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단.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살아있는 생명의 파도가 저마다의 살의를 가진 채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자신들의 죽음은 계산에 두지 않은 채. 끝없이 몰려드는 파도의 끝에는 단 한 명이 그들을 기다렸다. 검은 역병. 그는 손 위에서 두 마리 벌레가 치고박는 모습을 보았다. 이긴 벌레가 진 벌레를 잔혹히 잡아먹고 나자, 하사르는 자신의 손을 쥐어 마지막 남은 벌레마저 죽여버렸다. 생명이란 이만큼 연약한 것이다. 외부에서 조금의 외압만 존재한다면 쉽게 죽어버리는 것. 그에게 군단이란 제 죽음을 위해 다가오는 벌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수백의 샤먼들이 손을 뻗은 채, 제 신들에게 기도를 올렸다. 붉은 피가 하늘로 치솟아 붉은 육망성을 그려내고 사라졌다. 곧 전열에 세워진 노예병들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곧, 샤먼 중 하나가 작게 속삭였다. 달려라. 신께 네 정의를 바쳐라. 그러자 노예병은 눈을 뒤집은 채 하사르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곧 하늘에서 수많은 화살의 비가 하사르를 향했다. 인산인해 속. 오직 한 사람만을 죽이기 위해 수천의 목숨이 흩어지고 있었다.
" 겨우. "
기분이 더러워졌다. 하사르는 손을 들어올렸다. 이미 미친 놈들에겐 고통은 필요하지 않았다. 단지 빠르게 죽일 수 있는 죽음만이 그들에게 필요해보였다.
" 이딴 걸로 날 죽이겠다고? "
하늘이, 묵빛 구름으로 가려졌다. 곧 열사의 땅이 차갑게 식기 시작하고, 검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샤먼과 지휘관의 몸에는 백색의 막이 펼쳐졌지만 그 외의 평범한 병사들은 그런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곧 한 병사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게 내리는 비가 의아했다. 그 입 속에, 단 한 방울의 비가 들어갔음에도 그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온 몸에서 피가 끓어올랐고, 마침내 입을 향해 피를 토해냈다.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한 병사를 시작으로 거대한 죽음이 마치 파도처럼 천천히 퍼지기 시작했다.
" 각혈과 혈액 증진, 분열과 같은 것들을 적절히 응용하면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지. 단 하나의 문제 속에 수 많은 이로운 것이 더해진들 좋지 않은 것과 더해지면 결국 다 뒤지기 마련이야. "
아비규환. 그 풍경이 어울렸다. 피를 토해내던 병사는 곧 눈이 뒤집혀 제 옆에 있는 병사를 향해 달라들기 시작했고 그 물결은 지휘관에게 닿기까지 충분했다. 지휘관의 말을 물어뜯어 산 채로 씹어먹고, 지휘관의 고갤 젖혀 비를 맞게 했다. 곧 그가 피를 토해내면 바닥에 던져버렸다.
" 환각과 착란, 환통. 별 것 아닌 것들을 증폭시키면 이런 효과가 나오곤 하지. "
하사르는 사막의 봉우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며 손을 뻗었다. 그에게 이 비는 더없이 평온하고, 시원한 것이었다.
" 내 손으로 죽일 가치도 없는 벌레 새끼들에게. 힘을 쓰는 것도 기분 잡치는군. 벌레는 벌레처럼 엉킨 채 죽게 내버려 두지. "
치오랑은 일상에서 어떻게 지내나요? - 보통은 자신에게 제공된 커다란 호텔에서 하루종일 자곤 합니다. 중국에 나타난 대형 ~ 초대형 게이트들은 대부분 치오랑이 없애고 있는데다가, 치오랑의 전투 방식이 한 번 싸우기 시작하면 수백일간 잠을 자지 않더라도 멀쩡하기 때문에 전투가 끝나고 일이 없다면 깊은 잠에 빠진 채 쉬곤 하죠. 이 때의 호위는 중경한가에서 맡습니다.
서유하는 마도를 정립하고 직접 가르친 9명의 제자가 있는데, 이들을 마탑의 아홉 대마도사라 부릅니다. 이 중 가장 특이한 인물로는 '시간'과 관련된 마도를 사용하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라는 단어에 의문을 느끼시는 경우가 있을 것 같은데 1세대 아닙니다. 오히려 2세대 중반 인물로 가장 늦게 서유하의 제자가 되었던 인물입니다. 저번에 풀린 것과 같이 '의념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규칙 속에서 '그렇다면 지금 내 시간만을 제외하고 타인의 시간을 아주 느리게 만든다면 어떨까?'라는 집념 하나로 시간의 마도를 쌓아올린 유명 인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외모가 매우 늙어서 서유하는 '네 의념을 쓴다면 금방 젊은 시절의 외모를 되찾을 수 있지 않아?' 라고 물어보곤 하지만 그는 '자신은 시간이라는 금지된 학문을 다루었는데, 살아있을 수 있던 것 역시 의념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죽더라도 자신의 죽음을 무덤덤히 받아들이겠단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그는 마탑에서 시간 마법에 대해 가르치고 있으며 상당히 마이너한 마도 학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탑의 유명한 마도사들이 그렇듯 꽤 괴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는 가끔 서유하가 바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면 그녀의 할아버지인 척 손님들에게 장난을 치곤 한다고 합니다. 외에도 어떤 문제를 내어 정답을 맞춘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마도의 지식과 물건을 전수하겠노라 선언하였는데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마탑의 10대 난제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