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계단에서 한번 꺾고 다시금 꺾는다. 대리석으로 된 계단 내려가 입구 열면 전경 한번 죽여준다. 그는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조명은 물론이고 바텐더의 깔끔한 모습, 재즈까지 끝내주는 선곡이다. 재밌게 놀기에는 조금 정적인 분위기가 아닐까 싶지만 어쩌겠는가? 그가 좋아하는 곳과 남들이 선호하는 곳은 다르다. 그는 이렇게 깔끔하지 않다. 눈 쨍한 네온 뒤로 개 되는 순간까지 마시고 음악은 사람들 소리에 묻혀야 했으니. 하지만 새로운 느낌이라 이런 곳에서도 재미 볼 수 있을 테다. 적어도 그의 방식으로 재미를 보는 건 아니더라도. 그는 고개를 흘끔 돌린다.
"어~ 나한테 맡기는 거야? 이거 좀 놀라운데. 진짜 형씨 얼굴 보고 튈 걸 그랬다."
농담 한번 툭 던진 그는 "형씨 대화 하는거 좋아해? 그럼 바텐더 있는 곳으로 가고." 하고 서두를 뱉은 뒤 사실 의견따윈 중요하지 않았단 양 바텐더 볼 수 있는 높은 의자 있는 바에 턱 앉아버린다. 그는 첫잔부터 뭘 마셔야 할지 머리에 턱 정해졌으니 남은건 이 이름 모를 어벙한 형씨 몫이다. 그는 척추에 그리도 무리가 간다는 다리 꼬는 자세로 휙 몸 비틀어 옆자리에 앉을 형씨 빤히 쳐다보고는 히죽 웃었다.
"형씨, 어떤거 마실 거야?"
매끈하고 검은 테이블에 검지 손톱 툭툭 두들기며 제법 얄밉게 묻는다. 그의 붉은 눈이 휙 휘었다.
어쩔 수 없죠. 시간대가 맞으면 노는 거고 안 맞으면 어쩔 수 없는 거긴 하니까요. 개인적으로는 AT급 둘만의 세계만 펼치는 것만 없으면 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해서. 가끔 있긴 하더라고요. 둘만의 세계를 펼쳐서 아예 그냥 둘만 논다거나 그런 느낌으로? 사실 그 정도만 아니면 별 상관없지 않나 생각을 하긴 해요.
문은 얌전히 열리지 않았다. 떨어져나갈 듯 쾅!하고 울리는 소리를 들으면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흠칫거리거나 놀란 티를 내기 마련이다. 천하의 자강두천, 호락호락하지 않은 방정꾼인 그도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펄쩍 뛰지는 않았어도 그는 잠시 동안 회동그래진 눈으로 소라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래도 힘조절은 하셨네……. 문이 찌그러지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시선이 슬쩍 발로 차인 문으로 향했다가 다시 소라에게 돌아갔다. 놀란 티도 잠깐이었다. 별일 아니라는 양 천천히 몸을 바로세우며 "네네, 그렇죠─."하는 목소리에는 여상스레 부리는 한만이 잔뜩 끼어 있었다. 소라의 실수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에이, 저도 문 발로 차고 들어왔는데요 뭘. 부끄러워 할 거 없어요~"
똑바로 서자마자 바로 꺼낸 말이 이랬지만. 모르는 척 하려던 걸 굳이 콕 집으면서 실실거리는데, 역시나 그가 누구 놀려먹을 건수를 놓칠 리가 없다. 그나마 소라가 상사라는 눈치는 있어선지 더 끌지는 않았다. 한쪽으로 숙이느라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슥슥 정리하고선 조금 깔끔해진 몰골로 말했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왔다는 그 말이 나오자 소라는 태연하게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생긋 웃어보였다.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고집이었다. 물론 인정한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는 것은 나름대로의 고집이었다. 보기 흉한 꼴을 보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녀로서는 도저히 싫었던 모양이었다. 괜히 찔리는지 다시 한 번 무슨 일이 있었냐를 강조하듯 이야기를 하며 소라는 눈웃음을 보였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옥상에 제대로 들어섰고 바람을 정면으로 맞이했다. 슬슬 겨울이 느껴지는 차가운 바람을 전신으로 느끼며 그녀는 괜히 입김을 후우 불었다. 허나 하얀 입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직 그 정도로 날씨가 차가워진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별 건 없어요. 그냥 요 며칠 사이 청해시에서 고등학생들이 행방불명되는 일이 있거든요. 아마 알 사람은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익스파 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경찰인데 왜 움직이지 않냐는 등, 일 할 생각이 없냐는 둥. 아! 짜증나! 그 빡빡이!"
말을 하면서도 순간 화가 났는지 그녀는 괜히 성질을 내면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팀을 이끄는 지휘자라고 해도, 결국 더 위의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시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모양이었다.
"오늘부터 당장 편성해서 수색을 하라고는 하는데... 정말 복잡하네요. 언제는 익스퍼 전담 팀이라더니, 경찰 일은 다 하라고 하고, 이제는 이런 수색도 하라고 하니 말이에요. 물론 하기 싫는 것은 아니에요. 경찰인만큼 당연히 해야 할 일은 할 건데 그래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잖아요. 좀 더 같이 참가를 해보는 건 어떻겠니? 라던가 그런 말을 하면 얼마나 좋아요.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부터 지르니."
정말 상상 이상으로 시달린 것인지 그녀는 힘이 쭉 빠진다는 듯이 축 쳐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다시 허리를 쭉 펴면서 앞을 바라봤다.
"그런고로 오늘은 야근이에요. 전원. ...갑자기 이리 되어서 미안해요. 다음에 뭐라도 한 턱 낼게요. 위그드라실 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