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책에 대해 동료들에게 사과하면서도, 경종이 빠릿빠릿하게 울려온다. 강렬한 마도가 여기를 휩쓸 것이다......! 도망쳐야 되나? 아니, 청천이 빼곤 회피 기동에 능숙한 사람들이 아니다, 등에 직격할거야! 주변을 부숴야 하나....? 아냐, 더 큰 소음은 문제를 불러일으킬지도 몰라....!
그럼 결국, 답은 하나잖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벽이 되어서 동료를 지키는 방법 밖에 없어!
"....청천아, 최대한 버프 부탁해! 성현씨는 절 뒤에서 받쳐주면서, 투지의 의념을 제게 불어 넣어 주세요!! 둘 다 내 뒤로 와!!"
여기서 써도 괜찮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대공동을 휩쓸었다는 불꽃의 흔적을 떠올린다. 이 순간을 견디지 못하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특히나, 성현씨라면 몰라도, 이미 부상을 입은 청천이가 버틸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일단은, 재정비를 하더라도, 이 위기의 순간을, 넘겨야 한다....!!
내가 살아있는 이상, 열망자들 따위에게 동료들이 다치게 둘 순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를 악문체로 의념을 전개했다.
【그래도 나는 영웅을 꿈꾼다.】
#정면에서 방패들고 의념기를 발동합니다. 가능하다면 부동일태세도 같이....그러면서 망념 인형 50을 써서, 열기에 방패를 놓치는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건강과 신체를 강화 하도록 해요.
우리한테 엄청나게 미안해한다는 정도. 정훈의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쉴뻔한 걸 가까스로 참으면서 은후는 가볍게 맞장구를 친다.
"어릴 적에 놀이터에서 같이 놀곤 했거든요."
학원도에서 다시 만난 다림은, 놀이터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많이 달라진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도 변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으나- 은후를 따라온 누나를 다림이 유심히 관찰하더니 어느 순간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느니, 지금도 그렇기에 가끔 그녀를 보기 고통스럽다니 하는 이야기는, 미처 털어놓지 못했다. 아직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힘껏 삼키며 볼에서 손을 뗐다.
그냥, 좀 부럽다라…. 가끔은, 자신이 가진 감정과 상대가 가진 감정이 다르면 어쩔까, 하는 생각에 묘한 감각 속으로 빠져든다고 생각하며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달아날 수 있을까 하는, 헛된 망상.
"왜 제노시아의 벚꽃이, 학원도에서 유명한지 단번에 알 정도로요."
제노시아 학생들이 부러워라, 하는 말을 하려는 찰나 들려오는 소리에 은후는 몸을 홱 하고 돌렸다. 버둥거리는 정훈이 귀여우면서도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 경쾌한 웃음소리를 내며 정훈의 한쪽 팔을 붙잡고 가볍게 자신을 향해 잡아끈다.
다림주: 솔직히 보호자에게 보호받는 건 보호자가 새 애완동물 들이는 감각으로 생각했거든 다림: (동공지진) 다림주: 근데 널 받아줄 만한 그런 밑바닥+여성이려면 화류계 외엔 딱히지 않을까... 야악간 방주다섯의 조작같은 그런 것도 좀 참조했지만.. 다림: 다림주: 팩트라구 팩트... 그래서 누님을 관찰하고 따라한다거나 그랬겠지...
어릴 적에 놀이터에서 같이 놀았던 친구... 그런 인연을 학원도에서 만나기도 하는구나 싶으면서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다 지난 이야기이고 더 이상 그걸로 힘들어하거나 하진 않지만!
차에서 내리며 균형을 잃고 허우적거리며, 아까까지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생각들이 순간 밀려나는걸 느끼다가 옆에서 은후가 자신의 팔을 잡아 끌어당기자 정훈은 그쪽으로 끌려가면서 반쯤 무너지듯이 은후에게 몸을 걸쳐 간신히 넘어지지 않고 버텨섭니다.
꼴사납게 넘어지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순간 밀려났던 생각들이 머릿속에 다시 차오름과 동시에 팔을 잡고있는 은후의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정훈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립니다.
" 장갑. "
아, 이제 알겠네요. 아마.. 다른 친구들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거에요.
몸의 중심을 다시 잡고 무너진 자세를 추스르면서 정훈은 고개를 들어 은후의 눈을 바라봅니다. 아까까지 여러 고민이 가득 차 멍했던 눈은 이제 해답을 찾은 듯 담담한 확신을 담고 은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 그 장갑 있잖아. 배려였다고 생각해? 아니면 간섭이었다고 생각해? "
그 질문을 하고 나서 정훈은 혼자 헛웃음을 터트립니다.
아, 지금 물어보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오늘은 그냥 예쁜 벚꽃을 보러 온거였는데..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나는 나인거겠죠. 송곳을 여러 주머니로 감싸두어봤자 힘이 가해진다면 아무것도 없다는 듯 뚫고 나오니 마련이니까요. 그게 싫다는건 아닙니다. 그런 자신은 이미 오래 전에 받아들였으니까요.
" 배려였을까? 간섭이었을까? "
나름의 답을 내린 정훈은, 원래 모습대로 주위를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그저 확신에 찬 눈동자로 은후를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답을 내린 질문을 허공에 흘리던 정훈은.. 잠시 그렇게 은후를 바라보다가 돌연 뒤로 두 걸음 물러서더니 눈을 두어번 깜빡이고 다시 천천히 웃음지으며 입을 엽니다.
" 아하하, 그러니까! 벚꽃에 정신이 팔려서 넋 놓고 말이야. 어릴때랑 달라진 게 없네! "
그렇게 말하면서 시선을 돌려 거대한 벚꽃나무를 보면.. 단순히 예쁘다거나 멋있다는 감상을 넘어서서 웅장함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진짜 그림 속이나 꿈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