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에게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첫번째로 휴일이요, 두번째로 쉬는 시간일테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쉬는건 누구에게나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에 한번 있는 가장 긴 휴식시간-누군가는 저녁시간이 더 길겠지만-은 바로 점심시간. 일하는 중간중간 5분 정도씩 쉬는게 아니라 한시간 정도의 긴 휴식을 취하며 소비한 에너지까지 채우는 그 시간은 어쩌면 평일 하루의 달콤한 마약과도 같을지 모른다.
" 점심시간~ "
오늘 아침은 별 일이 없어서 출동할 일은 없었지만 순찰을 다녀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것저것 해야할 일이 있다보니 정신 없게는 아니더라도 살짝 바쁘다는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은 엄청 바빴던 별로 바쁘지 않았던간에 매우 환영할만한 시간이라서, 기쁜 목소리로 작게 속삭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이라도 같이 먹으러가자고 권유할까 싶었지만 이미 나가버린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딱히 점심 생각이 없어보여서 혼밥이라도 해야지, 라는 생각과 함께 거리로 나간다.
' 오늘은 뭐 먹지. '
어차피 점심시간에는 근처에 있는 음식점을 가야하기 때문에 갈 수 있는 반경은 한정되어있다. 그러므로 조금 일하다보면 내가 갈 수 있는 반경 안쪽의 음식점은 다 가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혀를 즐겁게 할 새로운 맛이 금방 사라진다고 해야하나. 그런 이유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얼마전에 오픈했다고하는 수제 햄버거 집이었다. 물론 오픈한지 꽤 되었지만 평소엔 귀찮아서 점심을 대충 편의점에서 때우는 일이 많았기에 여기까지 나오는 것도 오랜만에 있는 일이어서 이렇게 찾아오는 것은 처음이다. 그렇게 다짐을 하고 햄버거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머리색의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 어라, 키라씨도 여기 오셨네요? "
그래, 햄버거 가게인데 이 사람이 있을거라고 당연히 예상을 했어야했다. 키라 패닝, 평소에 하는 행동은 우리 보육원 애들이 하는 짓이랑 별 차이 없어보이는데 출동할때는 상당히 진지해지는 사람이라 기억에 남아있었다. 사실 우리 팀원들, 하나 같이 개성덩어리라 잊어버리는게 더 힘들긴 하지만. 어쨌든 아는 얼굴을 봤으니 반가운 목소리로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사실 햄버거라 하면 딱히 가리진 않았지만 그녀 또한 엄연한 취향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가령 누군가는 속재료에 소나 돼지고기를, 누군가는 닭고기를 좋아하는 단순기호에서부터 햄버거엔 반드시 피클이 들어가야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수 있다는 파와 피클의 산미 때문에 고기의 맛을 버린다고 주장하는 파도 있는 것이 이 세상이다.
그녀는 딱히 어느쪽에도 손을 들지 않지만 한가지 중요한 것은 치즈가 흘러내릴 정도로 많아야 한다는 걸까?
청해시에도 나름 맛집이 많다곤 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자주 가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새로운 도전은 어차피 매일같이 하고 있고, 신메뉴가 나오면 어디던지 찾아가서 먹고보는 그녀에게도 잠잠해지는 시즌은 돌아오기 마련일테니까, 그래도 기왕 즐기는 거라면 조금 더 좋은 퀄리티를 원하는게 사람의 기본심리이기에, 평범한 버거집보단 수제버거집을 자주 가는 것이었으려나?
"음~ 그래그래. 이게 바로 치즈버거지~"
전시된 메뉴에서부터 눈을 사로잡는 그것, 치즈를 세장이나 쌓은 것도 모자라 치즈가루를 위에 뿌리고, 심지어 치킨패티 속에도 따끈하게 녹아있는 치즈. 분명 이런걸 좋아하는 사람에겐 쉽게 시선을 떨치기 힘든 비주얼이었다.
"어라? 여기서 뵙네요~"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목소리가 나는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당연히 그럴거라는듯 청량한 느낌의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당신이 보이는 그녀였다. 그 반가운 목소리에 답하듯 한껏 손을 흔들어서 인사하다가도 돌연 궁금증이 생긴 건지 살짝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오늘은 햄버거맨인가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직장동료나 친구와 식사약속이 따로 있지 않은 이상 항상 혼자 돌아다니는 자신이었기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끼니를 떼우는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이런 장소에서 당신을 마주쳤다는 것이 조금은 의외로 와닿았을지도 모르고,
여기서 뵙네요, 라는 물음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키라씨는 햄버거를 굉장히 좋아하셨던걸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점심시간에 여기 와있는게 정말 당연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햄버거집이 여기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만난건 어쨌든 우연이다. 그리고 일단 점심을 해결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전시된 메뉴들로 시선을 돌렸다.
" 최근에 오픈한 가게가 있다는 말에 가야겠다곤 생각했는데, 그게 마침 오늘이 되었네요. "
햄버거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냥 있으면 먹는다, 정도로 대답할 수 있겠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딱히 없는 것도 있고 가리는 음식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신맛이 나는 음식엔 좀 취약한 편이지만 ... 그것도 내가 감당할 수 있으면 먹는 편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고해서 땡기는 음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마침 햄버거집 생각이 났고, 그게 땡겨서 여기에 온거다.
" 키라씨는 햄버거 자주 드시니까, 여기도 몇번 와보셨으려나요. "
메뉴판의 가격을 보니 역시 수제버거집이라 그런가 가격이 꽤 쌔다. 일반 패스트푸드점에서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가격. 하지만 수제버거라는 것도 감안할 수 있고, 평소엔 편의점에서 대충 때운다고 식비가 많이 나가는 것도 아니라서 하루 정도 이렇게 먹는 것은 지갑 사정에 어떤 타격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가격을 확인하고서 본 메뉴들은 패스트푸드점에서 보는 것과는 달라서 좀 당황스러웠다.
" 키라씨는 주로 어떤 햄버거 드시나요? 저는 무난무난한 것만 먹는 편이라. "
보통 수제버거집에서 가장 무난한건 자기 가게 이름을 딴 버거가 가장 무난하더라. 여기도 역시나 그런 버거가 있었고, 그래서 그 버거에 베이컨 정도만 추가해서 먹을 생각이었다. 세트는 감자튀김에 콜라까지 주는 것 같아서 이렇게 먹으면 충분히 배부를 것 같기도 했고.
그는 맡겨두라며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케이시가 그를 떠나자 바로 메뉴판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어디보자, 에이드는 청포도, 레몬, 자몽, 블루베리가 있다. 라즈베리 무스의 새콤달콤한 맛을 떠올리니 조금 쌉싸름한 자몽이 괜찮을 것 같은데. 못먹으면 새로 가져오면 되니까. 그는 치즈케이크, 라즈베리 무스 케이크, 자몽 에이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카드를 꺼내 긁었고, 현금영수증 발행은 필수였다.
"쿠폰 찍어드릴까요?" "네. 하나 발급해주세요." "다 찍으시면 에이드랑 쿠키가 무료예요."
점원은 쿠폰에 도장을 찍고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하고는 5분도 채 안 되어 나무로 된 트레이를 건넸다. 어쩜 잔도 이리 예쁘고 접시도 예쁠까! 그는 테라스로 조심조심 올라갔다. 혹시라도 헛디뎌 넘어질까 하는 고민보다는 올라가는 길에 에이드가 섞이면 예쁘지 않을게 뻔하니까. 테라스에 오르자 시원한 바닷바람이 앞머리를 간지럽혔다. 아! 날씨 참 좋다. 이런 카페에서 당신과도 한번은 쉬고 싶었는데.. 이거 뭐야 당신 또 스포야~?! "맙소사, 자기야! 여기 너무 예쁘다. 자리 진짜 잘 잡았어."
경치가 어쩜 이렇게 예쁜지. 트레이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돈을 물어보자 깔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