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했던 10월 막주도 어느새 끝이 나버리고, 계절은 성큼 다가와 달 이름에 11이라는 숫자가 붙은 때가 왔다. 가을이다. 가을이 와버리고 말았다. 생각 없이 들이킨 저녁 바람이 이제는 제법 차갑게 느껴질 때가 되었다 이 말이다. 이런 서술이 앞에 붙은 만큼 당연하게도 그가 있는 장소는 바깥이다. 정확히는 옥상에, 이제야 입성하는 참이다.
주머니에 손 꽂아넣고 전에 썼던 사람이 제대로 닫지 않았는지 조금 열려 있는 문을 발로 턱 밀면서(그러면서도 발자국 안 묻게 발등으로 밀었다.) 들어오는 폼이 보통 껄렁한 게 아니다. "날씨 끝내준다―"하고 혼잣말도 쩌렁하게 외쳐주지 않으면 섭했다. 아직 퇴근하려면 일도 시간도 남았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온 행색을 봐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려 올라온 게 분명했다. 보통은 이런 때에 담배라도 피우겠지만 그는 생겨먹은 인상과는 달리 흡연자가 아니었다. 그 대신에 적당히 빈 자리에 서서 손깍지를 끼고 팔을 위로 쭉 뻗는다. 건전하게 스트레칭이나 하려고 나온 것이다. 사무가 어색하지는 않아도 최근까지 죽어라 움직이는 일을 했던 사람이었으니, 서서히 엄습해오는 거북목과 복근손실을 체험판으로도 접하기 싫다는 의지를 이렇게라도 발현해야 했다. 한창 허리를 옆으로 뚝 꺾고 있을 무렵 문이 열리기에 그는 비스듬한 자세로 반갑게 인사를 던졌다.
"어, 안녕하십니까."
눈앞에 비딱하게, 어두침침한 구석에서 상당한 각도로 기운 사람이 턱 나타난 게 어떤 의미로든 심상치 않아 보이리라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보통은 어색하거나 민망해서라도 일단 제대로 서서 인사할 텐데 그만둘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였다.
-최근 고등학생 실종사건 말이다만, 일단 익스파 반응은 없긴 하지만 자네들도 경찰이 아닌가. 그러니까 자네들도 수색 임무에 동참하게.
"네? 아. 물론 지원을 해야한다면 얼마든지 하겠지만..."
-그럼 지금 당장 팀을 편성해서 수색에 나서도록. 이상이네.
매우 일방적인 통보에 소라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최근 청해시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종사건에 대한 것은 당연히 소라도 알고 있었다. 허나 자신들은 익스퍼와 엮여있는 사건 전담 팀이었기 때문에 일단은 지켜보고 있었건만, 오늘 상층부에서 당장 수색에 동참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소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일이 불만인 것은 아니었다. 허나 대체 학생들이 실종되고 있는데 왜 구경만 하고 있느냐는 잔소리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말들이 있었기에 소라로서는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아! 진짜!!"
대체 자신에게 뭘 어쩌라는거야. 그런 느낌으로 소라는 옥상으로 나온 후에 괜히 힘껏 문을 걷어찼다. 쾅!! 정말 큰 소리를 내면서 문이 열렸고 소라는 그 너머의 존재를 바라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비스듬한 자세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 모습에 소라는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회피했다. 아무리 그래도 방금 광경을 못 본 것은 아니겠지? 그렇겠지? 그런 운이 있을리가 없겠지? 스스로 정리를 하며 소라는 살며시 몸을 옆으로 튼 후에 헛기침 소리를 내면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애써 웃어보이면서 이야기했다.
좁은 계단에서 한번 꺾고 다시금 꺾는다. 대리석으로 된 계단 내려가 입구 열면 전경 한번 죽여준다. 그는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조명은 물론이고 바텐더의 깔끔한 모습, 재즈까지 끝내주는 선곡이다. 재밌게 놀기에는 조금 정적인 분위기가 아닐까 싶지만 어쩌겠는가? 그가 좋아하는 곳과 남들이 선호하는 곳은 다르다. 그는 이렇게 깔끔하지 않다. 눈 쨍한 네온 뒤로 개 되는 순간까지 마시고 음악은 사람들 소리에 묻혀야 했으니. 하지만 새로운 느낌이라 이런 곳에서도 재미 볼 수 있을 테다. 적어도 그의 방식으로 재미를 보는 건 아니더라도. 그는 고개를 흘끔 돌린다.
"어~ 나한테 맡기는 거야? 이거 좀 놀라운데. 진짜 형씨 얼굴 보고 튈 걸 그랬다."
농담 한번 툭 던진 그는 "형씨 대화 하는거 좋아해? 그럼 바텐더 있는 곳으로 가고." 하고 서두를 뱉은 뒤 사실 의견따윈 중요하지 않았단 양 바텐더 볼 수 있는 높은 의자 있는 바에 턱 앉아버린다. 그는 첫잔부터 뭘 마셔야 할지 머리에 턱 정해졌으니 남은건 이 이름 모를 어벙한 형씨 몫이다. 그는 척추에 그리도 무리가 간다는 다리 꼬는 자세로 휙 몸 비틀어 옆자리에 앉을 형씨 빤히 쳐다보고는 히죽 웃었다.
"형씨, 어떤거 마실 거야?"
매끈하고 검은 테이블에 검지 손톱 툭툭 두들기며 제법 얄밉게 묻는다. 그의 붉은 눈이 휙 휘었다.
어쩔 수 없죠. 시간대가 맞으면 노는 거고 안 맞으면 어쩔 수 없는 거긴 하니까요. 개인적으로는 AT급 둘만의 세계만 펼치는 것만 없으면 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해서. 가끔 있긴 하더라고요. 둘만의 세계를 펼쳐서 아예 그냥 둘만 논다거나 그런 느낌으로? 사실 그 정도만 아니면 별 상관없지 않나 생각을 하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