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저나 온다면 누가 오려나. 우리 보육원은 의도치 않게 성비가 딱딱 맞는 편이라서 남자여자가 거의 1:1 로 있었다. 그러므로 놀러오는 것도 반반으로 올텐데 ... 머릿속으로 올만한 애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손가락을 접어본다. 하나, 둘, 셋 ... 많이 와봐야 한 여섯명쯤 오겠네.
" 사실 많이 먹어서 나쁜게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니까요. 비만이 온다거나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되거고. "
많이 먹는 사람 = 돼지라는 것도 이젠 편견인 시대니까. 많이 먹더라도 자기관리만 철저하면 상관없다. 키라씨처럼 먹어도 저런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면 아무도 뭐라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차라리 이렇게 눈치 안보고 먹는게 같이 먹는 입장에서도 편하다.
" 어우 진짜 배부르네요. 다음엔 여기서 포장해가서 두끼에 나눠 먹어야겠어요. "
그래도 콜라를 좀 넣어서 소화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남은 콜라는 억지로 다 먹어버렸다. 감튀랑 어니언링은 더이상 위장에 공간이 없어서 포기.
" 흠,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가야 양치질이라도 하겠네요. "
그 사이에 시켜둔걸 다 먹고 치즈버거를 하나 더 물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위에서 말한거랑 좀 다른 내용이긴 하지만 진짜 많이 드시기는 하네. 이건 놀라운 수준을 지나버렸다.
그야 다들 일하는데 혼자 놀고 있으면 사람들 시선이 좋지 않을테니까. 말만 저렇게하고 일은 조금씩 하고 있겠지만 혹시나해서 하는 얘기다. 팀은 톱니바퀴와도 같아서 한명이 빠져버리면 굴러가는듯 하면서도 결국 멈춰설테니까. 한번 삐걱이기 시작한 기어는 다시 맞추려고 해도 쉽지 않은 이야기다.
" 대충 20분 정도 지났네요. "
담배를 피러 나갔다오기엔 너무 긴 시간을 소비했다는 것이다. 혼자 나갔다왔으면 5분이면 다 피고 들어왔을텐데 말동무가 생겨버리면 그 시간이 너무 늘어나는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뭐, 피는 내내 심심하지는 않았으니까 나쁘지 않았지만.
" 흠 ... 글쎄요, 제가 아는 소라는 이런걸로 크게 화는 안내겠지만 잔소리는 좀 할 것 같은데 말이에요. "
하지만 그 정도 잔소리라면 이 사람의 마이페이스를 뚫지는 못할테니까 상관 없으려나. 어깨에 올라온 그의 팔을 느끼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 역시 나도 흡연자지만 담배냄새는 별로 좋은건 아니다 .. 라고. 그렇게 내가 옥상문을 열고서 천천히 사무실로 향한다.
뭐라도 받아칠줄 알았는데 아무 말이 없어 힐끗 바라보니 라떼를 한번 마시고서는 시선을 딴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끄러운건지 화가 난건지. 여기서 이렇게 봐서는 알 도리가 없기는 했지만 그날 이후로 이런 모습을 볼때마다 왜이리 귀엽게 느껴지는지.
" 그럼 자주 해야겠네요.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하거든요. "
빨대가 뺨을 찌르자 아얏, 하고 몸을 살짝 뺐다. 물론 진짜 아픈건 아니라서 엄살 한번 부려본거긴 하지만. 그래도 번호까지 땄다는 생각에 노래방에 다녀온게 어쩌면 신의 한수? 같은 시덥잖은 생각이나 하게 된다. 먼저 연락이 오는 것도 한번 바래볼 수 있겠지만 그녀 성격상 아직 그럴거라곤 생각이 들지 않는다.
" 과거의 저는 사람인데 ... 불쌍하게 여겨주세요. "
슬슬 경찰서가 저 멀리 보인다. 1층에 카페가 있는 특이한 구조라 눈에 더욱 띈다.근데, 이 커피 들고 들어가면 카페 사장님이 안좋게 보려나. 아직 반이나 남아있는 유자에이드를 한번 더 쪽 빨아먹는다. 시큼하면서도 시원하고 달달한 맛이 일품이다. 그래도 다음엔 자몽으로 시켜먹어야겠다.
" 뭐, 종국엔 우리가 이기겠죠. 경찰이 지면 안되니까. "
이긴다는 마음가짐으로 상대해야 무조건 이기는 것이다. 경찰에게 진다는 선택지는 없다. 경찰이 진다면 그것은 치안의 붕괴로 이어질테니.
" 저도 잘 보지는 못하는데 저번 순찰때 딱 마주쳐서 ... 그래도 잡아서 근처 서에 넘겼으니 다행이지 못잡았으면 큰일날뻔 했다니까요. 그리고 흉기라도 소지하고 있었으면 일이 더 커질수도 있었고. 여하튼 평화로운게 좋은거 아니겠어요? "
그렇게 말하다보니 어느새 경찰서에 다 와있었다. 자연스럽게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내린 나는 차키를 빙빙 돌리면서 2층을 바라본다. 하, 들어가기 싫다. 그래도 아직 일할 시간이 남아있으니까 들어가야겠지.
더위를 먹었나 싶어도 요즘 날씨도 쌀쌀한데 어린애도 안속을 변며이라며 그녀는 속으로 열(?)을 식히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곧 순찰도 끝나고.. 진정하면 되겠지만요. 그럼요...
"그러고보니 전에 그렇게 말하긴 하셨죠."
심심하다.. 그녀는 딱히 혼자 있어도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당신이 저번에 만났을때 친구도 다른지역에 있고, 하던 말을 기억하며 그녀는 답했습니다. 뭐 연락정도야 그렇게까지 힘든일은 아니었으니까요. 어차피 얼굴을 봐도 모르겠다면 오히려 그녀로서는 톡이나 전화가 더 편하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볼게요."
그녀는 과거의 자신은 사람이라는 말에 살짝 퉁명스럽게 답하는듯 하면서 미소지었습니다. 맞는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한 항의. 곧이어 카페가 보이고, 마음 다잡고 복귀해야하니 라떼컵을 비웠습니다. 따뜻한건데 잘도 이 시간에 비웠네요.
"그럼요."
경찰이 지면 정말 무법지대가 되는거 아닐까. 그녀는 극히 드문 몇개의 사례를 생각하며 기지개를 켰습니다. 다음에 또 겹치면 제가 운전할게요. 하고 자신보다 피곤할 운전자를 향해 말하면서요.
"흉기가 있었으면 저희까진 그렇다쳐도 주변도 위험해지니까요. 확실히 평화로운게 낫죠."
자기 몸이야 여차하면 익스파를 쓰면 되니까. 하지만 갑작스런 사태에 특히 타인이 위험해지면 뜻대로 익스파로 지키는건 쉬운게 아닙니다. 그야 익스파를 공공연히 쓰는게 안되니까 애초부터 쓸 생각을 막고있으니 말이죠. 교육으로 걸려진 브레이크란 원할때 팍팍 깰 수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쏘시겠다면?"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서로 올라가기전에 조금만 이따 올라가겠다며 1층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하아..."
아주 잠시. 카페에서 했던 다짐을 무심하게 만든 자신을 원망하며 쪼그려 휴식을 취하는 3분가량.
전세계... 일진 모르겠지만 일단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인셈이니 전세계라는 말이 얼추 어울릴지도 몰랐다. 분명 위그드라실이 이곳에서 시작된만큼 현지인의 비율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실상은 그 반대였으니까. 그럼에도 아직까지 별탈없이 잘 나아가고 있다는건 그만큼 허투루 모인 사람들은 아니라는게 확실했다.
"음... 하긴 그런가요? 이래저래 움직이는건 아무래도 정말 어린애들은 좀 조심스러울테니까요. 위험하다, 라는 문제보단 언제 어디로 달려갈지 모르는 거지만 그래도 귀여우니 상관없으려나요~"
초등학생이라면 한창 뛰어다닐 때인데다 그보다 더 어리다면 역시 걱정스럽긴 할것이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잠시 생각에 잠긴듯한 당신의 모습을 보아 서너명 정도가 아니란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뭐, 딴말이긴 하지만 가끔은 반대로 누가 더 많이먹는지 내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아마... 사람의 위장은 못해도 배는 늘어난다던데 이건 뭐 각자의 차이일거고..."
그리 멀리 나가지 않아도 당신만 본다면 위의 용량은 정말 사람에 따라 다른가보다.
"그것도 괜찮네요~ 집에 에어프라이어가 있는 사람이라면 사이드를 남겨가도 딱히 문제될건 없구요?"
간혹 일반 프라이팬으로도 튀김의 맛을 되돌리는 사람도 있다곤 하는데 그녀는 그정도 실력까지 있는건 아니었기에 적당히 현대문물에 기대는 편이었다. 일단 햄버거와 음료는 어떻게든 해치웠지만 튀김은 여전히 남아있는 당신의 트레이를 보고선 박수를 쳐보였을까? 다른 의미는 없고 그저 먹느라 고생한 당신에게 보내는 격려와 찬사 비스무리한 것이었다.
"그쵸~ 그것까지 생각하면 슬슬 일어나야 하니까요? 저도 이제 다 먹었구요! 운동할 시간이다~"
정말 말 그대로, 이래저래 대화하는 사이 남은 햄버거마저 처리해버리던 그녀는 항상 그랬다는듯 순찰을 빙자한 산책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이쯤 되면 그냥 돌아다니는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봐도 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