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내가 지금 불타고 있는 거라면 이렇게 깊이 사랑할 순 없지 않았을까? 죽을 것만 같은 꿈결에 이토록 사랑받는 느낌이 들고있었어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오늘 제가 소녀에게 준 것은 겨우 먹다 남긴 오렌지 주스다. 아마 소녀가 말하는 건 부상을 치료해주었던 것 때문이겠지만. 하기야 엘레나로서도 정체 모를 이를 데려와 치료비도 받지 않은 건 드문 일이긴 했다. 다 나은 환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꾸 찾아오는 건 더 드물었고. 소녀가 그대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마주보며 과자를 먹을 일도 없겠지.
"거봐요. 좋아하는 거 있잖아요. 그렇게 확실히 말하면 무라사키는 좋아하는 걸 먹을 수 있고, 나는 무라사키가 좋아하는 걸 알게 되니 둘 다 행복해졌네요."
소녀가 입에 담은 행복이란 단어를 그대로 끌어와 자기주장으로 삼았다. 그리고는 단맛이 나는 음식을 떠올린다. 사탕, 초콜릿, 아이스크림. 평소 단맛을 찾지 않았다는 게 이렇게 티가 난다. 이번엔 제 몫의 과자를 집어 씹는다. 과자의 식감이며 맛을 평가하는 동안 소녀가 풀이 죽는다. 낯간지러운 상황이 되는 걸 모면하기 위해 건넨 말이 고민거리가 되었나 보다. 와중에도 입이 열심히 움직이는 걸 보면 심각한 수준은 아닌 것 같지만. 하여튼 수습하는 건 먼제 화제를 꺼낸 사람의 몫이다.
"내가 부르면 병원에 와야 해요. 무라사키가 오기 싫을 때도 마음대로 부르려구요. 귀찮아도 어쩔 수 없죠."
알아서 오던 사람을 직접 초대하겠단 소리니 별반 다를 거 없는 말장난이다. 반지가 언급되자 자연히 소녀의 손가락으로 시선이 향한다.
'네가 한순간의 변덕으로 날 죽이려 하면, 나는 꼼짝없이 죽어야 하는 건 맞으니까.' 라니, 세상에. 보는 눈만 없었다면 지겹다는 듯 눈을 굴렸을지도 모른다. 쉽사리 죽어줄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대를 해할 충동이 내재되어 있다는 증거임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다. 억누른다. 억눌러야 한다. 네 안의 금수는 주제를 모르니 항상 목줄을 채워두어야 쓰겠다.
"빈 말 하기는, 발렌타인 씨가 훨씬 더 잘생겼어."
눈만 접어 웃어 거짓웃음 지었다. 발걸음 옮겨 제 작업장으로 향하려다가, 생각을 바꾼다. 말 그대로 '집'에 데려다 주어야 손님에 대한 예의겠다 싶다. 그래, 날도 추운데 차 한 잔이라도 대접해주어야지. 손 끝이 입꼬리를 매만졌다.
"누추한 집이지만, 그래도 꽤 아늑한 곳이야."
문고리를 잡아 열자 꽤 깨끗한 원룸이 드러났다. 기묘한 소독제 냄새가 맴돌고, 바닥에 칼자국 하나 덜렁 있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제롬을 안에 들이고 문을 닫았다. 이중잠금까지 하는 것이 퍽 꼼꼼하다.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페로사는 손을 뻗어, 노래를 골랐다. 그리곤 의자에 앉아서 나태하고 느른하게 거의 기대눕다시피 의자에 앉았다. 주머니에서 석양이 그려진 담배갑을 꺼내어, 흔든다. 한 개비 빼어물고는 불을 붙인다.) (앤빌에 대해서 마음에 드는 점을 꼽아보라면 꽤 길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흡연 가능이라는 점도 당연히 마음에 드는 점들 중 하나였다.)
사실, 오늘은 잡화점에 올 생각이 없었다. 온 것은 단순한 변덕 때문이다. 아스타로테를 너무 오랫동안 안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그러자 오늘 당장 가봐야겠다는 변덕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미리 연락하지도 못 했다. 원래대로라면 아스타로테에게 먼저 연락하고 허락을 구하는게 먼저였겠지만...
'최근 이것저것 잊어먹는게 많단 말이지.'
생각이 많아서인지 아스타로테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 즈음, 그녀가 조직 보스로 있는 잡화점에 도달했다. 지금 연락하기에는 많이 늦었다는 것은, 굳이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차라리 아스타로테에게 줄 선물을 살 때 즈음에 눈치챘으면 좋았으련만. 그는 자신의 한 손에 들린 선물을 흘긋 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까먹은 꼴이라니.
'하여튼 문제들을 빨리 해결해야겠어.'
에만, 그녀석에 대한 조사. 무라사키, 그녀와 얽힌 르메인 패밀리와의 관계. 그리고 커넥션을 노리는 누군가.
셋 중 하나는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이런 정신없는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똑똑.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스타로테가 있을 잡화점의 문을 두드렸다.
"...아무도 없나?"
평소라면 바로 누군가 나왔을텐데. 안쪽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어쩌면 지금 안쪽에는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돌아가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지금 나온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소란스럽네.'
그는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렸다. 안쪽이 조금 시끌시끌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빈틈을 노려서 브리엘에게 냥귀를 착용시키면 아마, 굉장히 흠칫하고는 있는 힘껏 노려볼 것 같네. "내 의견은 묵살이야? 당신 취향에어울려준다고 한 적이 없던 것 같은데." 하고 술이나 마시겠지. 냥귀는 빼버리고. 여기서 친밀도나 애정도, 신뢰도가 일정 수준이상이라면......"씌우는 걸로 만족해? 아니면 뭔가 더 해줘?" 하면서 스윽- 하고 가까이 다가갈 것 같다.
동물로 비견하자면.....올블랙 턱시도 고양이, 혹은 그보다 더 우아한 느낌이 강한 흑표범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