던 두 팔을 살짝 풀어선 한손으로 칸나의 볼을 살며시 감싸며 자신을 똑바로 보게 만들었다.
" 눈 앞에 있는 내가 진짜 그때랑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
칸나의 눈에 자신의 모습이 온전히 비춰지는 것을 확인하면서, 이리스는 나긋한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다. 나머지 손으론 자연스레 칸나가 꿀밤을 먹이던 손을 자신의 허리에 올려두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