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일하고 있는데 옆에 기르는 냥냥이가 자고 있으면 좋긴 할거 같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직장에 냥냥이를 데리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 셀린한테 쿠키 주는걸로 참아야지. 하고 납득하는건 덤이었죠.
"... 사실대로 말하자면 저는 딱히 후배든 선배든 상관없어요."
그리고 잠시, 그녀는 호칭에 대해 말하며 미소지었습니다.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게 목적이지 내가 후배여야 한다는게 아니니까요. 그저 후배를 자칭하는것은 그것이 경험상 더 편했기 때문이었지. 다른 이유가 있는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변덕인지. 그녀는 갑자기 "하지만 선배한테는 후배이고 싶네요" 라면서 쿡쿡 한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습니다.
"갈색이라-"
그녀는 일단은 갈색을 1번으로. 다른걸 2번으로 생각하며 바지부터 둘러봤습니다. 다만 위에는 이미 후리스가 있으므로. 베이지색의 진을 한벌. 사실은 치마도 입히고 싶지만 일단 추운것부터 해결하는게 먼저였으니까요. 그리고 이어서 검은색 슬렉스와 평범한 데님을 또 한벌씩 골라서 당신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면 슬프죠, 신경쓰고 있는걸 알아주지 않는건.."
그러나 다가가자마자 자신을 끌고 있는 당신을 보며 그녀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아주 살짝 볼을 꼬집으려 했습니다. 이쪽 보세요~ 라는 느낌으로.
"제 옷을 고르러 온게 아닌걸요."
그리고는 고른 바지들을 들어보이며 어떤게 좋을거 같냐는듯 바라봤습니다. 데님쪽은 그냥 평범한 데님이며 기장이 살짝 짧은거 말고는 평균이었습니다. 베이지색의 진은 꽤나 핏이 빡빡해 보이는 스타일인데 막상 입어보면 또 편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검은색 슬렉스도 움직이기 편해보입니다. 약간 실용성을 따진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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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계약한 집은 큰 창 너머로 오션뷰가 보이고 역세권, 슬세권까지 모두 포함된 좋은 여건의 오피스텔이다. 방음도 잘 되고, 커튼으로 가리면 남이 쳐다볼 수도 없으며, 평수도 나쁘지 않다 못해 혼자 살기엔 조금 널찍한 감이 있다. 가족끼리 놀러 다니던 별장만큼 좋은 곳은 아니지만, 집 구하기 힘들다 소문난 한국에서 이 여건 저 여건 따져보자니 남들이 군침 줄줄 흘릴 곳은 맞는 것 같다. 그는 오늘 집에 침대를 들였고, 소파를 비롯해 여러 가구도 전부 들였다. 나중에 마음에 안 들면 당근이라는 좋은 플랫폼을 통해 팔아버리면 되는 일이다. 그는 푹신한 소파에 점프하듯 뛰쳐 누워 티비를 튼다. 채널도 이곳저곳 다 나온다고 하는데 원하는 채널은 가입해서 또 따로 청구해야 한단다. 디즈니나 넷플릭스를 뜻하는 말이었나 했는데 청년 혼자 살기 적적하지 않겠냐는 건물주의 말을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그는 채널을 돌린다. 예능 프로를 건너 홈쇼핑을 건너고, 뉴스를 건넌 뒤 아이돌이 나오는 채널도 건넌다. 영화가 나오는 채널에서 잠시 멈춘다.
─ 꼬마야,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니? ─ 어, 그게.. 빵을 사러요. ─ 안타깝구나. 이 근처에선 빵을 살 곳이 없는데.
최근 상영하던 영화는 아니고, 좀 옛날 영화다. 화면 속 붉은 눈을 가진 소년이 어색하게 웃으며 등 뒤로 밀서를 숨긴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저 남자와 함께 산책 나온 개가 소년이 등 뒤로 숨긴 편지를 눈치채고 컹컹 짖을 것이다. 그리고 소년은 도망칠 것이고, 개가 쫓아올 것이다! 그때 어른들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 당시의 자신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는 몸서리를 치며 채널을 돌렸다. 다시 예능 채널을 건너고, 드라마를 건너고, 재미없는 채널을 계속 건너다 또 한 채널에서 멈춘다. 최근 신작이 나온다는 히어로 영화의 바로 이전 편이다. 중후한 매력을 가진 남성이 손을 들어 올리자 땅이 흔들린다. 이때 아빠가 뭐라고 했더라.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히어로 수트 입고 손 들어 올려라 해서 늙은이는 웃음밖에 안 나오더라! 였나? 그는 저기에 얼마큼 많은 cg를 쏟아부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도저히 영화에 집중할 수 없어 또 채널을 건넌다. 스포츠, 스포츠…. 문득 스쳐 지나가는 채널에선 야구가 진행 중이다. 8회 말, 4:6. KIA는 한화에게 지고 있다. 지금쯤 리리는 애간장이 탈 것이다. 다시금 채널을 넘긴다. WWE 경기를 중계하는 채널이다. 검은 수트를 입고 금발에 다부진 체격을 가진 매력적인 여성과, 흰 수트를 입고 푸른 머리에 짙은 화장을 한 여성이 서로를 잡아먹을 듯 마주 보며 마이크 웍을 하고 있다.
─ 퀸 이블. 네 동생은 뉴욕의 영웅이라 불리는데 넌 뭐지? 집안의 명성 빼곤 아무것도 없잖아! 이곳에 온 것도, 바람이 셌던 거잖아! 실력도 없으면서 다른 녀석의 꿈을 짓밟고 탄탄하지 못한 길을 걸어온 거라고. 내 말이 틀리나? 난 널 막기 위해 여기 나섰지. (아, 미스트가 퀸 이블에게 도발을 했어요!) (실제로 퀸 이블은 동생을 끔찍하게 아끼는 걸로 유명하죠? 퀸 이블이 뭐라고 할지 기대가 되는데요.) ─ 너같이 입만 잘 놀리고 실력 없는 쭉정이 거르고 올라온 게 나다, 이 멍청한 미스트. 꿈을 짓밟기는! 약해 빠진 것들이 이 퀸 이블을 이기지 못했으니 당연히 기회가 없는 거지! 뉴욕의 영웅? 난 미국의 악당이다, 이 머저리야! 그것도 이제 너를 밟고 챔피언 자리에 오를 미국의 악당이지! (아-! 퀸 이블 당당해요, 사악합니다! 악랄해요!)
다부진 체격, 금발 머리의 화려한 여성이 마이크를 뺏어 던지더니 그대로 스피어¹를 날린다. 크나큰 환호소리와 경기를 시작하는 링 소리가 울린다. 퀸 이블이라 불린 금발 여성이 링 바닥에 쓰러진 여성의 다리를 한 팔로 잡고 몸을 누른다. 심판이 카운트를 세자 누워있던 여성이 몸을 펄떡이며 일어선다. 격렬한 링 싸움을 지켜보던 그는 퀸 이블의 클로스 라인에 쓰러진 미스트를 본다. 링 기둥에 올라선 퀸 이블이 높게 점프하자 그는 채널을 돌렸다. 며칠 전 누나의 인스타그램에서 챔피언 벨트를 당당히 든 사진이 떴다. 폭력적인 장면이 난무하는 경기 결과는 안 봐도 안다. 그는 채널을 이것저것 돌리다 한국 예능을 본다.
─ 안녕하세요, 자기님.
남동생이 어색하게 한국어를 하는 모습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 다시 채널을 돌려 뉴스를 보기로 했다. 재수가 없으려니 광고 시간인가 보다. 음주 전후 숙취해소, 해외 수출까지 한 모 숙취해소제 광고를 뒤로 핸드폰이 윙 진동한다.
[퍼지!] [(남동생과 누나의 셀카. 남동생은 표정이 뚱하다.)] [한국은 어때?]
그는 일말의 고민 없이 답장을 보냈다.
[어딜 가나 너희가 보여.] [이 베르너들아!] [보고 싶어!😏] [나도!🥺] [아, 브라이언도 보고 싶대.] [자기 말로는 형 얼굴 보고 싶지도 않고 떠나서 좋다고 하는데] [아직도 밤만 되면 형은 안 잔대? 전화해 봐! 하고 물어보다가 자기가 놀란다니까?😏] [lol] [절대 마약 하거나 여자 만나거나 남자 만나거나 그놈의 flex 해서 인스타에 올리지 말라고 전해줘.😡] [맡겨만 줘!😎] [그리고 엄마랑 아빠한테도 안부 전해줘.] [그것도 맡겨만 줘!] [으!😩] [더 대화하고 싶은데] [이제 촬영 들어가야겠다.😩😩] [Bye!😚] [I luv U! fudge💗] [Bye. I luv U 2]
그는 핸드폰을 다시 잠그고 아예 엎어버린다. 지긋지긋한 광고 뒤로 처음 뜬 뉴스의 헤드라인에도 빠지지 않는 가족 이름이 또 보인다.
─ 유명 토크쇼 MC 유진 베르너… UN 연설. "누구도 차별받을 권리 없다."
그는 소파에 벌렁 배를 까듯 뒤집어 누웠다. 이래서는 독립한 의미가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내 이름이 안 나오니 다행일 것이다. 술이나 마실까 하는 생각에 그는 몸을 일으키다 뉴스를 가만히 본다.
─ 미국에서 원인 불명의 산불 발생, 이번이 5번째…….
"재밌네."
그는 냉장고로 걸어가 캔맥주를 꺼냈다. 오늘 산 맥주 4캔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조리 그의 위장을 적시고, 속을 망가뜨릴 것이다. 어차피 그러기 위해서 산 맥주다. 술을 마시려면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그는 소파에 털썩 앉아 무표정으로 오늘의 비고를 전하는 아나운서를 향해 건배한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세상과 4캔에 만원인 맥주를 위해 건배. ¹) 프로레슬링 기술 중 달려가며 어깨로 상대의 복부를 뚫듯이 들이받는 기술을 통틀어 일컫는 명칭으로, 달려가는 동작과 부딪힌 상대방이 드러눕는 모습이 마치 창으로 찌르는 모양과 비슷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사민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목소리 볼륨이 올라간 것으로 보아 여간 억울한게 아닌 모양이다. 지금 저 놀리신거죠? 놀리신 거 맞죠? 사민은 연우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세상에, 직장에서도 농담 잘 않던 연우에게서 낯선 깝죽이의 향기가...! 사민은 입을 틀어막고 우는 얼굴을 했다. 진짜 운 건 아니고, 그냥 우는 사람처럼 인상이 구겨졌다는 소리다.
"선배도 그런 적 있어요? 신경 쓰는데 안 알아줘서 슬프다던가..."
사민은 그런 적이 제법 있었다. 워낙 내적 관종이라 그런지 관심을 안주면 심사가 엉클리는 타입의 인간인 탓이다. 가만보니 연우는 그런 적이 없을 것 같다는게 사민의 평가였다. 남의 시선 신경쓰지 않고 자기 할 일을 척척할 것 같은 인상이 있었다.
"앗, 아파요. 아파요."
별로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살이다. 사민은 연우가 제 볼을 끄는대로 따라갔다. 고개가 잠시 돌아간다. "그렇지만 진짜 어울릴 것 같은데..." 미련 그득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도 잠시 연우가 보여준 바지에 얼굴이 환해졌다. 사민은 부모님 말고는 제 옷을 선물받은 적이 없음에도 상당히 뻔뻔했다. 보통이라면 '옷을 사준다는 말에 헉, 아니에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겸양을 떨어야할텐데 얘는 3번 제안하면 3번 다 '헉 너무 좋네요'할 사람이었다.
"헉 너무 좋네요."
봐라. 여기서도 이러고 있지 않는가. 사민은 몹시 고민이 되었는지 진지한 눈초리로 바지를 훑었다. 사실 슬렉스는 이미 집에 있었다. 베이지색 진의 경우 위의 옷이 워낙 갈색 종류가 많은지라 부담이 되었도. 그렇다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저어는 그럼 이게 좋을 것 같아요. 집에 청바지가 별로 없거든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입시에 시달려 청바지를 싹다 버렸었다. 성인이 되었지만 따로 청바지를 주문해놓지 않았다. 이게 왠 꽁이냐. 사민의 얼굴이 확 풀어졌다. 안면근육이든 뇌에든 여러모로 힘이 없다 싶은 얼굴이었다.
자캐가_슬픔을_감추는_방식은 > 어..🤔 얘가 감출까?? 굳이 감춘다면 평소와 다를 바가 없을 거야. 그런 사람 꼭 있잖아. 겉으로 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집에 돌아오거나 새벽 정도 되면 머리에서 오늘 하루도 개같았고 다시는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만 가득 들어차고 혼자 사색에 잠겨있는 부류. 아무튼 평소와 다를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