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260267> < 황폐한 / 비현실적인 / 생존주의자 > 시간 죽이기 - 임시 스레 :: 6

◆.Th3VZ.RlE

2021-07-11 02:59:24 - 2021-07-14 14:08:45

0 ◆.Th3VZ.RlE (hJKeI3kWFo)

2021-07-11 (내일 월요일) 02:59:24

이제까지 사람이 시간을 죽였으니 시간이 사람을 죽일 때도 됐지

3 이름 없음 (J5Xkx3T8NY)

2021-07-11 (내일 월요일) 05:59:49

미친 . 눈치채면 반드시 시간에 쫓기고 있다 . 어디로 어떻게 숨어도 반드시 나를 찾아내어 쫓아온다 . 시간이라는 놈은 채권자 같아서 한 번 노린 먹이는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 이렇게 되면 시작되는 것은 지루한 지구전이다 . 이것의 반복을 난 올해 들어 몇 번이고 경험하고 있다 . 턱 밖으로 튀어나와서는 안 될 것이 튀어나오려 할 때까지 죽도록 달려야만 나를 죽이려는 시간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다 . 한 때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시간에 맞서 시간을 죽이려 했지만 시간 죽이기에 실패한 사람들이 어떤 처참한 결말을 맞는지 알게 된 이후로는 이러한 생각을 접게 됐다 . 사람의 힘으로는 시간을 죽일 수 없다 . 죽이되 이길 수는 없다 . 모든 부모 있는 사람은 결국 시간에 지게 되어 있으니까

" 썅 ! "

사람은 시간을 이길 수 없다 . 이제까지는 막연하게 진리로 여겨지던 말이 현실이 되었다 . 방관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소매를 걷어부치고 직접 사람 죽이기에 나선 시간에 인류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 패전을 거듭하고 있다 . 나라는 진작에 구실을 못하게 됐다 . 무차별적인 시간의 습격에 사람이 사라진 거리에는 을씨년스런 바람 소리만 요란하다 .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을 보았던 게 대체 언제였는지 . 길고양이나 지나다닐 건물 사이의 협소한 틈새로 뛰어들며 입술을 가늘게 찢는다 . 코를 찌르는 쩐내에 하마터면 왔던 길로 되돌아갈 뻔 했다 . 뒤에서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모르지 않음에도 말이다 !

" 읍 .. 씨이 .. "

냄새가 지독하지만 나보다는 시간에게 더 곤란한 길이었다 . 무턱대고 덩치를 불린 시간으로서는 저 길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 등에 맨 배낭이 튀어나온 장해물에 걸릴까 걱정하는 한 편 시간의 동태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으면 - 다행히 시간은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고 있었다 . 자신의 자랑이었을 커다란 덩치가 독이 되어 나를 쫓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 이대로 떼어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 사람을 죽이려는 시간의 집념은 보통 강한 것이 아니다 . 앞으로 일주일은 더 녀석과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를 하게 될 것이다 . 이러한 생각에 나는 몸서리를 쳤지만 어쩔 수 없게도 -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었다

4 ◆.Th3VZ.RlE (Kf2J2oGR4E)

2021-07-12 (모두 수고..) 12:22:57

2021 .

시간이 사람을 해치기 시작한지 벌써 반 년 여의 시간이 지났다 . 무엇이 계기가 되어 이것들이 우리의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했는지 이제와서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 아는 사람이 있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 인프라가 붕괴한 암흑 시대를 살아가는 얼마 남지 않은 인류는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급급해 이러한 원초적인 의문을 의사적으로 머릿 속에서 배제했다 . 어째서 우리가 이렇게 처참히 멸종해야만 하는지 . 이유를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단순한 사람이 살아남는 시대다 . 단순히 강한 사람이 . 빠른 사람이 살아남는다

생각의 무게 만큼 몸이 둔해진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람들 . 그들 모두가 시간의 손에 살해당했다

아직까지 살아 있는 우리는 저러한 군살을 잘라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 혈연 관계의 누군가를 포기한 사람도 있었다 . 평생을 들여 일구어낸 재산을 포기한 사람도 있었다

자신의 열정을 배신하는 것으로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 . 이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은 우연일까

두 달이 넘도록 사람다운 사람과 만나지 못했던 나는 - 세상에 사람은 나만이 남은 게 아닐까 생각하던 나로서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5 ◆.Th3VZ.RlE (Kf2J2oGR4E)

2021-07-12 (모두 수고..) 17:14:02

우리는 보는 즉시 저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 매스 미디어를 통한 대대적인 성명이 있어 정착된 이름이 아니라 저마다가 스스로 저것을 시간이라 부르기로 한 것이다 . 영문 모를 일에는 영문 모를 일이 뒤따르는 법이니 나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 집단무의식이니 하는 편리한 말이 세간에는 존재한다 . 내가 관심 가진 것은 보다 피부에 와닿는 문제였다 . 우리가 시간이라 부르는 괴수는 일정한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 사람에 따라 저마다 상대하는 시간의 모습이 다른 것이다 . 어떤 형태를 취하더라도 괴수의 본질이 시간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지만 - 이래서야 대책을 세우기가 곤란하다

무엇을 주식으로 삼는지 . 어떻게 번식하는지 . 약점이 존재하기나 하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6 ◆.Th3VZ.RlE (C29bMTxq6Y)

2021-07-14 (水) 14:08:45

2 월 10 일

날개 달린 시간의 머리 ─ 로 생각되는 부위 ─ 를 엽총으로 맞출 수 있었다 . 엽총에 맞은 시간은 피탄과 동시에 밸런스를 상실해 지상으로 추락했고 콘크리트 바닥에 그 냄새나는 몸뚱아리를 부딪혔다 . 밤낮도 모르고 나를 괴롭힌 벌이다 . 죽음이라는 형태로 확실하게 안심을 취하기 위해 소지한 연장을 사용해 놈의 육체를 해체했다 . 완전히 해치우기까지 두 시간이 더 걸렸다

3 월 27 일

도로 한복판에 커다란 모래 구덩이가 있어 미끼를 던져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밑에서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 대들보 같은 열 개의 손가락이 모래를 헤치고 솟아나 미끼를 가져갔다 . 밤 늦게 여기를 지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이 길을 지날 때를 대비해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펜스 몇 개를 근처에 세워두었다

4 월 1 일

시간이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이미 구하기에는 한 발 늦어 뒤에서 상황을 관망했다 . 허리가 휘어 있는 곱사등이 시간이 뒤룩뒤룩 살찐 두 손으로 초로의 남자를 인형처럼 쥐고 있었다 . 손에 붙잡힌 남자는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시간의 심상치 않은 악력에 저항을 포기하였다

시간의 한 끼 식사로 전락한 남자에게 조의를 표한 나는 이후 시간이 떠난 자리에서 남자의 유품을 챙겨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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