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평생 하나의 관을 짊어질 수밖에 없어. 그 관 하나를 타인에게 사용하게 되면, 자신이 누울 곳이 사라지는 거야."
이름 : 회색 늑대 성별 : 남 나이 : 불명. 아마 20대 후반쯤. 외형 : 186cm/78kg 그를 첫눈에 인간으로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다. 잘 훈련된 사냥개. 아니, 늑대에게 목줄을 해둔 꼴이라고 해야겠지. 개는 개장수를 보고 공포에 떨듯, 암살자의 위협에 떠는 자에게 그는 사신이나 마찬가지이다. 외형이 아니지 않느냐고? 보면 안다. 그가 지금까지 끌고 다녔던 죽음은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인상으로 남아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심어주니까. 검은 코트와 중절모를 걸친 그를 가로등 희미한 길에서 만나게 된다면 당신은 분명 죽음과 마주하고 있노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두 눈은 마치 눈앞의 움직이지 못하는 먹잇감을 어떻게 가지고 놀까 고민하는 나태한 육식동물의 눈을 하고 있으며 흉터진 몸과 얼굴은 그가 지금까지 어떤 수라장에서 살아남았는지를 예상하게 한다. 말라보이는 얼굴과 다르게 넓은 어깨와, 마치 대리석으로 조각했을까 싶을 정도의 형태를 확실하게 잡고 있는 근육을 갖고 있다. 기분이 나쁘거나 타깃을 눈앞에 두었을 때 얇고 색 옅은 입술을 혀로 가볍게 핥아내는데 이것은 늑대가 상대를 위협할 때 이빨을 내밀고 으르렁거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걷는 것, 앉는 것, 팔의 작은 움직임, 버릇 모든 것이 기척을 죽이고 어느 상황에서라도 사람을 죽일 수 있게 훈련받아 왔으며 그 행동을 유심히 보는 사람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성격 : 외형이나 분위기완 다르게 넉살 좋고 미소짓는 경우도 있다. 원하지 않게 위의 어두운 분위기를 갖게 되어서 그런지 말투만 들어서는 그냥 옆집 아저씨 같기도 하다.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사건 케이스를 쌓듯 차곡차곡 가슴 속에 쌓아가고 있다. 그와 동시에 언젠가 스스로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포기한 듯한, 초연한 듯한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이것은 일상의 성격으로 '업무' 도중의 성격은 간단히 '주어진 일을 착실하게.'이다. 간혹 타깃과 대화하게 됐을 땐 수수께끼나 문답을 즐기기도 한다. 어쩌면 위의 눈매묘사와 비슷한, 육식동물이 먹이를 갖고 장난치는 것과 비슷할지도.
과거사 : 부모 불명. 암흑가의 유명한 마피아 파르할란에서 연고 없는 아이들을 데려와 암살자로 키울 때 조직에서 키워졌으며 철저히 명령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암살자로서 키워졌다. 그럼에도 그가 성장해가며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의문과 죄책감을 가지게 된 것은 의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주어진 일에 따라 살아오던 도중 자유를 원하게 된 그는 간부와의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없는 의뢰'를 맡게 되고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그 의뢰를 해내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명분에 불과했고, 사실은 그 의뢰 도중 죽기를 바랐던 것. 살아돌아온 그에게 주어진 것은 자유가 아닌 고문과 죽음이었다. 그 고문을 담당한 것은 검은 개라는 회색 늑대와 동일한 위치의 암살자로 그와는 동일한 시기에 주워진 말 그대로의 죽마고우였다. 회색 늑대는 우리의 우정이 겨우 이정도였냐며 비아냥거리지만, 검은 개는 우리의 우정은 우리가 파르할란 안에서 존재할 때의 이야기라며 선을 긋는다. 본래 고문 후 처분되었어야 했으나 검은 개는 이것이 너에게 유일하게 베풀 수 있는 자비라며 그의 두 팔을 잘라 뒷골목 의사 헥터스에게 맡기게 된다. 두 팔을 잃은 그는 그 자리에 날붙이를 대신하게 되고 지금은 그저 노숙자로서 더러운 넝마를 뒤집어 쓰고 하루 하루를 구걸로 연명하고 있다. 자살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는, 글쎄. 어쩌면 속죄할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기타 : 마피아에 있을 때 신체시술을 받았는데 심장에 신체의 피를 이용해 자동적로 약물을 만들어내 필요할 때에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신체의 능력을 인간의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쓸 때마다 수명이 줄어듦은 물론, 쫓겨난 이후로 관리를 받지 않아 노후되어 간혹 숨이 막히고 눈앞이 흐려지거나 붉은색으로 가득해져 시야를 인식할 수 없는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명칭: 램 Lamb 성별: 여성 나이: 17 외형: 사람들은 소녀를 가르켜 어린양, 램이라 부른다. 이는 소녀의 외형에서 기인되었을 것이다. 흰 머리카락은 구불거리며 내려와 이마와 귓가를 가렸고, 뒤는 긴 직모가 허리를 덮는다. 덮수룩한 앞머리 사이로는 유순하게 생긴 연분홍빛 눈동자가 얼핏 보인다. 창백한 피부를 가진 소녀, 램은 분명 피식자의 모양을 지니고 있다. 그 명칭처럼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목숨을 내바치고 말 제물로도 보인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깨질 듯 보이는 유약한 미소에, 양의 모습에 속아넘어간다면 당신은 분명 형편없는 끝을 마주하고 마리라.
능력: [OO 연구소 관측 보고서-××00011.368] 중 발췌 ...실험체는 위 실험을 통해 두 가지의 능력을 얻었다. 본래 실험 α를 통해 환각 능력을 얻었으며 실험 β를 통해 실험체 [편집됨]의 완전기억능력을 이어받았다. 자세한 능력의 내용은 아래 후술한다.
환각-신경계에 간섭해 자신 혹은 타인의 모든 감각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단, 본인이 그 감각을 인지하며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더 커다란 범위로 간섭을 할수록 더 큰 정신력 소모를 필요로 한다. 오랜 기간 높은 강도로 능력을 사용할 경우 그 심각성에 따라 다음 증상들을 보이기도 한다; 심한 환통을 느낀다. 발작과 동시에 주변에 능력을 발산한 후 정신을 잃는다. 일정 기간 오감 중 한 가지를 박탈당한다. 추정되기로는 이 외 영구적인 감각의 박탈이나 사망에 이를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완전기억능력-겪은 일을 모두 기억한다. 망각하지 못한다. 실험을 통해 밝혀낸 바로는 5달 전의 일도 어떠한 오류 없이 회상했다.
성격: #양의 탈을 쓴… #불신주의 #경계심 #외로움 소녀는 자신의 장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유순한 외모와 어린 나이는 상대로 하여금 방심하고 얕보게 하는 데 있어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그리고 소녀는 그런 이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며 생존했다. 세상에는 믿을 사람 하나 없다. 그것이 소녀의 지론이다. 모든 이들은 배신한 자거나, 배신할 자에 불과하다. 혹은 신뢰관계조차 없으니 그저 이용할 사람과 이용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소녀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경계심이 높았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엔 믿을 사람 하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소녀는 한없이 외로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동물이다. 서로를 한 이름으로 엮기를 원한다. 그리고 소녀도 결국, 사람이고 인간이다.
기타: 한 연구소가 있다. 정부 산하로, 연구원을 목표로 하는 자들이라면 한 번씩은 꿈꾸었을 곳이다. 그러나 빛이 있다면 어둠도 있는 법이다. 국가는 막강한 군대를 원하였다. 사람이 가질 수 없는 힘을 가진 군대를.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사라진다 하여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은 모두 끌려가고, 팔려가고, 음식을 준다는 소문에 이끌려 사라졌다. 소녀는 개중 하나였다. 그리고 인고의 시간 끝에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몇 안되는, 성공한 실험체가 사라지자 연구소는 뒷골목에 소녀의 인상착의를 풀었으며 높은 현상금을 내걸었다. 많은 이들이 소녀를 노렸으나 양의 탈 아래에 있는 것에 목숨을 잃었다. 소녀는 그 피를 마시며 살아남았다. 술과 담배를 한다. 뒷골목에서 나이는 큰 의미가 없는 것이라, 어렵지 않게 굴러다니는 것들을 주워 배웠다. 대가를 알면서도 찰나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손에 들었다.
나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해, 늑대주! 아무래도 시트에 <<몇 안되는, 성공한 실험체가 사라지자 연구소는 뒷골목에 소녀의 인상착의를 풀었으며 높은 현상금을 내걸었다. 많은 이들이 소녀를 노렸으나 양의 탈 아래에 있는 것에 목숨을 잃었다. 소녀는 그 피를 마시며 살아남았다.>> 이 부분이 있어서 좀 걸리는데...늑대주는 연구소에 막 도망쳤을 때 만나고 싶은 거야?
>>6 아잇 타이밍이 안 맞았네.....그러면, 늑대주가 말한 이야기를 조금만 바꾸어서 램이 좀 수가 많은 현상금사냥꾼에게 둘러쌓인 상태에서 마주치는 건 어떨까? 그 정도라면 램도 능력을 쓴 후 오는 패널티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을 테니까, 그 때 램을 향해 사각지대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늑대씨가 보고 도와준다던가.
소녀는 달린다. 어림잡아도 열댓은 넘을, 수많은 인기척이 그 뒤를 따른다. 어린양은 탐나는 제물이다. 적어도 그렇게 보이기 충분하다. 여린 팔다리, 얇은 목과 흩날리는 하이얀 머리카락. 사람들은 분별 없이 그 뒤를 쫓았다. 탐욕은 사람으로 하여금 주위를 보지 못하고 달리게 만든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너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너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소녀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 고난 속에서 강해지지 못한 것들은 이미 발 밑에 스러졌을 테니.
다시 말해, 소녀가 여지껏 양에 불과했다면 소녀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땅바닥에 팔다리가 나뒹굴고 있거나 그 시체마저 연구소로 되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이 도시는 그런 곳이다. 강하지 않다면 당신을 위한 빛 한자락 주어지지 않을 곳.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다른 누군가의 빛을 빼았어야만 하는 곳. 소녀는 달린다. 어둠 속에 몸을 숨겨 숨통을 물어뜯을 준비를 한다. 목표를 잃어 헤매는 발소리가 들린다. 숨을 죽인다. 사냥꾼이 방심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마침내 고통이 그를 삼키게 한다. 인간이란 생물은 의외로 단순하다. 이런 거짓된 감각으로도 쇼크사에 이를 정도로. 시체를 두어번 발로 찬다. 미동이 없다. 무언가, 예컨대 담배라던가 라이터를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하며 옷가지를 뒤졌다. 그러나 소녀가 얻은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은, 또다른 추격자들이다. 시체에서 손을 떼고 다시금 달린다. 아까와 같이 허를 찌르기에는 수가 많다.
소녀는 네온 사임의 빛을 피해 어둠 속으로, 골목길로 꺾어들어간다. 허나 막다른 길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담을 뛰어넘기에는 높다. 능력을 사용한다면 저들을 쓰러뜨릴 수는 있다. 그 후가 문제다. 이런 곳에서 쓰러진다면, 혹은 발작을 일으킨다면 잡아가라고 소리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선택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소녀는 최대한 뒤로 물러났다.
램주 안녕. 오늘 하루 잘 보냈어? 미흡하다거나, 그런건 없어. 그냥 둘이서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뿐인걸. 그러니까 그런 생각 하지 말고 최대한 즐겨줬으면 좋겠어. 재미 없으면 의미 없잖아? 그리고 이미 굉장히 잘 썼다고 생각해. 고마워! 나도 시간 들여서 쓰고 싶은걸 써볼게. 좋은 밤 보내길.
사망선고와 같은 말이 끝나고 총구가 빛나며 파열음과 함께 플라스틱 탄이 발사되어 램을 향해 올곧게 공기를 찢고 날아든다. 가까운 거리에, 너무나도 올곧은 방향. 탄이 빗나갈 일은 없을 터이다. 램이 초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은. 공기를 가르는 소리. 하지만 그 소리는, 램에게 닿지 않는다.
"뭣..."
탄은 허공에서 허무하게 소리를 잃고 자취를 감춘다. 그저 작은 플라스틱 덩어리 두 개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허무하게 떨어지는 소리 뿐. 현상금 사냥꾼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더이상 소녀 램이 아닌 흩날리는 넝마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넝마는 바람에 날려가지 않고, 허수아비처럼 그 자리에 서서 지저분한 천을 흩날리고 있을 뿐.
그 허수아비와 같은 것은 남성이 다음 탄을 발사하기 위해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어느새 현상금 사냥꾼의 눈 앞까지 달려든다. 플라스틱이 떨어지는것보다 조금 더 큰, 툭 하고 호박과 같은 것이 떨어져 굴러가는 소리. 비명도, 그 떨어지는 것을 베어낸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으아아아아아아!"
현상금 사냥꾼의 후열에 위치해있던 동료들은 그 상황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패닉에 휩싸여 바람에 휘날리는 천을 향해 손에 든 총을 쏴댄다. 파열음과 함께 수십개의 총탄이 날아드는 소리가 들리지만, 그것은 어느 하나 피부에 박히는 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저 벽에, 땅에, 허공에, 혹은 램의 옆을 스치고 지나갈 뿐.
총성 뒤에 들려오는 것은 묵직한 떨어지는 소리와 무릎을 꿇는 소리. 그것이 몇 번 이어지더니 그 어두운 골목 속 네온사인의 역광에 비쳐 서있는 것은, 허수아비 하나 뿐이었다.
그 넝마를 뒤집어 쓴 존재는 램에게 천천히 다가가 무릎을 꿇곤 머리의 피 잔뜩 묻은 후드를 벗고 얼굴을 보인다. 날카로운 맹수의 얼굴이 평온하게 미소지으며 램의 눈을 바라보았다.
저것을 맞아도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끌려가고 만다. 끌려가느니 차라리...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변은 일어났다. 어느 사람이 앞을 맞아선 탓이다. 아니, 그걸 사람이라고 표현해도 되는 것일까? 짙은 시취가 코 끝을 스친다. 그리고 마침내 눈을 마주친다. 자신이 양의 탈을 쓴 어설픈 사냥꾼이라면, 저건 완벽한 맹수다. 죽음을 몰고 다니는 자다. 소녀는 단정짓는다. 그리고 초식동물의 거죽을 두른다. 지나칠 정도의 공포에 압도된 이가 그러하듯 몸을 떤다. 몰아쉬는 숨이 불안정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담에 기대어 주저앉는다.
"네...감, 사합니다."
목소리가 가냘프게 떨린다. 여린 꽃잎을 닮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겉으로는 공포를 뒤집어썼으나 끈질기게 당신을 관찰한다. 주위의 흐름을 가늠한다. 헛점을 찾아 도망치는 것과, 자비를 구걸하는 것 사이를 저울질한다.
자비, 자비라. 그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소녀는 얄팍한 호의를 믿지 않았다.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런 것을 믿기에는 이미 먼 길을 걸었다. 소녀는 차라리 저 자신을 믿었다. 제 외모와 능력을 신뢰하고, 인간의 어리석음과 우매함을 믿는다. 호의를 가장해 다가왔으나 끝내 자신을 이용하는 이들도 많았기에.
그래서, 당신 또한 그런 사람인가?
"이제 저를 잡아가실 건가요?"
아까와는 다르게 비교적 또렷하다. 그러나 공포를 차마 다 숨기지는 못했는지 여전히 흔들리는 목소리다.
두려움에 떠는 소녀 앞에 선 남자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듯 되뇌었다. 그리곤 긴 넝마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팔을 들어 후드를 벗는다. 네온사인의 역광에 비친 그것은, 확실히 '팔'이 아닌 '날붙이'였다. 후드를 벗어낸다기보단, 밀어내는 그 일련의 동작동안 빛나던 날카로운 그것은 금방이라도 또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것 같이 섬뜩했다.
"아 이건."
남자는 그제서야 자신의 두 팔을 들어올린다. 그곳엔 응당 있어야 할 손과 팔이 없고, 손부터 팔꿈치의 부분까지 '칼날'로 대체되어 있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도. 크롬으로 이루어진 강철팔도 아닌, 그저 날붙이. 물론 개인의 취향으로 신체를 개조하는 것은 이 세계에서 자유이고, 유행이기도 하나 이렇게까지 팔 하나를 검으로 대체하는 경우는 드물다. 강철 팔 밑에 블레이드를 다는 경우는 있어도.
"사정이 있어서 말이다. 아무튼, 널 잡아갈 생각은 없단다. 꼬마 아가씨가 여기서 혼자 나쁜 아저씨들한테 쫓기고 있길래 손을 보탰을 뿐이야."
남성은 두 팔의 검을 들어올리며 마른 웃음을 지었다.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요량이었을지도.
"사정은 모르겠지만 저렇게 저렇게 팀을 지어 널 쫓을 정도면 누군가에게 중요한 타깃 같은데... 꾸물거리면 다른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쫓길지도 몰라. 어쩔래. 따라올래, 아니면 여기 우두커니 서있을래."
검고 해진 넝마를 뒤집어쓴 사신의 모습을 한 남자는 소녀에게 묻는다. 자신을 따라올 것인지, 따라오지 않을 것인지. 그를 따라간다고 해서 구원이 뒤따라올 모양새는 보이지 않았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있을까.
소녀는 표정을 굳힌다. 팔이 아닌 날붙이에서로부터 짙은 혈향이 끼쳐온다. 당장 제 목을 노리고 있지는 않더라도 섬뜩하기는 매한가지다. 소녀는 불안을 뒤집어쓰곤 집요하게 제 앞의 사람을 관찰한다. 당장의 악의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아랫입술을 지그시 짓누른다. 당장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다. 내리깐 눈매 사이로 얼핏 보이는 눈동자가 제법 독기 서려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능력을 쓸 것이라 다짐한다. 소녀는 땅에 손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연한 빛깔을 띤 눈동자가 당신을 바라본다. 입술을 달싹거리다, 작게 이야기한다.
"...제가, 당신을 뭐라 부르면 좋을까요."
돌려 말하였으나 결국은 긍정의 의미다. 잠시는 당신을 믿겠다는, 혹은 적어도 불신을 감춰두겠다는 말이기도 한다. 소녀는 잠시 시선을 돌려 당신 너머를 바라본다. 언제라도 사냥꾼이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은 뼈저리게 알고 있다. 다시금 당신을 올려본다.
"다른 이들이 오기 전에 빠르게...자리를 뜨는 편이 좋겠어요."
이리도 소란을 피웠으니 위치를 들키는 건 문제도 아닐 것이다. 연구소는 놀랍도록 집요했으니.
괜찮아. 처음부터 나도 텀이 길 거라고 언급했기도 하고, 내가 답레 텀을 별로 신경 쓰지 않기도 하거든. 가늘더라도 길게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캐릭터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니까. 나도 지금은 램이라는 캐릭터와 낯을 가리는 기분인 걸. 그러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좋은 하루들 보냈기를 바라, 늑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