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여자기숙사 앞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여자친구의 방에도 가본적 없는 내가 왜 이러고 있냐면, 같은 동료인 다림씨의 상태가 요즘 아무리 봐도 이상하기 때문이다. 지난번 숙청 여제 이후 사건부터 얼굴을 피고 다니는걸 잘못봤다. 사고를 저지르고 에릭처럼 뻔뻔하게 구는 것도 탐탁치 않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울적해있는 쪽이 훨씬 더 부담스럽다.
"아. 다림씨. 별건 아니고 요즘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문을 연 그녀에게 병문안 선물로 어울릴법한 과일 셋트를 들어 올려 보여주면서, 방문 목적을 알린다. 그러면서 나는 내심 빠르게 그녀의 기색을 훑었다. 평소처럼 보이려고 하고 있긴 하지만, 역시나....썩 좋아보이진 않는다. 평소에도 창백한 편이지만,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고 할까. 분위기가 가라앉아있는게 느껴진다고 할까.
아마 문은 금방 열렸을 겁니다. 잠을 설쳤다가 다시 잠들려 했다.그런 거였다면야 좀 느적했겠지만.
"안녕하세요 진화 씨.." 하필 또 마지막에 전투불능으로 만들어놓은 사람이 진화씨였다는 점에서 조금.. 울적하고 기분이 가라앉다 못해 진창으로 처박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죄송하고 잘못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그게 있다는 거지요. 과일 세트를 보고는 그런 거 없이 찾아오셨어도 괜찮은걸요... 라고 말을 하고는 들어오셔도 좋아요. 라고 답합니다.
"상태.. 아. 몸은 괜찮아요. 보건실 분들께서 매우 확실하게고쳐주셨어요." 라고 말하며 다른 분들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지 않은 것도 다행이지만요.. 라고 말하면서 점점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더니.
"진화 씨는... 괜찮으신가요... 일이 그렇게 벌어져서 죄송합니다..." 쭈뼛쭈뼛 말하는 말이 죄송합니다.. 라니. 글러먹었어!
노아는 아프란시아의 재능충 NPC다. 올 A스탯, 그러니까 솔직히 나보다 게이트에서 쓸모있어. 게임을 잘하고, 후배 캐릭티이며, 진석이와 썸씽이 있지. NPC 연플의 교과서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나 해야 할까.
하나미치야 이카나, 에릭의 여인들 중에서 승리한 히로인. 에릭 레이드 끝에 현재는 연인 관계이고…… 여우 귀 달려 있다는 그 NPC가 이 녀석이야. 그 외에는 시선 NPC인 메리 하르트만도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상장폐지다.
하루카사는 이미 이루어져 있으니까 넘어가고…… 아, 릴리주 이하의 신입들은 카사주랑 함께할 기회가 얼마 없기야 했겠군.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야생소녀와 천사표 소녀 백합이야. 존귀하지? 하루 씨는 카사 씨를 키우려고 대저택까지 장만했거든.
지훈비아와 정훈은후는 아직 고록이 오가지 않은(정식으로 캐릭터들 간에 연플이 맺어지지는 않은), 그러나 오너들 합의 하에 이미 연플을 맺기로 약속되어 있는 조합이야. 사실혼 같은 거라고 생각해. 원래 이런 케이스가 상판, 아니 커뮤 계열을 전체적으로 통틀어서 드문데…… (고록 없이 오너 합의만으로 찜꽁해 놓으면, 그 캐릭터를 좋아할 수도 있는 다른 캐릭터들에 대해 가로채기가 될 수 있으니) 이 어장의 특징인 셈이지, 뭐.
그러니까 상기 조합은 이미 공인된 썸씽 이상이니까 안심하고 언급해도 된다는 말이야. 원래 성사 전까지 연플 관련한 내용을 대외비로 두는 건 설레발을 쳤다가 망했을 때의 후폭풍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거든.
나를 보자마자 그녀의 표정이 다시금 가라 앉은 것을 보곤, 나는 드물게 울컥하면서 딴죽을 걸었다. 그 심정을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몇번째인가. 계속 반복 되다보면 마치 내가 그녀의 죄책감 스위치라도 된 것 같아서 별로 편하지 않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나는 카페에서 같이 일하면서 얼굴을 마주치는 빈도가 잦았으니, 더더욱 자주 느꼈을 수 밖에.
"그건 다행이다."
확실히, 그 때 다림씨는 조종 당하고 있었으니까. 그 사정을 아는 참가자들은 그녀를 배려해서 최대한 치명적인 상해를 입히지 않도록 주의....했다고는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왠 간부 같은 녀석이랑만 싸웠으니까.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 자체는 지장 없이 하는거 보면 확실히 신체적 상해는 없는 모양이지만.
".....그 얘기 요 최근에 두자릿수는 넘게 들은거 알아?"
결국 인내심의 한계가 온 나는, 정중하게 존댓말 하던걸 관두고 두 허리에 손을 얹은체 혼내듯 얘기했다. 이래보여도 내가 연상이니까.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