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체념한 상태로 미나즈키는 다시 일어나 앉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건 자신이 다림과 꽤 괜찮은 교우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라는 뜻일지도 몰랐다. 평소 안 하던 행동이라는 걸 알아채기 위해서는 평소에 뭘 하는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제야 좀 멀쩡한 정신이 든 미나즈키는 이번에는 다림의 문자에 제대로 답했다.
점술가가 시키는 대로 거울을 잡은 은후는… 약간의 의심을 품었다가, 어쩔 수 없이 의심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하나, 둘…
영성 S답게, 정신력은 쉽게 흔들리지 않아 한 동안 흐르던 내용에도 아무런 요동을 치지 않았으나, 다림의 짖궃은 한 마디에 결국 흑경의 빛이 꺼져버렸다.
"아, 아니… 그게… 으… 아니, 알고 있었어…?"
Iro가 다림인 것이 다행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Iro여서 이런 광경을 보는게 나았나? 어느 쪽이 좋은 건지 좌절에 휩쌓인 은후는 쉬이 판단할 수 없었다. 대신 터덜터덜 다림을 향해 걸어와서는 아무 말 흑경을 넘겨주는것이다. 하지만, 다림이라면 분명 그 표정에서 '나만 죽을 순 없지' 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지도. //14
그러고보니 은근히 맞아떨어지는 거네요. 게이트를 돌 일이 생긴다..(이쪽도 아무말) 그리고는 은후가 영성 S답게 그 광경을 보는 것을 지켜보던 다림은...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하안참 전에 정훈 씨에게 들은 이야기인걸요?" 짖궂은 표정이기는 하지만.. 선을 넘거나.. 싫어하거나.. 그런 쪽은 아니네요. 좋은 사랑 하세요? 같은 말을 할 것만 같은.. 그런데 사실 그런 말이야말로 더 크리티컬이 되지 않나?
"그래도... 학원도에서 연애 좀 하는 게 뭐 대수겠어요?" "은후 씨는 결혼까지 생각하는 것 같지만요?" 놀리듯이 말하면서 얄미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흑경을 넘겨주는 것이나... 나만 죽을 수 없지라는 표정이 보여서 쿡쿡 웃으면서 별 거 나오진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받아들고는 진 위에서 후.. 하고 심호흡을 합니다. 강렬한 것이라면.. 별 거 없겠지요?
오판이었지요.
"...." 다림에게 향하는 폭행 및 상해가 벌어졌다거나.. 그런 짓을 한 다림의 보호자였던 이가 꽤 끔찍하게 작살나는 게 보였습니다. 다만 기뻐할 법도 한데. 진심으로 슬퍼하는 건 은후의 입장에선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겠습니다. 꽤 담백하게 말하긴 했지만.. 다림의 표정은 원래도 창백했지만.. 지금은 핏기 하나 없이 흔들리는 느낌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흑경을 놓치거나 흔들리지는 않네요. 흑경을 빼앗아 든 점술가 흑경을 테이블에 내려놓자 흐르는 것이 끊겼고, 다림은 살짝 비틀거리며 의자에 앉았습니다.
" 성학교가 제일 일찍 끝나니까 빨리 안 오면 줄도 못 설 텐데... 그래도 줄은 섰네요. "
청월은 이럴 때 슬프다. 끝나자마자 있는 힘껏 달려와도 일 때문에 늦은 제노시안과 온 시간이 비슷하다니... 앞에 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한정판매품이 내 코앞에서 끊길 것 같다는 슬프고도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난 그래도 내일 또 오면 되지만. 상대도 비슷한 생각인지 좀 초조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 싫어하진 않죠? 이번엔 친구들이 워낙 한 번 먹어보라고 해서... "
하고, 뭔가의 눈빛에 보답해주지 못하는 답변을 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 추천할 만한 게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 나도 조금 눈을 빛내고 있다. 맛있는 걸 먹는 건 행복한걸...
" 한정판 말고도 다양한 걸 파는 거 같은데, 만약에 한정판을 못 사면 다른 젤리라도 사가야겠어요... "
과일젤리. 과일젤리. 조그만 젤리. 딱딱한 젤리. 생과일이 들어간 젤리. 투명하게 찰랑거리는 젤리와 마른 젤리. ...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게는 역시 사람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였다.
상대가 자신과 같은 타입의 손님은 아니었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결국 다 맛있는 젤리를 위해 찾아와 수고롭게 줄까지 서는 손님들인것을! 여기 젤리는 정말 맛있으니 주변의 친구들이 추천해서 찾아왔을 법 하다. 당장 줄 서 있는 사람들중에 그런 느낌으로 온 손님들도 제법 되시겠지!
" 한정 젤리 말고도 맛있는 젤리가 많이 있으니까 이번에 못 구하신다면 다른 젤리 드셔보시고 다음에 다시 오셔서 드셔보세요! "
포장되어있는 맛있는 젤리들도 있고, 주머니에 넣어두고 한개씩 까먹기 좋은 마른 젤리들도 있고.. 기타등등 맛있는 젤리들을 한가득 파는 가게다. 그 사이에서 한정 젤리는 한정인 값을 충분히 할 정도로 맛있지만!
" ...수가 조금, 애매하긴 한데.. 설마요! "
그렇게 말하면서 정훈이 애써 웃자, 앞에서부터 줄이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가게 안에서 판매 준비가 끝나 손님들의 계산을 해주시는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