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아흐가 벽에 붙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으니, 곧 카리아 로봇팔에 무언가를 하는 게 보였다. 그러자 부딪히고 구른 온 몸뚱아리가 점차 편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필시 아까 음악을 들었을 때와 거의 동일한 감각, 그렇다는 건 분명 거기에 티스아흐 본인은 알지 못하는 어떤 요소가 치료의 힘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위야 어찌되었건, 치료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잠시 일었다. 허나 거기서, 카리아가 티스아흐의 모습을 가리며 주의를 주었다.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는 듯이 잠깐 멍하게 보다, 곧 의도를 깨닫고 분한 듯 얼굴이 붉게 달이올랐다.
"쿠윽..., 저질이야! 어린 얼굴이라 그만 방심했어...."
그리고 꼬리 역시 상당히 부풀었다. 왜인지 배신당한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게, 티스아흐가 살던 지하드는 성문화에 대단히 엄격한 나라다. 지나가던 이성을 파렴치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극형에 처해질 수 있는 무시무시한 법률이 존재할 정도니까. 때문에 원체 그런 것엔 익숙치 않은 티스아흐는 지연스레 남들의 시선에 무감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카리아가 내민 팔은 당연하게도 털 탈린 하얀 꼬리가 매몰차게 툭 쳐내버렸다. 마치, 자신을 그런 시선으로 보았다는 것에 대한 복수라도 하려는 듯이. 그리고 스스로 일어나, 퉁명스럽게 소리치는 것이다.
"됐어! 변태 꼬마의 손 같은 거 왕 사양이그든!"
티스아흐는 먼지가 묻어버린 옷을 탁탁 털었다. 그래도 역시 카리아의 말은 체면 세울 것 없이 신기했던 것인지, 관심 없는 척 하려 했지만, 흥미가 동한 귀가 살짝 움직인듯 보였다.
배려한 쪽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진 않았다. 잠시 인상을 쓰던 나는 곧, 일반적으로는 나 역시 이성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하. 마키나 안젤라에서부터 나는 논외취급이었으니 이건 좀 신선했다. 죽어있고 외견은 어리고를 떠나서 대륙 정교회의 일원이며 성가대인지라. 성직자의 금욕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륙 정교회에서 정식으로 서품받은 성직자로써 그런 거엔 관심 없으니까 걱정 마."
게다가 '그런 쪽'으로도 죽은 것 같았다. 말하고 싶지 않아서 안했지만. 이게 진짜 죽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성정상 관심이 없는 건지는 나도 몰랐다. 아마 전자인 거 같긴 했다. 아니면 너무 바빠서 그런 쪽으로 신경을 분산할 여유가 없었거나. 사랑이니 마음이니 하는 것 보다는 생존과 구조, 사령의 구제, 그리고 생명의 보호가 우선시되었다. 어제 으깨졌다가 오늘 복구된 상태에서 말이지. 그나마 이 곳에선 어느 정도 여유는 있을 것 같았다. 영웅은 많고, 사령이 없는 만큼 자신이 나설 일도 비교적 드물 것 같았으니.
다만 치유의 힘이 흔한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음. 그럼 자를까."
뭐를? 이라 묻는다면, 팔이나 다리라고 답해야겠다. 생각해보니 살짝 긋기만 해도 될 것 같은데. 피가 거의 안나니까 말이다.
"열세살 외견의 팔다리가 날아가는 걸 보는 게 편해, 아니면 그냥 맥을 짚는 편이 편해?"
카리아는 처음엔 뭔가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가 싶었는데, 곧 그건 납득한 표정으로 바뀌게 되었다. 딱히 뭘 납득했는지까진 궁금하지 않았다.
"엑. 성직자? 정말?"
아무리 그래도 성직자라는 말엔, 여태 무시하던 티스아흐도 홱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알레프에서 성직자라는 건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다. 주교 서품의 고위 성직자가 아니더라도, 일반 신부급만 되어도 평신도들에게 가르침과 설교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대륙 정교회라는 것도 처음 듣고, 무엇보다 그쪽 세계의 종교와 알레프교는 엄연히 다른 신을 모시는 종교였지만, 역시 성직자라는 말을 듣고 나면 자연스레 이쪽의 기준으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자르다니.... 아니, 하지 말라고 그거!"
으르릉, 짜증과 분노에 찬 티스아흐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그래도 성직자라는 말을 듣고 조금 조심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기에, 곧장 소리를 멈추긴 했다. 그리고 이어진 물음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인다.
"윽. 역시 억지로라도 손 잡게 만들 생각이잖아...."
그렇다고 팔을 자르게 냅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리하게 붙들어둔다면 어떻게든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야 그냥 맥 한번 짚는 게 차라리 훨씬 나을 거란 판단이 들었다. 그녀는 분한 듯, 하지만 꽤 순종적이 되어 손을 건네라는 듯 내밀었다.
반응이 대단한데. 저 쪽에선 성직자가 그리 대단한가. 길가다 돌악보면 성직자였던 입장에서는 이것도 신기했다. 다시금 떠올리니 당연했다. 내가 성직자인데 주변도 성직자지. 일하는 곳이 교회인데 당연하지..
"정확히는 알레이스타 지부 소속..뭐 말해도 모르겠지. 아무튼 교회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은 반려가 아니면 금욕과 정결함이 기본인 성직자니까 안심해."
대신 어기면 엄벌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과격한 이야기가 될테니 그만두고. 정식적인 성직자에 한 때는 추기경으로 추천까지 받았던 몸인 만큼 기본 교리와 규칙은 이세계라 할지라도 지킬 것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신이 그걸 바라지 않을 터였다. 아스라한 그 천당의 풍경이 떠올랐다.
"나도 남의 몸은 안 잘라. 내 몸이니까 자르지."
일반적인 사람의 시점은 포기한지 오래였다. 나는 일반적이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 열셋, 사령들의 무리가 스쳐지나가고부터 그랬다. 인정하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그녀의 말에 별 반응 없이 손을 내밀었다. 손목에 대고 맥을 짚는 건 대부분 같을테지. 그녀가 내 손목에서 맥을 짚으면, 고동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작동하지 않는 심장의 적막만을 느낄 것이다. 피부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만큼 차갑고, 생기조차 없다.
▶ https://alcyon-chronicle.notion.site/8dd926a9c617498d83d0ef9d2f7387a6 티스주의 현기증을 막기 위해 반의 서류를 완성해왔습니다. ▶ 진심으로 엘레이스를 분해하겠다는 생각으로 말을 꺼내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마도요.
뒷말은 굳이 잇지 않았다. 성직자라면 성욕이나 다른 욕구들에 의한 시선으로 자길 바라볼리 없었다. 적어도 티스아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인정하고나니 오히려 부끄러워지는 건 자기자신의 행적이다. 발랑까진 처녀가 다수의 앞에서 부끄러운 부분을 드러냈고, 성직자는 본분에 따라 윤리 의식에 반하는 그 행동을 제지했을 뿐이다. 티스아흐는 순간, 그때 당시 자기의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서, 그저 턱 주위를 손가락으로 가려운 듯이 긁어낼 뿐이었지만. 그렇게 여전히 시선은 미묘하게 회피한 채로, 가만히 맥을 짚었다. ...그리고 역시나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정말로.
"뭐, 글쎄.... 그렇게 물어도 곤란하다고. 난 의사도 뭣도 아니란 말야."
사실은 그저 말하기가 곤란할 뿐이었다. 실아있는 건 살아있는 거다. 죽었다면, 이렇게 자기와 이야기하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 카리아가 품은 고통은 티스아흐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것임에 분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 앞에서 그렇게 쉽게 단정짓기엔 아무래도 조금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의외로 단순하면서, 또 그렇게까지 생각이 짧지는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