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안에서 막으려고 나도 노력했어. 셋 이상을 부르려는 걸, 막아세우고..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희를 배신한 건 사실이야. 미안하구나. 너희를 배신한 것도... 각시에게서 10명을 구하지 못한 것도.... '
레오는 몇 번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두 눈을 부릅뜨고 혜향을 노려보았다. 이제야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제대로 화를 표출할 대상을 찾았고 미워하고 증오할 대상을 찾았다. 눈 앞에 보이지 않아 실체마저 모호한 매구나 탈따위가 아니라 이제껏 자신을 기만하고 욕보인 실체가 명확한 한 사람. 그 대상이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는 이제와선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면 될 뿐이었고 눈 앞의 사람은 위선자일 뿐이니까. 그래, 버니도 그렇게 말해줬잖아.
" 열한명.. "
각시에게서 열명을 구하지 못했단말에 레오는 작게 열한명이라고 중얼거렸다. 그 날 죽은 열명과 다른 의미로 죽어버린 한 사람이 여기 있으니까. 괜찮아보였지만 아직도 그 날 그 시간 그 때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으니까.
" 잘 들어... 난 아직도 그 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어. 아직도 상처난 자리가 아프다고 느껴져. 친구들이 나한테 등을 돌리면 숨이 쉬어지지 않아. 추모비를 지날때 내 이름이 적혀있는게보여. 매일 밤마다 나는 살고싶다고 생각하면서 허공에 마법을 쏘면서 깨어나. "
레오는 두 손을 들어 멱살을 잡고 여전히 노려보았다. 눈물이 끝까지 차올라 두 눈망울이 촉촉해져도 끝끝내 그 눈물을 흘려보내진 않았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살아남지 못하니까. 야생은 그런 곳이니까. 배운 적이 없어도 알고있는 점이었다.
" 그 열 명은 몰라. 또 나머지 다친 사람들이 있겠지. 그 사람들도 몰라.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몰라.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
눈 앞에 보이는건 한 때 좋아하고 존경하던 교수의 얼굴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싶은 탈의 얼굴인가. 그도 아니면 추모비에 씌여진 레오파르트 로아나라는 이름인가.
" ....나, 레오파르트 로아나. 날 죽인건 당신이야 "
그 날을 기점으로 레오는 죽었다. 그 때 그 레오는 죽어버렸다. 레오는 신경질적으로 멱살을 놓았다. 그리곤 머리를 쓸어넘기며 뒤를 돌아 천천히 걸어나가다 뒤를 돌았다.
" 아, 그렇지. 알고있는지 모르겠는데 난 버니랑 만나고있어. 너희는 부네가 더 익숙하려나? 걔한테 저주를 배우고있어. 너희 전부를 죽이기 위해서 말이야. 너도 날 죽였으니 나도 너희를 죽여도 되잖아. 그렇지? "
말을 마친 레오는 다시 뒤를 돌아 문을 열었다. 안압이 완전히 죽어 공허를 바라보는 죽은 눈에서는 이제야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지만 마치 그게 그렇지 않다는듯 레오는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두고 방으로 돌아갔다.
어머나. 하고 주양은 정곡을 찔렸다는 듯 다시 미소지었다. 지금처럼 마냥 귀엽고 유순하게 구는 것도 좋았지만, 그것만을 좋아했다면 주양이 아니다. 언제 자신이 물릴 지 모른다는 위기감. 그 아찔함에서 오는 쾌락. 결국 물리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까지. 모든 것이 충분히 즐길만한 것들 뿐이었기에. 그래서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하고 미소로 넘기려 하는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여보는~ 그걸 이제서야 깨달은거야? 조금 서운하다고 할 뻔~"
말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잘 이해할 마음이었지만 막상 이렇게 다가오니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어 괜히 한번 밀어내듯이 말했다. 그러면서도 표정은 굳어있지 않은 채 싱글벙글한 모습으로 일색하기는 했지만.
나긋하고 상냥한 어조가 끝맺어지고 제 손에 당신의 볼이 닿자, 주양은 기다렸다는 듯 살짝 힘을 주어 당신의 볼을 움켜쥐려 시도하였다. 만약 잡힌다면 아프지 않게. 하지만 그동안 못 꼬집었던 것을 충족시킬 수 있게끔.
"그치만~ 여보가 이렇게 이뻐보일 줄 알았으면 나도 우리 여보한테 그렇게 보일걸 하는 후회가 드는걸? 그래야 너가 지금보다 더 나를 바라봐주고~ 나만 생각하지. 안 그래?"
지금 받는 애정이 모자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분에 넘치는 애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생각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그런 부류의 것이었으나, 굳이 이렇게 말한것은 마치 밑빠진 독에 물을 들이붓듯 채워도 채워도 충족되지 않는 애정과 소유욕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당신의 말에 만족스럽게 웃다가도 그 웃음이 사그라들고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누구는 몸 달아서 미칠 지경인데, 또 모르는 척 밀당을 시작해버리다니 하는, 내로남불 서주양다운 마인드였을 것이다.
"애, 애가 타긴 뭐가 타! 탈들이나 활활 타버리라고 그래. 나는 하~나도 안 그렇거든!"
애꿎은 탈에게 다시 적대심을 불태우면서 얄밉다는 듯 홱 고개를 돌려 버렸지만, 시선은 금새 다시 당신을 향했다. 그 시선에 온갖가지를 담아 열심히 바라보았다. 봐봐. 나 이만큼 삐졌어. 얼른 입 맞춰줘. 그런 감정이 제일 많이 담겨있기는 하다만.
다들 반가워요! 따뜻한 물로 샤워..담요..따뜻해요..😊 앙큼한 1학년..🤔 벨이 식은땀을 흘릴 정도의 강적..🤔🤔 왜 벨 주변엔 다 강한 여자((어머니/오러))((타니아(였던 것)/청룡의 탈을 쓴 주작))((렝/주작))(쭈/주작))((땃태/현무의 탈을 쓴 주작))((첼/백호의 탈을 쓴 주작))((타타/기린 강하다!))만 있을까요..
정곡을 찔렸다는 표정에 단태의 붉은색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기색이 짙은 헤죽- 짓는 미소도 짙어지며 흐흥~ 하는 웃음소리가 짧게 새어나왔다. 어떻게 보면 배부른 짐승이 지을, 포만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단태는 주양을 볼 뿐이었다.
"달링~ 자기~ 허니버니~ 내 아기 고양이, 내사랑."
누가 듣는다면 소름이 돋을정도로 느끼한 호칭들을 나열하던 단태는 한번 더 헤죽, 웃어보였다. 서운하다는 말에 대한 답을 하는 대신에 선택한 닭살스러운 호칭들을 뻔뻔하게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재잘재잘 떠들던 단태는 웃음을 거두고 기대고 있는 자신의 볼을 움켜쥐는 걸 피하지 않았다. "굳이 서로가 이해하고 있는 걸 확인할 필요는 없잖아?" 계속 싫다고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어가며 피했으니 한번쯤은 내줘야지. 물론 계속 잡혀있을 생각은 없기 때문에 금새 고개를 빼면서 말을 마무리 지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쁘다고 칭찬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야. 그걸로는 부족했나봐? 게다가- 자기 생각만 하게 되면 졸업할 때까지 참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이렇게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과 애정을 확인하는 방식은 우리가 아니면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이렇게 애정을 확인하고 애정을 받고 싶어하는 모습이 미치도록 사랑스럽다. 사랑스럽다. 사랑. 입꼬리를 슬쩍 당겨서 미소를 짓고 있던 단태는 설명하기 힘든 애매하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르고, 입밖으로 새어나가는 단어는 늘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보다 먼저 불만스러운 주양의 표정 덕택이었다. 주양의 무릎 위에 기대고 있던 얼굴을 떼어내고 손끝으로 자신이 채운 발찌 위를 가볍게 매만지던 단태가 다시금 무감정한 미소를 지었다.
이 모습이 사랑스러운거지.
어떤 흑심도 품지 않고 발찌를 매만지고 있던 손을 올려 무릎 을 쓰다듬다가 돌연 상체를 올려서 단태는 주양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대고 짧게 입맞춘다. "더?" 이제는 익숙하게 주양의 턱을 받치는 것처럼 감싸쥐면서 나긋하게 속삭인 단태는 슬쩍 웃어보였다.
오늘따라 더욱 북적이는 정전에서, 교장의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건배사에 따라 잔을 든 대다수의 학생들은 한차례 휘황찬란한 소동을 겪었다. 누군가는 무지개를 토하고 누군가는 몸이 무지개빛이 되어버린거다. 반응은 제각각인듯 했다. 개학식 때와 비슷한 소동에 당황한 학생도 있고 서로 보고 웃느라 정신없는 학생도 있었다. 이번엔 다른 학원 학생들도 있었으니 좀더 소란스러웠던 것도 같다. 그녀도 그 소동에 휘말려 몸이 현란하게도 번쩍거렸지만, 모두가 원래대로 돌아갔을 쯤엔 그녀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참 놀기 좋아하는 누군가라고 중얼거리며, 한모금 마신 잔을 근처 빈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최소한 이건 더 마시진 못 할 거 같았으니까. 느긋히 움직이는 손을 따라 팔찌에 달린 수정이 연신 달랑거렸다. 움직일 때마다 조명빛을 받아 반짝여 존재감을 쉼없이 드러낸다. 일부러 그러는 걸까. 빈 손을 거두어 옷자락을 살짝 매만진 그녀는 뒤늦게 생각난 듯 아, 하고 작게 소리내면서도 표정은 태연하게 웃는 얼굴로 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자유시간인거 같은데, 선배는 뭐 할 거에요?"
딱히 뭘 하라는 지시는 못 들었고, 이미 주변 학생들은 서로 서로 모여서 대화를 하거나 하는 듯 했다. 현 6학년생들을 제외하면 다들 그녀처럼 이 축제가 처음이고, 다른 학교 학생을 만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 그녀는 딱히 다른 학교 학생들에 대해 궁금한게 없고 달리 대화를 할 생각도 없었지만 아까 솟은 못된 마음은 아직 남아있어서 말이다. 겉으론 다른 속내 같은 건 없는 것처럼 순하게 웃으며 그저 그것 뿐인 척, 말하는 것이었다.
"따로 볼일이 있는 거라면 붙잡진 않을게요. 안내 같은 건 다른 선배에게 부탁하면 되니까요."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라고 말하는 것만 보면 배려심 있어보이지만 실상은-.
그녀는 그렇게 말해놓고 정말 다른 학생에게 가려는 것처럼 걸음을 떼고 몸을 움직였다. 따각, 하는 구두의 굽 소리와 함께 휙 떠나버릴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