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 아무래도 좋을 이미지를 정정하고 있던 아영은 듣던 중 미간을 살풋 찡그렸다. 한 손으로 턱을 쥐고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채 살펴보는 폼이 무언갈 조목조목 따져보는 모양새였다. 그러고는 "기가 약한 것 아니니?" 하고 묻는다. 가벼우면서 얼핏 진지한 면이 있는 것이 진담이 어느 정도 섞인 농인 것 같다. 금세 자세를 풀고 턱을 괸다.
"난 주술 같은 거 별로 믿지 않는단 말이지. 호기심에 여럿 해봤는데 이상 현상이나.. 하다못해 기이한 감각조차 느낀 적이 없거든. 근데 민호는… 귀신에 홀리지 않게 조심해야겠는걸?"
태연한 표정으로 겁주듯 마지막 문장을 음산하게 읊어본다.
"악마가 소원을 잘 들어주는 이미지가 있긴 하지? 보통 대가를 어마 무시하게 받아 가긴 하지만. 애초에 난 악마는 잘 안 믿어서… 부르려면 귀신을 부르지. 그, 왜, 봤다는 사람도 많고 무당이라는 존재도 있으니까 악마보다는 좀 더 신빙성이 있잖아."
생각에 빠진 채 말하느라 잠시 시선을 내렸던 아영이 물음에 어깨를 으쓱였다.
"후배들은 예외~ 성숙한 선배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을 내치지 않아요."
어쩌면 오만하게까지 보이는 당당함을 선보이며 응응, 하고 대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긍정하려던 고개는 그의 권유에 멈추었다. 양손으로 손사래를 친다.
"괜찮아, 괜찮아. 같이 할 사람도 없고. 아, 나중에 학교에 가져오게 됐을 때 불러주면 갈게."
고요한 학교 안을, 이젠 집으로 귀가하기 위해 아기자기하고 예쁜 가방을 맨 체 터벅터벅 걸어가던 아라는 복도 바닥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간다. 그러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곤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다. 그것이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3학년 선배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오늘은 색다른 기분으로 묶고 온 붉은색 양갈래 머리가 강아지 꼬리처럼 살랑였다.
걸음을 빨리해 소화에게로 다가간 아라는 베시시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 집에 가기 전에 잠깐 자습 좀 했어요. 집에 가면 집중이 좀 힘드니까요. 이래저래 유혹하는 것들이 많으니까. "
부드럽게 미소를 띈 체 말을 걸어오는 소화에게 기분 좋은 듯, 들뜬 목소리로 대답을 이어간다. 공부를 하면 칭찬을 해주시는 선배님, 왠지 그 이상의 것은 두사람에게 없었지만 아라는 그것만으로도 선배가 참으로 좋았다. 애초에 아라가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있긴 했지만.
" 성적이 잘 나오면 좋을텐데 아직은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선배! 이제 돌아가시는거에요? 괜찮으시면 같이 하교 하시는건 어때요? "
키가 큰 소화를 올려다보며 까치발을 했다 말았다를 반복하며 붉은 루비가 박힌 듯한 눈동자로 대답을 기다린다.
" 에, 그 .. 기왕이면 이렇게 만났으니까 같이 가면 좋잖아요, 헤헤.. "
왠지 대담한 제안을 했다 생각한 것인지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꾹 누른 체, 소화를 바라보다 수줍게 말을 덧붙이는 것은 덤이었다.
사람을 잘 따르는, 마치 소동물 같은 후배를 보며 소화도 나름의 뿌듯한 감각은 느끼고 있었다. 어리고 귀여운 후배가 날로 발전해 가는것을 보는것은 선배로서 제법 성취감을 느끼기 좋은 일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아라의 권유를 거절할 이유도 없는 것이라 소화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정류장 까지만 같이 걸을까?"
아라의 걸음에 맞춰 보폭을 맞추는 소화는 제 기준에서는 앙증맞은 후배를 보며 늘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귀여운 후배이고 또 영특한데다 사람을 잘 따르니 보는것은 좋다. 하지만 그 속은 모를 일이라서 함부로 가까워지기는 꺼려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화는 괜히 공적인 일을 입에 올렸다.
"학생부에서 상을 받은 뒤로도 공부는 잘 되고 있지? 아라는 노력하니까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거야. 전교 1등을 노려보면 어때?"
보폭이 빨라지지 않게 신경쓰며, 소화는 고양이 같은 눈을 떨어뜨려 아라의 인형 같은 모습을 눈에 담았다. 체격이 좋은 자신과는 비교되는 용모의 아이라서, 솔직히 소화는 더 정이 가는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친밀하게 굴거나 선을 넘지는 않았다. 소화의 규칙 같은 것이었다.
아라는 소화의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오기 전까지 고개를 작게 좌우로 갸웃갸웃 거리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럴때면 양갈래로 묶은 머리카락이 주인의 기분을 보여주듯 열심히도 살랑였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소화의 대답이 들려오자 아라의 얼굴에 '나 행복해~!!!' 하는 밝은 기색이 역력한 미소가 지어졌고, 아라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 저...전교 1등이요..!? 저, 저는 그런거 할 사람은 못 되고..성적도 막 그렇게까진.. "
앙증맞은 걸음걸이로 열심히도 소화와 함께 걷기 시작하던 아라는 이내 들려오는 소화의 권유에, 마치 얼음덩어리로 얼굴이라도 맞은 것처럼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자그마한 손을 휘적거리며 당황해선 횡설수설한다. 확실한 것은 아라 본인은 전교 1등이라던지 한번도 생각이 없는 듯 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 그, 상을 받은 건 기뻐서 공부는 하고 있지만.. 등수 같은 건 생각 안 해봤거든요.. 그,그래도 선배한테 칭찬 받는 건 좋아하지만요..! "
아라는 자신을 바라보는 소화의 시선이 느껴지자, 소화의 시선에 맞춰 자신의 시선을 옮긴 아라는 걷다가 눈이 마주친 것을 알아차리곤 해맑은 미소와, 새하얀 이가 훤히 드러나는 미소를 보여주며 대답을 돌려준다.
" 그, 선배도 공부 잘 되어가세요? 선배는 3학년이니까 저보다도 더 중요한 시기시구.. 제가 따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도 없어서.. 어떠신지 모르겠어요. "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아쉬운 듯 입술이 살짝 튀어나와선 시무룩해진 얼굴을 해보이는 아라. 표정변화가 참으로 다양하다고 느낄만 했다. 물론 금방 미소를 다시 되찾았지만.
" 그래도 이렇게 머리가 쉬어가는 타이밍도 필요하다고 했으니까요..! 분명 괜찮으실거에요..! "
아라의 표정은 그녀의 외모와 비등하게 사랑스럽고 순진무구해서 보고 있으면 대화하는 사람의 입가에 미소를 절로 짓게 했다. 소화는 늘 웃는 얼굴이었지만, 반 쯤은 아라의 그런 태도가 영향을 준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없던 장난기를 생겨나게 하거나. 만약 소화가 조금 더 아라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없던 말도 만들어내 아라를 속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아라의 반응은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래서일까, 소화도 장난기가 돌았을지 모를 일이다. 고양이 같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퍽 작은 후배를 내려다보며 뱉은 말에는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저도 모르게.
"글쎄, 노력의 결과는 배신하지 않고, 아라는 최선을 다하니까 전교 1등도 꿈꿔볼만 하지 않을까? 자만하는 건 나쁜 습관이지만 너무 겸손한 것도 조금 보기에 안 좋지."
소화는 어느새 후후, 웃음소리를 내며 아라를 보고 있었다. 이 작은 다람쥐 같은 아이는 작은 반응에도 야생 동물처럼 민감했으면서도 사람을 잘 따르는 것이 길들여진 야생 동물 같았다. 원래 민감하게 구는 것이 귀여운 것 처럼, 소화는 그 기민한 태도가 흥미로웠고, 계속 미소 짓고 있어 드러나진 않았지만 제법 재미있어 하고 있었다. 그런 작은 다람쥐가 자신의 일을 걱정한다는 것 또한 재밌는 일이라서, 소화는 응, 하고 답하며 괜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칭찬받을 사람에게 칭찬을 해 주는것도 기쁜 일이야. 보답받지 못하는 노력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아니까. 아라는 잘하고 있으니 너무 비관하지 말고 꾸준히 노력하렴."
그리고 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소화는 느린 걸음만큼 작은 후배에게 자신의 시선을 맞추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째서 이 아이는 이렇게 까지 순진한 반응일까, 속는 것도 속이는 것도 해본 적 없을 듯한 아이를 보면서 소화는 크게 어렵지 않은 공부와 관련된 문제를 잠시 떠올렸다. 사실 후배에게 걱정받을 것도 없을 정도였지만, 굳이 속내를 드러낼 필요가 없어서 소화는 대신 눈웃음을 살짝 지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아라의 걱정이 있어 그런지, 공부는 이렇다 할 부분 없이 잘 되고 있어. 아라도 곧 3학년이 되면 진학 준비할 거지? 혹시라도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 아는 스터디 그룹을 소개시켜 줄게."
>>193 저도 소화가 맘을 열었으면 좋겠어요!! 스토리 진행하며 민낯이 밝혀지고 많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그럼 아무래도 지인들을 먼저 찾게 될 것 같아요! 지인npc+아라! 아라한테는 온갖 표정 다 지어보고 싶네요ㅋㅋㅋㅋ 반응 넘 귀여워!! 아라가 젤 좋아하는 머리는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