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가 내 안에서 끓어 오르는게 느껴져 난 네가 볼 수 없는 곳에서 방황하고 있어 내 껍데기 안에서 난 피를 흘리며 기다리지 그리고 곧 너도 그렇게 될 거야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에만이 던진 농담에 페로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은 여러 사람에게 운수가 없는 날이었다. 가게 앞에서 송장 13구를 치운 페로사는 말할 것도 없고, 뭔지도 모를 물건을 배달하다가 열두 명이나 되는 습격자에게 쫓겨 죽은 배달부에게도 운수 없는 날이었고, 배달부 하나 잡아죽이겠다고 가게에 피를 튀겼다가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상대를 건드려 떼죽음을 당한 열두 명에게도 운수 없는 날이었다. 고기장사라. 생각해보니 그 시체들은 피피더러 가져가라고 해도 얼마 못 받겠네. 젠장.
그러나 페로사는 곧 불운은 액땜이라 치고,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그녀는 목갑을 닫으면서 무심결에 에만은 더티 마티니를 좋아했었지- 하는 생각으로 랙에서 마티니 글래스를 꺼내서 조각얼음을 푹 퍼서 담았고, 그제서야 에만에게 주문을 뭘로 할지 물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한 박자 늦게 깨닫고는 에만에게 주문을 받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에만이 중요한 가면도 톡 벗어놓고 두 눈에 호기심을 초롱초롱 빛내며 애교를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페로사는 얘가 왜 이래, 하는 듯이 눈을 치떴다.
"오늘따라 뭐야 요녀석, 깜찍하게 굴기는. 다른 데서 벌써 한 잔 마시고 왔냐? 블러디메리 찾는 거 보니 그런가 보네."
페로사는 손을 뻗어서 에만의 양빰을 가볍게 꼬옥 잡고 살짝 늘렸다가 놓고는 에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험난한 뉴 베르셰바에서도 충분히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여유인 것일까, 그녀는 딱히 힘의 우열 때문에 굽혀주는 제스쳐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그저 우연히 알게 된 비밀 많은 동생이 오늘따라 애교를 많이 부린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허어 당돌하군! 근데 저렇게 굴어도 밉지 않은 마음이 드니 왜일까? 페로사는 에만의 머리카락을 슥슥 가다듬어준 뒤 손을 떼며 웃었다.
"뭐, 네 손발이 감당할 수 있으면 붙여도 돼. 귀엽고 좋네."
문제라면 준비한 것과는 다른 주문이 들어왔다는 점일까. 그렇지만 어차피 자신도 시원하게 한잔 마셔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던 참이라, 더티 마티니는 그냥 자기가 만들어 마시기로 했다.
"저 목갑? 저걸 배달부한테서 빼앗으려고 열두 놈씩이나 배달부를 쫓아왔어. 그런데 난 봐도 모르겠더라... 아무튼 딱 기다리고 있어, 주방에서 블러디 메리 재료 가져와야 되니까."
블러디 메리는 칵테일바보다는 레스토랑 주방에서 재료를 더 찾기 쉬운 칵테일이다. 앤빌에서 제대로 된 블러디 메리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앤빌이 바와 비스트로가 붙어있는 식당인 덕분일 것이다. 목갑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고, 페로사는 빨리 돌아왔다. 삶은 토마토 2개가 블렌더에서 곱게 갈리고, 칵테일 재료라기보단 수프 재료에 가까운 조미료들과 보드카와 함께 셰이커에서 섞여 얼음 담긴 하이볼 글라스에 따라지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곧 에만의 앞에 블러디 메리 한 잔과 문제의 목갑이 놓였다.
"너도 트톡 하냐? 오늘 트톡을 하다가 별난 기사를 봤거든. 폐허에서 주워온 안경을 백만 벅에 판다고."
페로사는 마티니 잔에 넣어두었던 부순 얼음을 버리면서 운을 떼었다. 그리고 새 셰이커에 올리브 알갱이 몇 알을 던져넣고 머들러로 으깼다.
"그 물건을 누군가가 구매해서, 구매자에게 배송되고 있었던 모양이야. 문제는, 눈에 안 띄게 보낼 생각이었는지 물류조직도 아니고 개인 배달부한테 맡겼는데 배달부가 죽어서 배송처를 알 수 없게 됐어."
“그래, 농담이다. 그저 모두 농담…” 부러 태연하게 말하지만, 어딘가 등골이 서늘해져온다. 무언가 가슴을 꽉 죄여오는 듯한 불안. 어째서일까? 심리적으로는 제법 몰려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나”를 이렇게 몰아넣은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정체는 무엇인가? 실체가 있기는 한건가? 순교자의 잘린 목에서 터져나오는 광휘와 같이, 배교자의 못 박힌 손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과 같이, 출처를 알 수 없는 공포와 경외가 함께한다.
나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다른 누군가는 나의 중얼거림을 듣는다.
… … … (중략) 긴 시간이 지나고, 자신이 문고리를 쥐고 그저 가만히 서있는 것을 인지한다. 내가 뭘 하려고 했지? 그래, 차로 가기로 했지. 차로 가서 물건들을 꺼내와야 한다. 페퍼는 차에서 용품들을 가져온다. 그러나 평소 부려놓던 것들과는 조금 모양새가 다르다. “Kill-O-Jap” 이라 적힌 키치한 디자인의 살충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검은 쓰레기봉투, 걸레자루, 쓰레받이 등… 일반적인 청소용품이다. 어찌됐건, 나는 그 사람을 찾아야 한다.
“나는 혼자 일 하는 것에 익숙하다. 옆에서 괜히 얼쩡거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 쉬도록 해.” 배려하는 말 치고는 말투에 가시가 돋친 것은, 부러 그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서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혼돈의 구렁텅이에서 꿀럭거리는 콜타르와 같은 무언가를 떨치기 위해서.
그리고 반쯤은 그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더 이상 나를 자극하지 마…” 오늘은 날이 아니다. 방금 내가 뭐라고 했지? 원래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마음 속 소리와 내뱉은 말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 ‘뭘 자극했다는거야?’ 자꾸 짜증나게 하잖아. 아니, 신경을 거슬리니까. ‘그러니까 대체 뭘?’ 설명하기 힘들다. 여하간에 나는 그 사람을 쫓아가야 한다.
“미안하다… 부탁이니, 그만 들어가다오.” 당신이 은둔하는 지하실로, 당신의 안식이 기거하는 그곳으로. 달그락거리는 뼈와 살점이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는 그 조용한 안식처로…
"하아, 하아." 터질 듯 쿵쿵대는 가슴께를 한번, 그리고 방독면을 덮어쓴 머리를 두 번 부여잡는다. 방독면에는 피가 흥건히 묻어있는 채이다.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을 본다. 중력은 아무도 거스를 수 없다. 중력은 절대적이다. 9.8m/s의 속도로, 아마도 여긴 북반구니까 마이너스의 오차가 있을테지. 여하간에 중력은 절대적이다. 마치 내 머릿속 관념들과 같이.
방독면을 약간 느슨하게 하고, 땀으로 흥건히 젖은 머리칼을 매만진다. 길게 땋은 검은 머리칼이 방독면 사이로 빠져나온다. 자신의 숨소리에도 점차로 육성이 섞이기 시작한다. "너희들은… 딱히 오늘 죽을 예정은 아니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뼈를 따라서, 공기를 따라 울려퍼져 귓전을 둔탁하게 때린다. 머리가 아프다. 머리가.
"크윽…"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는다. 그와 함께 자세도 낮아진다. 들고있던 나이프도 떨어진다. 날카롭고도 둔탁한 소리. 차라리 이 소리가 낫다.
품에서 알약 통을 꺼낸다. 돌려 열어 뚜껑에 알약을 한움큼 받아, 그대로 삼킨다.
혈액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더니 차츰 멎어간다. 미친듯이 뛰던 심장은 조금씩 진정되어간다. 떨려오던 손도, 가슴을 짓누르던 압박감도 줄어든다. 일시적인 소강. 잠시의 눈을 가린 평화. 그와 함께 떨리던 두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도 조금씩 정적이게 되어간다. 눈 앞에 쓰러진 시체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구다. 그리고 벽에 비스듬하게 기대어있는 것까지 일곱.
아니, 잠깐. 방금 약간 떨렸는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고무장화가 데코레이션 타일 위를 밟아간다. 자박, 자박. 시체는 옆구리에서 조금 피를 흘리고 있다. 그러나 상처가 얕다.
"너, 죽은거 맞냐?" 방독면의 스피커를 통해 나직이 울리는 섬짓한 기계음. 마음이 편해지는 그 소리에 다시금 시체는 진동한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보자. 기대어 누운 그것 앞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아보자. 그리고 양손으로 턱을 잡아 열어보인다. 숨을 몰아쉬듯 거칠게 떨려온다. 아직 확신은 없다. 백태가 잔뜩 껴있는 더러운 혓바닥. 장갑 낀 손가락을 그 혓바닥의 침으로 적시다. 끈적한 침이 점액처럼 가는 실을 만들다. 코 앞으로 가까이 대보자. 희미한 숨결이 느껴지다. "숨, 쉬고있네?"
"그렇구나… "̤͎̟̲̝̓͊͐͒̒그͉̥̲̽̉͆럼̨̣̜̏́͜͠͞.̹̺̉͂.̱̩͛͂
… … 방 안은 불편한 열기로 후덥지근한 공기가 가득 메운다. 그곳은 어느 뒷골목 한켠의 스러져가는 낡은 바. 어둠만이 도사리는 계단을 올라간다. 투박한 금속제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가보면 옆으로 술병이 가득 메운 선반이 제일 먼저 눈에 보인다.
그 옆으로는 바가 있었다. 바 옆으로는 빨간 스톨 의자가 있었다. 의자 한 켠에는 비닐제 지퍼백 속에 든, 잘게 부순 알약같은 것이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지퍼백을 쥔 손이 있다. 그 손은 작게 경련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시신들이 여섯 구 있었다. 잘게 토막난 것도 있었다. 그 옆으로는 낡은 카우치와 테이블들이 나열되어있었다. 그 앞으로는 주크박스가 있었다. 음악은 꺼져있다. 그 속에서, 나직한 숨소리만이 울려퍼진다. 해가 지고 있었다.
광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시선이 페퍼가 떠난 자리에 닿았다. 짧게 머물곤 다시금 방황했다. 손톱 끝을 앞니에 밀어넣고 잘근거렸다. 절벽 끝에 내몰린 짐승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은 단순히 불안정한 내면의 편린인가? 네 얼굴 위에 어찌 아직도 먹구름이 가득하더냐? 아닙니다, 폐하. 되려 햇빛을 너무 많이 받은 탓이죠.* 잔뜩 물어뜯은 손톱 모서리가 거칠거리기 시작할 때쯤 입에서 뗐다.
누군가가 돌아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왔어?"
들어가란 말엔 으레 웃던 그 낯에 조금 그늘이 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당신의 뭘 믿고? 여긴 내 집이야. 내 감시 아래 있어야만 하는 곳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자리를 떠야 하지? 겨우 억눌렀던 강박과 편집이 창살을 흔들며 아우성쳤다. 그것들을 잠재운 것은 이어진 말에 있었다.
'더 이상 나를 자극하지 마…'
어느새 강박이 떠나고 손으로 겨우 가린 웃음만이 남았다. 아, 절벽 위의 짐승은 이것이로구나. 절벽 위에 있는 짐승은 내 목숨줄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조금만, 조금만 손을 뻗어 밀면 힘없이 허공으로 떨어질테다. 조금만 더 힘을 주어 민다면 그 방독면 아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까.
아서라, 목숨 귀하다. 피피는 지하실 안으로 얌전히 들어가는 것을 택했다. 지하실에서 먼 길 찾아온 손님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할 필요도 있었고. 육중한 문이 닫히면, 다른 냉장고들과 분리된 작은 냉장고 문을 열겠지. 그리고 살덩이 하나를 꺼낼테야. 칼을 들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