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 올림픽입니다 메달을 따내고도 대중에게 노출되는 게 싫어서 선수단과 별도로 귀국해서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 푹 쓰러지듯 엎어진 뒤 새슬이한테 "귀국했어" "보고싶다" 하고 톡 두 마디 보낸 뒤에 ㅇ(-< 자세로 엎어져있다가, 카톡 소리에 새슬이가 보낸 메시지 보고 원래라면 귀국일에는 가지 않아도 되는 학교로 설렁설렁 출발하는 문하 괜찮지 않을까
뭔가... 그런 거 평소엔 관심 없지만 여기저기 다니면서 가게에 틀어놓는 TV같은걸루 문하 복싱경기 몰래몰래 봤을 것 같은 유새슬......🤔 그래놓고 모른 척 할 것 같은 그림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문하가 메달 땄다고 이야기하면 그제서야 와ㅡ 메달? 짱이다ㅡ( ᐛ ) 할 것 같은 느낌이네요.
>>246 해외로 나가는 큰 경기라면 그것이지 문하의 올림픽 관련 독백은 과거사 독백과 짬뽕해서 3편에 걸쳐 천천히 올려볼 생각이야. 숨 돌릴 시간도 생겼겠다.. 지금 한 편 거의 다 써가고 있어. 모르는 척 데면데면한 반응... 새슬이다워서 좋아. 문하도 응, 메달. 멋있지. 하고 메달 이야기는 (새슬이가 더 물어보지 않는다면)끝낼 것 같아. 그리고 이제 자전거 여행이라던가 옷 이야기라던가로 넘어가는...
얼마 앉아있지 않던 먼지도 사라지고, 책상은 새 것처럼 반들반들해져 있었다. 문하는 이마를 슥 닦고는 자신이 잊은 것은 없나 방을 한 번 슥 둘러보았다. 환기는 끝냈고, 방바닥은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하게 쓸고닦은 참이다. 잠자리의 침구들도 햇볕 드는 창가에서 팡팡 털어주었고, 침대 머리맡의 선반이며 책장이니 책상이니 앉은뱅이 탁상 같은 가구들도 말끔히 정리된 것이었다. 연식이 꽤 오래되어 보이는 LED TV를 한번 켜보고, TV가 아직도 멀쩡히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문하는 TV를 끄고 환기가 끝난 방의 창문을 드르륵 닫았다.
이 방은 문하의 방이 아니었다. 1층의 거실로 이어진 다른 문들 중 하나인 그 방은, 분명 누군가가 당장이라도 생활할 수 있도록 정갈히 준비되어 있었으되 누구도 그 곳에서 생활한 흔적은 없었다. 그 방은 안방... 그의 아버지를 위한 방이었다.
문하의 아버지는 문하만큼 차갑고 날카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메말라있는 사람이었다. 문하가 생각하기에, 그는 완고하고 단단한 만큼 유연하지 못해 때론 고지식하고 때론 어설프기 그지없는, 어떤 성격적인 치우침- 결함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지나치나, 무시할 수는 없는 어떤 종류의 치우침을 떠안고 있는, 완벽하지는 못한- 마치 어떤 바위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바위같은 성격으로, 그 사람은 자신의 손에 남은 것을 전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깎여나가는 것도 개의치 않고 하나도 빠짐없이 거룩하게 자신의 어깨 위에 얹었다. 자신에게서 떠나가는 것을 붙잡지는 못했으되 자신에게 남은 것을 향해 덮쳐오는 파도를 온 몸으로 막아설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문하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있어 아버지가 아들에게 갖는 내 아들이라는 인식 정도만을 갖고 있었으며, 유달리 아들사랑이 특별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들을 미워할 이유가 더 많았다. 혈연 관계라는 정 넘치는 이야기를 접어두고 단순히 재정적으로만 이야기하자면 그의 아들은 그의 재산을 좀먹어들어가며 성장하는- 그러고도 그 좀먹힌 재산을 100% 보장받을 수 없는 불안한 존재가 될 터였고, 그 '혈연관계' 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문하는 단순히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그 가증스러운 여자가 자신에게 남기고 간 삶의 오점이라고까지 일컬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아들을 부정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 바위같은 성격으로 자신에게 몰아치는 각종 모진 삶을 견뎌내고, 어쩌면 자신의 삶에 실수 혹은 저주의 흔적이나 다름없었을 외아들, 문하를 이렇게까지 키워내어 주었다. 문하에게 있어, 그것은 완벽은 아니었으되 거룩하고 숭고한, 자신이 무엇이라 칭해야 할지 모를... '완전' 이라 칭해 마땅할 경이로운 헌신이었다.
이 방을 매 주말마다 청소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그의 아버지는 원양어선의 기관사로 일하고 있고, 일 년에 두세 번쯤 집에 돌아올까 말까이며 항해일정에 따라서는 일 년 내내 집에 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주말마다 이렇게 반지르르하게 청소해놓는 방에 그의 아버지가 머무는 것은 일 년 중에 한 달이 될까말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하는 그것에 대해 전혀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그 나름대로 숭엄한 의무를 기꺼이 짊어진 숭고한 아버지에게 바치는 조촐하게 거룩한 헌정. 그런 헌정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헌정들 중 하나는, 그런 아버지의 거룩한 희생에 부끄럽지 않은 한 명의 '완벽한 인간' 으로 자라나는 것이었다.
펑.
상대 선수의 머리가 흔들렸다. 문하의 눈동자가 링 위에 설치된 조명의 푸르른 빛을 시린 칼날처럼 머금고 있었다. 문하는 두 발짝 물러섰다. 몸 전체의 내구성이 향상되는 타입의 늑대라고 했던가. 트레이너의 전략은 간단했다. 10라운드 풀 경기를 가진다면 KO를 노려볼 수 있으나, 3라운드 단축 경기를 치르는 올림픽 경기에서는 KO는커녕 다운도 힘들 것이라고. 그러니 방어를 굳히고 아웃복서 스타일로 가벼운 유효타만을 넣어 철저히 판정을 챙기는 것.
지금까지는 계획대로 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권투 만화에서나 같았던 '숙련된 프로 권투선수의 펀치를 단순 맷집과 근성으로 받아내고 견디는' 플레이가 현실로 나온 것은 경이로운 일이었지만, 맷집을 너무 믿었는가 상대 선수의 회피기술이 결여된 접근은 문하가 늑대 증상을 활용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을 만큼 단조로웠다.
다만 상대가 화들짝 피하거나, 맞고 움찔할 정도의 펀치를 날려도 모기가 물었나 하고 달려드는 것은 조금 성가셨다. 지금도 그랬다. 방금 적중시킨 라이트 스트레이트는 보통의 선수에게 적중시켰다면 충분히 다운을 가져오거나, 못하더라도 상대가 비틀거리도록 만들 수 있는 클린히트였다. 그러나 상대방은 자신의 머리가 흔들리건 말곤 밀고 들어와 카운터로 라이트훅을 날려온다. 머리가 흔들린 탓에 거리대중이 어긋났는가 어깨를 살짝 스치는 정도이긴 했지만, 상식이 통하지 않는 멧돼지 같은 스타일이 문하에게는 꽤 부담스러웠다. 맷집만을 믿고 이런저런 방어 테크닉을 도외시하긴 했지만, 공격 테크닉은 확실히 국제 무대에 올라올 만한 수준이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전세가 쉽게 뒤집힐 것이다. 이 경기가 3라운드 경기라서 상대방에게 다운을 가져올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점을 불평할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주어진 럭키펀치의 기회가 겨우 3라운드밖에 된다는 점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지경이다.
그렇지만 나중에 그를 올림픽이 아닌 다른 링 위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자신에게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것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일을 하면서, 누군가를 껄끄럽게 생각하고 마주치지 않기를 비는 일은 문하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소년 문하에게 있어서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누군가의 아들이자 복서인 문하에게 있어서는 넘어야 할 벽이었다. 문하는 충분한 간격을 두었다. 트레이너가 지시하지 않은 전략이었다.
문하는 몇 차례인가 더 공방을 주고받으며, 조금씩조금씩 링 모서리로 밀려났다. 자신의 등 뒤로 링 로프가, 코너가 조금씩조금씩 가까워져 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처럼. 그리고 마침내 반 발짝만 더 물러서면 로프에 등이 닿게 될 그 순간에, 상대방 선수는 급격히 거리를 좁혀왔다. 문하는 스트레이트를 날려 상대방을 저지하려 했지만, 측두부에 클린 히트를 당했음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 상대방의 돌진에 오히려 문하의 발이 뒤로 밀렸다. 그의 등이 로프에 닿았다. 바로 그 순간, 충격을 받아 일그러지는 상대 선수의 얼굴에 정타를 허용한 사람의 멍한 표정이 아니라 마침내 기회가 왔다는 것을 포착한 회심의 미소가 그려지는 것이 보였다. 오른팔 아래로 간이 있을 곳을 노리고 파고드는 주먹이 보였다.
그러나 문하가 날린 것은 스트레이트가 아니라, 더 가벼운 잽이었다. 생각보다 약한 충격량, 그리고 생각보다 더 빨리 되돌아가는 오른팔. 상대방 선수는 자신이 노리고 날린 바디블로의 궤도가 급작스레 끼어든 문하의 왼팔에 툭 바깥으로 비어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자신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포착하고 있었다는 듯한 기계적인 대응.
일반적인 선수였다면 공세가 실패했다는 것을 판단하는 즉시 회피 기술로 시간을 벌고 빠져나가 전열을 가다듬었을 것이나, 지금 문하가 상대하고 있는 선수는 그런 전략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것이 상대방 선수의 치명적 결점이었고, 문하가 공략하고자 하는 부분이었다. 상대방 선수는 지금까지 견뎌온 것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이 안면에 작렬하는 것을 느꼈다. 재빠르게 되돌아간 오른팔이 순식간에 안쪽을 파고들면서 어퍼컷을 후려갈겼던 것이다. 그러나 재앙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로프의 탄력을 타고, 문하는 뒤로 억눌려있던 상반신을 다시 앞으로 내뻗었다.
퍽퍼퍽 퍽퍽퍽퍽퍽퍽.
2초 정도 되는 시간에, 세 발의 훅과 여섯 발의 스트레이트가 순식간에 상대방 선수의 안면에 작렬했다. 2라운드 동안 처음으로 그가 물러섰고, 처음으로 그가 비틀거렸으며... 처음으로 그가 무너졌다. 게임 내내 도망치는 아웃복서와 꿈쩍도 않는 인파이터의 쫓고 쫓기는 지루한 공방전에 늘어져 있던 경기장의 분위기에 일순간 폭발한 맹렬한 공격에, 잠깐의 경악이 스치고 이내 함성이 한가득 쏟아졌다.
문하는 옆걸음질쳐 코너에서 빠져나왔다. 방금 자신이 성공시킨 반격이 그를 10초 동안이나 다운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레프리가 다운된 선수에게로 다가가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4, 3, 2, 1... KO! KO입니다! -문하 선수, 역대 최연소 복싱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되어, 역대 최연소 메달 확정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냅니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상대 선수가 닥터들에게 호송되어 나가고, 레프리가 문하의 손을 들어주고, 문하는 링에서 내려왔다. 내려와서, 그는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아무 의자에나 덥석 걸터앉았다. 그리곤 멍하니 앉아 있었다. 왜인지 김이 새는 느낌이 나서였다. 헌정- 링 위에서 이후의 진로와 명예를 두고 0.1초를 다투는 주먹다짐을 하는 것은 헌정이라고 불릴 수 있는가? 문하는 가만히 생각했다. 자신에게 이렇게 김 새는 느낌으로 느껴지는 현실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들에게 과연 어떤 가치있는 헌정이 될 수 있기나 할까 하는 팔자좋은 생각이 문하의 머리에 자리잡았다.
"이 쓰액기야 겨우 동메달전에서 누가 오바하랬냐. 이번 경기가 상대한테 아주 좋은 데이터가 될 거라는 생각은 안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