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닥달만 아니었다면 더도말고 덜도 말고 출근 시간을 딱 맞춰서 올 생각이었다. 나는 성실한 경찰로 일하는데 1분도 허투루 쓰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눈치 빠르고 계산이 밝다. 건물에 들어서며 다시 한 번 상태를 체크한다. 복장 완벽, 5분 일찍 출근하는 성실함 완벽(부모님의 닥달때문인 건 잊자), 표정 관리도 완벽, 내 인생 안 완벽....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와중에도 속내로는 근심이 가득이다. 이제 겨우 익숙해진 근무지의 팀장은 조금 과하게 대충이긴 했어도 참으로 편한 상사였다. 탕비실에서 30분 뻐팅겨도 신경 안쓸 상사는 전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쯤은 사회생활력이 짧은 나도 잘 안다. 과연 이 곳은 어떨련지 걱정이다. 제발 부하직원에 관심없고 설렁설렁한 상사면 참으로 좋을텐데.
"아자아자 화이팅!"
그렇지만 나는 이곳에서 기 죽는 소인배가 아니다. 유리에 비친 나에게 심심한 응원을 건네고는 문을 열었다. 웬 걸. 인상 사나운 사람이 떡하니 입구 앞을 버티고 있지 뭔가. 왜 아침부터 입구에서 난리람. 투덜거리지만 여기서 뒷문으로 돌아가는 건 스스로가 하수임을 자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목에 힘을 주고 앞만을 보며 걷는 모습, 과연 거북목으로 고통받는 현대인의 가상한 노력을 표현했다 할 수 있다. 이대로 잘만 넘어가면 된다. 모르는 사람이다. 나랑은 관계 없는... 제발요...
"........제, 제게 볼일이 있으신가요."
따라붙는 시선이 따갑다. 순간 머리를 굴려 나의 행적을 시뮬레이션 해본다. 문제없음이다. 정말 당당해져도 되는데 식은땀이 절로 흐르는 이 기분은 어째서일까?
입구로 들어서는 여성의 모습에 예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진과 그녀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봤다. 꽤 꼼꼼하게 확인하려는지, 눈동자가 잠시 반짝이는 듯 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애초에 그렇게 꼼꼼하게 하지 않아도 동일인물임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천사민 씨 되십니까?"
그다지 의미는 없는 물음이었다. 서가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고, 얼굴도 사진과 동일한데 무엇을 더 따질 필요가 있을까? 허나 일단 자신이 그녀를 알고 있음을, 그리고 관계자임을 밝히려고 하면서 예성은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이어 괜히 입고 있는 제복의 옷깃을 손으로 정리하면서 경계자세를 취한 후에 오른손을 절도 있게 아래로 내렸다.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 차예성 경위라고 합니다. 본 팀의 지휘자인 최소라 경위님은 얼마 전에 있었단 사건 관련으로 다른 곳에 가 있어서 보좌인 제가 대신 나왔습니다. 차후 잘 부탁하겠습니다."
분명하게 자신의 소개를 하며 예성은 1층에 있는 유리문 너머의 카페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올라가기 전에 혹시 커피나 다른 음료가 필요하시다면 저 카페에서 구입해서 올라가도 됩니다. 경찰인 것을 증명하면 20% 할인이 되니 크게 부담도 되지 않을 겁니다."
제길... 내가 들어도 형편없는 대답이다. 지나가다 엄마가 봤으면 절도가 없다며 호통쳤을 거고 아빠가 봤으면 사람이 경우 없어보인다며 핀잔줬을거다. 내 잘못이 아닌 일로 불린 것은 다행이지만, 탕비실에서 하루에 2번 30분동안 시간 끄는 일은 물 건나갔다. 순간 얼굴을 찌푸릴뻔했다. 앞니로 혀를 꽉 물지 않았다면 분명 울상을 지었을 것이다. 그럼 뭐해. 경계자세에 놀라 저도 모르게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한건 어쩔 수 없다. 무표정한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으니 제법 우스운 꼴이었을 터였다. 나는 얼른 자세를 바로하고 허리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경위님의 손을 따라 카페를 힐끗거리고 말았다. 커피는 입맛이 맞지 않는터라 평소에도 잘 입에 대지 않았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왔기 때문에 다른 음료 역시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괜찮다는 말을 덧붙이며 경위님의 뒤를 따랐다.
"이렇게 마중나와주실 줄 몰랐어요. 저는 사실 길을 잃을까 약간 걱정했거든요. 제가 생각보다 길눈이 어두워서... 다행이네요. 원래도 이렇게 마중나와주시나요?"
항상 명랑하고 사교성 좋은 게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말이 너무 많아 사소한 물의를 일으키고는 했지만 입을 다무는 건 그보다 힘들었다. 힐끗 경위를 살폈다. 조금 인상이 사납게 생겼지만 오히려 괜찮다. 원래 경찰이 인상이 무서워야 범인들도 고분고분 손 내밀고 잡아가슈 하는거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폭력사태도 줄어들게된다. 음! 내가 이렇게 긍정적이다.
"첫 출근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마중 정도는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했습니다만. 원래라면 최소라 경위님이 나왔겠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전에 뉴스로도 나온 적이 있지만, 싱크홀 사건 관련으로 조금 처리해야 할 것들이 많다보니. ...본의 아니게 놀라게 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한 것도 그렇고, 뒷걸음질을 친 것도 그렇고 아마 자신의 인상, 혹은 다른 이유로 놀란 것이 아닐까 추측하며 그는 나름대로 사과를 표했다. 뒤이어 그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카페를 바라봤으나 당장 커피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나중에 쉴 때 내려오자고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천천히 향했다.
"여기가 앞으로 일하게 될 곳입니다. 다른 분들도 일을 하고 있긴 한데, 최소라 경위님이 생각보다 상당히 프리한 스타일이라서. 해야 할 일만 잘하면 딱히 뭐라고 하진 않을 겁니다. ...저도 일만 잘하면 크게 말을 하거나 할 생각은 없고요. 일단 이름이 달린 책상이 있을텐데, 거기에 개인짐을 놔두고 제 자리로 와주셨으면 합니다. 간단한 전달사항과 전해줘야 할 것들이 있다보니."
사무실 안은 그야말로 예산을 엄청 쏟아부은 듯한 느낌의 신식 그 자체였다. 책상은 물론이고 의자, 거기다가 컴퓨터까지 확실히 고급이었고, 정수기가 있는 곳을 바라보면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간식들, 그리고 커피를 타서 마실 수 있는 믹스커피까지. 확실하게 놓여있었다.
이어 예성은 다른 이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모니터가 여러개 놓여있는 자리였으니, 아마 찾기 힘들진 않았을 것이다. 허나 그는 바로 자리에 앉지 않고, 옷장 쪽으로 간 후에, 한 쪽 문을 열고 그 안에서 네모난 큐브를 하나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자리로 향해 의자에 앉았다.
이걸로 된 것일지. 물론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지금의 약속과 부탁은 그저 반창고같은 것에 불과하다. 흐트러진 마음을 모으고, 응급처치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상처를 돌이킬 수 없는 흉터로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선, 그러한 처치는 꼭 필요한 것. 그래, 중요한 것은 마음. 서로에 대한 신뢰와 관계가 깨지기 전에 다시 봉합하는 것. 실제로 자신이 죽는지 안 죽는지같은 사망여부따위 보다도 마음이 훨씬 중요하다. 그러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반복된 똑같은 경험으로 이미 진즉에 알고있던 유우카는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그럴테지만...
"나는, 편해지지 않았어..."
유우카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그렇게 말했다. 말하고는,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손을 가져가 슥슥 빗어주며 도로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그런 무방비스러운 태도와는 정반대로 이대로 마무리하게 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한 마디가 대비된다.
"알데바란도 물러졌구나... 따라와..."
물론 그것으로 됐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런 순간들이 자신을 얼마나 귀찮게하는지, 얼마나 신경을 자극하는지. 물론 알데바란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또, 알아서도 안 되는 것이고. 딱히 그의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순간이 매번 있을때마다 가만히 참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설마싶지만 화까지 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우카는 분풀이를 할 생각이었다. 자신의 포근한 목욕 시간을 빼앗은 것에 대한, 달콤한 간식 시간을 빼앗은 것에 대한, 편안한 수면 시간을 빼앗은 것에 대한... 분풀이. 먼저 걸음을 옮겨 문가로 다가간 유우카가 알데바란을 돌아보며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